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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20화 (20/321)

2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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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 호수의 기사

이른 아침,

[요즘의 청년들이, 가상현실을 통한 ‘사이버 섹스’로 인해 성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

늙은 교수가 진지한 얼굴로 그런 이야기를 시작해, 나는 시야 오른쪽 위에 올라와있던 스크린을 껐다. 그리고는 슬슬 하루가 시작됨을 자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하가 2층에서 내려왔다.

“….”

“잘 잤어?”

일부러 말을 걸면서 테이블을 닦았지만 유하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주방으로 향했다. 새침하게 다물고 있는 분홍색 입술에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요새 들어 잠을 잘 자서 그런 것일까. 새하얀 피부에 윤기가 더욱 감도는데다가 걷는 걸음에도 힘이 들어가는 모습 역시 보기에 좋았지만 문제는,

“유하님, 그때 이후로 말 한 마디도 안하고 계시네요.”

거기에 존재했다.

단 한 마디도.

유하는 모텔에서의 사건(?) 이후로 전혀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카페의 수리까지 3일. 그리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온 4일 내내 단 한 번도. 무언가 할 말이 있다면 디멘션 커넥터로 메시지를 보내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 밥?

이렇게 단답형으로 묻는 것이 전부였다. 아침을 먹겠냐는 거겠지. 새벽에 일어나 열심히 가게를 쓸고 닦느라 지친 상태였던 나는 입안에 침이 고이는 걸 느꼈다.

“아~ 역시 아침은 먹어야죠.”

“….”

그렇게 말한 넬이 양손에 식빵과 머그컵을 꺼내들었다. 최근에는 녀석도 이런 식으로 밥을 함께 먹을 때가 생겼다는 걸 자각하며 나는 주방으로 향했다.

달콤한 냄새가 풍겨왔다.

약간 비좁지만 깨끗한 현대식의 주방은, 스테인리스로 된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조리대 같은 것이 깔끔하게 갖춰진 장소였다. 타일로 된 바닥에 발을 디디며 나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달걀프라이를 만들고 있는 유하의 옆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유, 유하.”

“?!”

우장창 쿵창! 하는 소리가 났다.

“….”

쥐고 있던 프라이팬을 호신용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어 올린 유하가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그리고 그 위에서 부쳐지고 있던 달걀은 뒤쪽으로 날아가 주방기구들을 도미노처럼 쓰러뜨렸고 나는 손을 뻗던 자세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 왜죠.

‘왜요.’가 아니라…?

살짝 도끼눈을 뜨고 있던 유하가 그런 메시지를 전송했다. 다가갔다간 당장이라도 그 프라이팬을 휘두를 기세에 나는 몇 번이고 망설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내가 할게.”

“….”

“아침.”

“….”

“그, 커피를 부탁해도 될까.”

- ㅇㅋ

“….”

그 짤막한 대답에 내가 굳어져 있자니 유하는 이내 반대편으로 크게 돌아 여전히 나를 경계한 채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헤에에에, 유하님 귀여우세요.”

“….”

빵을 냠냠 먹고 있는 넬을 무시한 채 나는 토스터에서 빠져나오는 빵을 잡아 접시에 내려놓았다. 다른 프라이팬을 들어, 유하가 꺼내둔 양상추를 씻으며 동시에 계란을 굽기 시작했다.

“이럴수록 강하게 밀어붙이시는 거예요!”

“프라이팬으로 후려칠 기세던데.”

넬의 말에 나는 무뚝뚝하게 대답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그대로 계속했다면 지금쯤 나는 바닥에 축 늘어진 채 숙면을 취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얼굴에는 프라이팬 자국이 찍힌 채.

“예? 아니에요! 방금 전에도 주인님하고 얼굴 마주친 순간에 심장 박동이 크게, 그리고 주방으로 들어오셨을 때도 크게 오르셨는데요. 계속 그러셨다고요~?”

“그런 거 함부로 보지 마.”

내가 지적하자 넬은 부우, 하고 볼을 부풀렸다.

“그럼 이대로 계속 어색하실 거예요?”

“….”

그건 물론 나도 싫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정도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해놓고도 유하에게는 꿈이었다고 생각되는 건 무척이나 싫었고, 옳지도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역시, 나는 그때의 일을 현실이라고 생각한다는 거겠지. ‘가상’에서 벌어진 게 아닌.

“….”

“주인님 계란 타요.”

“….”

“심장 박동수도 올라가시고 얼굴도 빨갛게 물드셔서는…. 음, 야한 생각하시나?”

그 말대로.

변명의 여지가 없이 나는 유하와의 시간을 상상하는 중이었다.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역시 멈출 수는 없어, 그녀의 달콤했던 목소리가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그리고 그것은 증폭이 되는 것처럼, 부드러웠던 살결과 안았을 때의 감촉을 기억나게 해….

“유, 유하! 유하 누나!”

나는 반쯤 넋이 나간 채 주방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던 유하의 어깨를 덥썩 붙잡았다.

“히익?!”

“나, 나는! 그게 가짜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살짝 겁에 질린 유하. 하지만 나는 진심은 통하리라는 생각에 마구잡이로 말을 내뱉었다.

그건 가짜가 아니라 정말이었다고.

“네, 네에?!”

“나는! 그게 절대로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아! 누나의 그! 그! 으으…. 가, 가슴!”

“네헥?!”

힐끔 동시에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가슴을 내려다본 우리는 이내 다시금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진짜야!”

“그, 그그그그그그, 그럼 진짜죠!”

“…?!”

“수, 수술 같은 건 안했다고요!”

“아,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 그럼 뭔가요! 준!”

