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
외출할 때마다 재킷을 기동시키고는 했던 카페 근처의 골목. 린슬렛의 팔을 잡아 인적이 드문 장소까지 질질 끌고 온 나는 일부러 인상을 찌푸린 채 뒤를 돌아보았다.
“너 뭐하는 거야?”
“뭐가?”
“….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거냐.”
“응♡ 왜애?”
하지만 녀석은 내 심각한 태도를 쳐내듯 특유의 천진난만한 얼굴로 씨익 웃어 보일 뿐이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뭐라 말해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 올 때는 적어도 이야기라도 하고 와.”
어쩔 수 없이 약간의 타협을, 그러자 린슬렛은 납득한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그럼 우리 이제 뭐할까?”
“뭐?”
“뭔가 재미있는 퀘스트라도 있나 해서.”
“글쎄다…. 근데 너, 다른 친구는 없냐?”
별 생각없이 던진 질문에 린슬렛은 몸을 움찔하더니 이내 얼굴이 빨개져서는 날 노려보았다. 살짝 원망하는 기색이 거기에 깃들어, 나는 약간 역린(逆鱗)을 건드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돌연 장난기가 발동했다.
“너 친구 없구나.”
“우, 우으으으. 아니거든!”
“있냐?”
시선을 피한 채 고개를 끄덕이는 린슬렛.
“이름은?”
“사무엘 잭슨…. 이라고 하면 믿어줄 거야?”
“그거 옛날 배우 이름이잖아.”
나는 슬쩍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러자 린슬렛을 볼을 부풀리며 말을 이었다.
“하, 하지만! 기사단원 녀석들 죄다 돈에 관해서만 생각하는 녀석들뿐이고…. 그래서 딱히.”
친하진 않아. 라고 녀석은 말끝을 흐렸다.
“가웨인이나 비비안은? 친하다며.”
“…. 그건 옛날 얘기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린슬렛의 시선은 어딘가 공허해진 상태였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스스로 꽤 아픈 부분을 건드렸을지 모르겠다는 자각에 침울해하는 린슬렛의 머리를 툭툭 두들겼다.
수박처럼.
“뭐, 뭐하는 거야!”
린슬렛은 곧장 털(재킷의)을 곤두세우며 내 손을 쳐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눈을 마주쳤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얼굴을 붉히며 물러섰다.
“뭐, 뭔데?!”
“사실, 없는 것도 아닌데. 재미있는 퀘스트.”
“…. 그러기야?”
“그럼 나 혼자 할까?”
“할래.”
“뭐?”
“한다고! 후우…. 가디언 재킷 기동.”
눈을 부릅뜬 녀석은 이내 재킷을 기동시켰다. 푸른색의 전류가 연마된 가죽 재킷 위로 감도는 걸 본 나 역시 조그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크로맨서 재킷 기동.”
그러자 마찬가지로 재킷 전류가 흐르며, 나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메시지에 힘을 느꼈다.
- 네크로맨서 재킷, 활성화.
- 환영합니다. 의인화된 죽음이자 기사의 절망, 망자들의 희망이시여.
◇
그로부터 30분 정도 지나,
“…. 티티.”
린슬렛은 무뚝뚝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돌린 나는, 생각과는 달리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녀석의 얼굴에 당황해서는 입을 열었다.
“응.”
“뭐…. 야. 저건.”
린슬렛은 떨리는 손으로 반대편의 마을을 손으로 가리켰다. 마을, 이라기에는…. 무척이나 작아 사실 움막이 몇 개 정도 모여 있는 군락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쁘햐악! 뿌하약!”
경계를 서고 있던 너구리들이 창을 치켜든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린슬렛이 강하게 노려보자 끼이잉, 하는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섰다.
내가 그럴 땐 전혀 안 겁먹더니.
“뿌학! 하학!”
그리고 두 마리의 너구리는 이내 서로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언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람의 무릎까지 오는 자그마한 몸에 비해 상당히 큰 꼬리는, 두툼한 고깃덩어리처럼 생겨 질질 바닥에 끌릴 정도였다.
“뭐, 눈에 보이는 대로.”
“저거랑 정확히 뭐를 하라고?”
“…. 잠시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퀘스트창을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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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계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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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수도의 괴물 2/5
난이도 : ★★★★★☆☆☆☆☆
내용 :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경험치 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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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찰싹 달라붙은 린슬렛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걸 확인했다. 중얼중얼, 퀘스트 로그를 읽어내려 간 녀석은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돌아보았다.
“경험치 엄청 짜잖아! 아니 그보다! 하수도의 괴물이라고 해서 나는 파충류 같은 게 나오나 상상했는데!!”
“….”
“저, 저게 뭐냐고! 저게!”
“묻지 마라.”
나도 심란하니까.
고개를 내저은 나는 이내 오른편에 있는 군락을 가만히 돌아보았다. 불까지 피우고 사는 나름대로의 사회인 건지, 가만히 연기가 올라오는 그곳은 분명히 군락이라고 부를 만했다. 인간의 허리까지 오는 조그마한 나무 방벽 뒤로 초가집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쨌든 저것과 대화를 해야 하는데….”
