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편
<-- Chapter 2 : 호수의 기사 -->
◇
시험은 이틀 뒤였다.
“…. 공부하고 올게.”
다음 날 아침, 카페의 청소를 마치고 아침을 먹은 나는 책가방을 맨 채 카페를 나서려 했다. 그리고는 문 앞에 서서 뭔가 빠뜨린 것이 없나 확인.
“아, 준!”
그러고 있자니 뒤쪽에서 유하가 가볍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돌린 나는,
“자, 점심이에요!”
앞치마를 두른 그녀에게서 도시락을 건네받았다. 씻는 동안 뭔가 아래쪽에서 부스럭거린다 싶었던 것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었나.
“….”
“힘내요. 공부. 후후.”
“두 분 러브러브하시네요!”
“넬? 그게 아니라고 했죠?”
“네, 네넬….”
약간 당황하고 있자니 유하가 음산한 오라를 풍겨 올리고 넬이 두려워 내 뒤로 쏙 숨었다. 달콤한 냄새가 풍기는 듯한 도시락을 멍하니 내려다보던 나는 이내 그것을 가방에 쓱 집어넣었다.
“고마워.”
“네, 공부 열심히 해요. 저녁때는 들어오고. 준을 위해서 기도할게요.”
미소를 지은 채 이야기하는 유하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을 해주는 듯해,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안쪽의 골목으로 들어서 벽에 기댔다.
물론,
“없으시죠? 공부할 마음.”
“….”
그 말대로다.
나는 다시금 가방을 어깨에서 내려 그 안의 내용물을 눈으로 확인했다. 방금 전에 받은 따끈따끈한 도시락이 하나. 고작 그게 전부였다.
끄응.
중간에 돌아와서 먹는 걸로.
나는 다시금 아쉬운 소리를 내며 골목의 적당한 구석에 가방 째로 도시락을 숨겼다. 그리고는 가볍게 몸을 일으켜 세워 골목 위를 올려다보았다.
“네크로맨서 재킷 기동.”
다시금 그 환영한다는 인사말과 함께, 나는 몸에 힘이 도는 걸 느끼며 거꾸로 된 유성처럼 위로 튕겨져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풍경에 인상을 찌푸리며 마스크를 얼굴에 장착했다.
“이제는 척척이시네요!”
“….”
“그런데, 정말 공부 안하셔도 괜찮으시겠어요?”
“네가 있잖아.”
“넬?”
“네가 있으면 괜찮아.”
“….”
나는 건물 위를 달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지만 어째선지 넬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서는 땋은 머리를 한 손으로 베베 꼬기 시작했다.
“우음…. 그렇게 말씀하셔도오….”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가 도와주면 되잖아. 시험 볼 때.”
“네, 넬?”
“시험장 안을 휙휙 돌면서 정답 같은 거 알려달라고.”
“….”
“넬?”
“흥칫뿡.”
이제는 또 삐쳐서는 고개를 휙 돌려버린다.
“뭔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넬을 바라보다 이내 자리에 멈춰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역 근처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아 나는 가볍게 아래로 뛰어내려 지하철 역사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오늘은 신촌 쪽으로 가볼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철커덕, 하는 소리와 함께 재킷에서 탄피처럼 뽑혀져 나온 마스크를 잡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재킷은 순식간에 형태가 원래대로 돌아가 나는 아서리안의 종료 메시지를 눈으로 확인하며 플랫폼 방면으로 걸음을 옮겼다.
“….”
가는 김에 대학가 풍경이나 좀 구경하고 올까.
◇
물론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넬, 부탁해.”
“알겠습니다. 주인님.”
아까부터 묘하게 무뚝뚝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넬의 모습에, 나는 신경이 쓰이는 구석을 느끼면서도 애써 무시하며 재킷을 기동시켰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써 얼굴에 덧붙이자 전자 회로가 재킷 위를 스쳤다.
“다 되었습니다. 주인님.”
“….”
증가된 현실, 넬이 마커로 표시한 지점이 하나 떠올랐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감시도 부탁해.”
“….”
“왜?”
“주인님은 이렇게 커여운 넬이 삐쳐있는 티를 팍팍 내는데도 계속 이렇게 놔두실 생각이에요?!”
“커, 뭐?”
“귀여운이요!”
“그게 왜 커엽….”
“흥칫뿡, 몰라욧!”
무시하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계속해서 건물 옥상 위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이내 마커로 표시된 장소의 근처에 있는 건물 옥상에 도달했다.
“….”
전투는 진행 중으로, 이번에도 여자와 남자였다. 화려한 사자의 얼굴 장식이 들어간 큰 방패를 든 여자와, 두꺼운 도끼를 들고 있는 남자. 나는 두 사람의 싸움을 몰래 숨어서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투는 금방 결판이 났다. 여자가 남자가 휘두른 도끼를 막아냈고 다음 순간, 뒤로 튕겨져 날아간 남자가 벽에 부딪친 후 바닥에 푹 쓰러졌다. 여자의 몸 주변이 오라로 뒤덮이며 경험치의 상승을 알렸다.
“부탁해.”
“네네엘~.”
