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아서리안에서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느낌인데.
“어제는 잘 들어갔냐? 잔뜩 취해가지고서는.”
“다, 당연ㅎ…. 아니! 그러니까! 으앙!”
이 녀석, 당황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동안 오리 주둥이처럼 된 후드에 감춰져 있는 녀석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발을 동동 구르던 린슬렛은 이내 졌다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쉬며 후드를 벗었다.
“그리고 지금 이거, 비매너 행위거든.”
“뭐가?”
“재킷을 안 입었을 때는 얼굴을 아는 에스콰이어라 해도 함부로 아는 척 하면 안 돼. 이런 것도 모르는 거야?”
“…. 문화권의 차이였다고 해두자.”
“‘해두자’는 뭐야! ‘해두자’는!”
버럭 소리를 지르는 린슬렛의 모습을 빤히 바라본 나는, 그런 명칭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현실에서는 처음 만난 그녀는 무척이나 다른 모습이었다.
20년 전에나 유행했을 법한 검정색 뿔테 안경. 헝클어진 머리를 돌돌 말아서 사과처럼 묶은 녀석은, 화장기도 없이 약간이지만 순수한 인상이었다. 복장은 살짝 촌스러워 후드 티에 긴 치마를 입은 채.
“그래서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건데.”
잠깐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린슬렛이 볼멘소리를 중얼거렸다. 묵묵히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옆에 있던 옆에 있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 뽑아 서있던 녀석에게 집어던졌다.
“청강생 시험 보러.”
“뭐어?!”
“왜?”
“…. 내가 시험 감독 도우미라서.”
입술을 비죽 내밀며 대답하는 린슬렛. 그런 상황을 알게 된 나는 앞머리를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슬쩍 닫혀 있던 활로라는 문이 열리며 그곳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감각이었다.
“너 몇 살인데?”
그러던 중 린슬렛이 약간 경계를 한 채 질문을 던졌다. 나는 반쯤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되받아쳤다.
“그러는 너는.”
“….”
내가 되묻자 녀석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이쪽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척이나 무례하게도 음료수 캔을 소매로 쓱쓱 닦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스물 셋.”
“….”
“왜, 왜?!”
“동갑일 줄이야.”
“너도 스물 셋이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린슬렛은 기가 차다는 듯이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머릿속으로 이미 희미하게 떠오른 영감을 밟아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도우미면 시험 내내 시험장 안에 있는 거냐?”
“그렇, 지?”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는데.”
“…? 응~ 싫어~.”
부끄러운 걸 참으며 이야기했지만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젓고는 뒤로 돌아섰다. 바쁜지 재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다시금 음료수를 꿀꺽. 그러더니 이내 굳어져서는 멍하니 그걸 내려다보았다.
“….”
“역시 나쁜 분은 아니시네요. 린슬렛님.”
넬의 속삭임, 그것이 예언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빈 캔을 내게 휙 던지고는 다시 앞으로 돌아왔다. 나는 도끼눈을 치켜뜨고 있는 녀석을 보며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빈 캔을 쓱 넣었다. 내부의 기계가 작동하며 캔을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데.”
“숙취, 잘 해소되었나보네.”
“뭐냐고오!”
살짝 너스레를 떨자니 린슬렛은 버럭 화를 내며 되물었다. 대답 대신 슬쩍 뒤로 돌아선 나는 자판기 안쪽의 음료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넬을 불렀다.
“넬.”
“네넬!”
“부탁해도 될까?”
“뭐, 뭘요?”
“린슬렛의 디멘션 커넥터를 기점으로 삼아서 정보량 송신 합금으로 시험지 위에 네가 숫자를 써준다면…. ‘증강되지 않은’ 나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앞머리를 매만지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찌되었건 합금 자체는 그 구조를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신물질이니 만큼 디멘션 커넥터를 떼어도 보일 터였으니까.
“음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지만….”
“린슬렛이 들어주느냐는 차치하고서.”
“그걸 차치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어떻게든 설득해야지. 협상에 가깝게 되겠지만.”
“뒤를 박으로 바꿔도 되는 거군요!”
“….”
넬이 덧붙이는 걸 들으며 앞머리를 매만진 나는 뒤쪽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린슬렛을 넘겨다보았다. 물론 녀석이 순순히 들어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울 테니. 지난 밤에 말했던 대로 협상이 아니라 박이 되는 거다.
“넬도 유하님이 슬퍼하시는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아요!”
표정으로 내 생각을 알아챈 걸까. 잠깐 생각을 하던 넬 역시 적당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수긍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돌아섰다.
“아까부터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
“린슬렛.”
“…. 왜?”
“부탁 하나만 하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있는 린슬렛을 향해 넬이 야구선수가 공을 던지듯 데이터 조각을 던졌다.
“…? 이건, 뭐야?”
“일단 그 권한에 접속해줬으면 해.”
데이터를 받은 린슬렛이 내 말에 약간 께름칙한 표정으로 승인을 했다. 그리고 녀석 역시 내 옆에 떠있는 넬을 볼 수 있게 되어,
“와, 너도 변태였구나?”
라는 감상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넬입니다아☆”
“…. 이런 여자애가 취향이니?”
“설명하기는 좀 복잡하지만, 일단 그 녀석이 시험장에 돌아다닐 수 있도록 도움을 줬으면 해. 나는 들어갈 때 빼놓고 들어가야 하니까.”
“뭐어? 왜…. 자, 잠깐 너 설마 컨닝하려고?!”
