50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
“오! 안녕, 티티.”
차의 조수석에 올라타자 반가운 듯 가웨인이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녀석을 칭하는 게 맞을까 싶었던 나는 희미한 이질감을 느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뒷자리에 올라탄 린슬렛이 가볍게 볼멘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손을 내밀어 가웨인의 볼을 꾸욱 꼬집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야야야야! 미, 미안해! 린슬….”
“?”
가웨인이 아픔에 비명을 지르던 중, 나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린슬렛의 손을 제지했다. 나조차 그렇게 느낄 정도로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리는 모두 의아해했다.
“…. 빨리 출발하자.”
“헤에, 둘이 사이 좋은가봐?”
“우, 운전이나 해.”
가웨인의 짓궂은 물음에 나는 앞머리를 매만지며 룸미러를 통해 린슬렛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내가 슬쩍 잡은 팔목을 감싸 쥐고 있더니 이내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어보였다. 나는 적당히 그 시선을 피했다.
“그럼 출발합니다아!”
“주, 주인님! 넬은 첫 여행이라 떨려요!”
“….”
뒤쪽에서 내 머리에 얼굴을 걸친 넬이 흥미로운 얼굴로 출발하는 차를 바라보았다. 가웨인이 옆에 있었기에 대답하기는 힘들었으나 뒤쪽의 린슬렛이 웃었다.
“그러면 가볍게 통성명이나 할까?”
“….”
“흐음, 싫은가보네.”
딱히 생각을 하고 있을 뿐 아직 마음을 정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아직 라쿠스 기사단 전반과 관련되어 믿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 퀘스트가 끝난 후에 생각해보지.”
“거 참 아쉽네. 무뚝뚝이. 본명으로 좋은 별명을 지어줄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거절하겠어.”
“이렇게 차가운 점이 매력이라니까.”
이상한 녀석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상쾌하게 웃고 있는 가웨인의 옆모습을 힐끔 보았다. 탁월한 운전 솜씨로 서울 시내를 질주하고 있는 녀석은 적잖이 즐거운 모습이었다.
“린슬렛.”
“응, 티티.”
“이따 휴게소에서 자리 좀 바꿔주라.”
“…. 다른 사람이었다면 싫다고 했겠지만.”
“하하하! 그럼 휴게소에는 안 들려야지!”
다시금 상쾌한 웃음에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니 가웨인은 이내 내 쪽을 바라보며 가볍게 윙크를 했다.
“빨리 도착할 거야. 예쁜이.”
“…. 지금 바꾸자.”
“나보고 저걸 견뎌내라고?”
“이 녀석, 누구한테나 이래?”
나는 슬쩍 앓는 소리를 내며 물었다. 만난 적이 별로 없음에도, 그리고 그 만남들이 딱히 좋지 않았음에도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가운 태도를 취했다.
개인적으로 무척 싫어하는 상이다.
“아 맞다. 린슬렛. 우리 어디로 가지?”
“…?”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가웨인은 방금 떠올린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뒤쪽에서 디멘션 커넥터로 게임을 하던 린슬렛이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제부도잖아.”
“아 거기…. 는 반대편이네.”
뇌에 입력했다는 듯 중얼거리던 가웨인은 고장 유턴을 시도했다. 가로수를 들이받는가 싶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한데다가, 차가 휘청거릴 정도로 빠른 움직임에 반대편 차선에 있던 차들이 놀라 경적을 울렸다.
“미, 미친 거냐…?”
저도 모르게 조수석의 바를 잡은 나는 식은땀이 나는 걸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호쾌하게 웃음을 내지른 가웨인은 이내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괜찮아. 금수저니까.”
“….”
하긴 차도 비싸 보이긴 했지.
“아, 방금 그거 개인정보야. 너와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의 표시랄까…?”
“그렇군.”
더 반응을 보여 봤자 흥미를 돋울 뿐이라는 생각에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녀석은 그런 상황에서조차 능글맞게 웃으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차는 이내 서울 시내를 빠져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그러는 사이 어쩐지 지루한 기분을 느낀 나는 아서리안을 켜고 퀘스트창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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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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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랜슬롯의 여정 5/10
난이도 : ★★★★★★☆☆☆☆
내용 : 3개의 원판 조각을 모두 획득하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경험치 1,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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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확실히 제부도 방면이긴 하네.”
옆쪽에서 함께 퀘스트 로그를 읽은 가웨인이 가볍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린슬렛 역시 좌석 사이로 빤히 얼굴을 내밀어 나는 화제의 전환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는 건가.”
“가까이 가면 갱신될걸?”
“음? 무뚝뚝이, 모르는 거야?”
“외국 쪽에는 에픽 퀘스트가 없다는데?”
“호오.”
린슬렛의 대답에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린 가웨인은 이내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듯 쓰게 웃어보였다.
“내가 가웨인이 될 때는 별 거 없었지?”
“뭐 그때는…. 워낙 입단속을 잘했잖아? 거기다 무슨 일인지 할 킬러즈 놈들 단속이 심해져서. 그거 혹시 너희 아버지랑 관련…. 아 미안, 개인 정보를.”
“아하하, 괜찮아. 괜찮아.”
무슨 소리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린슬렛을 힐끔 돌아보았다. 하지만 녀석은 말실수를 했다는 듯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며 다시금 뒷좌석에 기대어 앉았다.
신경이 쓰이는데.
“아, 휴게소다. 들어가야지~.”
그러던 중, 갑작스레 가웨인이 방향을 틀어 휴게소 안으로 진입했다. 우둘투둘한 과속방지턱을 느끼며 나는 어이가 없어 녀석을 바라보았다.
“호두과자. 먹을래?”
익숙해지지 않는 녀석이군.
