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내가 돌아보자 가볍게 장난이었다는 듯 혀를 내민 넬은 이내 기뻐하는 린슬렛을 바라보았다. 재킷의 힘까지 사용해가며 벽을 뛰어다니던 녀석은 이내 재차 확인이라도 하듯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이제 된 거지? 에픽 퀘스트 독점? 내가 랜슬롯이 될 수 있는 거지? 부인도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그렇겠지.”
아무래도 기사단 내부에서는 녀석에게 협력해 랜슬롯이라는 감투를 씌워주자고 결정한 모양이었다. 가웨인도 그런 식인 걸까. 잠시 입술을 깨문 나는, 초대형이라고 할 수 있는 라쿠스 기사단에 대해 잠시 생각해….
“자, 가자!”
“어, 어딜?”
하지만 린슬렛에게 팔이 이끌려 나는 맨홀 뚜껑을 걷어내고 그 아래로 낙하했다. 얼굴을 다 뒤덮도록 고양이 가면을 쓴 녀석은 이내 내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말했잖아! 요새 좋은 레벨 업 루트를 찾았다고!”
“….”
적당히 생각을 미뤄두며 나는 린슬렛의 손에 이끌려 쥬브나일 포르노 쪽으로 향했다. 널찍한 파이프를 흐르는 물보다도 빠르게 달려 다시금 처리장에 도착한 나는 자리에 우뚝 멈춰 섰지만,
“야호! 독점이다!”
린슬렛은 훌쩍 배 위로 점프를 해버렸다.
“잠깐, 허가를 받고….”
“야호오오오오! 푸헉?!”
그런 내 외침에도 아랑곳 않고 허공을 날아간 린슬렛은 이내 보이지 않는 벽에 얼굴을 처박고는 구정물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너는…. 뭘 그렇게 신이 나서 그래?”
길게 한숨을 내쉰 발렌타인은 장죽을 입에 문 채 린슬렛을 돌아보았다. 지하의 시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와 머리를 말리던 녀석이 얼굴을 붉히며 거기에 반응했다.
“시, 시끄러워! 너야말로 권한 그냥 달라니까!”
“그럴 수가 있겠어?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공은 공이고 사는 사지. 우린 이걸로 먹고 사는 입장이라고?”
“….”
“두 분 친구셨어요?”
당황한 넬의 목소리에 나는 린슬렛이 피아노를 박살내던 광경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의 모습을. 물론 그것과 지금 눈앞의 두 사람은 별반 다르지는 않는 모습이었지만.
“친구라고…?”
“우정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는 법이지요. 타나토스님.”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는 우정이랄까?”
우정이 이루어질 때가 가장 볼만하겠군.
“….”
어쨌든 그렇기 때문일까.
린슬렛은 가면을 벗은 채 편안하게 머리를 말리는 중이었다. 필터는 보이지 않게 적용을 시키고 있는 걸까. 가만히 그걸 바라보던 나는 장죽을 툭툭 털어내는 발렌타인이 우아하게 화재를 전환시키는 걸 보았다.
“어쨌든, 오늘도 그걸 하러 왔어?”
“응, 어차피 새벽에는 너 혼자 밖에 없잖아?”
“뭐어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만약에 다른 손님이 온다면 적당히 그만두라고? 들키면 곤란해지니까.”
“히히, 고마워.”
린슬렛이 씨익 웃으며 감사를 표했고,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쉰 발렌타인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데이터 조각이 부스러기처럼 모이며 린슬렛과 내 앞에 무언가 생겨났다.
커다란 유리잔에 담긴 맥주였다.
“…?”
“그럼 일단 마시자. 티티.”
“아니 일단 상황을 설명 좀….”
나는 슬쩍 곤란해지는 걸 느끼며 되물었다. 그러자 꿀꺽, 단숨에 맥주를 비운 린슬렛은 이내 맥주잔을 땅바닥에 던져 깨뜨렸다. 그러자 다시금 테이블 위에 맥주가 생겨나는 모습에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무슨 발할라도 아니고.
“퍄하! 역시 맥주가 최고란 말이지!”
“….”
“뭐해. 마셔. 경험치를 잔뜩 벌 수 있다니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술을 잘 못하는 편이라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기분 좋게 술을 마시는 린슬렛의 모습에 건배를 하고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탄산과 보리, 홉인지 맥안지 모를 것들이 잔뜩 섞인 괴상한 맛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
이거 실제로는 그냥 물인 거지?
“햐, 역시 여기 맥주는 최고라니까!”
살짝 얼굴이 붉어져 다시금 잔을 깨뜨린 린슬렛이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발렌타인은 이내 테이블 위에 가벼운 안줏거리도 소환해주었다.
“현실의 맥주보다 열 배는 맛있지. 칩도 먹으렴.”
“게다가 넌 현실에서는 아직 못 마시잖아?”
“…. 린?”
“아~ 미안. 실수할 뻔했네.”
여자들이 그렇게 말하거나 말거나, 나는 이미 설마 하는 심정으로 칩을 꼭꼭 씹어서 먹어본 상태였다. 그리고 상쾌하게 감도는 감자의 맛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체 얼마나 오버 테크놀로지인 거야…?
“왜 그러세요?”
“아니 새삼, 놀라서.”
넬의 물음에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감탄해 중얼거렸다. 솔직하게 말해 맛은 뇌를 속이는 거라 쳐도….
“아, 감자의 성분은 진짜니 안심하고 드셔도 될 거예요. 음식이나 물은 실제로 배달한다고 들었습니다!”
“…. 발렌타인.”
