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빌어먹을….”
나는 징징 울리는 이마를 부여잡은 채 천천히 눈을 떴다. 낡은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서 내려다보았더니 온통 검정색이라 정보량 송신 합금임을 알아챘다.
기분 나쁜 색깔이다.
“넬….”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에 디멘션 커넥터마저 완전히 해제된 상황. 귓바퀴를 매만져 그 사실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디멘션 커넥터를 강제로 해제시킨다고?
“….”
이건 좀 예상치 못한 상황인데.
기억을 해둬야겠다 싶어 머리 구석에 넣어둔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서 철창을 향해 다가갔다. 희미하게 빛이 새어 들어오는 가운데, 누군가 그 앞에 앉아있었다. 아까 나에게 방패를 날렸던 그 성질 고약한 여자였다.
고양이 얼굴을 본 딴 가면에 금발이라.
“이봐, 나 일어났다고.”
나는 무뚝뚝하게 목소리를 내며 철창을 흔들었다. 마찬가지로 정보량 송신 합금으로 만들어진 철창은 단단하게 내 자유를 구속한 상태였다.
“….”
“쿠우우우우울….”
하지만 여자는 완전히 잠에 빠져든 채였다. 약간 마른 체격에 여성임을 드러내는 듯한 뼈대. 다리를 꼰 채 의자 위에서 몇 번이고 자세를 바꿔가며 잘도 잤다.
저러다 일어나면 목 아플 텐데.
“하아.”
어쩔 수 없나.
“일어나!!”
나는 숨을 힘껏 마신 후 버럭 소리를 질렀다. 쩌렁쩌렁, 좁은 감옥 안을 타고 뻗어져 나간 소리에 여자가 몸을 움찔 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우당탕 쿵쾅, 하며 넘어졌다.
“크, 크윽…. 뭐, 뭐야?!”
“잘도 자는군. 사람을 구속해두고.”
“너, 너! 일어났어?!”
“…. 이거 중범죄인 건 알고나 있냐?”
게임 감각인 녀석들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만, 나는 일단 한숨을 내쉬며 지적했다. 그러자 여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순식간에 방패를 소환,
까앙! 하고 철창을 후려쳤다.
“시끄러워. 너. 게임에서 탈락하고 싶어?”
“…. 침이나 닦고 말해라.”
“어? 흐엑?!”
내 지적에 여자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볼가에 묻은 침을 스윽 닦아냈다. 나는 어쨌든 일반인의 논리가 통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내 디멘션 커넥터는.”
“이, 이제 안 묻었지?”
“…. 그래.”
얼굴이 빨개진 채 얼굴을 내보인 여자의 모습에, 나는 새삼 가면 아래의 얼굴이 예쁠 것 같는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 그럼에도 몇 번이나 얼굴 이곳저곳을 짚어본 여자가 이내 눈을 부릅뜨며 다시금 위협을 시작했다.
진짜 말 안 듣는 길고양이 느낌인데.
“너, 뭐하는 놈이야?”
“….”
“뭔데 요새 근방을 쫄래쫄래 다녀?!”
“….”
“죽고 싶어?! 갸아아아악!”
“….”
“아 좀 대답하라고!”
다시금 방패가 철창 위를 후려쳤다. 그런 반응에 나는 앞머리를 매만지며 ‘역시나.’라는 생각을 했다. 씩씩 거리는 여자애를 그대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커뮤니티를 탐색해보니 고그와 모그는 근방에서 꽤나 쓰레기 짓으로 유명했던 에스콰이어였다는 모양이다. 거기에 둘이 항상 붙어서 팀플레이에 능숙해 다들 곤혹스러워 하는 녀석들이었다고.
그래서 나는 그들을 쓰러뜨린 소문이 퍼지는 것으로부터 착안해 한 가지 작전을 고안해냈다. 최대한 빠르게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쨌든, 주변에 괜찮은 인물들을 조력자로 둘 필요가 있었으니.
그 작전이란 간단하게 말해 ‘어그로’였다.
고그와 모그를 쓰러뜨린 일부터 시작해, 주변에 ‘어떤 은둔 고수가 에스콰이어들을 무차별적으로 쓰러뜨리고 있다.’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하도록 만드는 거다.
그렇게 되면 그 소문이 위로 뻗어 올라가, 나에게 흥미를 지닌 놈들이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도하려 들지는 않을까 싶었고 그 예상은 현재 훌륭하게 맞아떨어졌다.
뭐 나는 사실, 내 기본적인 능력보다도 네크로맨서 재킷의 의식 조종에 의해 싸웠던 거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 사실을 굳이 밝힐 필요는 없겠지.
“나를 왜 잡아온 거야?”
“부인이 얘기하고 싶대서.”
“부인?”
“…. 여기서 기다려.”
내가 몇 번이고 되묻자 여자는 살짝 지친 기색으로 대답하고는 몸을 돌려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정보량 송신 합금으로 이루어진 벽에서 떨어진 채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어쨌든,
디멘션 커넥터를 해제당한 건 정말로 신경이 쓰인단 말이지.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여자애가 철창 앞에 인터페이스를 띄워 조작했다. 철커덕, 하는 소리와 함께 잠가져 있던 감옥의 문이 열렸다.
“나와.”
“….”
차갑게 경계하는 여자애의 목소리에 나는 슬쩍 한숨을 내쉬며 바깥으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좁고 낡은 검정색 계단을 오른 나는 이내 뒤쪽에서 방패가 등을 찌르는 기색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허튼 짓 할 생각 말고.”
“애초에 너희한테 디멘션 커넥터를 뺏긴 상황에서….”
