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그리고 다음 순간, 무언가 옆구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 ‘스쳤다.’라는 생각을 하고 곧장, 나는 커다란 몽둥이 같은 것에 복부를 얻어맞았다.
- 방어력이 10 감소했습니다. (현재 40)
“…!!”
뒤쪽으로 나가떨어져 벽에 충돌한 나는 뇌를 리부트 시키며 동시에 앞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거대한 지느러미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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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c Mon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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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뱀장어
Lv : 70
Exp : 100,000
방어력 : 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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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가 싶을 정도로 거대한 뱀장어였다.
느릿하게 유영을 하고 있는 뱀장어는, 이곳을 좁은 수조처럼 대한다 싶을 정도였다. 그 거대한 몸뚱어리는 이쪽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듯 천천히 움직였고 단순히 몸에 닿는 이물질은 뭐든지 쳐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략, 길이만 따져서 10미터 정도?
“….”
뭐야 대체 저 방어력 수치는!
나는 다급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뱀장어가 몸을 뒤틀자 물에 뿌연 기운이 감돌았고, 나는 그런 상황 속에서 디멘션 커넥터를 통해 보이는 넬에게로 향했다.
“주인님! 이쪽이에요!“
말하지 않아도 의도를 알아챈 건지, 녀석은 내 재킷을 조작해 린슬렛의 손을 쥘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녀석과 함께 수면 위로 부상했다.
“왜, 왜?!”
“큰 몬스터가 있어.”
“얼마나?”
“방어력이 일만이었는데.”
“뭐?! 그거 완전히 레이드 몬스터급이잖아?!”
역시나 그런 모양이군.
“이, 이런 퀘스트가 어디에 있어?! 레벨 70대가 받는 퀘스트가 정말로 맞는 거야?!”
“글쎄.”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발을 휘젓는 힘을 최소화하기 위해 린슬렛과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 하나가 있어. 뭐부터 들을래?”
“조, 좋은 소식?”
“일단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라는 거야.”
녀석은 우리에게 적대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나쁜 소식은?”
“…. 우리가 물고기가 아니라는 거?”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평화롭게 지낼 수는 없을 터였다. 그렇게 이야기하니 한순간 어이가 없다는 듯 있던 린슬렛이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서 나가려면 저 녀석을 죽여야 하는 거야?”
“아마도…. 그렇겠지? 넬?”
“네, 아무래도 이 구역 자체가 몬스터를 쓰러뜨리기 위한 일종의 스테이지인 것 같아요.”
“린슬렛, 혹시 네 기술 중에 저런 놈을 쓰러뜨릴만한 건…. 없겠지?”
“응, 내 재킷은 방어에 특화되어 있어서….”
혹시나 해서 물었지만 녀석은 고개를 내저었다.
젠장, 어떻게 하지.
나는 앞머리를 만지며 계속해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 생각의 저변에 깔린 것은, 이 게임이 지극히 합리적이라는 넬과 엘레노어의 말이었다. 분명히 뭔가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깰 수 없는 스테이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
“티, 티티.”
혹시 이거라면.
“린슬렛. 네 재킷은 방어 특화라고 했지?”
“응, 뭔가 좋은 생각이라도 났어?”
“잘 통할까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혹시나 싶어 망령 신체의 사용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안타깝게도 아직 불가능했다.
“무슨 생각이야?”
“저 녀석의 힘을 이용해 여기서 탈출을 하는 거야.”
그 말에 린슬렛과 넬은 잠시 이해를 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나는 대강의 떠올린 작전을 린슬렛에게 설명했다.
“…. 이해했어.”
“그럼, 부탁할게.”
“응, 티티도 조심해.”
“너희들도.”
“주인님, 조심하세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다시 물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땅바닥까지 헤엄을 쳐서 내려갔다.
그리고 스킬을 확인했다.
- 망자 소환 : 몬스터의 시신 따위를 잠시 되살려 시체 그대로 부릴 수 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인류의 화장(火葬) 기법이 발달한 거겠네요.
