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35화 (35/321)

35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오늘은 힘들겠군.

“주, 주인님. 괜찮으세요?”

“아니, 전혀.”

나는 온몸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인 채 역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늦은 저녁이었으나 서울 바깥이어서 그런지 그다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 나는 패전 소식을 들은 병사처럼 힘없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등에 이쑤시개 같은 창(이펙트)이 가득 꽂힌 채로.

마을을 찾아가라는 첫 번째 퀘스트는 간단하게 클리어하는데 성공했지만 이어지는 두 번째 퀘스트에서 막히고 말았던 터라, 한참동안 시도를 해보던 나는 도무지 현재의 자신으로서는 빠져나갈 수 없겠단 생각에 일단은 집으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두 번째 퀘스트를 깨보려다 온통 구정물을 뒤집어쓰고만 터라 몰골이 초췌한 채 나는 가로등 불빛 아래를 계속해서 걸었다.

어쩌면 좋지.

“….”

“바, 방법이 없을까요?”

“글쎄.”

이건 예상치 못한 상황인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빨리 돌아가 더러워진 몸을 씻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스크를 해제한 이후로 그 온갖 더러운 것들이 섞인 냄새가 몸에서 난다는 자각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한 힌트가 없을까 다시금 퀘스트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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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계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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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수도의 괴물 2/5

난이도 : ★★★★★☆☆☆☆☆

내용 :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경험치 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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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퀘스트였지만, 문제는 그 마을 사람들이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기인했다. 털 달린 자그마한 이족보행 너구리들. 뾰족한 창과 나무 방패를 들고 있던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린 나는, 약간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녀석들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마구잡이로 창을 던져댔고 그러는 바람에 제대로 다가가지도 못했다.

어떻게 하면 좋지.

동물에게 말을 거는 스킬 같은 게 있으려나.

아니면 뭔가 다른 방법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골목을 돌아 가게 쪽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꽤 늦어선지 불이 켜져 희미하게 빛이 발하고 있는 상태였다.

일단 씻고, 배를 채운 다음에 생각하자.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가게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섰다.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중년 여성들의 말 상대를 하고 있던 유하가 고개를 들었다.

“주…! 운?”

“….”

이 상황을 무어라 설명하면 좋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당황한 채 서있는 유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중년 여성들 역시 나를 돌아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꼬, 꼴이 그게 뭐에요?!”

당황한 유하가 황급히 내게로 다가와 얼굴에 묻은 뭔가를 앞치마로 닦아주었다. 하지만 구정물이 마른 거라 쉽게는 빠지지 않을 터여서, 나는 무뚝뚝하게 그 가녀린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괜찮다고 말하려는 찰나,

“엄머머머머!”

뒤쪽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유하야! 어쩜, 어머! 어머머!”

“…. 아, 아주머니들?”

어느새 다가온 중년 여성들이 나와 유하를 에워싼 채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자각해 피하려고 했으나, 흥미로 가득찬 눈에 이내 굳어지고 말았다.

참고로 난 이런 사람들에게 약한 경향이 있다.

“이렇게 멋진 남자친구가 있었니?!”

“어머머, 얘 엉덩이 탱글탱글한 것 좀 보소…!”

“…. 성희롱입니다.”

나는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슬쩍 옆으로 비켜서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모두들 나와 유하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것이….

“하이고야! 선남선녀네! 선남선녀!”

“식은 언제 혀! 딸이건 아들이건 배우 시켜!”

몹시도 부담스러웠다.

“….”

“아, 아주머니들?! 저, 저와 준은 그런 관계가….”

슬쩍 밀어붙여져 어느새 내 가슴에 기댄 유하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시궁창의 냄새를 날려버리듯 유하의 머리에서 향기를 맡은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고는 숨을 참았다.

아니, 이 상황은 대체…?

“그, 그만하세요! 준이 곤란해 하잖아요…?”

“총각, 뭐하는 사람이야? 유하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어? 흐미, 근데 어디서 요 예쁜 것이…!”

“저, 저보다 동생이라고요?! 아직 학생…!”

“아 그라면 유하가 먹여 살리면 되겠네!”

“먹여 살릴 맛이 있겠네! 우리 남편 놈은 무슨!”

“….”

나는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그, 그으…. 준?”

중년 여성들이 나를 품평하듯이 바라보며 자연히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흐름을 바꿨다. 그러는 사이 유하가 불러, 나는 고개를 숙여 눈을 마주쳤다.

“시험은, 잘 봤어요?”

“응. 도시락도 맛있었어.”

살짝 상기된 얼굴, 찡그린 눈썹에 이어지듯 조심스러운 물음에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쭈욱 신경 쓰고 있었던 걸까 싶어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다행이네요. 저녁은 먹었어요?”

“아직인데.”

“그럼, 같이 먹을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하는 피어오르는 꽃잎처럼 그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어머머….”

“가줍시다. 이제. 애들도 할 거 해야지.”

무척이나 흥미로운 듯 서있는 중년 여성들의 시선을 느꼈다. 당황해 유하의 어깨를 잡고 떼어낸 나는 중년 여성들의 사이를 파고들어 이내 계단 쪽으로 향했다.

“이, 일단 씻고 올게.”

“총각! 나중에 봐!”

쪽, 하고 손바닥에 키스를 날리는 중년 여성. 거기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인 나는 몹시도 큰 피로감을 느끼며 계단을 올랐다. 원래대로라면 적당히 피했겠지만, 역시 중년 여성의 허물없음은 나도 감당하기 버거웠다.

