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너 뭐야?”
“…?”
“무슨 수라도 쓰지 않고서야 그런 건 불가능해. 발렌타인은 술 조금만 마셔도 쓰러지는 애란 말이야.”
이번에는 약간 우울해진 채, 린슬렛은 어깨에 기대서 의심하듯 질문을 던졌다. 물론 나는 거기에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가만히 입을 다물고 녀석이 말을 잇는 걸 기다렸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퀘스트였는데 첫 단추부터 꿰기는커녕 실패해버리고 말았어.”
“….”
“이제 어쩌면 좋지….”
나는 대답할 거리를 찾지 못한 채 김밥을 꿀꺽 삼켰다. 침울해진 린슬렛의 모습에, 단순히 고소하다는 생각보다도 어쩐지 조금은 책임감이 드는 걸 느꼈다. 물론 녀석이 날 물 먹이려 했던 건 사실이지만.
“재킷을 해제하지 그래. 너 술 엄청 마셨다고.”
“싫다고 했잖아.”
나는 점잖은 태도로 타일렀으나, 린슬렛은 도끼눈을 뜨며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내, 천천히 무릎을 싸매듯 끌어안고는 말을 이었다.
“그건 비겁한 일이니까…. 뭔가, 거짓말 같은.”
“싫어하는 모양이군."
“그래. 도망치고, 비겁한 거. 사람이라면 매사에 최선을 다 해야…. 우욱….”
하수도관에서 증기가 새어나와 적당히 거리의 모습이 가려진 상태에서 나는 한동안 어깨에 기댄 린슬렛을 가만히 위로하듯 지탱해주었다.
“가장 중요하다는 게 뭔데?”
나름대로 책임감을 느끼는 터라 나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짧게 딸꾹질을 한 린슬렛이 입을 열었다.
“랜-슬-롯.”
“…?”
“이번 에픽 퀘스트에서는 랜슬롯이 기사 서임의 대상으로 될 거라는 정보가 있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이 꼴이 나버렸지.”
“왜 굳이 랜슬롯이 되고 싶은 건데?”
나는 슬쩍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갤러해드라는 목표가 있는 스스로와 무척 비슷한 대답을 기대한 걸까. 하지만 녀석은 이내 짓궂게 웃으며 내 코를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튕겼다.
“헤에, 우리 그런 것까지 말하는 관계였던가? 파트너, 무뚝뚝이 아저씨.”
죽이고 싶다.
“뭐, 누군가에게 밝히기는 껄끄러운 이유라서 말이지…. 하지만 뭐, 일반적으로 그런 거 되면 좋잖아? 거기다가 랜슬롯은 호수의 기사여서 멋지고.”
“….”
린슬렛의 말에 전혀 다른 이유라는 걸 깨달은 나는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잠깐 입을 다물고 있자니 녀석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조그마한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뭐 어쨌든, 이것도 어떻게 보면 다 방심했던 내 잘못이라서 남 탓할 수도 없고.”
“그렇겠지.”
“하지만 너 수상하기는 해. 내가 지켜볼 거야.”
“….”
그래보시던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녀석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전히 술에 취한 채, 녀석은 얼굴 윗부분을 가리는 고양이 가면을 얼굴에 쓰고 걷기 시작했다.
“야.”
“응?”
가볍게 부르자 린슬렛이 돌아보았고 나는 꿀물을 휙 집어던졌다. 따뜻하게 데운 그 유리병을 받아들어 바라보던 녀석은 이내 약간이지만 미소를 지은 것 같았다.
그렇게 린슬렛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주인님, 안 바래다주셔도 괜찮아요?”
“…. 할 일이 생각나서.”
넬의 말에 나는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다시금 맨홀 쪽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녀석은 뭔가 눈치 챈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 으엑?! 유하님 걱정하실 거라고요?”
“어쩔 수 없잖아.”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맨홀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두꺼운 그것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저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네크로맨서 재킷의 능력에 대해서.
“흐으음…. 주인님 여자들이 좋아할 상이네요.”
“…. 빚을 지워두고 싶지 않을 뿐이야.”
그리고 한 가지 더 알아볼 것도 있고.
어쩐지 변명 같다고 생각하며 나는 맨홀 아래로 다시 뛰어내렸다.
◇
그리고 다음 날,
“준! 이거 받으세요!”
나는 합격 엿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돈가스를 먹는데요!”
나는 돈가스 도시락을 받았다.
“이거는 동물 점에서 행운의 아이템이래요!”
나는 합격이라는 글자가 수놓인 리스트밴드를 받았다.
“그, 그리고! 오늘 신발은 이거! 별자리 점에서!”
나는 흰색의 신발을 받았다.
“모자도 쓰세요! 혈액형 점에서…!”
“누, 누나?”
나는 야구 모자를 건네는 유하의 모습에 약간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시야 한쪽에 ☆오늘의 캡틴 러브러브 운세☆라고 적혀진 창을 띄우고 있던 유하가 상기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네?”
“이, 이제 괜찮으니까.”
“하지만! 아직 중국의 합격 부적이랑 콩고 민주 공화국의 신성한 의식이!”
“….”
