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
자기 꼬리라도 구워먹은 건지, 뱀장어는 좁은 하수도를 반쯤 박살내다시피 하며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큭!”
이 또한 엘레노어의 의도인 걸까.
주변의 다른 파이프는 막히거나 통과 금지라는 표식이 붙은 채여서, 나와 린슬렛은 한 방향을 향해 계속 뛰는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녀석이 벽에 부딪칠 때마다 큰 폭으로 방어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어서 이대로 계속해서 도망치면 되겠지만…!
“티, 티티!”
“왜!”
“사실 지금까지 게임을 해보면서 느낀 건데에!”
큰 소리로 외친 린슬렛이 이내 벽을 박차고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모퉁이를 돌았다.
“이렇게 사람 고생시켜놓고 경험치 적게 주거나 보상이 짠 경우는 없었거든?!”
“그래서?!”
“근데 아까의 결과를 보면 경험치는 짤 거 같고…! 만약에 아이템이라도 좋은 거 안 주면! 죽여 버릴 거야!”
“누, 누구를?”
“누구든지! 되도록 엘레노어가 좋겠지만!”
“불가능할 걸…?”
“죽일 거야아아아아아!!”
“….”
분노로 모든 것을 수행할 것처럼 린슬렛이 달리는 속도를 드높였다. 그 뒤를 따르며 나는 뒤쪽을 힐끔 돌아보았고 마찬가지로 분노에 몸을 맡기고 이는 뱀장어의 스테이터스를 눈으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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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c Mon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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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거대 뱀장어
Lv : 70
Exp : 100,000
방어력 :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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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멈춰 설 때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달리는 일에 여유를 두지 않고 속도를 높여 린슬렛을 쫓아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을 걸려던 찰나, 갑자기 누군가 귓속말을 걸었다.
[타나토스님, 혹시 퀘스트 중이신가요?]
빼빼로였다.
“그렇, 다만…!”
[아 역시 그러셨군요. 근처에 있으신 것 같네요.]
“근처라니?!”
[출근하던 중에 파이프가 울려서 혹시나 싶었죠. 거기에 타나토스님의 목소리도 듣고 싶었고.]
“….”
이 녀석 설마 날 좋아하는 건가.
[어쨌든, 다행이네요. 퀘스트 잘하고 계신 것 같아서.]
“뭐?”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신가요?]
“너! 너어어! 빼빼로오오오!!”
바로 그 순간, 옆에서 듣고 있었던 건지 린슬렛이 내 귀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집에 가는 길에 이비인후과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이어지는 그녀의 분노가 섞인 비명을 견뎌냈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야?!”
[호오, 역시 린슬렛님도 함께….]
“계시지! 그렇지! 그리고 그게 널 죽일 여자의 이름이야!”
“….”
“린슬렛님 과격하시네요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이게 대체 무슨 짓거리야! 장난쳐?!”
[타나토스님, 무척 고생하신 것 같군요.]
“그렇지.”
[끝나면 들러주세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도 대접하겠습니다.]
“…?”
“하! 나라면 시원한 핫 초코를 주문하겠어! 그리고 그걸로 널 죽일 거야!”
무슨 반응을 보여야할지 모르겠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달리는 도중에 앞머리를 매만졌고, 빼빼로는 한 차례 웃더니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금 뒤쪽의 뱀장어에게 시선을 돌린 나는 길게 뻗은 통로 끝에서 빛을 발견했다.
저곳이 끝이라는 건가.
빛이 나오는 곳까지의 통로는 점점 좁아졌으나 뱀장어는 지치지도 않은 채 주변의 벽이니 천장을 박살내며 우리를 먹어치우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빛을 향해 뛰어든 나는,
“큭?!”
바닥이 없자 당황해 팔을 휘저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직사각형의 공간은 물로 가득했던 것이다. 다시금 차가운 물에 흠뻑 젖어, 나는 린슬렛의 팔을 잡고 부상했다. 위로 올라와, 천장이 높게 보이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수면에 발을 디디고 올라섰다.
“또 물이야?! 어, 어떻게 하지?!”
가녀린 턱 끝으로 물을 뚝뚝 흘리며 린슬렛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잠시 멍해져 있던 나는 이내 바닥이 떨리자 녀석의 손을 움켜쥐었다.
“일단 달려!”
“뭐?!”