“음, 주인님?”

“왜…?”

그러던 중, 나는 넬이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뭔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서있던 녀석이 아래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바지 뒷주머니요.”

뭔가 싶어 그쪽으로 손을 가져다댄 나는, 이내 훅 짚이는 무언가를 꺼내 바라보았다.

지폐였다.

만원짜리.

“….”

또한 거기에는 전화번호가.

“….”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씻고 나오자 감사하게도 이미 준비가 끝난 뒤였다.

“잘 먹을게.”

어깨에 수건을 두른 채 유하의 방에 준비된 저녁상에 앉은 나는, 반대편에서 마찬가지로 고봉밥을 퍼주는 유하를 보며 솔직하게 인사했다.

“후후, 맛있게 먹어요.”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식사를 시작, 배가 고팠던 터라 마구잡이로 음식을 쑤셔 넣으며 나는 오늘도 완벽한 식사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유하의 요리 솜씨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데.

“유, 유하도 먹어.”

슬쩍 예의가 없었다는 생각이 스쳐 나는 얼굴을 붉히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유하는 차갑게 식혀둔 보리차를 따라 내 쪽으로 슥 내밀었다.

“머리를 많이 썼나 봐요.”

“…. 응.”

조금 다른 쪽으로였지만.

“많이 먹어요. 여러모로 준비해뒀으니.”

“너도 먹으라니까.”

“아, 그럴까요?”

무슨 남 이야기하듯.

나는 웃으며 식사를 시작하는 유하의 모습에 슬쩍 젓가락질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피곤하고 배가 고플 텐데도, 정갈하게 음식을 입에 넣어 꼭꼭 씹어먹는 모습은 정말이지 교보재로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유하님, 맛있어요!”

“넬도 많이 먹어요.”

우리 사이에서 적당히 데이터로 이루어진 음식을 먹는 태도를 취하는 넬. 반쯤 농담에 가까운 행동이었으나 유하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었다.

“저녁도 돈가스네요!”

“네에, 일본 쪽에 그런 문화가 있다고 들어서.”

“호오, 호오.”

“우리나라에는 찰싹 달라붙으라는 의미로 떡이나 엿 같은 걸 준비하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걸 식사로 삼기에는 좀 그렇잖아요?”

“호박엿찌개 같은 건 어떨까요?”

“….”

나는 잠시 그 맛을 상상해보고는 구토감이 몰려드는 걸 느꼈다. 달달한 찌개라니, 그 누가 맛있게 먹으랴.

“신촌은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도 않으니, 합격하면 좋겠네요.” 지하철로 10분 정도?

“…. 응.”

“합격하면 축하 선물로 뭐가 필요해요?”

“딱히.”

“가방? 신발? 옷? 아니면 실내화?”

“초등학교가 아니거든.”

“아, 아아! 교수님도 찾아뵈어야 하는데…!”

“유하님 완전히 어머니 같으신데요.”

넬의 지적에 나는 당황해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엄마, 라기 보다도 사실은 보호자를 자청하는 태도에 가까운 일이었고, 나는 그게 무척이나 싫었지만….

역시 유하는 지금의 내게는 너무 대단한 사람이기에.

하지만 이내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하는 나를 그저 그렇게만 생각하는 걸까.

“유하.”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싱겁네요. 후후.”

하지만 역시,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적당히 말을 돌리듯 중얼거렸다. 가볍게 웃는 유하, 속눈썹이 길고 부드러운 눈 옆에 새겨진 점을 보고 있자니 그녀는 내 밥 위에 돈가스를 얹어주며 입을 열었다.

“고민이라도 있어요?”

“….”

없지는 않지.

“말해봐요. 들어줄게요.”

“…. 유하는 예전부터 동물이 따르던 편이었지?”

“네! 그랬었죠!”

“혹시 그, 동물하고 교감하는 팁이 있을까?”

“으음~ 어떤 동물인데요?”

“야생동물.”

“커요?”

“아니, 작아.”

“털이 있나요? 꼬리는?”

어쩐지 스무고개처럼 되어버린 것 같은데.

“너구리, 비슷한 거야.”

“저, 정말요?! 서울 도심에 너구리가…?”

“자세히는 설명할 수 없지만.”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니 유하는 얼굴을 붉히며 눈을 반짝거렸다. 보러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걸까.

“호, 혹시 깨물거나 하는 아이인가요?”

창을 던지는데.

“으, 으음. 물리진 않았지만.”

물렸다고 했다가는 또 호들갑을 떨게 뻔했으므로 나는 적당히 말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탄하듯 눈을 반짝이고 있던 유하는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나 역시 한참 전에 식사는 끝마쳤던 상황이었기에 보리차를 꿀꺽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혹시 좋은 방법이 있을까?”

“으음~ 동물의 마음을 읽으면 돼요!”

“…? 구체적으로.”

“? 그냥 읽어지지 않나요?”

정말로 순수한 얼굴로 되묻는 유하를 보고,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작품 후기 ==========

게임 패치를 진행하였습니다.

1. 챕터 원 파트가 싸그리 수정되었습니다.

2. 대체적으로 주인공이 좀 더 성질머리가 죽고 무뚝뚝한 면이 강조되었습니다.

3. 유하와의 애정씬이 좀 추가되었습니다.

4. 주인공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목적이 조금 구체적으로 변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게임을 부수겠다. -〉 갤러해드가 되어서 이 게임을 끝내겠다. 로 바뀐 정도로.. 이외에는 크게 다를 부분이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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