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편
<-- Chapter 1 : ‘에스콰이어’로서의 시작 -->
◇
나 이준은 아서리안에 의해 모든 것을 잃었다.
3년 전, 도망치듯 해외로 나가 내가 한 일이라고는 오직, 유럽의 온갖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아서리안’의 유저가 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뿐이었다.
재킷은 그 발상지가 되었던 동아시아 부근부터 시작해 파동처럼 뻗어나가, 외국일수록
신규 유저를 많이 뽑는다는 낭설에 기대어.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잃어,
홀로 남게 된 유하를 놔두고,
도망쳤다.
왜냐면 나는,
“…. 죽은 사람이니까.”
이 가상의 세계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던 날 이후로,
죽은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지내왔으니까.
“갤러해드가 되어야만 하니까.”
“뭐어? 중이병 걸린 찐따라 잘 안 들리는데에?”
“넬.”
“주, 주인님!”
“이리로 와. 넬.”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을 뻗었다. 내 신체가 회복된 걸 파악한 넬이 이내 다가와 불안과 놀람에 찬 표정으로 뒤에 섰다.
나는 인간이며 동시에 망자였다.
아서리안을 증오한다.
엘레노어를 증오한다.
도덕이라고는 없는 가상의 세계를 증오한다.
거기에 물들어버린 현실을 증오한다.
“….”
이유는 간단했다.
“그 개새끼들에게 모든 걸 빼앗겼기 때문에.”
평화로웠던 순간을,
정말로 사랑했던, 친여동생이나 마찬가지였던 소녀와 아버지까지. 그리고 유하와의 행복했던 순간마저 녀석들의 손에 잃어버렸기에.
“갤러해드에게.”
하지만 녀석은 사라졌다.
정확히는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 버렸다. 나는 연기처럼 사라진 증오를, 갤러해드가 되어야겠다는 의지로 뒤바꾸었다.
나는 완벽한 기사인 갤러해드가 되어.
이 더러운 게임을 끝낼 작정이었다.
“흐음, 이거 뭐 역할극이야?”
이해하지 못한 모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달려들었다. 나는 순식간에 새로운 힘을 받아들어, 한손을 옆으로 쭉 펼치며 입을 열었다.
“네크로맨서 재킷, 기동.”
- 네크로맨서 재킷 활성화.
- 환영합니다. 의인화된 죽음이자 기사의 절망, 망자들의 희망이시여.
“그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휘둘러져온 주먹을 복부로 받아냈다. 어찌나 강한 힘이었는지 축을 잡기 위해 바닥에 디딘 모그의 발이 움푹 패일 정도였다.
“?!”
“빌어먹을 자식….”
나는 엘레노어에게로 향한 욕설을 내뱉으며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당황해 모그가 몇 번이고 주먹을 휘둘렀고, 나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몸으로 받아내며 눈앞에 스테이터스창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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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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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이준
Lv : 10
Knightage : -
JACKET : Necromancer
Exp : 1,20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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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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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력 : 20
방어력 : 50
민첩성 : 30
정신력 : 20
연산 속도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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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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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신 : F
망령 신체 : F
의식 조종 :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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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주인님.”
그 대단함을 이해한 넬이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역시 처음에, 그러니까 엘레노어가 이 좁아터진 뇌 속으로 지식을 밀어 넣었을 때는 그런 감정이었다.
“부탁한다.”
“네, 넬…!”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갔다. 어이가 없다는 듯 서있던 모그가 뒤로 번쩍 뛰어 물러서 나는 두 녀석을 강하게 노려보았다.
그래도 역시,
한 방 먹여줘야 속이 풀릴 것 같단 말이지.
“망령 신체 발동.”
- 망령 신체 : 감각을 느끼지 않는 몸으로 뒤바뀝니다. 당신의 신체는 기본적으로 물리적인 상해에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네크로맨서 주제에 가장 먼저 스스로의 몸을 망자로 바꾸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나는 그런 설명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거 참,
더럽게도 잘 어울리는 능력이군.
모든 고통에서 도망치기 위해 스스로 망자가 된 존재에게 딱 걸 맞는 힘.
스스로를 눈앞에 있는 가상의 망자들로 뒤바꾸는 힘.
“아, 귀찮네. 고그!”
- 에픽 아이템 : 스파다가 추가되었습니다.
- 에픽 아이템 : 스파다를 생성합니다.
“음.”