린슬렛의 외침에 뒤를 이어, 투쾅! 하는 폭음과 함께 좁은 벽이 박살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계에서 쥐어짜내지는 가래떡마냥 튀어나온 뱀장어는 다시금 물속에 풍덩 빠졌다.
“크흑?!”
해일처럼 느껴지는 파도에 튕겨져 날아간 나는 벽에 처박혔다. 방어력이 깎이며 재킷의 성능이 떨어져 순간적으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제기랄!”
나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망자 소환을 할 만한 매개체도 보이지 않아, 이곳은 조금 작은 형태의 하수처리장이지 싶었다. 헤엄을 치기 시작한 뱀장어의 방어력은 하락이 멈춘 뒤였다.
어떻게 하면 좋지…!
“티티! 저기!”
바로 그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린슬렛이 반대편을 손으로 가리켰다. 고개를 든 나는 벽에 뚫려 있는 파이프 중 하나에 들어갈 수 있는 걸 발견했다.
저곳으로 유인할 수 있을까…?
“린슬렛! 아까와 마찬가지로!”
“아, 응! 알았어!”
내 외침에 고개를 끄덕인 린슬렛이 벽을 타고 훌쩍 날아갔다. 그녀가 파이프에 도달하는 걸 본 나는, 즉시 물 밑으로 파고들어 다시금 뱀장어에게 인식되었다.
그리고 곧장 다시 물 밖으로.
지능은 거의 없는 걸까. 녀석은 분노해 물속에서 고개를 내밀며 몇 번이고 나를 먹어치우려 했다. 재킷의 힘을 이용해 벽을 타고 올라 계속해서 그걸 피하며 나는 린슬렛의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자, 잠시만! 티티!”
그녀는 당혹감이 섞인 표정으로 파이프에서 걸어 나왔다. 얼굴에 적잖이 창백하게 물들어 나는 필사적으로 공격을 피해내는 와중에 입을 열었다.
“뭔데?!”
“아, 안 돼…! 여기는! 여기느은!”
그리고 시선 끝에 팝업창이 떠올랐다.
린슬렛의 시야인 걸까. 흔들리던 영상은 파이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무언가를 비추었다. 그리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치겠군…!”
아까 전에 만났던 너구리 군락이 보였다.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나는 가볍게 혀를 차며 넬을 돌아보았다.
“넬! 혹시…!”
“으, 으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오….”
넬 역시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게임 속의 존재이니 만큼 저 뱀장어를 유인해 안으로 들어가면 너구리 군락을 망가뜨릴 공산이 클 터였다.
“젠장…!”
어떻게 하지?
너구리들이 린슬렛에게 모여들어 아까 전에 주고 갔던 감자와 당근을 손에 들어보였다. 그 특유의 괴상한 소음을 내며 기뻐하는 녀석들의 모습에 나는 이를 악물며 휘둘러져 오는 꼬리를 피했다.
“크학?!”
하지만 파도에 휩쓸려 다시금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생각해…!!
어떻게 하지?!
어쩌면 좋지?!
너구리 군락을 포기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냐!
[너, 너구리들아…!]
“…!”
바로 그때, 나는 팝업창의 영상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뼈 더미였다. 너구리 놈들이 사냥해서 먹은 건지 뭔지는 몰라도, 뼈는 무수하게 쌓아져 제단처럼 만들어진 상태였다.
생각났다.
“린슬렛!”
[왜, 왜?!]
“방어막을 전개해! 너구리 군락의 앞에서!”
수면 위에 다시금 올라선 나는 울리는 머리를 진정시키며 그렇게 소리쳤다. 뒤를 이어 다시금 아가리를 벌린 뱀장어가 달려들었고, 나는 녀석의 눈에 꽂혀있는 스파다를 확인하며 몸을 날렸다.
[하, 하지만!]
“날 믿어!!”
[…!! 알았어! 믿을게! 티티!]
좋아.
“넬, 망자 소환의 컨트롤을 부탁한다!”
“네넬!”
내 이야기를 금방 이해한 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동시에 흉포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뱀장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도약했다.
넓은 천장을 가르며 파이프 안으로 진입.
뒤를 따르듯 뱀장어의 얼굴이 파이프를 박살내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걸 느꼈다.
방패를 전개해 너구리들을 지키고 있는 린슬렛.
