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
<-- Chapter 1 : ‘에스콰이어’로서의 시작 -->
주방에 들어가 있던 유하가 케이크가 든 접시를 든 채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당황해 뒤로 물러섰고 그녀는 밝게 웃으며 고그와 모그를 가리켰다.
“친구 분들과 약속해놓고 나가시면 어떻게 해요!”
“….”
“히히, 준이가 이렇게 예쁜 누님이 있다고는….”
“어머, 그런 거는….”
“맞다. 예쁘다.”
고그의 가는 눈매 사이에서 불쾌한 기색이 엿보였다. 하지만 유하는 내게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쁜 것일까. 그런 낌새를 알아채지 못한 채 쟁반을 안아들었다.
“….”
“어쨌든 편하게 이야기하고 가세요. 이건 다 무료로 드릴 테니까, 부족한 거 있으면 더 이야기하시고요!”
“유하.”
“네?”
“미안한데 잠깐….”
“으음?”
하지만 뭐라고 하면 좋지.
유하를 어떻게든 대피를 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딱히 말이 떠오르지 않는 걸 느꼈다. 고그와 모그가 키득거리며 웃고 유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준 형씨.”
그리고 모그가 입을 열었다.
“뭔가 착각을 하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주인님!”
- 적대 상태의 플레이어를 감지했습니다.
- 전투 상태로 돌입했습니다.
“큭!”
눈앞의 메시지가 떠오르고 다음 순간, 나는 고그의 주먹에 맞고 튕겨져 날아갔다.
“준?! 꺄악!”
숨이, 안 쉬어져….
“지금 놀자고 온 거 아니거든?”
처박힌 콘크리트 벽이 부서져, 지직거리며 돌 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나는 디멘션 커넥터가 전송해주는 메시지를 희미한 시야 너머로 확인했다.
- 방어력이 50 감소했습니다.(현재 0)
“주인님! 유하님이!”
“큭…!”
넬의 말에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가누며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중심을 잡지 못해 무릎을 꿇은 채로 구토감을 느끼며 눈앞을 올려다보았다.
“어어, 죄송하게 됐습니다. 누님.”
유하가,
“주, 준?! 준!”
고그에게 머리채가 잡혀서….
“당신들은?! 윽, 이거 놓으세요!”
“저는 사실, 여자를 때리는 걸 좋아해서요.”
불량스럽게 웃은 모그가 이내 품안에서 두건을 꺼내 얼굴에 둘렀다. 그리고 녀석은,
“꺄악?!”
유하의 뺨을 후려쳤다.
“햐, 왠지는 모르겠는데 여자 패는 거 꼴리지 않냐?”
“동감, 한다.”
“역시 실제로 패야 돼. 펫으로는 한계가 있단 말이지. 음음, 언젠가 우아랑 대위님도….”
“우음.”
“….”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한순간의 타격으로 갈비뼈가 부러진 걸 느꼈다. 욱신거리는 복근은 롤러에 쥐어짜내지는 듯했다.
“주, 주인님! 안돼요!”
“비, 켜.”
“제발요! 지금 타격이 너무 심해서 정말로 죽으실 수도 있어요!”
“괜찮아.”
“히히, 그럴 리가 있나. 펫 아가씨. 이건 그냥 게임이라고? 설마 죽기야 하겠어? 이 그, 뭐냐 정보량 뭐? 그 합금이 몸을 보호해준다면서.”
“음, 죽으면, 뒤끝. 찝찝.”
“….”
- 레어 아이템 : 롱 소드를 생성합니다.
나는 이성이 사라지는 걸 느끼며 인벤토리에서 롱 소드를 꺼내 손에 쥐었다. 그것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지만 쥐고서 자세를 취했다.
“네놈들…. 네놈들 대체…!”
“푸하하하! 롱 소드! 와! 나도 초보 때 많이 썼는데!”
“유하에게 무슨 짓거리를 한 거야아아아아앗!!”
그리고 나는 달려들었다.
검을 휘둘렀지만 모그는 콧방귀를 뀌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앞장선 고그가 휘둘러진 검을 손으로 쥐었다.
“큭!”
“음.”
빼내보려고 했지만 통하질 않았다.
“준이 형씨, 한 가지 거래를 하자.”
“윽!”
가까이 다가온 모그가 검을 쥐고 있는 내 손가락을 뒤로 꺾었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한쪽 팔이 떨어진 상황에서도 나는 필사적으로 검을 빼내려 애썼다.
“저 넬이라는 펫, 우리한테 줘.”
“…!”
“음.”
“고그가 마음에 든대. 그리고 나도.”
“으음.”
“길들이는 맛이 있을 것 같다나? 뭐 어차피 인공 지능이라 짜여있는 대로 행동하는 거겠지만. 키히히.”
“….”
“주, 주인님!”
파르르 몸을 떨던 넬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모그의 몸에 손을 얹으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럴게요! 넬은 좋은 펫이에요!”
“호오, 호오. 역시 인공 지능은 이래서 좋아. 순종적이잖아? 그래도 좀 꼴리게 행동하는 편이 좋았을 텐데. 아, 데리고 가면 프로그램으로 바꿔버릴까?”
킥킥 웃은 모그가 권한을 넘기라는 듯 내 손가락을 하나 더 꺾었다. 꽉 다물고 있는 이 사이로 비릿한 신음이 흘러나와 나는 더 버티지 못하고 검을 놓았다.
“주, 주인님!”
