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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33화 (33/321)

33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그리고 4시간에 걸친 시험이 끝나,

“후우….”

나는 자리에 앉아있느라 쌓인 피로감을 날리려는 듯 기지개를 펴며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적당히 해가 중천에 떠 속이 텅 빈 것을 느낀 나는 ‘켜져 있던’ 디멘션 커넥터를 리셋한 뒤 귓바퀴에 달았다.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넬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무선 통신을 통해 방금 전까지 린슬렛의 곁에 있던 녀석은 이내 내게 통신 사절마냥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잠깐 기다리시라는데요?”

“왜?”

“시험지랑 기타 등등 물건들을 학과 사무실 쪽으로 전달해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귀찮게….”

나는 적당히 중얼거리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툭툭 차댔다. 잠깐 기다릴까. 아니면 좀 도울까 생각을 하던 중, 이내 넬이 입을 열었다.

“도와드리죠!”

“너…. 네가 안 돕는다고.”

“히히.”

“….”

빨리 이야기를 하고 싶긴 하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계단을 올라 강의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깥에서 등을 기댄 채 기다려, 시험지와 답안지가 담긴 박스를 들고 나오는 린슬렛에게서 빼앗아 들고 걷기 시작했다.

“뭐, 뭐야?!”

“….”

“뭐냐고! 티티!”

“어디로 가져가면 되는 거냐?”

“입학처…인데?”

“안내해.”

“방금 시험 본 사람이 들면 안 된다고!”

“문 앞에서는 네가 들고 들어가시던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녀석을 쓱 돌아보았다. 시험을 본 사람이 꽤나 많아서 그런 것일까. 적당히 손에 감기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거기다 박스 자체가 녀석처럼 조그마한 게 쉽사리 들만한 크기도 아니었고.

“그건 그렇고 너, 무슨 과냐?”

슬슬 린슬렛이 조용해질 때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어 궁금했던 걸 물었다. 멍하니 있던 녀석이 이내 슬쩍 이쪽을 노려본 채로 입을 열었다.

“그건 알아서 뭐하게?”

“딱히 학교에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해서.”

“….”

“왜?”

솔직하게 말했건만 린슬렛은 부아가 치민 표정이었다.

“흥! 나도 마찬가지거든!”

“그러냐.”

예상했으므로 딱히 상처받을만한 내용도 아니었다.

“…. 수의학과.”

“그렇군.”

딱히 마주칠 일은 없겠군.

나는 적당히 대답하며 적당히 따사로운 햇살 아래를 계속해서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린슬렛의 시선을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한참 아래에서 이쪽을 뭔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보던 녀석은 이내 볼을 붉혔다.

“아,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지?”

“…? 아니.”

“정말이야?”

“애초에 너랑 나랑 그렇게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넌 무슨 과 지원했는데!”

내가 거기에 적당히 대답하자,

“하, 너야말로 안 어울리네.”

녀석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그런 감상을 남겼다. 어쩐지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나는 이마에 힘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뭐 어쨌든, 그걸 묻고 싶어서 돌아온 거야?”

“…. 그럴 리가.”

“그럼 뭐, 아서리안?”

끄덕끄덕.

나는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녀석이 가리키고 있던 건물로 함께 들어섰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거의 없어, 린슬렛과 나는 ‘입학처’라는 팻말이 걸린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녀석은 내게서 박스를 건네받아 전해주고 나왔다.

“그럼 뭐, 카페라도 갈까?”

요란하게 손바닥을 터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학교 근처였으므로 갈만한 곳이 부족하지는 않으리라.

“그거 재킷이지?”

하지만 녀석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뭐?”

“입었을 때랑 비스무리 한 형태기는 한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가 갈 카페가 어디라고 생각한 건데?”

“뭐, 학교 근처의…?”

“브아보, 달달한 거 먹고 싶은데 ‘실제로’ 먹었다가는 몸매 관리 못했다고 혼날 건데.”

“말인즉슨, 가상으로 먹자는 건가.”

“응응.”

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쉬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내 표정이야 어쩌건 상관없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앞장서 나간 녀석은 이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어쨌든, 이 근처에 게임 시작해도 괜찮은 장소가….”

“다연아!”

바로 그때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엑?!”

그 소리에 한순간 굳어진 녀석은,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소리가 들려온 쪽을 돌아보았다. 나 역시 고개를 돌렸고, 멀리서 누군가 달려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슬쩍 살집이 있는 몸의 중년 여성이었다.

“아, 아니?! 왜, 왜 여기에?!”

무슨 상황인데.

“따라와!”

린슬렛은 다급한 표정으로 내 소맷자락을 잡아끌었다. 뒤쪽의 여성이 몇 번이나 ‘다연’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 그리고 거기에 당황한 린슬렛의 태도. 나는 녀석을 따라 2층의 한 방으로 들어섰다.

탈의실이다.

“…?”

“이쪽 보지 말고! 들어!”

“무슨 상황인지…?”

“닥치고! 빨리! 시간이 없다고!”

“네, 네.”

나는 정말로 다급한 녀석의 태도에 한숨을 내쉬며 얌전히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륵, 스륵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 잘 들어! 이제부터 네 설정을 말해줄 테니까!”

“설정…?”

“보지 말고!”

어이가 없어 뒤를 돌아보려니 녀석이 발로 엉덩이를 뻥 걷어찼다. 어찌나 강한 힘이었는지 나는 몸이 휘청거리는 걸 느꼈다.

“너는 그, 그러니까아! 그!”

“….”

뭔데.

“아니 그 전에! 너 부모님이나 가족 중에 할 킬러즈나 고위 공무원, 혹은 군인 같은 거 있어?”