“으, 으음.”
“뭐 좋은 방법이라도 없을까?”
“…. 저, 저쪽으로 좀 가있어.”
“뭐?”
“내가 해볼 테니까.”
부끄러운 건지 슬쩍 목소리를 높인 린슬렛이 노려보기 시작해, 나는 넬과 함께 적당히 근처에 있는 파이프관 안으로 들어갔다.
“넬.”
“구, 구경 안했어요오?”
슬쩍 바깥을 내다보려던 넬이 화들짝 놀라며 내 옆으로 부웅 날아왔다. 나는 벽에 기대어 서서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린슬렛의 지시를 기다렸다.
“확실히 두 분 닮으신 구석이 있네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게임을 순수하게 즐기신다는 점이?”
“…. 글쎄.”
하지만 그 이유는 명백하게 다르다는 느낌이라.
나는 앞머리를 매만지며 눈앞에서 웃고 있는 넬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정도는 달라도 금전적인 이득을 위해 플레이하는 대부분의 에스콰이어들과는 달리, 기사가 되고 싶어 하는 점은 같으리라.
하지만 역시 그게 되고자 하는 이유는 정반대여서….
“냐옹~ 냐오오옹~”
“?”
바로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는 아니에요?”
“나도 알아.”
분명히 바깥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약간 당황해 서있던 나는 린슬렛의 존엄성을 지켜주어야 할지, 아니면 이게 단순히 디멘션 커넥터가 고장 난 것인지 확인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잠시 머뭇거리며 서있던 나는 이내 파이프관 바깥을 슬쩍 내다보았다.
“아이고오♡ 기~여워라아아아~!”
린슬렛의 존엄성이 방금 박살났다.
“촬영해둘까요?”
“어디에 쓰게.”
1900년대나 썼을 법한 구형 카메라를 드는 넬을 제지한 나는 다시 바깥의 상황을 확인했다. 바닥에 벌렁 드러누운 린슬렛이 어디서 났는지는 몰라도 강아지풀을 든 채 너구리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아니 근데 보통 저건 고양이한테 하지 않나.
“뿌갹! 갸학!”
“에이이~ 그러지 말고 누나한테 와요오!”
당황한 너구리들이 창을 들이댔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얼굴이 행복으로 물든 린슬렛은 계속해서 너구리들을 유혹했다. 그리고 너구리 중 최고의 지위로 보이는(머리에 추장처럼 관을 쓴) 녀석이 천천히 다가와 풀을 매만졌고,
“잡았당♡”
“뿌갸하아악!”
린슬렛은 단숨에 낚아채 추장을 품에 끌어안고 앉았다. 그리고는 턱에 그 조그마한 얼굴을 비비며 귀여워하기 시작했다. 추장은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마구잡이로 저항을 했지만 녀석은 이내 능숙하게 재킷에서 감자라던가 그 밖에 너구리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들을 꺼내 바닥에 늘어놓았다.
“뿌갸, 뿌갸아아….”
그걸 추장의 손에 쥐어주자 오물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긴장을 해 빳빳하게 되어있던 꼬리가 추욱 늘어져 이내 다른 너구리들 역시 다가와 음식을 먹기 시작해, 린슬렛의 주변은 너구리들로 넘쳐났다.
“오, 오오 역시 수의학과.”
“….”
오히려 수의학과라면 저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지.
-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 경험치가 상승하셨습니다.
“호오.”
그래도 퀘스트의 조건은 만족한 모양이었다. 린슬렛과 반으로 나눠 25,000의 경험치가. 메시지를 확인하고 창을 끈 나는, 이내 떠오르는 다음 퀘스트의 내용을 눈으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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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계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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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수도의 괴물 3/5
난이도 : ★★★★★☆☆☆☆☆
내용 : 마을 사람들의 안내를 받으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경험치 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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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하수도의 괴물이라는 퀘스트명을 통해 생각해보자면, 이들의 안내를 받아 괴물과 만나라는 건가.
“저기, 린슬렛…?”
“꺄악?!”
“뿌키햐아각!”
반쯤 무의식에 잠겨 이름을 부른 나는, 이내 커다란 비명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차, 싶어 고개를 드니 린슬렛을 비롯한 너구리 군락 일원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너어어어!”
“아, 미안.”
“보, 보지 말라고 했잖아!”
“…. 못 봤다고 하면 믿어줄 거냐?”
“그으럴 리가….”
분노로 몸을 파르르 떨며 린슬렛은 품안에서 방패를 꺼내들었다. 나는 살짝 불길한 예감을 느꼈고, 그 예감에 보답이라도 하듯 같은 편이 된 너구리 일족이 창을 꺼내 린슬렛을 지키듯이 섰다.
“없잖아!”
“…. 망령 신체 발동.”
그리고 얌전히 서있는 나를 향해 방패와 창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