내가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러봤자 재킷을 기동 중인 여자애한테는 파리가 방귀 뀐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툭툭 방패에 등을 떠밀리며 나는 길게 뻗은 복도로 빠져나왔다. 온통 검정색으로 된 복도에 눈이 적응하질 못하는 걸 느끼며 린슬렛에게 떠밀려 어느 넓은 공간으로 향했다.
어둑어둑해 주변은 잘 보이지 않았다.
“….”
“데려왔나요?”
바로 그때,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위쪽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긴 다리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릎 꿇어.”
“…?”
아니 이 자식들 무슨.
“음, 일단 디멘션 커넥터를 돌려드려요.”
“하, 하지만! 부인!”
“린슬렛?”
“큭….”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린 채 서있던 여자, 린슬렛이 나를 향해 뭔가를 휙 집어던졌다. 검정색으로 빛나는 새끼손가락 마디 하나만한 크기의 디멘션 커넥터. 나는 곧장 귓바퀴에 그걸 장착했다.
- 디멘션 커넥터 부팅.
- 아서리안 실행.
- 라쿠스 기사단을 발견했습니다.
- 경험치가 5,000 상승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풍경이 뒤바뀌었다.
대리석으로 된 바닥, 하늘을 뚫을 것처럼 치솟은 천장과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들. 디멘션 커넥터가 보여주기 시작한 환상에 나는 감탄과 이질감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뒤쪽에는 연꽃이 핀 못이 보여 그곳에서 물고기들이 뛰어노는 풍경이 보였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왕궁의 알현실 같다고 해야 할까.
“주, 주인니임! 걱정했어요오!”
그리고 곧장 넬이 튀어나와 나를 꾸욱 끌어안았다. 나는 굳이 넬의 존재에 대해서 들키고 싶지는 않아 아예 반응을 하지 않은 채로 고개를 들었다.
- 다수의 에스콰이어가 감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는 이 종교 단체의 직원들로 보이는 에스콰이어들이 여럿. 서른 명 정도는 되어보였다. 나는 앞머리를 매만지며 다시 위를 올려다보았다.
여자는 나선 계단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높은 왕좌에 앉은 채였다.
길게 뻗은 다리, 드레스를 입고 어깨에는 숄을 두르고 있는 모습으로 얼굴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평범한 가면의 위에 뭔가를 덧씌운 모양이었다.
“어서 와요. 이름이….”
“타나토스.”
“아, 반가워요. 타나토스님. 제 이름은 비비안. 이곳 라쿠스 기사단의 단장을 맡고 있어요. 주변에서는 마담, 혹은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죠.”
절대 그렇게는 부르지 말아야지.
“그건 그렇고, 국내에서 못 뵈던 분인 것 같은데.”
“외국에서 활동했거든. 주로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칠레 같은 쪽에서. 나올 때부터 플레이했어.”
“어머나아, 그러셨군요. 그럼 국내에 돌아오신 건?”
“열흘쯤 되었나?”
나는 짐짓 너스레를 떨며 디멘션 커넥터의 패널을 조작, 넬에게 라쿠스 기사단에 대해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녀석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날 이런 곳까지 데려온 이유는?”
“그거야…. 권유를 위해서죠?”
“무슨? 기사단 가입을?”
“네에, 생소하신가?”
“…. 이렇게 둘러싸서 이야기하는 건 보통 협박이라고 하지 않던가?”
“너…!!”
다시금 너스레를 피우자 뒤쪽에 서있던 린슬렛이 방패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비비안이 가볍게 손짓을 하자 인상을 찌푸리며 물러섰다.
“미안해요. 린슬렛이 잘 흥분하는 기질이 있어서.”
“….”
나는 슬쩍 침묵을 택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밖에 대화할 자리를 만들지 못한 건 사과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들어오시면 꽤나 큰 메리트가 있으실 것 같아서.”
“메리트?”
“네, 일단 저희 라쿠스 기사단은….”
그와 동시에 넬이 커뮤니티를 통해 조사한 바를 나에게 나열해주었다. 나는 비비안의 말과 눈앞에 떠오른 데이터를 비교해가며 적당히 말을 추려냈다.
그러니까 결론은,
“꽤나 큰 기사단이라는 거군.”
“네, 단원 수도 1천명에 달하는 거대 기사단이죠. 해외에서도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넬이 분석해 보여주는 데이터를 눈으로 확인하며 나직이 앞머리를 매만졌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이 녀석들은 전 세계 10만의 유저 중에서 극소수만 존재하는 ‘기사’를 보유하고 있는 길드였다.
그리고 그 기사의 이름은,
“혹시 흥미가 있으신지 해서요.”
“이유를 좀 묻고 싶은데.”
나는 생각을 멈추고 비비안의 말에 대답했다. 가려진 얼굴 아래로 드러난 입술이 우아하게 웃었다.
“강한 에스콰이어를 포섭하고 싶어서죠. 게임은 즐겁게, 또한 격렬하게 해야 하는 법이니까.”
그 ‘성배’라는 물건이라도 차지할 마은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동안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정말로 지극히 소수에 불과한, ‘기사’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만으로도 녀석들은 분명 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터였다.
나쁘지는 않군.
“….”
하지만 나는 침묵을 유지한 채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뒤쪽에서 슬쩍, 그런 내 태도를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비비안의 표정은 여전히 우아했다.
이건 또 신경이 쓰이는데.
“기사단에, 들어와 달라는 거야?”
“네.”
나는 막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비비안의 모습에 의구심이 더욱 증폭되는 걸 느꼈다. 그래서 일단, 뒤쪽에 서있던 린슬렛을 힐끗 보아 반응을 살폈다.
금방이라도 내게 달려들 것 같은 적개심.
========== 작품 후기 ==========
작가를 갈구시면 좀 더 빨리 나옵니다.
더 갈궈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