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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36화 (36/321)

36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파티는 보통 12시가 다 되어야 끝나는 경향이 짙었다.

“…. 후우.”

게임을 할 때는 새벽이 넘어도 괜찮은데, 이상하게 현실에서는 체력을 더 소모하는 것 같단 말이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테라스로 나온 다연은 밝게 해두었던 표정을 짜증, 더욱 큰 짜증으로 돌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 치마는 도무지 어색해 적응이 되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 편이 발랄하니까 입으라는 소리를 들었지.

거기에 가슴의 리본까지도.

머리를 묶고 있는 핀이나, 드레스를 입은 어깨 위에 걸치고 있는 불투명한 숄도.

“모두 불편하단 말이지이.”

그녀는 딱 한 잔만 허락을 받았던 샴페인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난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밝은 불빛이 풍겨오는 안쪽을 바라보며 추욱 늘어졌다.

“게임 종료. 같은 거지.”

재킷을 벗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다연은 어머니가 선사한 다연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 린슬렛으로서의 자신을 드러냈다. 아무도 보지 않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재킷이 필요해애.

징징거리며 우는 소리를 낸 린슬렛은 이내 안쪽에서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에 진저리를 쳤다. 맥주와 치킨을 실컷 먹으면서 신나는 음악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눈앞에는 이런 사람들 뿐이었다.

그녀는 스크린 안에 상영되는 영화를 바라보듯 장난스럽게 디멘션 커넥터에 흑백의 필터를 씌워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다.

할 킬러즈의 고위급 간부들과 정치가들, 그리고 기업체 사장 등이 참가하는 사교 모임. 거기에 참가하게 된 자신은 이제 막 이런 사교 모임에 초대를 받기 시작한 우한 그룹 상무인 이도연의 딸, 주다연이었다.

“평범한 아줌마 같으면서 능력은 좋다니까….”

공과사가 확실한데다가 붙임성이 좋고 호방한 엄마는 혼자의 힘으로 이런 곳까지 온 대단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 점은 린슬렛 자신도 무척이나 멋지게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좋은 남자’를 만나라면서 이런 사교 모임에 자주 데려오는 건 적응이 되지가 않았다.

때문에 린슬렛은 어울리지도 않게 발랄한 자신을 연기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고 만 상황이었다.

“무슨 이야기들을 저렇게 하는 건지.”

그렇게 중얼거린 린슬렛은 피로감이 느껴지는 콧대를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른들은 기껏 모임에 데려와 놓고서는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뿐이라,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건 또래의 애들뿐이었는데.

그 자식들 다 마음에 안 들어서.

솔직히 말해 다 한 대씩 치고 싶을 정도로 재수 없는 놈들뿐이었다. 하는 얘기라고는 한 달에 돈을 얼마나 버니, 과외 선생을 붙여서 성적을 얼마나 받았니 하는 이상한 것들 뿐이어서.

차라리 이럴 거면….

그 녀석 쪽이….

“아니, 그건 절대 아니지만.”

마치 또 다른 자아가 말하는 것처럼 린슬렛은 단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방금 전의 생각은 마치 ‘똥 맛이 나는 카레’냐 아니면 ‘카레 맛이 나는 똥’이냐 사이의 문제로서, 무얼 택해도 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다고.”

다짐이라도 하듯 입으로 내어 말을 중얼거린 린슬렛은, 이내 문을 열고 나오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붉은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너…. 말 걸지 말랬지.”

“뭐가? 나도 바람 쐬러 나온 거야. 린.”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하아, 너도 그렇게 부르잖아.”

“뭐가.”

하고 옆의 난간에 팔꿈치를 기댄 남자를 향해, 린슬렛은 ‘가웨인’이라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 말에 그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 하는 시늉을 했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여기서 누가 듣겠어?”

“하긴 그건 그렇지.”

가웨인이 피식 웃으며 가지고 나온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려 들었다. 하지만 린슬렛은 그걸 낚아채 단숨에 비워버렸다.

“….”

“뭐. 너는 다시 가지고 나오면 되잖아.”

“예이, 예이.”

피식 웃은 가웨인이 다시 바깥을 내다보기 시작해, 린슬렛 역시 거기에 시선을 두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이렇게 쌀쌀맞게 대하면서도 가웨인을 그다지 싫어하지는 않았다. 이 사교 모임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상대이기도 하거니와,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서리안의 기사 중 하나인 ‘가웨인’은 할 킬러즈의 부대장을 아버지로 두었다. 린슬렛이 약간의 일탈로 즐기는 것처럼, 그도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역시 좀 리스크가 크지 않을까 싶은데.

거기에 가웨인이 얼굴을 가리는 장치까지 하지 않는 부분도 생각해보자면, 뭐랄까. 가끔씩 뇌 구조가 다르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그 친구는 어때?”

바로 그 순간 가웨인이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뭐?”

“무뚝뚝이.”

“아, 티티?”

“티티?”

“별명.”

“티티…. 티티…?”

잠깐 고민을 하던 가웨인이 양손의 검지를 아래로 뻗어 눈 밑으로 가져다댔다. T라는 모양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그 귀여운 모양이 눈앞의 상쾌한 미남하고는 어울리지 않아 린슬렛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그게.”