모그의 말에 달려든 고그가 내게서 빼앗은 롱 소드를 휘둘러와 나는 거기에 맞서 내 새로운 검을 뽑아들었다. 두 검이 부딪쳐 불꽃이 튀었고 이내 고그는 그 작고 째진 눈을 동그랗게 떴다.
“….”
검은 검정색으로,
칼날에 척추처럼 뼈가 튀어나온 형태였다.
“너, 대체 무엇?”
당황해 뒤로 물러선 고그, 그런 내 무기에 혀를 찬 모그가 품안에서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이내 단숨에 도약해 내게 달려들었다.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휘둘러져 오는 칼날이 내 허벅지로 파고들었다. 푸욱, 하고 울리는 소리가 났다.
“….”
“헤, 헤헤. 맛이 어떠신감? 준 형씨.”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군.”
“…?!”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스파다를 휘둘렀다. 가볍게 막아낸 모그가 다시금 몇 번이고 단검을 찔러 넣었지만 통하지 않았다. 적어도 녀석은 그렇게 느낄 터였다.
실제로 단검은 내 무릎에 파고들지 못하고, 재킷에 닿자마자 그 형태가 분산되었으니까.
“젠장! 이 자식 뭐 이래!”
“모오그.”
“앙, 그러자고.”
하지만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
명확히 말해 이 스킬은, 내 스탯이 낮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저 샌드백이 되는 힘에 불과했다. 그 말대로 나는 뒤로 물러서는 모그를 쫓으며 몇 번이나 검을 휘둘렀지만 녀석은 요리조리 검을 피해냈다.
“하, 레벨 10짜리한테 비장의 기술까지 쓸 줄이야.”
“빨리 끝내고, 가자.”
“할 킬러즈가 걱정이셔? 고그.”
고그의 어깨 위로 올라탄 모그가 둥글게 몸을 말며 동시에 몸에 푸른색의 오라를 휘감았다. 저 녀석의 스킬 중에 신체 강화가 있던 건 그 때문이었나 싶어 나는 묵묵히 기절한 유하를 가리듯이 지키고 섰다.
그리고,
“뒈져버려! 형씨!”
녀석은 앞으로 쏘아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기세에 나는 복부를 얻어맞고 튕겨져 날아갔다. 하지만 충격은 없었기에 금새 자세를 바로 했지만 그것은 모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그마한 카페가 부서지며 고그와 모그는 계속해서 나에게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나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이 맞서며 몇 번이고 공격을 가했다.
그로서 ‘시간’을 끌었다.
“주인님!”
“….”
끝난 모양이로군.
“의식 조종.”
망자를 조종하는 힘.
“?!”
나는 모그가 다시 고그를 향해 돌아가는 걸 보며 스킬을 시전 했다. 그리고 둥글게 몸을 만 모그가 고그의 어깨에 발을 디뎠지만, 고그는 받아주지 못하고 부딪쳐 두 사람은 함께 뒤로 나가떨어졌다.
“크헉?!”
크게 먼지가 일며 창문을 깨고 날아간 녀석들이 카페에서 사라졌다. 잠시 여유가 생기자 나는 못했던 행동을 마저하기 위해 팝업창을 불러냈다.
“….”
재킷의 형태를 변화.
깃 부분이 두껍게 솟아오르며 귀 중간까지 목덜미를 뒤덮였다. 나는 품안에서 생성되어 나오는 ‘마스크’를 손으로 받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푸슈욱, 하며 재킷 내부에서 열이 발산되었다.
대충 이해했다.
이 게임의 유저들이 닉네임을 변경하는 이유, 그리고.
얼굴을 가리는 이유까지.
‘우리’와 같은 망자들은 이게 없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넬.”
“네넬! 주인님!”
“저 녀석들을 쓰러뜨리면 혹시 그걸 받을 수 있나?”
“기사의 명예, 말씀이시군요.”
내가 부정하지 않고 바라보자 넬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적당한 닉네임을 생각해보며 천천히 마스크를 들어 입에 착용했다.
목덜미로 솟아오른 깃에 맞은 그것이 철커덕 하는 소리를 냈다. 해골의 하관이 새겨진 마스크를 쓴 나는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박살난 창문을 열고 나아갔다.
“잠…! 큭! 고그!”
모그가 고그에 의해 멱살이 잡힌 채 몇 번이고 얼굴을 얻어맞고 있었다. 고그의 의식은 없는 상태로, 내가 다가가 손을 들자 그가 행동을 멈추었다.
