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 Chapter 1 : ‘에스콰이어’로서의 시작 -->
◇
그로부터 새벽 여섯 시쯤 되었을까.
우당탕쿵쾅! 하는 소리가 2층에서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멎었다. 파스스 먼지가 떨어지는 천장을 힐끔 올려다본 나는 기운이 없어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걸 느끼며 벽에 기대어 앉았다.
“일어나신 모양인데요?”
“…. 그렇군.”
뿌듯하게 웃고 있는 넬의 말에 적당히 대답해주며 나는 아픈 눈가를 매만졌다. 그리고 얼마 후,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불쑥 유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 준?!”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서 저렇게 허둥댄다면, 그녀는 보통 대체 몇 시에 아침 이슬을 만났던 걸까. 아니 그걸 과연 아침 이슬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걸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앉아있자니, 유하는 약간 뻗친 머리를 한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눈이 휘둥그레 말문을 열지 못했다.
“….”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나무 바닥과 테이블. 오래된 에스프레소 머신 역시 깨끗하게 닦아둔 데다가 창문이나 출입구에 먼지가 쌓이기 쉬운 공간까지, 가게 안은 완벽하게 청소가 끝난 상태였던 것이다.
무척이나 놀란 듯 딸꾹질마저 하던 유하가 이내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역시나 청소의 상태를 꼼꼼히 체크하는 프로(?)로서의 정신에 경외감마저 느끼며 나는 곰처럼 벽에 기댄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
그녀는 계속해서 놀란 눈치였다.
적막함에 잠긴, 그러면서 아침 해가 비추는 카페를 한 바퀴 돌아, 유하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표정을 지은 채 카운터 뒤편으로 가 그 안쪽의 주방을 살펴보았다. 물론 그곳도 깔끔하게, 쓰레기까지 다 청소를 해둔 터라 나는 슬쩍 웃음이 나오는 걸 느꼈다.
“아, 웃으시네요.”
그리고 넬의 지적에 그만두었다.
어쨌든 반쯤 무의식에 잠긴 유하는 천천히 에스프레소 머신의 앞으로 돌아와 전원 버튼을 올렸다. 손잡이가 달린 포타 필터에 능숙하게 원두를 담고, 탬핑을 꾹꾹. 낡지만 열심히 청소했던 기계가 에스프레소를 내릴 준비를 끝마쳤다.
“죽은, 건가요…?”
“….”
등 뒤에 숨은 넬이 약간 두려운 표정으로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유하의 맞은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이 정도로 격렬한 반응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어쩐지 이쪽이 황송한 마음이 다 들 정도였다. 그리고 멍한 얼굴이었지만 능숙하게 에스프레소를 내린 유하는 조그마한 잔에 담긴 걸 그대로 들이켰다.
“준.”
“….”
그리고 단숨에 정신을 차려, 무척이나 엄격한 표정을 그 아름다운 얼굴에 담았다. 곧게 뻗은 눈썹을 보며, 나는 그녀가 그런 표정을 지은 이유에 대해서 대강 알아채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전하고 같던데.”
“…. 네?”
“쓰레기 내놓는 곳.”
3년이 지났지만 변하지 않았다.
그래, 모든 것이 멈춰진 것처럼 그대로였다.
그런 내 이야기에 유하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파르르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 어디든, 강하게 책임감을 느끼는 그녀로서는 내가 이렇게 ‘자신을 위해’ 일한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용납하기 힘든 거겠지.
“이, 이런 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오늘은 정말 고맙지만, 준은 모처럼 유학까지 다녀왔는걸요? 조금 다른 걸 생각해봐도 괜찮아요.”
“….”
“학교, 라던가. 올해는 학생 마감이 끝났지만 청강을 하면 되잖아요? 천천히 미래에 대해서….”
그러는 너는,
줄곧 멈춰진 상태면서.
“…. 됐어.”
“네?”
“청소는 내가 할 거야. 아침하고 밤에.”
“주, 준!”
“괜찮아. 유하 누나.”
“….”
나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하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하지만 끝내 잡지는 못하고, 거두어 시선을 피했다.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으니까.”
“그, 그래도오….”
“에스프레소.”
“네?”
“….”
슬쩍 얼굴이 붉어진 걸 느꼈다.
내가 그렇게 바라보자 잠깐 멍하니 마주보던 유하는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그런 유하의 태도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옆으로 돌아앉았다. 코를 한 번 훌쩍이는 소리. 유하는 묵묵하게 에스프레소를 내려 나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어요.”
“….”
나는 그 잔을 훌쩍 든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역시나 유하는 완벽한 사람이다.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솜씨 또한 그러해, 크레마의 풍부한 쓴맛이 혀에 휘감겼다. 솔직하게 말해 다른 커피와 딱히 구별이 가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분명히 3년 전까지 마셨던 커피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녀올게.”