◇
그리고 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부도에 도착했다. 마커의 근처에 있던 주차장에 차를 세운 우리는 곧장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며 마커의 위치를 찾으려 했다.
“와! 바다 냄새 좋네!”
가웨인은 빼야할 것 같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갯벌 쪽으로 돌아서 붉은색 머리를 흩날리며 좋아하는 가웨인을 한심하다는 듯 돌아보았다. 양팔을 벌린 채 바람을 맞고 있는 녀석을 주변의 여자애들이 보고는 키득거리며 지나쳤다.
“가자. 티티.”
“저 녀석은….”
“내버려둬. 원래 저러니까.”
가볍게 중얼거린 린슬렛은 이내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거기에 이끌려 나는 비명 소리가 나고 있는 장소로 들어섰다. 소위 말해 ‘놀이공원’이라고 불리는 장소였다.
“아, 잠시만 기다려!”
가볍게 중얼거린 린슬렛이 먼저 어디론가 가, 나는 조용히 놀이공원의 외관을 둘러보았다. 바이킹이 하나에, 낡은 청룡열차. 그리고 회전목마, 마지막으로 원형으로 된 알 수 없는 놀이기구가 하나. 디멘셔 커넥터가 표시하는 정보에 따르면 ‘디스코 팡팡’이라는 모양이었다.
한 10년 전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
디멘션 커넥터가 표시하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얼마 전에 보수 작업을 했다고 되어있는데, 그래 보이지는 않았다. 녹이 슬다 못해 원래 그런 색인 것처럼 보이는 기둥을 바라보던 나는 순간적으로 그게 무너지는 상상을 하고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넬, 정확히 어디를 보수한 건지 알아봐줄 수 있어?”
“음~ 잠깐만요…. 호오, 기구마다 디멘션 커넥터의 증강 현실 기능을 추가했다고 하네요!”
“그걸…?”
어이가 없어져 중얼거린 나는 이내 놀이기구의 장치 옆에 달린 신호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부분만 새것으로 반짝반짝 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자! 네 표야!”
“? 뭐?”
잠깐 생각을 하던 중, 눈앞에 불쑥 다가온 표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잡아서 보니 ‘디스코 팡팡 입장권’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이 공원은 아직도 종이로 표를 팔더라고. 신기하지?”
“…. 우리 놀러온 거였냐?”
“에헤이, 그러지 말고! 원래 이런 쌈마이한 공원에 오면 한 번쯤은 타야 하는 것이 디스코 팡팡!”
“주, 주인님! 타요? 네넬? 넬도 타고 싶어요오!”
“….”
넬까지 흥분해 부탁해,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린슬렛은 활짝 웃으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헤헤, 타자!”
어쩔 수 없군.
“딱 한 번이다.”
원래 여기에 온 목적이 희미해지는 걸 느끼며, 나는 린슬렛과 함께 디스코 팡팡에 올라탔다. 따라서 손님이 꽤나 올라타, 나는 이 조그마한 공원 내에서 이게 최고로 인기가 좋은 기구임을 깨달았지만,
“….”
대체 뭐하는 기구지.
“린슬렛, 이건 무슨….”
[디스커우 판판, DJ병훈. 출봘합니다아.]
그리고 돌연, 기구가 덜컹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디멘션 커넥터가 우주공간을 눈앞에 구현하여 기구와 앞의 관객(?)만을 제외하고는 검은빛에 휩싸였다.
“꺄악!”
“야호!”
양쪽에 앉은 린슬렛과 넬이 조그맣게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안전장치조차 없는 상황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 잠깐 세워달라고 해…!”
[거기 형씨이, 뭘 그리 멍 때리고 있어?]
그 순간 기구가 한순간 기울어졌다.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던 나는 몸이 부웅 뜨는 걸 느끼며 다음 순간 더러운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푸, 푸하하하하하핫!!”
주변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나는 알싸하게 아픈 코를 감싸쥐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대체 이건 무슨 상황인 거야.
“티, 티티이이이! 어, 엄청 아프겠다아아!”
신난 듯 소리치는 린슬렛의 목소리에 돌아본 나는, 약간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이쿠, 어딜 가시게?]
하지만 다음 순간 기구가 반대편으로 뛰어올랐다.
“큭?!”
휘청거리다 넘어진 나는 바닥을 주욱 미끄러져 반대편 의자에 처박혔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어질해지며 아무거나 잡고 일어난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놀러온 듯 보이는 여고생이 둘, 양쪽에 앉은 채였다.
“미, 미안합니다.”
“…. 조, 존잘.”
“?”
[하씨, 이거 허우대는 멀쩡해서어.
“크흑?!”
얼굴이 붉어진 여고생들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던 순간, 다시금 의자가 튀어 올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반대편으로 넘어지려 했다. 하지만 이내 뭔가에 팔이 붙잡히는 걸 느꼈다.
“오, 오빠아!”
“이쪽으로 올라와요!”
…. 여고생 둘이 내 팔을 잡고 있는 상태였다.
[어? 너 이거 범죈 거 몰라? 안 떨어져? 안 떨어져?]
“내, 내가 뭘….”
“어쩜 좋아! 목소리도 쩔어!”
몇 번이고 놀이기구가 튕겨 오르며 몸에 충격을 가했지만 여고생들은 결코 내 팔을 놓지 않았다. 나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느끼며 몇 번이고 기구 위에서 춤을 추었다.
“티, 티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린슬렛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심결에 뒤를 돌아본 나는 녀석이 달려와 어깨로 복부를 들이받는 걸 느꼈다.
========== 작품 후기 ==========
전작의 전자책 관련 작업으로 인해 고통받고있습니ㄷ.. 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