나는 약간 툴툴거리는 넬의 남자 쪽으로 향한 걸 확인하며 훌쩍 건물 위에서 뛰어내렸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너는….”
슬쩍 경계하는 듯한 태도.
길게 길러 적당히 웨이브 진 금발, 목 주변에 털이 달린 재킷에 고양이의 얼굴을 본 딴 듯한 형상의 가면. 나는 여자를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누구야? 이름을 대.”
“….”
“말하지 않는다면 적으로 간주하겠어.”
여전히 같은 태도로군.
- 에픽 아이템 : 스파다를 생성합니다.
그런 여자의 모습에 나는 슬쩍 염증마저 느끼며 훅 스파다를 집어던졌다. 깜짝 놀란 여자가 방패로 스파다를 튕겨내, 나는 쓰러진 남자를 향해 고개를….
“주인님!”
하지만 남자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난 상태였다.
“뭣?!”
“드디어 잡았네. 습격자 놈.”
“그러게.”
훌쩍 뛰어오른 남자가 도끼를 바로 쥐며 내 도주로를 가로막았다. 뒤늦게 지금의 상황이 함정임을 파악한 나는 이를 악 물며 앞과 뒤로 둘러싼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디멘션 커넥터가 전투 상태에 돌입함을 알리며 경고음이 쏟아졌다.
“위, 위험해요!”
….
슬슬 생각대로 되어 가는가.
“사로잡으면 되는 거지?”
“응, 기분 나쁜 녀석이네.”
남자의 말에 여자가 방패를 들며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뒤로 물러서려고 해도 남자의 도끼 간격에 닿아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둘뿐인가?
그렇다면 도망치는 편이 나으려나?
“그건 그렇고, 전용 무기도 있다니. 우리 생각대로 꽤나 레벨이 높은 에스콰이어인 것 같은데?”
철 투구로 안면을 뒤덮은 남자가 흥미롭다는 듯 목소리를 냈다. 나는 뒤쪽과 앞쪽, 둘 중 어느 쪽을 택해야할까 고민을 하다 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뭐야, 여자라고 무시하는 거야?”
“부탁해. 단장.”
여자가 한숨을 내쉬며 방패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여자를 향해 달려들며 위로 높게 뛰어올랐다. 머릿속에는 방금 전, 여자가 빛을 내서 도끼를 튕겨냈던 순간이 스쳐지나간 상태였다.
분명히 도망친다고 해도 쉽게는 따돌리지 못할 터,
“망령 신체 발동.”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곧장,
“뭣…?!”
여자의 방패 위에 발을 디디고 섰다.
투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패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몸은 망령 신체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아, 나는 그 충격에 의해 위로 크게 솟구쳤다.
아프지 않아.
그 감각으로 망령 신체의 적용을 확인한 나는 곧장 빌딩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빠져나가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넬, 혹시 모르니 도주 경로를.”
“네넬!”
“젠장! 뭐야, 저건?!”
“린슬렛의 방패를 튕겨냈다고?!”
뭐하는 녀석들이지?
나는 빌딩 위로 올라서는 두 사람의 모습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녀석들이 눈에 쌍심지를 켠 채 쫓아오기는 했지만 거리는 충분히 떨어진 상태여서 무슨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저 둘뿐이라면 빠져나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거기 서! 이 습격자 놈!”
여자가 고개를 들어 소리쳤지만 이미 충분히 거리는 벌어진 상태였다. 나는 안심하고 도망에 열중….
- 적대 상태의 플레이어가 다수 감지되었습니다.
“….”
나쁘지는 않군.
그런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라,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둘씩, 모습을 숨기고 있던 에스콰이어들이 건물 위로 뛰어오르며 나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 멈춰 서서 상황을 확인했다.
- 망령 신체, 발동 해제.
자 지금부터는 사실 상 도박인데.
“괜찮아 보이는데.”
“음, 주인님이 너무 어그로를 끌어서 척살령 같은 게 떨어지지 않았다면 좋겠는데요.”
“그럴 리가.”
나는 짧게 중얼거리며 양손을 들어 항복의 의사 표시를 전했다. 뭐 파티 말이라도 하고 있는 건지 녀석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를 빙글 에워쌌다.
숫자는 스무 명 가량.
아무래도 기사단의 함정에 빠진 모양이었다.
내가 원했던 대로.
“….”
“투항할 마음이 있다면 재킷을 해제해라.”
“재킷 동기화 해….”
내가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크게 소리를 낸 순간,
“뭘 봐주고 앉았어! 해치워!”
하는 소리와 함께 뒤쪽에서 무언가 날아드는 게 느껴졌다. 경계하며 뒤를 돌아본 나는,
“주, 주인니임?!”
까앙!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에 얻어맞았다.
- 방어력이 50 감소했습니다. (현재 0)
- 상태 이상 : 기절이 발생했습니다.
머리에 맞고 튕겨져 날아간 방패가 태양에 반사되어 밝은 빛을 발산했다.
기절, 이라고?
라는 메시지를 읽고 다음 순간, 내 의식은 무저갱의 저편으로 쏜살같이 빨려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