“응.”
“나 시험 감독 도우미거든!”
“동시에 아서리안에서는 내 파트너이기도 하지.”
나는 그런 말을 통해, 녀석과 내가 비밀스러운 세계에서 무척이나 ‘친밀한 사이’임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그 말은 들은 넬이 어쩐지 뒤쪽에서 어색하게 웃는 바람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보았다.
“…. 너랑 내 사이가?”
“그래, 꽤나 친밀하잖아? 파트너 아가씨.”
나는 적당히 너스레를 떨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로서 언제든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필, 하지만 다음 순간 넬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고,
“푸훕…!”
린슬렛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하핫! 아하하하하핫!”
느닷없이 린슬렛이 빵 터져서는 폭소를 시작했다. 당황해 바라보던 나는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꼈다.
“파, 파트! 파트너래! 파트너! 아하하하하!!”
“…!!”
“너 가끔 되게 중이병 같은 거 아니? 아하하하!”
그렇게 안경이 비뚤어질 때까지 한참을 웃어대던 린슬렛은 이내 눈가에 눈물이 고여서는 길게 못 쉬었던 숨을 내뱉었다. 나는 어쩐지 분위기가 풀린 기색을 느꼈다.
“그렇게 이 학교가 다니고 싶은가 봐아?”
“…. 멋대로 생각해.”
“어쨌든, 너. 이름이 넬이라고?”
“네넬!”
“난 린슬렛. 잘 부탁해.”
린슬렛은 후드 티를 눌러 쓰며 시원하게 웃어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촌스러운 치마가 날리는 걸 보며 나는 상황을 좀처럼 이해하질 못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인님…. 협박에도 능숙하지 못하시네요.”
“뭐?”
“그럴 땐 의식 조종으로 (삐이-)하고 (삐이-)하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시는 편이.”
“….”
그 삐이- 하는 소리가 뭔지 알고 싶지도 않은데.
◇
그리고 시험은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잡아본 펜과 종이의 감촉을 느끼고 있자니 눈앞에 조그맣게 흑연가루 같은 것이 모이며 3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나는 아무것도 증강되지 않은 맨 눈으로 그것을 보며 답안을 적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을 장소에서 정답을 추려내고 있을 넬을 생각하니 어쩐지 등골이 오싹했지만.
“….”
5번.
“시험 시간 10분 남았습니다!”
감독의 말에 린슬렛이 약간 한심하다는 얼굴에 미소를 덧붙여 날 바라보았다. 나는 화장기가 없이 순한 얼굴을 보며 이번만큼은 큰 빚을 졌다는 생각을 했다.
“….”
그로서 첫 번째 시험은 종료.
나는 팔랑거리는 답안지를 구겨지지 않도록 쥔 채 길게 숨을 내뱉었다. 뒤쪽에서부터 감독관이 답안을 걷어가, 이런 방식의 시험은 오랜만이었던 터라 나는 무척이나 지치는 걸 느꼈다.
피곤한 걸.
그렇게 생각하며 앞머리를 쓸어 넘긴 나는 이내 잠깐 세수라도 하고 올 요량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린슬렛이 감독관을 돕고 있는 걸 확인한 뒤 강의실을 빠져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뭐 예상한 바이기는 했지만, 시험을 치르기 전 감독관이 한 말에 따르면 ‘린슬렛’을 포함해 도우미로 온 사람들은 모두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는 모양이었다.
말인즉슨 내가 합격 후 학교를 다니게 된다면 이것저것 마주치는 일이 없지는 않다는 말이렷다.
설마 학과까지 같을 리는 없겠지만…. 음 그쪽은 이따가 물어봐두는 걸로 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볍게 흐르는 물에 손을 대 흐름이 바뀌는 걸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쩐지 이런 식으로 현실 세계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전까지만 해도 주로 뇌의 흐름을 아서리안에 관해서만 동작하도록 했으니까.
“후우.”
어쨌든 유하를 슬프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티티라고 부를게.”
“뭐?”
바깥으로 나가자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뒷짐을 진 린슬렛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드를 쓴 그녀는 어쩐지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
“타나토스는 너무 길고 중이병스럽잖아.”
“….”
“왜, 싫어?”
“좋을 대로 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무뚝뚝하게 녀석을 지나치려고 했다. 중이병이라는 말이 걸렸지만 딱히 씨름을 벌일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으음~ 진짜? 저 녀석이이~?”
“…?”
옆에 서있는,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린슬렛. 나는 신경이 쓰이는 걸 느끼며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헤에, 정말로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나누는 거야?”
“아~니이, 그냥 평범한 걸즈 토크야. 무뚝뚝한 중이병 티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무지하게 신경 쓰이는데.
넬이 쓸데없는 소리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물기에 젖은 앞머리를 매만지며 그런 생각을 통해 신경을 거두려고 했다.
“너 어제 쥬브나일 포르노에 다시 갔다며?”
“뭣?!”
하고 있잖아?!
“왜 간 거야?”
“….”
거기까지는 직접 들으라. 는 식인가.
나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려는 듯한 넬의 행동에 길게 한숨을 내쉬며 린슬렛을 보았다. 녀석은 흥미로운 듯 나와 눈을 마주친 채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따가 이야기 해.”
나는 적당히 대답하며 몸을 돌려 강의실 쪽으로 들어섰다. 린슬렛은 김이 샌 건지 피이, 하고 입술을 부풀리며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