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
“주인님, 무모한 구석이 있으세요.”
넬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물론 게임이니만큼 죽지는 않으시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모했다고요?”
노출이 심한 간호사복을 입은 녀석이 내 얼굴에 소독용 솜을 두들기는 동작을 취해보이며 이것저것 핀잔을 늘어놓았다. 아니 그건 단순한 동작에 불과해, 사실 내 몸은 이미 회복이 끝난 상황이었지만….
치료가 이런 방식이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커다란 욕조 속에 가득 찬 검정색 물질을 질린 얼굴로 보았다. 몸을 치료하는데 쓰이는 이 물질은 정보량 송신 합금의 한 형태라는 모양이었다. 액체와 고체의 중간 상태로, 수은 같은 느낌이어서 살짝 불안했지만 어쨌든 신체의 통증은 금방 멎은 상태였다.
“애초에 라쿠스 기사단 분들께서 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주인님은 재킷을 잃게 되셨을 수도 있었어요! 그렇게 되면 모든 기억을 잃게 된다고요?”
“….”
나는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는 넬의 모습에 약간 미안한 기분마저 느끼며 뒷목을 긁적였다. 게임에서 탈락해 기억을 잃는다니 확실히 뒷맛이 나쁜 일이기는 했다.
“왜,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미안해.”
“우으…. 그래도 또 하실 거잖아요?”
“그렇겠지.”
“여러모로 저만 주름이 늘어나는 일이네요오.”
나는 내 손에 기억을 잃은 에스콰이어에 대해 잠시 생각하고는 걱정하며 한숨을 내쉬는 넬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는 동작을 취해보였다. 팔을 감싸듯 매달려 있던 검정색 물질이 빨려들듯이 다시 ‘욕조’ 속으로 들어갔다. 그걸 바라보던 나는 이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 아직 다 안 나으셨다고요?”
“괜찮아.”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옷을 입기 시작했다.
셔츠와 바지만 걸치고 앞머리를 매만지며 잠시 재킷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자니 이윽고 뒤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린 나는 거기에 반쯤 몸을 걸친 채 있던 여자, 린슬렛을 발견했다. 바깥의 NPC와 대화를 나누는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돈은 이쪽으로 달아둬.”
“알겠습니다옹.”
여기도 고양이 NPC냐.
“후우, 괜히 기사단 자금이 나갔…. 벌써 일어나도 돼? 고양이 의원의 치료는 다 끝나면 전신 마사지까지 해줘서 편하다고. 무뚝뚝이.”
녀석은 가면을 벗은 상태였다.
역시나 생각대로의 미인이었다. 가녀린 체구에 맞게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화장기는 거의 없이 립글로스만 바른 상태로 분홍빛 입술이 눈부셨다. 자연스러운 금발에 어쩐지 나는 혼혈 같다는 인상을 느꼈다.
“….”
“거 참 붙임성 없네.”
금발을 흩날리며 들어온 그녀가 넬이 앉아있던 의자에 털썩 불량스럽게 몸을 기댔다. 넬이 비켜나는 걸 보던 나는 다시금 재킷을 몸에 걸쳤다.
“어?”
“…?”
“너 셔츠 등 쪽에 구멍 나있어서.”
젠장.
몇 벌 없는 옷이라 신경이 쓰였던 나는 확인해보기 위해 다시 재킷과 셔츠를 벗어 살펴보았다. 그 말대로 10cm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구멍이 난 상태.
“….”
“주인님! 넬이 꿰매드릴게요!”
곤란한 상황에 삯바느질 도구를 펑, 하고 소환해드는 넬. 나는 짜게 식는 감정을 느끼며 다시금 셔츠를 몸에 걸쳤다. 시선이 느껴져 보니 린슬렛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깃든 상태였다.
“왜.”
“너, 등에 그거 뭐야?”
“…. 별 거 아니야.”
나는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애써 시선을 피하며 방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자리에서 일어선 린슬렛에게 손을 붙잡히고 말았다.
“무슨, 너 그 흉터 어쩌다가….”
“예전에, 사고였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리며 린슬렛의 손을 가볍게 밀듯이 쳐냈다. 그리고는 방을 빠져나와 병원의 로비처럼 꾸며진 곳을 지나쳤다.
“감사합니다. 손님. 또 이용해주십시오.”
….
최근에 깨달았는데 여기 NPC들 현금을 사용해야할 때면 묘하게 정중한 말투가 된단 말이지.
살찐 고양이 간호사의 인사에 께름칙하게 본 나는 이내 건물을 빠져나왔다. 좁고 어두운 골목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있는 문. 린슬렛까지 빠져나오자 철커덕하며 문이 잠겼다.
“….”
“뭘 봐?”
거리로 나오자 녀석이 다시 예의 그 고양이 가면을 얼굴에 착용했다. 그 미려한 동작에 새삼 20cm 정도 나는 키 차이를 자각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그런 거지?”
“뭐?”
“맨 얼굴을 보여준 이유.”
“…. 비비안의 명령 때문이야. 오늘부터 무. 척. 짜. 증. 나. 지. 만. 너랑 파트너가 되었거든.”