“어? 몰라? 우리 예전에 유행하던 노래잖아.”

그러고 보니 오랜 옛날의 멜로디가 머릿속을 스치기는 했다. 린슬렛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여튼, 그 녀석이 뭐?”

“잘 지내고 있나 해서.”

“야, 오늘이 이틀째거든?”

“…. 흐음.”

“왜?”

“아냐. 좀 흥미로운 친구여서. 귀엽잖아?”

“너 그런 쪽으로 흥미 있었니? 바꿔줄까?”

귀엽다니, 흥미롭다니, 린슬렛은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 소리에 기가 차 말을 내뱉으며 가웨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댄디하게 앞머리를 내린 그 상쾌한 미남을 빛나게 만들었다.

“아니, 그 녀석하고는 네가 어울려.”

“이따 결투할까? 새벽에 부를게.”

“하하하, 너 정말 아서리안 좋아하는구나.”

“네가 가웨인이 된 건, 순전히 내가 랜슬롯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야. 알겠어?”

“네에, 네에.”

항상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는 가웨인의 모습에 린슬렛은 이마에 힘줄이 돋는 걸 느꼈다. 그와 자신의 레벨은 160 후반대로 비슷해 기사단 내에서 라이벌에 가까운 존재였지만…. 현재는 꽤 차이가 벌어진 상태였다.

가웨인은 기사였고 자신은 에스콰이어였기에.

“어쨌든 뭐, 그래도 게임에 너무 몰입하지는 마.”

“네가 할 말이야?”

“아니 뭐…. 내 말은, 양립하라는 거지.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그로서 배울 게 더 많아지거든.”

“무슨 소리야…?”

“음, 예를 들자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가웨인은 이내 안쪽의 풍경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곳을 따라서 바라본 린슬렛은 그 손가락 끝에 걸쳐진 누군가를 발견했다.

여자, 였다.

린슬렛이 그런 말을 하면서 잠시 망설였던 것은 여자라는 단순한 성으로 그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이는 40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귀 밑에서 자른 암갈색의 머리칼, 슬림하고 다리가 긴, 그러면서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 또한 놓치지 않고 있는 아름다운 몸매. 긴 바지에 가슴이 파인 슬리브리스 상의를 입은 모습은 어쩐지 그 매력을 더한 느낌이었다.

“우정현 회장님.”

“…? 우한 그룹의?”

“응, 저 사람이 왜 이 파티에 와있는지 알아?”

“뭔, 데?”

“안 알려줘~. 스스로 생각해봐.”

“…. 죽고 싶어?”

“아하하, 크고 넓게 보라고. 주다연.”

목 부근의 나비넥타이를 매만진 가웨인은 이내 다시 파티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다연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린슬렛은, 그 이질감을 느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게임이나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얼마 전에 이사를 오게 된 펜트하우스는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자동으로 빛을 발하는 조명을 따라 넓은 복도를 걸으며 주다연은 피로감에 휩싸였다.

“오늘 재미있었지?”

당장에라도 숄과 드레스를 허물을 던지듯 벗어버리고 싶었지만 감시라도 하듯 따라붙는 엄마의 존재로 인해 그럴 수도 없었다. 다연은 짜증스러운 기색을 애써 감추며 뒤를 돌아보았다.

“응.”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어?”

“그럭저럭.”

“회장님이 이번에 마음을 꺾어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 이 엄마는~.”

“회장님…?”

하고 돌아보았지만 엄마는 이미 샤워를 하러 들어간 상태였다. 희미한 잔향처럼 가웨인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아, 다연은 저도 모르게 그 ‘회장님’에 대한 걸 머릿속에 떠올렸다. 우정현이라는 석자 이름을.

하지만 이내 취기에 날려 지워졌다.

“…. 엄마, 나 피곤해서 먼저 잘게.”

“씻고 자! 화장 지우는 머신 얼굴에 쓰고!”

“알았어.”

답답한 마음을 애써 감춘 채 다연은 통보라도 하듯 이야기하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서울 시내가 통째로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방. 하지만 책상과 옷장, 침대라는 단출한 구성에 그녀는 마구잡이로 옷을 벗고는 침대에 털썩 엎어졌다.

아직, 응어리가 남은 기분이었다.

“….”

입에 맴도는 과일과 알코올이 섞인 향이 어쩐지 취기를 가중시키는 기분이었다. 가만히 속옷 차림으로 누워있자니 디멘션 커넥터가 자동으로 방안의 히터를 틀었다.

“나갈 거야.”

마치 사람에게 말을 걸듯이.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일어섰다. 인터페이스를 불러와 방문을 잠근 그녀는, 어둠에 눈이 적응되는 동안 엄마가 씻은 뒤 침대에 들어가 눕는 걸 확인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아까부터, ‘그 녀석’이 어젯밤 혼자서 쥬브나일 포르노에 갔다는 말이 신경 쓰이기는 했다. 그걸 확인하고 오는 정도면 괜찮겠지.

하지만 설마, 그러려나.

약간의 기대감, 아니 설마 그 녀석이 그렇게 타이밍이 완벽한 성격일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 어리석음조차 즐기며 ‘린슬렛’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새벽 한 시.

아직 밤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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