이것이 의식 조종.
상대방의 정보를 알아내는 과정이나 상대가 기절했을 때 넬의 서포트가 수반되어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녀석들은 이미 나에게 정보를 공개한 상태였다.
조종하는 재킷의 능력을 강화시키며 내 의지에 따르도록 하는 힘.
뭐 물론,
“고그의 경우에는…. 의식이 없는 편이 조종하기 쉬울 것 같아서 ‘끊어둔’ 상태지만.”
“헤헤, 진짜 몸이 생긴 것 같아서 재밌네요!”
뒤따라 나온 넬이 가볍게 웃었고,
“그럼 일단…. 네놈들의 그 불쌍한 펫부터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걸로 할까. 아 더불어 해방도 시키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킷도 파괴하는 걸로.”
“너, 너…! 너 이 자식 대체 뭐야!”
“…?”
“고작 레벨 10 주제에! 대체 무슨 짓거리를!”
“….”
“뭐라도 대답해보란 말이다! 벙어리냐!!”
“…. 글쎄.”
나는 무뚝뚝하게 중얼거리고는 스스로 말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애매한 인간인 거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유하가 보고 싶어서 재킷을 얻고 이곳으로 돌아온 거겠지.
변화할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유하를 지키기 위해.
“타나토스.”
“뭐?!”
“그 이름이 좋겠어. 넬.”
“…. 네, 나의 주인님.”
나는 그렇게 스스로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선언했다. 그리고 이내 내 의지에 따라 넬이 고그의 팔을 조종했다.
일단은 재킷부터 없애버릴까.
그로서 기억이 소거되겠지.
“자, 잠깐만! 미안해! 제발! 이건 아니잖아! 이걸로 게임 오버냐고! 으, 으으! 으아아아아!”
모그의 비명이 카페 주변을 맴돌았다.
◇
카페에 할 킬러즈가 온 것은 내가 고그와 모그를 ‘적당히’ 처리하고 난 뒤였다.
“아아,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벗은 재킷을 적당히 숨겨, 셔츠 차림인 채 서있던 나는 코트를 입은 녀석들이 카페 안쪽을 샅샅이 뒤지는 모습을 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군.”
“유하님, 그다지 큰 상처는 아니셔서 병원에서 가볍게 처방만 받고 오시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기다리자니 얼마 후 유하를 배웅하고 온 듯 넬이 돌아왔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서진 가게의 풍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
스스로의 무력감을 무척이나 진하게 느꼈다.
“넬.”
“네넬?”
“….”
가볍게 이름을 부르자 넬이 허공에 뜬 채 나를 돌아보았다. 무언가 대답하려던 나는 이내 입을 다물고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
나는 스스로를 혐오한다.
지금의 세계를 혐오한다.
그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어느 정도 타협할 필요는 있을 터였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에. 나는 스스로와 세계를 혐오하는 마음을 디디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상황임을 자각했다.
“네엘?”
“….”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넬.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흰색으로 땋은 머리에 노란색 눈동자. 활달하고 명랑해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녀석은 의외로 꽤나 깊은 생각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기랄.
“….”
“주인님?”
나는 얼굴이 빨개진 걸 느꼈고, 그런 반응에 넬은 더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대로 시간을 끄는 것에도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 미안해.”
“?”
“그때, 네 말을 듣지 않은 거.”
“??”
“그, 뭐냐…. 어쨌든 그리고.”
“????”
앞으로도 괜찮다면 잘 부탁해.
라고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 말에 눈을 껌뻑거리며 당황하고 있던 넬은 이내,
“헤헤♡ 주인님♡”
그렇게 말하며 내게 안겨왔다.
“….”
아니 어쨌든,
게임에 대해서 모르는 바가 많은데다가, 스스로 생각할 때도 척을 지는 성향이 없잖아 있는 나로서는 이 녀석을 데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녀석이 찹살떡 같은 볼을 부비적거리는 것이 눈에 보이는 걸 꾹꾹 참으며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넬.”
“츄인님♡ 다이석기♡”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시하자.
여전히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넬의 모습에, 나는 슬쩍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떨쳐냈다. 부서진 카페를 등진 채 나는 그렇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갤러해드가 되겠어.”
“….”
“전력으로 날 ‘네비게이트’해줘.”
“네, 타나토스님.”
가볍게 웃은 넬은 이내 내 앞에 고개를 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