“네, 다녀오세요.”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마신 뒤 잔을 놓고,
나는 유하의 배웅을 받으며 가게를 나섰다.
◇
지하철을 타고 30분 정도 지나 도착한 신촌,
- 노비스 재킷 활성화.
- 활용에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가상의 세계로 돌입했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한 뒤 재킷에 회로가 흐르는 이펙트를 확인한 나는 곧장 옥상 위로 뛰어올랐다. 꽃샘추위로 인해선지 날씨가 쌀쌀해 막 아침이 밝은 신촌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고작해야 아침 수업을 듣기 위해 잠을 쫓듯이 걷고 있는 대학생들 정도.
“….”
대학에 가라던 유하의 말이 떠올라 나는 순간적으로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떨쳐내듯 실행된 아서리안에 내가 할 만한 종류의 전투 퀘스트가 없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갤러해드가 된다.
내 목적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헤에에~.”
하지만 다음 순간 뒤쪽에 둥둥 떠올라 있던 넬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처음에는 무시하려고 했지만 괜히 신경이 쓰여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뭐?”
“아뇨, 이곳이 대학인가 싶어서요.”
약간 얼굴이 빨개져 있는 넬을 보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날 그렇게 생각할 리가 없다 싶어 피식 웃었다.
“퀘스트나 찾아봐.”
“네넬~ 알겠습니다!”
내가 나직이 이름을 부르자 생각에 잠겨 있던 넬이 이내 함께 퀘스트창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쨌든 오늘은 좀 괜찮은 퀘스트로 레벨을 올리자고 생각하며 전투와 관련된 퀘스트에 대해 다시금 짚어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눈앞에 나타난 양피지가 드르륵 풀리며 퀘스트창이 하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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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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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러브러브 대작전!
난이도 : 불명
내용 : 유하 누나와 솔직하게 대화하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경험치 100,000, 기사의 명예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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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또 뭐야.
“아, 주인님! 특별 퀘스트네요!”
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넬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녀석은 그런 내 말에 피식 웃으며 보상 경험치를 손으로 가리켰다.
“수락할게요오.”
“자, 잠깐만!”
“넬?”
“이게 뭐야?!”
나는 놀라 눈앞에 떠오른 양피지를 손으로 가리켰다. 특별 퀘스트? 아니, 거기에 유하 누나가 왜…?
“으음, 그냥 엘레노어가 유저 개인에게 드리는 특별한 퀘스트를 이런 식으로 표시해요. 지난번의 ‘노인 공격’ 퀘스트처럼요! 주인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퀘스트라는 거죠. 수락하지 않으면 사라지니까 걱정 마세요!”
“엘레노어는 유저들을 계속 감시하고 있다는 건가?”
“네넬♡ 유저 여러분 개개인이 제각기 다른 게임 플레이를 체험하실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답니다!”
“재미있는 말이군.”
딱히 말하고 싶지는 않아 나는 불쾌한 얼굴을 감추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유하가 게임의 일부로서 이용된다는 사실에 짜증 밖에 들지 않는 걸 느꼈다.
“퀘스트 비수락.”
그렇게 중얼거리자 양피지가 다시 말려 올라가며 데이터 조각으로 변해 사라지려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넬이 그걸 슬쩍 붙잡아 품으로 가져갔다.
“너….”
진지하게 눈썹을 찌푸리고 있는 넬의 모습에, 나는 짜증을 내려던 자세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약간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해도 되잖아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조금은 융통성 있게 행동하는 편이 좋다고 넬은 생각해요? 안 그래도 무모하신 분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
위협하듯이 이야기하자 넬은 못내 아쉬운 듯 손에 들고 있던 양피지 조각을 뒤로 날렸다. 부웅 날아간 퀘스트창을 채 보지도 않고 돌아선 나는 분노가 가시질 않는 걸 느끼며 대학가 너머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주인님.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지금의 주인님으로서는 갤러해드가 될 수 없을 거예요.”
“뭐…?”
내가 돌아보자 넬은 심각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걸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조금 아래에서, 조심스럽게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재킷을 손으로 가리켰다.
“‘완벽한 기사’에 이르는 과정은 험난하고 거셀 테니까요. 넬은 수많은 에스콰이어를 봐왔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주인님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
“혹시…. 아서리안의 시나리오를 알고 계세요? 이 게임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넬은 설명을 시작했다.
“가장 고결한 기사를 가려내는 거죠. 성배를 차지해, 세계의 지배자인 ‘왕’이 되기에 적합한. 그래서 유저 여러분은 ‘에스콰이어’인 거고요.”
========== 작품 후기 ==========
9시 반에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