여전히 알 수 없는 설명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이내 수면 아래에서 주변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곧장 망자 소환을 시전,
물고기의 뼈 따위에 검푸른색으로 테두리가 입혀지며 어떤 망자를 되살릴 것인가를 물었다. 나는 그나마 제일 빨라 보이는 물고기를 소환했다.
한순간 뼛조각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고기는 뼈의 상태 그대로 헤엄을 쳐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잠시 생각을 통해 물고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을 해보고 등 위로 솟은 지느러미뼈를 단단히 붙잡았다.
뱀장어는 아직 나에 대해 눈치 채지 못한 상황이었다.
“….”
나는 천천히 물고기를 움직이게 해 뱀장어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며 간간히 뒤쪽을 돌아봐 디멘션 커넥터를 통해 보이는 넬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녀는 내게 위치를 알리기 위해서 린슬렛과 가까이 붙어있을 터였다.
나는 넬이 우리가 이곳으로 들어온 통로쯤에 위치한 걸 확인하고는 스파다를 소환해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뱀장어의 등줄기를 내리찍었다.
푹, 하고 박히는 칼, 뱀장어가 귀찮은 듯이 몸을 뒤틀었다. 나는 단순한 명령 이외에는 수행하지 못하는 뼈 물고기를 조작해 그것을 피했다.
자, 어디 한 번 날뛰어봐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약을 올리듯 꼬리에서부터 머리 쪽으로 이동하며 계속해서 공격을 가했다. 뱀장어의 방어력이 떨어졌지만 극히 미미한 수치로, 녀석은 몸을 뒤틀며 몇 번이고 나를 튕겨내려고 했다.
그리고 이내 그런 식으로 몸을 뒤트는 빈도가 점점 강해져, 꼬리가 아슬아슬하게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다. 지속된 공격에 녀석은 주변에 뭔가 적의를 가진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뱀장어의 머리 쪽으로 향해 눈을 힘껏 찔렀다. 크게 비명을 내지른 녀석이 이내 몸부림을 치기 시작해, 나는 스파다를 뽑아내며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
뽑히질 않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몸을 뒤트는 녀석에게 휘말려 뒤쪽으로 내던져졌다. 쥐고 있던 검을 놓치고 날아가던 나는, 이내 자세를 바로 하고 뼈 물고기를 불러들였다.
몸부림치던 뱀장어가 이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대하게 입을 벌려 물과 함께 날 빨아들이려는 뱀장어를 피해 나는 스치듯 물살을 가르며 입구 쪽으로 빠져나갔다. 녀석의 눈에 박혀 있던 스파다를 뽑아 몇 번이고 비늘을 내리치며 나의 움직임을 각인시켰다.
“주인님!”
입구 쪽에서 넬이 소리쳤고 가까이 다가가자 린슬렛의 모습이 드러났다. 눈을 감은 채 바닥에 발을 대고 있던 녀석은 내가 다가가 어깨를 쥐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 준비는 끝.
나는 뼈 물고기를 조종해 이쪽으로 몸을 틀고 있는 뱀장어의 시선을 끌었다. 어지간히 분노한 듯 물고기를 그대로 씹어 삼킨 녀석은 곧이어 우리를, 정확히는 린슬렛의 뒤에 있는 날 발견하고는 돌진했다.
“린슬렛님! 지금이에요!”
넬의 신호에 맞춰 린슬렛이 방패를 펼쳐들었다.
사자의 얼굴이 각인된 둥그런 방패의 주변에 원형으로 된 불투명한 방어막이 펼쳐졌다.
그리고 분노한 뱀장어가 우리를 향해 돌진해 방어막에 부딪쳤다. 문과 겹치듯 서있던 탓에 우지끈 하며 수압으로 약해져 있던 벽이 박살났다.
그 잔해가 수중에서 흩날렸다. 눈을 감은 채였던 린슬렛의 허리를 감싸 쥐어 중심을 잡은 나는 이내 뒤쪽으로 크게 떨어져 합금으로 만들어진 벽에 기대어 섰다.
이것만 견뎌내면….