“없는데.”

“유, 유학 다녀왔다고 했지! 어디로 갔었어?!”

“….”

“빨리!”

“미국.”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어, 그럼! 너 졸업 후에 할 킬러즈를 지망하고 있는 걸로 하자! 응응! 그거라면 통할 거야!”

“뭐가 통하는데…?”

“에이씨! 좀 맞춰줘! 나도 너 열심히 도와줬잖아?!”

“….”

어쩔 수 없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동안 녀석의 뭔지 모를 행동이 끝날 때까지 묵묵하게 기다렸다. 아마 옷을 갈아 입는 거겠지만…. 왜 그러는지는 알 수가 없군.

그리고 위이이잉, 하면서 드라이기 소리가.

“….”

“오오, 린슬렛님 변신하고 계세요!”

“넬! 지금 나 어때?!”

“완벽합니다요!”

“정말?!”

“네넬! 넬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답니다!”

웃으며 이야기한 넬의 위로 하트 표시가 뿅뿅 떠올랐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즘, 나는 린슬렛이 소매를 당기는 걸 느끼고 뒤로 돌아섰다.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누구냐? 너.”

“장난치지 말고!”

“다연이냐?”

퍽, 코를 맞았다.

“….”

“너 진짜 죽여 버린다!”

“뭐, 뭘 맞춰주면 되는 건데.”

나는 슬쩍 아리는 코를 감싸쥔 채로 고개를 들었다.

지금의 린슬렛은, 그야말로 발랄한 느낌을 한껏 살린 미소녀였다. 뒤쪽으로 널브러져 있는 고데기나, 드라이기, 각종 빗과 화장품들로 완전히 무장을 한 녀석은 옷까지 무릎 위로 오는 깜찍한 원피스로 갈아입은 채였다.

진짜 하는 짓은 미운 7살짜리 남자 조카인데.

“그, 그으….”

“뭐?”

“남자친구!”

“…? 간다.”

“아니 제바아알! 제발요! 선생님!”

“싫어.”

나는 린슬렛이 뒤에서 낑낑거리며 잡아당김에도 아랑곳 않고 탈의실을 빠져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녀석의 필사적인 태도에서, 나 역시 몇 시간 전에 저랬다는 생각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는 건데.”

“나, 나중에 설명해줄게! 일단 맞춰줘! 아 그리고! 육체적인 관계는 전혀 없다고 해줘!”

“…?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녀석이 슬며시 내 옆을 지나쳐 문을 열었다. 그리고 믿는다는 눈초리를. 나는 그 뒤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1층,

“다연아! 너! 왜 연락을…!”

“어, 엄마!”

가까이 다가간 그녀가 정말로 완벽하게 꾸민 미소를 지으며 여성에게 팔짱을 꼈다. 그 뒤에 머쓱하게 다가가 서니 여성은 이내 나를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이 멋진 남성분은?”

“….”

“확실히 주인님, 남자답고 잘생기긴 하셨죠.”

뒤쪽의 넬이 여성의 반응에 그런 감상을 남겼다.

“그, 건전하게 교류하고 있는 친구야….”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한 나는,

“이준이라고 합니다.”

그런 본명을 입에 담았다. 그걸 들은 린슬렛이 가볍게 눈을 깜빡거렸다.

“어머 반가워요. 저는 다연이 엄마에요.”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학생, 이 학교의?”

“….”

뭐라고 대답하지.

잠깐 고민에 빠져 있던 나는, 여성의 뒤쪽에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는 린슬렛을 발견하고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여성의 기대감에 찬 시선은 당해낼 도리가 없어서 적당히 입을 열었다.

“아뇨, 유학을 다녀와서….”

“어머머, 부모님은?”

“….”

또 곤란한 질문이.

“어, 엄마! 이 친구 너무 곤란하게 하지 말아요!”

“흐음~ 그래도 우리 다연이랑 만나는 사람이면 엄마로서 그 정도는….”

“나중에 내가 설명해줄 테니까! 응?”

린슬렛인지 다연인지 모를 그것은 사랑스러운 애교를 부리며 엄마의 마음을 녹여댔다. 가볍게 어깨를 주무르고 매니큐어를 바른 손을 매만지며 내 귀의 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여성을 데리고 갔다.

그러더니 뭐라 가볍게 말을,

“뭐, 뭐어?! 오늘은 힘들어!”

“어머 얘는…. 이렇게 좋은 기회가….”

“하지만….”

“어차피 저런 애는….”

뭐 그런, 적당히 내용을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내용들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팝업창을 매만졌다. 둥둥 떠다니던 넬이 가볍게 탁구라도 하지 않겠느냐는 듯 가상의 채를 내밀었지만 무시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학생, 미안해요. 내가 주책없게 이것저것 물어서.”

“…. 아닙니다.”

꾸민 미소를 든 채 돌아온 여성을 보며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이내 뒤쪽에서 슬프다 못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린슬렛을 발견했다.

“앞으로도 다연이하고 좋은 만남 가져줘요. 하지만 애정 행각은 가상으로만 할 것. 알겠죠?”

“어, 엄마!”

“호호, 요즘 세상이 참 좋아졌다니까…. 어쨌든, 전 이만 만날 사람이 있어서 가볼게요!”

“안녕히 가세요.”

나는 적당히 꾸벅 고개를 숙였고, 여성은 이내 웃으며 멀어져갔다. 그 손에 끼워져 있던 다양한 종류의 반지를 떠올리며 나는 가볍게 앞머리를 매만졌다.

“….”

그리고 이내 내 옆에 선 린슬렛은,

“미안해.”

죽을 듯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사과를 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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