“지, 진짜! 진짜 좋았…!”

퍼억, 하고 프라이팬이 내 안면을 강타했다.

“….”

살짝 한심하다는 듯이 뒤쪽에 붕 떠있던 넬의 시선이 느껴졌다. 동시에 뒤로 추욱 뻗어버린 내 위로 유하가 몇 번이고 프라이팬을 내리쳤다.

“이, 이이이이이…! 준은 변태!”

“아니 솔직히 먼저 하자고 하신 건 유하님인데요.”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 지, 진짜로.”

나는 다시금 폭주하기 시작한 유하의 손을 붙잡은 채 벌떡 일어섰다. 디멘션 커넥터가 신체에 위협이 감지되었음을 알렸지만 고개를 흔들어 쳐내고,

“정말이야! 누, 누나.”

“주, 준?”

“나는 그 시간이 가짜였다고 생각하지 않아.”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유하의 눈가에 촉촉하게 물기가 어려, 새하얀 피부가 살짝 붉어졌다. 나는 약간 망설이다 이내 다시금 확언하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음. 그러니까.”

“준.”

“어, 주인님?”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넬이 우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어색해지려는 순간, 유하가 빙긋 웃으며 옆을 돌아보았다.

“넬?”

“네, 네넬?”

“저리 가세요.”

“아, 아니 하지만!”

넬이 주방 쪽을 가리키자 기다렸다는 듯이 삐비비비빕, 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위쪽에 달아두었던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분사되었다.

“….”

“….”

“제, 제가 그래서 말씀드렸는데.”

계란 탄다고.

거기에서 떨어지는 물에 젖어들며 우리는 한동안 굳어진 채 서있었다.

꼬르륵, 배가 우는 소리를 냈다.

“어, 어쨌든.”

물기에 젖은 머리를 짜낸 유하가 내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말문을 열었다. 젖은 옷을 세탁기에 넣어두고 온 그녀는 살짝 큰 니트 한 장 차림으로, 나 역시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은 채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소동을 정리하느라 잠시 가게 문을 닫고서 한 시간 정도. 우리는 마음을 많이 추스른 상태였다.

“상황을, 정리해야할 필요는 있겠군요.”

“….”

“일단 죄송해요. 지금껏 어른스럽지 못해서.”

“아, 아니야. 나야말로….”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어쨌든 다시 한 번 실컷 청소를 하느라 완전히 녹초가 된 상태여서 마음이 좀 진정된 것 같았다.

“그, 그리고 저도…. 마찬, 가지라고요?”

약간의 침묵 후, 천천히 유하가 입을 열었다.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했지만 힐끔힐끔 이쪽의 반응을 살피며 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준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저 역시, 그게 가짜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말을 못했던 거예요. 부끄러웠으니까….”

“유하….”

“하, 하지만! 여기서 확실하게 정하죠!”

약간 분위기가 누그러드는가 싶더니 유하는 이내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갑작스럽게 전환되는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뭘 말이야?”

“앞으로 일체! 연애적인 뉘앙스는 저희 사이에서 없는 걸로! 저도 의식하지 않을 테니까요! 저, 저는 일단 준의 보호자니까요! 주, 준은 저 말고 더 멋진 사람을…. 아니, 음. 이건…. 잘 모르겠…. 지만!”

“….”

“아, 알겠어요?! 그, 그 사실! 준에게 그런 감정을 품었다고 고백했던 거는 다 거짓말이었어요! 정말로요!”

유하는 얼굴을 붉힌 채 그런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 정도가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 정도로 뻔히 보였지만, 어쨌든 그만큼 그녀는 절박하단 거겠지.

일단은 서로 이 정도에서 선을 긋자는 건가.

….

“아시겠죠?!”

“알, 았어.”

나는 약간 가슴이 조여드는 걸 느끼며 대답했다. 유하가 왜 그런 선택을 제안했는가는 둘째치고서라도 역시, 현재의 나는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로서 내게는, 아서리안을 통해 갤러해드가 된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그러므로! 일단은 보호자로서 말하겠어요!”

약간 상념에 잠겨 있자니 유하는 이어지듯 단호하게 말을 뱉어냈다. 그녀는 어쩐지 ‘보호자’라는 스스로의 입장에 힘을 얻은 것 같았다.

“대학에 다니도록 하세요! 청강생 등록 기간이니까!”

뭐, 라고?

“청강생?”

“네!”

아니, 대학이라니.

나는 어쩐지 곤란해지는 걸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 그건 좀.”

“청강생으로 들어가면 다음 학기에 등록할 때 시험을 쳐서 출석이 인정될 수 있으니까요! 네?”

물론 나도 청강생이라는 제도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뭔가를 병행하느라 시간에 쫓기고 싶지는 않았다. 거기에 청강생은, 초반에 못 들은 수업 내용을 쫓아가기 위해 추가적으로 수업이 존재하는 만큼.

거기에 시험도 있고.

….

미리 말해두자면 유하는 내가 외국에서 착실하게 학교를 다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런 적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 수업 시간에는 잠을 잤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리고 아서리안의 접속 방법을 찾기 위해서만 시간을 쏟았기에 양놈들은 내가 기면증이 있다고 생각했지.

“준!”

“아, 알았어.”

하지만 유하의 단호한 태도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살짝 안심한 듯 뿌듯한 표정을 지은 유하가 이내 옆에서 붕 떠다니던 넬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넬도!”

“네, 넬?!”

“앞으로 준이 제대로 학교에 다니나 감시하고 저에게 보고를 해주세요! 아시겠죠?!”

“저, 저는 일단 주인님의 네비게이터로서….”

“알. 겠. 죠?”

“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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