“그래도 어디서 이런 걸 손에 넣었대?”
“우으, 으으…. 제발요! 넬은 괜찮으니까!”
“야야, 뭐 그리 심각해져. 이거 그냥 게임이잖아. 쟤도 그냥 인공지능이고. 편해지자고, 괜히 아프지 말고. 우리도 이러기 싫다니까.”
“….”
“주, 인님…. 우읏….”
넬이 울기 시작했다.
땋은 흰색의 머리.
노란빛의 눈동자에 물기가 어리면서 떨어져 내렸다.
“캬하! 진짜 프로그래밍 잘 해놨네! 감정 부분이 진짜 같잖아! 그래도 막 야겜처럼 넘어오면 바로 감정 리셋 가능한 부분이 또 좋은 부분인데에.”
“그대로 잠깐 즐기는 것도.”
“재킷 진짜 좋지 않냐? 실제로 몸에 작용하니까 그냥 보면서 즐기는 게 아니라 실제로 쾌감도 느끼고!”
“….”
“허잇, 어딜 일어서시려고!”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우던 나는, 복부를 걷어차여 다시금 뒤로 날아갔다. 갈비뼈가 부러져 내장을 찌른 듯,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이제 마지노선이지 않아? 대충 정해. 아니면 저 누나 데려가 버린다? 정말로? 재킷 입혀서 강제로 발정하게 만든 다음에 따먹을 거야?”
“….”
날려져 날아간 곳에는 유하가 쓰러진 채였다. 뺨이 붉게 물들어, 기절한 그녀를 가리듯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자, 정해. 마지막 기회야. 네 펫 넘길래, 아니면 다 잃고 소중한 진짜 누님까지 빼앗길래.”
“….”
잔혹하게,
그저 ‘게임 감각’으로 웃고 있는 모그.
“주인님, 그냥…. 그냥 그렇게 하세요!”
넬은 그 뒤에서 눈물로 그 얼굴을 잔뜩 흉하게 만든 채 소리쳤다. 뭐 저렇게 슬픈 건지, 싶어 웃다가도 나는 기분이 불쾌해져 인상을 찌푸렸다.
“저, 정말로 죽으셔도 좋다는 거예요?!”
“넬.”
“네, 네넬….”
그리고 나는,
“널 넘기진 않아.”
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주, 주인님….”
“고그와 모그라고 했나.”
나는 비릿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버티지 못하고 다시 무너져 내렸다.
“나는 네놈 같은 쓰레기들이 싫단 말이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저 뇌에 들어찬 엿 같은 쾌락만을 찾아 탐하고 다니는 쓰레기 새끼들. 여자 따먹는 얘기와 누가 레벨이 더 높은지, 그런 것에만 뇌가 가있는 머저리들.
그런 놈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나는…!
- 그리고 당신은 그런 세계의 주민이 되었죠.
“큭!”
그 순간 뇌가 울리기 시작했다.
- 멋져요. 아주, 아주 멋지네요. 이준님. 이런 에스콰이어는 처음 봤어요. 흥미로워요.
“누구…?”
라고 중얼거린 순간, 나는 반쯤 무의식에 휩싸여 엘레노어라는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는 것처럼 세계가 정지한 걸 느꼈다.
아니 정확히는,
정신과 몸이 분리된 상태로….
- 이준님의 연산 속도를 가속시켰어요. 반면 고그님과 모그님은 최저로. 그래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시는 거겠죠.
“빌어먹을…. 그럼 그때의 그 목소리도…?”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당신은 어째서 그런 무모한 행동을 반복하는 걸까요? 3년 동안이나 해외를 헤매서 아서리안을 찾을 절박함은? 그리고 갤러해드가 되고자 하는 이유는?
대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분리된 의식 속으로 쓰게 웃으며 엘레노어에게 침이라도 뱉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다. 넬이 말했던 아서리안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떠올라, 나는 고그나 모그보다 수 억 배는 더 게임 감각에 가까운 엘레노어의 정신을 생각하며 몸서리를 쳤다.
- 정말로 재미있어요. 당신은. 현실과 가상,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발버둥치는 죽다만 시체. 흥미로워요.
- 어쨌든, 그런 당신에게 이 재킷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군요. 앞으로도 지켜볼게요. 넬을 잘 부탁드려요.
슬쩍 웃으며 사라지는 목소리,
남성인지 여성인지도 불분명한 그것이 뇌리에서 벗어나는 순간,
“큭!”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야? 왜 저래, 갑자기.”
“주, 주인님!”
“으극…!”
이를 빠득 갈자 잇몸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나는 갑작스럽게 뇌에 들어온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 바닥에 누운 채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심장에서 혈액이 분출되어,
신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개 같은 년,
개 같은 놈.
엘레노어의 더러운 의도를 이해하고 나는 몸서리를 쳤다. 나는 부서진 갈비뼈가 다시 맞춰지는 감각에, 손가락이 제자리를 되찾는 감각에, 몇 번이고 몸을 떨었다.
“음, 그냥 저 누님이나 데려 갈까? 히히, 근데 그러다 잡히면 진짜 강간에 납치에, 오래 못 나오겠는데?”
“그렇, 겠지.”
“그래도 해볼까? 뭐 게임인데 설마~.”
- 네크로맨서 재킷 감지.
- 동기화를 진행하시겠습니까?
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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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딱히 의도한 건 아닌데 뭔가 극적인 부분에서 끊어진 기분이...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