넬의 설명을 듣고 가볍게 눈을 마주친 나는 이내 장죽을 피우는 발렌타인을 돌아보았다. 린슬렛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녀가 날 바라보았다.
“그 장죽은 진짜로 담배를 피우는 거냐?”
“아, 이거는 가짜에요. 니코틴 성분은 없는. 연기만 내뿜는 이펙트로 ‘연출’을 하고 있는 거죠.”
실제로 담배를 구하려면 구할 수 있다는 걸까.
“안심하세요. 먹는 걸로 장난을 치지는 않으니.”
“믿지 못하는 건 아니야.”
약간 속을 꿰뚫어 보인 것 같아 나는 시선을 피하며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현실과 가상이 교묘하다 못해 완벽하게 혼합되어 이곳이 게임의 세계인지 아닌지 점점 희미해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말대로 나는 점점 취해갔다.
“어라, 티티 얼굴이 빨간데.”
“주인님은 술을 잘 못하시는 군요!”
“….”
린슬렛이 넉 잔의 맥주를 비우는 동안 한 잔을 마신 나는 슬쩍 취기를 느끼며 바닥에 맥주잔을 던져 깨뜨렸다. 그리고 스며들듯 사라지는 잔을 보며 고개를 돌리니 이미 내 앞에는 새로운 맥주가 생성된 상태였다.
“그건 그렇고 타나토스님. 아직도 같은 생각이신가요?”
“뭐가.”
“뭐긴요. 에스콰이어 등록.”
“….”
내가 슬쩍 노려보자 발렌타인은 가볍게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일련의 대화를 들은 린슬렛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뭔데? 뭔데?”
“타나토스님이 쥬브나일 포르노에 회원 등록을 하지 않는다고 하셔서.”
“에엑? 티티, 왜? 이 자식들 이래뵈도 꽤 괜찮다고?”
“….”
“아, 이 녀석 대인기피증 있지.”
“아니거든.”
린슬렛의 말에 나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며 받아쳤다. 그런 나는, 이쪽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발렌타인과 눈을 마주쳤다.
“굳이 그래야할 필요가 없다면 안하고 싶은데.”
“흐음~ 하지만 전 타나토스님에 대해서 좀 알고 싶단 말이죠. 여러모로. 굉장히 선정적인 부분에서.”
“이유는?”
“글쎄요. 이렇게 키도 크고 남자답게 잘생겨서는…. 술을 하지 못하는 부분이 매력적이어서?”
“….”
“바, 발렌타인! 너!”
발끈한 린슬렛이 맥주잔을 내리쳤다.
“후후, 농담이야. 농담. 친구의 남자는 건드리지 않아.”
“?! 아, 아니거든! 이 녀석이 내 남자라니!”
“? 나는 빼빼로의 이야기를 한 건데.”
“…?”
“?”
“호오, 호오.”
“자, 잠깐 이쪽으로 와봐.”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은 린슬렛과 발렌타인은, 나를 내버려둔 채 한 쪽 구석으로 가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도 다녀올게요!”
“…. 맘대로 하쇼.”
넬 역시 그 뒤로 가 이야기를 엿듣기 시작했다.
뭔가 진지하게 열띤 설득을 하는 발렌타인과, 입가에 손을 댄 채 그걸 진지하게 듣는 린슬렛. 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나에게 흥미가 있다는 빼빼로의 모습이 떠올랐다.
왜지.
“주인님이 수래요.”
“수?”
“수우.”
뭔데 그건.
이야기를 엿듣고 온 넬이 귀띔을 해주었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린슬렛과 발렌타인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 그럼 그 소설은 다 쓰면 보내주는 걸로.”
“5만원.”
“비싸. 2만원.”
“딜.”
“좋아.”
방금 뭔가 거래가 오간 것 같은데.
그리고 두 잔째의 맥주를 다 비운 나는 확실히 속이 안 좋아지는 걸 느끼며 숨을 내뱉었다. 그때 빼빼로와의 승부는 어떻게 이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린슬렛. 뭔데 그 레벨업에 좋은 메뉴는.”
“좀 기다려봐. 나도 취해야 하니까.”
“…?”
나는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세 번째 잔은 슬쩍 밀어두고 취기를 견뎌내듯 린슬렛이 취하는 걸 기다렸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린슬렛이 마신 맥주를 세는 걸 슬슬 포기할 즘, 눈앞에 갑자기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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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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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Beat Him Up
난이도 : 불명
내용 : 당신의 신념을 방해하는 적들을 주먹으로 때려
눕히세요!
제한 시간 : 01:00:00
보상 : 쓰러뜨린 적당 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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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야.”
린슬렛이 뇌까리듯 웃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야 이 (삐이-)한 (삐이-)야!!”
웬 미친놈들이 나타났다.
“….”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덩치 큰 남성 NPC는 몹시도 흥분해 깨진 술병을 손에 쥔 채였다. 약간 질린 얼굴로 옆을 돌아본 나는 뒤이어 자리에서 일어서는 다른 NPC를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NPC가 아니라 몬스터인가.
“한화가 이번에 코시 우승한다니까!!”
“아니 한화가 어떻게 이겨!”
“이번에 김성근 아들이 감독 왔다니까!”
“한화는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팀이야!”
“아이 미친놈이 진짜라고!”
하고 두 사람이 격돌하기 시작했다.
“경험치 꽤 괜찮지? 레벨에 맞춰서 나오기 때문에 150 초반 대부터 애용해왔어.”
“….”
“왜?”
“아니, 음. 그.”
나는 약간의 스트레스를 느끼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 두 사람을 기점으로 술집에 적당히 앉아있던 NPC들이 온갖 쓸데없는 걸로 싸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