“코, 콩을 뿌리죠! 액운을 내쫓는다는 느낌으로! 아, 아아! 근데 콩이 없는데! 커피콩도 괜찮을라나?!”
“다녀올게.”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뒤로 돌아서 가게를 빠져나왔다. 유하가 준 야구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잠깐, 해가 뜨기 시작한 거리를 걷다 뒤를 돌아보았다.
걱정을 하는 듯 바라보고 있는 유하.
누나.
“….”
손을 흔들자 그녀 역시.
나는 약간 쑥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크게 하품을 한 넬이 이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부분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지만.
“유하님 저런 거 잘 믿으시나 봐요!”
“옛날부터 그랬지.”
나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모자에 짓눌려 삐져나온 앞머리를 가볍게 매만졌다. 그로부터 얼마 걷지 않아 나오는 지하철 역사를 향해 내려가며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옛날이라.
“….”
타로 점부터 시작해, 각종 판타지 소설, 신화나 전설 따위를 좋아하긴 했었지. 지금은 관두게 되었지만, 그래도 경향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그 어느 순간에 대해 떠올리던 나는 이내 생각을 관두며 지하철에 탔다.
“넬.”
“네넬!”
“시험 잘 부탁한다.”
“으음, 잘 될까 모르겠어요?”
“뭐 어때.”
“…. 주인님 확실히 무모한 경향이 있으세요오.”
넬이 길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
그리고 시험장.
“자, 잠깐만요.”
행여나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나는 시험장 앞에 있는 감독관에게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마른 체격의 여성은 안경을 밀어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디멘션 커넥터는 다 반납하셔야 한다고요.”
“아, 아니! 왜요? 그러면 수식 계산할 때는요?”
“이 전자계산기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중얼거린 여성은 이제는 골동품 가게에서나 볼 수 있는 계산기를 내밀어보였다.
“이걸 쓰라고요? 안 쓴지 10년은 넘은 것 같은데?”
“…. 분명히 숙지하고 오시라 말씀드렸을 텐데요.”
여성은 깐깐하게 안경을 밀어 올리며 내게 데이터로 이루어진 종이를 내밀었다. 시선을 보내니 종이가 확대되며 ‘시험장 내에는 디멘션 커넥터의 반입이 금지되며, 수식 계산 등은 지급되는 계산기를 통해 하셔야 합니다.’라는 글씨가 보였다.
….
이건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도, 돌아오겠습니다.”
“30분 남았으니 빨리 정하시길.”
나는 한심하다는 듯 이쪽을 보는 시선을 이겨내지 못하고 몸을 돌려 고사장을 빠져나왔다.
주말의 대학가 내부에는 거의 대부분이 시험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로, 나는 그들 사이를 지나쳐 자판기 앞으로 향했다. 넬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주인니임….”
“뭐.”
“주먹구구이신 부분이 있으시다니까요.”
“…. 어쩔 수 없었다고.”
바쁘다 못해 죽을 것 같을 정도로 바빴으니.
넬의 지적에 나는 볼멘소리를 내며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한 모금 마셨다. 그렇다고는 해도, 요즘 같은 시대에 디멘션 커넥터를 아예 빼놓고 들어가라는 지시를 내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네트워크 차단 정도 일 거라 예상해 넬을 이용하려고 했던 건데.
“어쩌지?”
“으음 제 실력으로 시험을 보셔서 합격하시는…?”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짓 안했겠지.”
나는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떨어지면 슬퍼할 유하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랐다. 물론 나도 아예 공부를 하지 않아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모든 내용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끄으으응….”
그래도 제대로 시험을 봐 합격할 확률은 거의 제로.
어떻게 하지.
갑자기 병이 났다고 하고 돌아갈까.
아니, 어찌되었건 유하를 슬프게 할 뿐이다.
나는 달달한 캔 커피를 한 번에 주욱 들이키고는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낙담하는 유하의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캠퍼스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중….
“?”
나는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금발을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익숙한 머리색이었다.
“린슬렛?”
저도 모르게 이름을 부르자 크게 움찔하는 그녀. 나는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는 걸 느끼며 천천히 다가갔다. 촌스러운 후드 티를 입은 채 굳어져 있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니, 금발을 비롯해 비슷한 뒷모습이기는 했다.
“맞, 지?”
“아, 아닌 데요!”
버럭 소리를 지른 그녀는 이내 도망치기 시작했다. 잠깐 멍해져 있던 나는 번뜩 생각을 떠올리고는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그 뒤를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 기다려봐!”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후드를 뒤집어 쓴 린슬렛은, 등에는 커다란 백팩을 맨 채였기에 나는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른 자판기 앞에서 그녀를 붙잡는 일에 성공했다. 그 가녀린 팔목을 놓치지 않도록 단단히 쥐니 그녀는 이내 움찔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 역시 맞네.”
나는 둘만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모습에 안심하고는 손목을 놓았다. 린슬렛은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서는 쓰고 있던 후드의 끈을 꾹 조여 구겨진 새의 부리처럼 만들었다. 그 덕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니거든!”
“….”
========== 작품 후기 ==========
표지를- 바꿔보았습니다-.
한번 더 바뀔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