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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40화 (40/321)

40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기사단이 사용하고 있는 전용 건물은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사무용 빌딩처럼 보였다. 바깥에 유리창이 있는, 흔해빠진 안으로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나는, 간부급만 들어갈 수 있다는 8층에서 내렸다.

그리고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아서리안이 눈앞에 다른 정보를 흘려보내, 나는 교묘하게 꾸며진 ‘알현실’을 시야에 담았다. 끄트머리의 높은 위치에는 붉은 양탄자와 왕좌. 나선 계단을 타고 올라야 하는 곳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앞에는 자그마한 연못이 펼쳐진 상태였다.

“아, 무뚝뚝이.”

“….”

그리고 그런 연못의 안에 있던 가웨인이 상쾌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상반신을 드러낸 채 손에는 평범한 이미지의 검. 은색으로 빛나는 도신이 태양빛을 받아 반짝였다. 두터운 기둥 위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다가갔다.

“잘 지냈어?”

웃으며 이야기한 가웨인은 어깨에 올려놓았던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연못으로부터 빠져나와 내게 다가왔다. 거의 비슷한 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의아함을 느끼곤 입을 열었다.

“재킷은?”

“상반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의상’을 구매해서 말이지. 뭔가 수련을 한다는 기분이 나잖아?”

상의를 완전히 벗은 시점에서 이미 재킷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만.

“아하하, 그런 얼굴 하지 말고. 나도 무척이나 신기했다고? 이 외에도 어쨌든 이 옷

이 하나로 취급 되어서 이것저것 있었는데…. 가장 신기했던 건 팬티를 얼굴에 뒤집어쓰기만 하는 복장이었지? 아마?”

“….”

“아, 나중에 대결해서 지는 사람이 그거 사서 입어보는 걸로 할래? 어떤 느낌일지 보고 싶어서.”

“거절한다.”

나는 무뚝뚝하게 중얼거리며 그를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섰다. 바깥에서 보았던 것보다 내부가 넓은데다가, 내 기억이 틀린 게 아니라면 분명히 안쪽에는 감옥이 있었던 것 같은데.

“누구 찾는 사람이라도?”

“…. 비비안.”

“아, 마담이라면 안쪽의 방에.”

그렇게 중얼거린 녀석은 이내 안내하겠다는 듯 내 옆에 따라붙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의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원래 입고 있던 흰색의 정장을 착용했다. 데이터 조각이 신체에 구성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자니 녀석은 어깨를 으쓱했다.

“마담에게 결례를 범할 수는 없잖아?”

그렇게 중얼거린 가웨인은 이내 멋들어진 걸음걸이로 넓은 알현실 내부를 가로질렀다. 그런 녀석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응? 뭐든지. 무뚝뚝이.”

“이 공간은…. 바깥에서 보던 것보다 넓은 것처럼 느껴지는데. 뭔가 특수한 작용이라도 하고 있나 해서.”

“‘정보량 송신 합금’이잖아?”

“뭐?”

내가 되묻자 가웨인은 발을 들어 바닥을 지긋이 짓눌렀다.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니 녀석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방안을 걸을 때마다 트레드밀처럼 몸을 뒤로 밀어내준다는 것 같은데.”

“트레드…. 뭐?”

“런닝 머신.”

이해했다.

“뭐 어쨌든, 나도 정확히는 몰라. 애초에 인간의 뇌로 이해하려고 하면 모조리 타버릴 걸?”

“….”

틀리진 않은 말이라고 생각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을 따라 걸었다. 지난번에 디멘션 커넥터를 쓰지 않았을 때 이곳의 풍경이 완전히 정보량 송신 합금으로 이루어져 기분이 나빴던 기억이 났다.

나를 이끌고 나선 계단의 아래로 향한 가웨인은 인터페이스를 불러내 가볍게 조작했다. 그러자 기둥으로 보였던 장소에 금이 가더니 문이 생겨났다.

“이 안이야.”

나는 가웨인과 함께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마담, 일어나있어?”

내부는 침대와 안락의자, 이외에 책장 하나가 있는 구형이었다. 특이한 점은 바깥과 마찬가지로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는 것 정도.

“…. 가웨인, 그리고 타나토스님?”

비비안은 침대에 반쯤 몸을 걸친 채였다.

“잠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는데.”

가웨인의 말에 그녀는 약간 곤란한 기색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불투명한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있던 그녀는 이내 살짝 원망하는 기색을 담아 고개를 들었고, 거기에 가웨인이 가볍게 웃으며 날 돌아보았다.

“미안, 무뚝뚝이. 잠시 나가 있어줄래?”

고개를 끄덕인 나는 바깥으로 나왔고, 가웨인은 미안하다는 듯 웃으며 문을 닫았다. 그리고 ‘둘’만 남겨져 나는 옆에 붕 떠올라 있던 넬을 바라보았다.

“으음~ 뭔가 비밀요원 같네요!”

“전혀.”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녀석의 모습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정보를 캐내러 오신 거잖아요?”

“그건 그렇다만….”

단순히 내가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지.

“그런데 그, 주인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디멘션 커넥터를 강제로 해제하는 스킬이 있는 걸까요?”

“그걸 지금부터 물어봐야겠지.”

대답해줄 것 같지는 않지만.

“들어와도 돼. 미안. 잠깐 얘기 좀 하느라….”