겁에 질린 너구리의 얼굴.
린슬렛의 단호한 표정.
몸을 돌려, 나는 뱀장어를 한계까지 끌어들였다. 하지만 녀석은 미끄러지듯 계속해서 다가왔고,
“망령 신체!”
“망자 소환!”
나와 넬은 동시에 스킬을 시전 했다.
뼛조각이 끼워 맞춰지는 소리가 났다.
“크흑!”
바닥에 발을 댄 채, 나는 뱀장어가 다가오는 걸 막아냈고 뒤쪽에서 ‘조립된’ 망자들 또한 뱀장어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대부분이 쥐였고, 그런 만큼 금방 나가떨어졌지만 나는 망령 신체의 효과로 아무런 대미지를 입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마 그러지 않았다면 진작에 다리가 부러졌겠지만…!!
“으아아아아아앗!!”
기합을 내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뱀장어가 멈춰 섰다. 다시금 깎이는 녀석의 방어력 수치를 확인하며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어때, 원치도 않는 공간에 끼인 기분이.”
나는 녀석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방어력은 1,500에서 1,000으로, 900과 800을 지나 0까지. 나는 망령 신체가 해제되는 걸 느끼며 녀석의 입술을 밟고 도약했다.
그리고 나는 뱀장어의 눈에 꽂혀 있던 스파다를 뽑아 목 뒷부분을 내리찍었다. 한순간 높게 비명을 내지른 뱀장어는 이내 데이터 조각으로 변해 사라졌다.
“하아….”
그 위에서 털썩 떨어진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티, 티티!”
“린슬렛….”
“꺅?!”
가까이 다가온 린슬렛에게 기대려고 했지만 녀석은 날 받아내지 못하고 뒤로 쓰러졌다. 뭔가 부드러운 기색을 느끼며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솔직히 말해 지쳤다.
“이, 이 변태가!”
“조금만 이러고 있게 해줘어….”
내 중얼거림에 린슬렛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녀의 매끈한 복부 위에 얼굴을 기댄 채 나는 퀘스트의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주인님, 역시 이런 쪽으로 재능이….”
뭐라는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려던 찰나, 메시지가 도착했다.
- 괴물 뱀장어를 처치하였습니다.
-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 경험치가 50,000 상승하였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어떻게, 깨기는 깼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음 퀘스트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공에서 양피지가 생성되었으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이건…?”
당혹감에 찬 린슬렛의 목소리.
말린 양피지는 황금색이었던 것이다.
“…?”
“주, 주인님, 펼쳐봐 주세요!”
“하으, 하으, 설마, 설마, 설마아아?!”
- 당신은 선량한 너구리 군락을 피해 없이 도움으로서 스스로가 고결한 자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로서 기사, 랜슬롯이라는 결과에 도달하는 길이 열릴지니.
-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너구리가 아닌 라쿤이었으면 라쿤 군락으로 멋진 말장난이 탄생했을 터.
“….”
산통 다 깨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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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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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랜슬롯의 여정 5/10
난이도 : ★★★★★★☆☆☆☆
내용 : 너구리 추장의 부탁을 들어 주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경험치 1,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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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에픽! 에픽 퀘스트래! 티티!”
“아, 알았으니까 이것 좀 놔라….”
흥분한 린슬렛이 꾹 끌어안은 탓에 나는 숨이 점점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넬의 도움인지 내 팝업창을 멋대로 조작한 린슬렛은 몇 번이고 그걸 보면서 나를 가슴에 꾹 끌어안았다.
아팠다.
“고맙다. 용사들이여.”
“끼약?!”
바로 그 순간, 두꺼운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와 린슬렛이 비명을 내질렀다. 고개를 돌린 나는 아까와는 다르게 정장과 중절모를 쓰고 있는 너구리 추장을 발견했다.
“….”
“너희들의 도움으로 저주가 풀려서 우리 군락은 다시금 증기 발전 산업 시대로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이거 뭔가 인종 차별적인데.
“추, 추장?!”
“지금은 대통령이다.”
“너, 너구리 대통령! 이거 먹어봐!”
“감사히 먹지.”
린슬렛이 건네준 감자를 쓱쓱 소매로 닦은 녀석이 우물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입을 열었다.
“…. 니들 설정이 뭐 그러냐.”
그 말대로 설정이 개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