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큭-!!”
나는,
“으오오오오오오오오옷!!”
스파다를 손에서 놓은 채 벽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주인님! 하고 외치는 넬의 목소리가 귀에 휘감겨,
나는 놀란 얼굴로 서있는 빼빼로의 몸통에 어깨를 들이받으며 함께 수면 안으로 침몰했다.
꼬로로록, 하면서 불쾌한 오수가 몸에 휘감기며 나는 그 상태에서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인간의 힘을 벗어난 신체는 물속에서도 막힘없이 뻗어나가 녀석의 안면을 몇 번이고 강타했다.
“주인님…! 위쪽에서!”
넬의 경고에, 나는 빼빼로의 복부를 걷어차며 뒤쪽으로 슥 뻗어져 나갔다. 음파 공격이 몇 번이고 수면을 꿰뚫는 광경에 나는 구역질이 나는 걸 느끼면서도 좀 더 아래로 파고 내려갔다.
“어, 어쩌시려고요?”
음파가 꽂혀 피어오르는 거품의 각도로 봤을 때, 화이트의 위치는 분명히…!
“여기다!!”
나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지르며 위로 솟아올랐다. 물속에 있는 나를 찾고 있던 화이트의 안색이 그 이름만큼이나 놀람으로 물들어, 나는 녀석에게 충돌해 덮쳐 눌렀다.
“히익?!”
하지만 역시 이런 꼬맹이를 때릴 수는 없어서….
“이리 내놔.”
나는 슬쩍 드럼스틱을 빼앗아 주머니에 꽂았다.
“아, 아으아으…. 안돼요오….”
화이트가 메이드복 소매를 휘저으며 내게 달려들었지만 먹히지 않았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들어 녀석의 이마를 밀어내고는 배 쪽을 살펴보았다.
아니, 근데!
[흐에에에…. 더 못 마시겠어어어….]
발렌타인, 취했잖아?!
[이 녀석, 술로는 나 못 이긴다니까아.]
우습다는 듯 중얼거린 린슬렛이 천천히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 한 모금, 그렇게 마신 녀석은 이내 분홍빛의 입술을 빛내며 날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좀 더 싸워봐. 타나토스.]
“큭!”
“힘내십시오! 발렌타인 씨!”
“이번에야말로 린슬렛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거야!”
아니 니들 무슨 영화 찍냐!
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술에 거나하게 취해 반쯤 정신을 잃은 발렌타인을 응원하는 블랙과 빼빼로.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다시금 도약해 배 위로 몸을 날렸다.
“야! 일어나봐! 빨리, 빨리 마셔!”
“더는 못 마셔어….”
발렌타인을 흔들어보았지만 무반응. 반쯤 잠든 듯, 녀석은 쿠울…. 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너도 그쪽 응원하는 거야? 물에 빠진 생쥐 꼴이어서.”
그런 나를 놀리듯 린슬렛이 여유롭게 윙크를.
그리고 뒤쪽에서 검은 인영이 날아들었다.
“크윽!”
빼빼로의 기타에 얻어맞은 나는 버텨내려고 했지만 테이블을 뒤엎으며 반대편에 처박혔다. 방어력 수치의 하강을 눈으로 확인한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뒤로 굴러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내가 누워 있던 장소에 빼빼로의 베이스 기타가 찍혔다.
부서져 튀어 오른 나뭇조각들이 데이터로 변해 사라졌다. 녀석과 나는 그 사이에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뭔가 방법이…!!
“넬!”
나는 비명을 지르듯 휘둘러지는 기타를 피해내며 넬을 불렀다. 훅, 하고 옆으로 다가온 녀석을 보며 나는 테이블 위를 굴러 NPC인지 유저인지 모를 놈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하지만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저 술…! 진짜야?!”
“음, 아닐걸요?”
“마셔도…! 급성 알코올 뭐시기, 그런 거 없지?!”
“네넬! 아서리안은 안전한 게임이랍니다!”
“그러면…!!”
나는 몇 번이고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내며 테이블 위로 엎어진 발렌타인을 바라보았다. 상황을 이해한 넬이 발렌타인 쪽으로 날아가…!
나는 의식 조종을 발동시켰다.
“?! 뭐, 뭐야?!”
눈빛이 흐리멍덩한 상태에서 발렌타인이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우자 린슬렛이 놀란 듯 목소리를 냈다. 나는 넬에게 조종을 맡겨둔 상태에서 필사적으로 빼빼로의 상대를 하기 시작했다.
“큭!”
“잘 피하시는군요. 감탄했습니다.”
“매너 좋게 말하면서 죽일 것처럼 덤비지 말라고!”
그렇게 외친 나는 테이블 위의 술병을 몇 개 던져 녀석의 움직임을 더디게 만들었다. 하지만 깨진 술병이 데이터 조각으로 환원되는 과정이 채 끝나기도 전, 녀석은 금새 회복하고 다시 달려들었다.
“자자, 술 많이많이 드세요!”
“뭐?! 아, 아니 너 분명 주량…!”
엄청난 속도로 맥주를 마시기 시작하는 발렌타인을 보며 린슬렛 역시도 따라서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점점 벽까지 몰리는 상태에서 나는…!!
“아, 안! 안 돼! 잠시만!”
빨리, 좀!
“큭!”
이어지는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테이블 위에 쓰러진 나는 곧장 날아드는 기타를 손으로 잡아냈다. 어찌나 큰 힘이었는지 충격파가 퍼지며 나는 손에서 괴악할 정도의 통증을 느꼈다.
“이만…. 쓰러지십시오!”
“크으윽!”
바들바들 팔을 떨며 빼빼로와 내가 힘겨루기를 거듭하고 있자니…!!
- 경쟁 퀘스트에서 패배하셨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
“하아.”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지상으로 빠져나왔다.