바로 그 순간, 뒤쪽의 문이 열리며 가웨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고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비비안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타나토스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어머, 뭔가요?”

“그때 너희들, 내 디멘션 커넥터를 해제했었잖아. 그게 혹시 네 스킬인가해서.”

“후후, 그게 신경 쓰이셔서?”

“아무래도 궁금하긴 하지.”

“뭐 좋아요. 당신께서 신뢰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서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건 제 스킬이에요.”

이름은 현실 복귀.

그렇게 이야기한 비비안은 나에게 둥그런 물방울 모양의 데이터를 휙 집어던졌다. 그걸 받아 접속을 승인한 나는 눈앞에 떠오르는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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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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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비비안

Lv : 132

Knightage : -

JACKET : Lake

Exp : 3,570,500/21,29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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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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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력 : ?

방어력 : ?

민첩성 : ?

정신력 : ?

연산 속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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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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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복귀 :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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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복귀라는 단어를 누르니 메시지가 떠올랐다.

- 현실 복귀 : 기절한 에스콰이어의 디멘션 커넥터를 종료시키고 현실로 돌아오게 만듭니다. 그가 일어났을 때의 현실은 어떤 풍경을 하고 있을까요?

여전히 알 수 없는 설명이.

나는 비비안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하고는 살짝 놀란 얼굴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던 비비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부는 보여드리지 못하지만.”

“아니 뭐 이 정도면…. 신기하네. 역시 한국의 유저들 수준이 높다는 말이 사실이었어.”

“그런가요?”

“응, 애초에 이렇게 큰 건물을 보유하는 기사단도 처음 봤어. 우리 쪽은 대부분 땅 밑에서 생활하니까.”

“그것 참 신기하네요. 혹시 괜찮으시면 외국에서 어땠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건 나중에, 만약 정식으로 기사단원이 된다면.”

“후후, 재고는 해보시겠다는 거군요.”

비비안의 웃음에 나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서있던 가웨인이 슬쩍 팔짱을 끼며 벽에 기대어 섰고 나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린슬렛하고 꽤 친해져서.”

“어머어, 그거 참 다행이네요.”

“어쨌든 이만.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가볍게 목례를 한 뒤, 나는 자리에 앉아 손을 흔드는 비비안을 뒤로 한 채 방을 나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웨인 역시 나를 바래다주기 위해선지 바깥으로 나와 우리는 함께 걷기 시작했다.

“궁금한 게 있다더니 그게 다였어?”

“…. 그렇지.”

“독특한 스킬이기는 해. 애초에 현실에서도 저럴 권한을 가진 녀석들은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

“재킷은 그 사람의 내면세계를 반영한다고 했던가.”

“그랬, 어?”

내 중얼거림에 가웨인은 슬쩍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 모습에서 나는, 엘레노어가 누구에게나 그 재킷의 의미를 가르쳐준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내가 봐온 녀석들은 대부분 그래서.”

“흐음, 모르겠네. 내 내면은 그럼 가웨인이란 말인가?”

“글쎄.”

나는 적당히 말을 잘라내듯 중얼거리며 다시금 엘리베이터에 탔다. 다행히 이른 오전에는 에스콰이어들이 잘 모여들지 않아 어색하게 기다릴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럼, 나중에 보도록 하지.”

“응, 나중에 연락할게. 티티.”

“…? 그 별명은 어디에서.”

“린슬렛이 가르쳐줬어.”

상쾌하게 웃으며 대답한 가웨인은 양손 검지를 아래로 뻗어 T 모양을 만든 뒤 눈 아래에 가져다댔다. 그리고는 새하얀 이로 티티. 하는 발음까지. 나는 그 모습을 약간 혐오스럽다는 기색을 담아 바라보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걸 기다렸다.

직사각형 공간에 넬과 단 둘이 남겨져,

“거짓말을 하는군.”

나는 앞머리를 매만지며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뒤쪽에서 흥미로운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넬의 시선이 느껴져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아무 생각도 없는데요.”

“….”

괜히 물었군.

“거짓말을 하고 있잖아. 아무리 봐도.”

“그런가요?”

“왜냐면 이 아서리안이 철저하게 ‘게임’이기 때문이지.”

나는 확언을 하며 방금 전의 스킬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디멘션 커넥터 자체를 종료시킨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정신 나간 게임이 그런 짓을 할 리 없었다.

엘레노어로부터 비롯된 아서리안이라는 게임의 전반은 이것이 ‘단순한 게임’임을 상기시키며 에스콰이어에게 지금껏 완벽한 게임 세계를 강조해왔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엘레노어는 절대로, 행여나 만약에도 유저를 현실로 돌려보내는 스킬 따위는 만들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너도,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잖아?”

“네넬! 아서리안은 언제나 완벽한 서비스를 에스콰이어 여러분께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답니다!”

“말인즉슨 그 완벽한 서비스에서 튕겨내게 하는 스킬이 있을 리가 없어. 명백해.”

나는 스스로의 생각을 믿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옆을 부웅 떠다니던 넬이 빙긋 웃었다.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로서 라쿠스 기사단에 뭔가 수상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리고 나에게 굳이 그걸 알려주지 않는다는 건, 이용하겠다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음, 주인님?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넬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평범하게 위장된 로비를 지나쳐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말인즉슨 린슬렛도 거기에 관련이 있단 걸까 싶어서.

괜히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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