그렇게 생각하며 앞을 돌아본 나는, 다시금 공격을 가해오는 뱀장어를 확인했다. ‘공성추’처럼 얼굴을 몇 번이고 부딪쳐오는 공격에 방패는 충격을 흡수했지만 만들어진 벽에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이어진 공격에 한계가 찾아와,
“크윽!”
수압과 공격을 견뎌내지 못한 벽이 부서져 나갔다. 동시에 바깥으로 빠져나와 벽에 내동댕이쳐진 나는 이어지는 물살에 휩쓸려 정신없이 하수도를 미끄러졌다. 몇 번이고 모퉁이에 부딪쳐가며 계속해서.
“린슬, 렛!”
“여, 여기야…!”
한참동안 물살에 휩쓸리던 중, 그 흐름이 잦아드는 걸 느낀 난 중심을 잡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린슬렛은 놀라서 물을 먹은 건지 크게 기침을 하고는 이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녀석을 부축했다.
“티, 티티? 이제 어떻게 하지?”
빠져나오기는 했는데.
“일단 상황을 확인해야지.”
난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직까지도 시냇물처럼 흐르고 있는 물살의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아마 이걸로 괜찮겠지만….
“끼애애애애애액!!”
현실은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 법이다.
“뱀장어가 울 수 있던가…?”
나는 어이가 없어져 중얼거렸다. 반대편에서 꿈틀거리며 커다란 대가리를 드러낸 뱀장어는 괴로운 듯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방어력이, 감소하고 있네?”
“어류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걸어본 거지만 맞은 모양이었다.
녀석의 방어력은 9000 후반대에서 천천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저대로 두다가 0이 되는 시점에서 숨통을 끊어주면 되겠지.
“수고했어.”
“으, 으응. 근데 저기이….”
“?”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린슬렛을 내려다보았고 이내 촉촉하게 젖은 얼굴과 마주했다. 단정한 옆머리가 추욱 늘어진 채 볼에 붙어있어, 상기된 것이 보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예뻤다.
“어, 언제까지…. 부축해줄 거야?”
“미, 미안.”
나는 화들짝 놀라며 린슬렛에게서 떨어졌다. 추운 건지 한참이나 몸을 배배 꼬던 녀석이 이내 새침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뭐어, 아직 좀 어지러운 것도 같은데.”
“상태 이상이야?”
“….”
내가 신경을 써서 물었지만 녀석은 어쩐지 약간 진이 빠진 표정을 해보였다. 그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나는 이내 신경 끄자고 생각하며 넬을 돌아보았다.
“넬, 저 녀석의 상태를 좀 보고 와주겠어?”
“네넬! 주인님 정말 대단하세요!”
“앵무새냐. 넌.”
이 녀석은 과도하게 칭찬하는 경향이 있군.
얼굴을 붉힌 나를 뒤로 한 채, 넬은 부웅 몸을 날려 뱀장어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나는 정신적으로 지치는 기색을 느끼며 벽에 기대어 섰다.
“애먹이는 녀석이었어.”
“그러게. 이렇게 현실감이 넘치는 녀석은….”
린슬렛 역시 볼에 붙은 머리칼을 정리하며 내 옆으로 다가와서 섰다. 지금 내 눈에는 정말로 살아있는 뱀장어처럼 보이지만, 아무래도 저 녀석은 정보량 송신 합금을 통해 극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존재인 거겠지.
하지만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면서 생각해보면, 역시나 엘레노어는 신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 싶었다.
“….”
“티티, 무슨 생각해?”
“신기해서.”
“으응?”
“이 게임이.”
“저어, 주인니임?”
그렇게 생각하던 중, 넬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를 내며 돌아왔다. 고개를 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녀석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어떤데?”
“음, 글쎄요오?”
바로 그 순간, 바닥이 흔들렸다.
“뭐, 뭐야?!”
놀라 비틀거리는 린슬렛과 함께 고개를 돌린 나는, 이내 순간적으로 뇌가 굳어버리는 걸 느꼈다.
몸부림을 치며 한순간 목을 길게 뺀 뱀장어가 우리를 향해 기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
“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도망쳐!”
나는 당황해 굳어진 린슬렛의 손을 붙잡은 채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