어느덧 어둠이 고개를 지그시 내밀어, 좁은 골목에 눈길을 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하늘 저편에서 떠오르는 달을 보며 부웅 떠오르는 넬을 지켜보았다.
“몸은 괜찮으세요?”
“움직일 정도는.”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통증이 남은 복부 부근을 어루만졌다. 어딘가 부러진 곳은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집에 돌아가면 분명 멍이 들어있으리라.
어쨌든 뭐,
퀘스트는 패배로 끝이 났고 나에 관해서 느긋하게 조사해보려던 린슬렛의 계획도 틀어졌다. 거기에 협상도 하지 못해 에픽 퀘스트의 정보는 아마 알고자 하는 대부분의 에스콰이어들이 알게 되겠지.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윽…. 으그그그으….”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열린 맨홀에서 린슬렛이 천천히 빠져나왔다. 화려한 금발이 흐트러진 채 반쯤 기어서 나온 녀석은 자리에 선 상태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의식 조종에 당한 발렌타인에게 지지 않으려 무리해서 술을 퍼마신 결과였다.
“왜, 왜 이렇게 된, 거지?”
“….”
나는 좀처럼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녀석의 뒤로 파고들어 맨홀 뚜껑을 닫았다. 가면을 벗어 품에 넣은 녀석은 이내 머리를 매만지며 비틀거렸다. 새하얀 볼이 취기로 인해 빨갛게 물든 상태였다.
“으, 분명…. 발렌타인의 주량은…?”
뭐 무리해서 술을 마신 발렌타인도 의식 조종을 해제하자 곧장 잠에 떨어지긴 했었지. 하지만 실제 술이 아니라 뇌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재킷을 해제한다면 나아질 거라고 넬은 말했다.
“실수, 했어어…. 중요한, 일이었는데에….”
“가자. 늦었어.”
어쩐지 녀석은 몹시도 절망한 듯했지만 나는 무뚝뚝하게 중얼거리고는 돌아섰다. 어쨌든 슬슬 유하가 걱정할 시간이 될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으으으….”
하지만 린슬렛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
“어, 어쩌죠?”
스스로 바보짓을 해놓고서 애처럼 질질 짜기 시작하는 모습에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몸을 돌렸다. 하지만 눈썹을 크게 찌푸려 정말로 슬퍼하고 있는 얼굴에서는 그 전까지의 당당하고 까칠하고 당당한 모습이라고는 온 데 간 데도 없었다.
젠장,
“괜찮냐?”
짧게 물으니 린슬렛은 중심을 잃고 내 쪽으로 푹 고꾸라졌다. 놀란 나는 옆으로 몸을 틀었고,
녀석은 지면에 그대로 코를 처박았다.
철푸덕! 하는 소리와 함께.
“….”
미리 말해두지만 무의식이 그렇게 시킨 일이었다.
“아, 아프시겠어요오.”
“후에에에엥~.”
“야야, 일어나. 집에 가야지.”
약간 죄책감이 들어 나는 녀석의 어깨를 쿡쿡 찌르며 기운을 차리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녀석은 금발을 바닥에 마구잡이로 흐트러뜨린 채 어깨를 훌쩍거렸다.
“히이이이이이잉….”
“음, 많이 슬프신 것 같은데요?”
“보면 알아.”
“나는 정말 바보야아아아!”
그러더니 절규를 시작했다.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어쩐지 뒷맛이 씁쓸한 느낌에 천천히 다가가 녀석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어쨌든 린슬렛은 퀘스트에서 패배하고 협상에 실패한 일로 인해 적잖이 좌절한 것 같아보였던 것이다.
“하아, 왜 그러는데?”
“이이잉….”
도무지 진정할 것 같지 않군.
“재킷을 해제해. 그러면 술 깬다잖아.”
“싫어! 그건!”
“…?”
“으에에에에에엥!”
바닥에 코를 박고 있던 녀석이 이내 동동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어쩐지 그 이유에 대해서 알 것 같았던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늦었다.
일찍 돌아가지 않으면 유하가 걱정할 터였다.
“주, 주인님?”
넬의 만류에도 나는 녀석을 그 자리에 둔 채 거리로 빠져나왔다. 사람들로 붐비는 번화가, 마스크를 해제해 재킷을 원래 상태로 되돌린 나는 자연스럽게 거기에 섞여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술 깨는 약,
그리고 숙취해소제.
꿀물.
…. 배가 고팠으니 삼각 김밥까지.
“으에에에엥! 나는 정말 바보야아아아!”
적당히 사서 봉투를 들고 돌아가니 녀석은 그때까지도 지면에 코를 박은 채 발을 동동 굴러대고 있었다. 슬쩍 뒤를 돌아봐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음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힘들어.
“야.”
하지만 나는 그런 기색을 감춘 채 숙취해소제의 뚜껑을 까드득 열고는 녀석의 소맷부리를 잡아당겨 내 옆에 앉게 했다. 그리고 약을 손에 쥐도록 하고는 숙취해소제를 스윽 내밀었다.
“너 쌍코피난다.”
“후울~쩍.”
그걸 또 마시지 말라고.
“…. 우으으으으.”
재킷의 소매로 코피를 슥슥 닦아낸 녀석은 이내 내가 준 약과 음료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는 약간 진정한 듯 퀭한 눈으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삼각 김밥을 까서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는 중이었다.
“아 주인님, 넬도 삼각 김밥 주세요!”
“….”
슬쩍 건네는 시늉을 하자 내 손에 넬이 삼각 김밥(으로 표현된 데이터)을 만들어 가져가 먹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이 녀석을 집으로 데려가지. 하는 생각을 하며 고민에 빠졌….
털썩, 녀석이 내 어깨에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