“아 주인님, 그게 매너라고 해요.”
“매너?”
“그래애, 매너라고. 그게 아서리안의 매너! 파트너에게는 얼굴을 보여주는 것!”
“….”
무척 활달한 녀석이로군.
게다가 감정적이다. 상대하기 피곤한 타입인 걸 느끼며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군.”
“….”
내 무뚝뚝한 대답에 린슬렛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말을 이었다.
“됐으면 이쯤에서 헤어지지.”
“흥,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었거든?”
팔짱을 낀 채 중얼거린 린슬렛이 훌쩍 외벽을 타고 뛰어올랐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위를 올려다본 나는 옥상 위에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린슬렛과 눈이 마주쳤다.
“….”
“나중에 연락할 테니까. 잠수타지 마.”
가볍게 이야기한 녀석은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아서리안을 종료시키며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넬.”
“네넬!”
“혹시 디멘션 커넥터를 제거하는 장치가 게임 내에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고 있나?”
“자, 잘 모르겠는데요오…?”
인권 문제가 있기 때문에 타인의 동의 없이 디멘션 커넥터를 제거하는 부분은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뭔가 캥키는 구석을 느낀 나는 멍하니 서있다 이내 천천히 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시작했군.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아, 맞다.”
“응? 왜 그러세요?”
도시락.
◇
카페로 돌아오니 슬슬 저녁 시간이었다.
“다녀왔습니다아!”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내 뒤에 떠있던 넬이 밝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 준…. 이제 와요? 넬도.”
슬쩍 잠이 들었었는지 카운터에 앉아 조그맣게 하품을 한 유하가 나를 맞아주었다. 한쪽 어깨에 가방을 걸치고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희미하게 커피 냄새가 풍겼다.
“하우…. 미, 미안해요오.”
“뭐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유하는 부드러운 눈가에 살짝 이슬이 맺힌 상태로 베시시 웃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부드럽게 내 손을 잡았다.
“으음, 준이 열심히 공부하고 왔는데, 누나는 일하다 졸기나 해서?”
“….”
여기 장사가 안 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은은한 조명으로 뒤덮인 카페 내부를 둘러보았다. 따스하고 깔끔한데다 조용한 분위기였지만 눈에 띄지 않는 구석의 구석에 위치한 찻집은, 근처에서 소일거리 하는 노인들만이 가끔 들르고 하는 장소였다. 유하를 딸처럼 여긴다는 느낌으로.
나로서는 다행이었지만.
“고생했어요. 도시락은?”
“미안해. 바빠서 못 먹었어.”
나는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에 슬쩍 시선을 피하며 대답하고는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 내밀었다. 내내 외부에 둔 도시락은, 거의 상하기 직전이었다.
“어머나아….”
“저녁 때 먹어도 될까?”
“그, 그럼 지금 당장 저녁을 준비할게요!”
아니 굳이 그렇게 허둥대지 않아도.
내가 뒤늦게 손을 뻗었지만 유하는 도시락을 빼앗아 앞치마를 다시 매고는 주방 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는 알루미늄으로 된 주방기구가 와장창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굳이 저러지 않아도.
“넬도 저녁 준비할게요!”
어느덧 흰색의 주방장 옷으로 갈아입은 넬이 내 앞에서 프라이팬에 데이터 조각들을 볶기 시작했다. 그거 먹을 수는 있는 거냐 싶어 빤히 쳐다보니 뿌듯한 표정.
카페는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해,
“….”
나는 천천히 의자에 걸터앉았다. 손님이 많이 없었단 사실의 반증으로, 바닥도 아침에 닦은 상태로 깨끗해 나는 한동안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가 딱 좋다. 이 카페는.
“후으음.”
“왜.”
그러던 중, 넬이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는 기색이 느껴져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한동안 그 커다란 눈망울에 호기심을 가득 담아내던 녀석이 입을 열었다.
“편안해 보이셔서요.”
“딱히.”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뭔가 더 질문이 이어질 것을 피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넬이 다시금 내 곁으로 불쑥 날아들었다.
“단백질 섭취를 잊으시면 안돼요!”
“…. 그래.”
“운동은 주기적으로 하고 계시니 괜찮지만! 스트레스의 발산에도 주의를 기울여 주세요!”
“…. 그게 발산이 되는 물건인가?”
“음, 원활한 성생활이라던가?”
“후끼약?!”
내 질문에 넬이 순수한 얼굴로 중얼거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 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순식간에 안으로 달려갔다.
“누, 누나!”
“아윽, 주, 준?! 가까이 오지 마세요!”
미끄러졌는지 바닥에 넘어진 유하가 내 손길을 쳐내며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가슴께에 손을 올리고 슬쩍 뒤로 물러섰다.
“…!”
“주인님, 큰 상처 받으신 얼굴인데요.”
“네, 넬도!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는 게 아니에요!”
“에엑? 저는 주인님의 몸을 돌보는 네비게이터로서….”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앞으로는 절대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에요! 알겠죠?”
“네, 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