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 Chapter 1 : ‘에스콰이어’로서의 시작 -->
◇
“유하는 앉아 있어.”
“그, 그래도오…?”
“괘, 괜찮으니까.”
떨리는 기색을 감추려 좀 더 무뚝뚝하게 대답하자 유하는 그제야 평상 위에 슬리퍼를 벗고 앉았다. 날은 완연히 어둠에 접어들어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해 나는 숯불을 피워놓은 드럼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
그동안 혼자서 이렇게 고기를 구워먹었을 리는 없고.
“씻은 거야?”
“네?”
“이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린 후 드럼통을 가리켰다. 15년 전부터 썼지만 내가 ‘유학’을 간 뒤로는 유하 혼자 이곳에 남겨졌으므로, 실질적으로는 3년간은 쭈욱 방치되었을 텐데 그런 것치고는 깨끗했던 것이다.
“음, 네.”
“언제?”
“쉬, 쉬는 날에요?”
“….”
살짝 곤란해 하는 기색에 나는 더 질문하기를 그만두고 불판에 고기를 올렸다. 치익, 하고 달궈진 불판에 올라간 고기가 연기를 토해냈다.
평상 위의 큰 식탁,
거기에는 쌈 채소부터 시작해 밥을 담은 솥과 그릇, 반찬이 가득했다. 거기에 맥주까지. 이걸 혼자서 다 옮기려고 했던 건가 싶어 나는 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힘든 일만 도맡는다니까.
“….”
“….”
고기가 익어가는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침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고기를 서걱서걱 자른 나는 접시에 담아 테이블로 가져갔다.
“많이 먹어.”
“주, 준도 앉아요!”
“한 번 더 구울 테니까, 먼저 먹어.”
유하를 향해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다시 몸을 돌려 불판 앞으로 향했다. 머뭇거리던 유하를 재촉하듯이 힐끔 봐 못내 먹기 시작하는 모습을 확인한 후,
다시 고기 굽기로.
“이, 이 집 고기 맛있네요!”
“응, 많이 먹어.”
“…. 어, 으음.”
“주인님.”
바로 그때, 등 뒤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던 넬이 내 곁으로 부웅 날아들었다. 나는 고기가 맛있게 익었으면 하는 바람에 열심히 뒤집으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같이 먹는 게 낫지 않을까요오.”
“….”
“고기를 먹도록 배려하는 게 아니라 고문하시는 것 같은데요. 고문기술자 같은 걸 하셔도 잘하시겠어요.”
녀석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고기를 뒤집어 단숨에 잘라나갔다. 소고기라 그런지 아주 잘 잘렸다.
“고기를 썰 때마다 유하님 마음도 써컹써컹….”
무슨 별 소리를 다하고 있어.
“유하가 맛있게 먹어주면 돼.”
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가볍게 혀를 내민 넬은 유하 누나의 뒤쪽으로 부웅 날아가더니,
“심장 박동수가 높아지셨는데에.”
가슴을 만지는 동작을 취해보였다.
“….”
물론 정말로 만지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만두라는 의미로 녀석을 향해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그 눈빛에 반응한 것은 이번에도 애꿎은 유하였다.
“주, 준? 뭐 잘못한 거라도….”
“아, 아니야. 먹어.”
“으음….”
“오오, 더 올라갔어요?!”
잠깐, 뭔가 이상하다.
“너 그건 어떻게 아는 건데?”
“네?”
“네넬?”
“유하의 디멘션 커넥터에 어떻게…?”
혹시 해킹이라도 한 건가 싶어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넬에게 말했다. 하지만 유하 역시 반응을 보여 나는 당황해 손을 내저었다.
“아니, 유하한테 말한 거 아니니까.”
“그, 그러면…?”
“호오, 호오.”
“너는 어물쩍 넘어가려 들지 말고 제대로 대답해. 유하의 디멘션 커넥터에 어떻게 접속할 수 있는 건데.”
“그거야아….”
“제가 전부 공개해 놨으니까요.”
유하가 거기에 대답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준은, 내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런 단어에 뿌듯한 것처럼 웃는 유하를 보며, 나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돌렸다. 앞머리를 매만지던 나는 역시나 모든 권한을 공개로 돌렸다.
“어머?”
그 권한을 받아들인 유하는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안녕하세요오~!”
그러자 갑작스레 눈앞에 나타난 넬의 존재에 유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신기하게도 걱정이 들지 않는 걸 느끼며 다시 돌아가 고기를 계속 구웠다.
물론 믿음 때문이겠지.
그녀가 함부로 내 디멘션 커넥터 안.
그러니까,
아서리안을 볼 리가 없다는 믿음.
“…. 어, 음? 당신은?”
“헤, 헤헤. 이준 주인님의 펫인 넬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유하님!”
“아, 음. 저, 저는 준의…. 준의….”
“가족, 이시죠?”
“예에….”
하고 약간 애매하게 말을 흘린 유하가 곧이어 허락을 구하듯 내 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시선을 피했지만 얼굴이 붉어진 것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가족, 가족….”
“….”
그 한 마디에 뭐 그리 감동하는 얼굴인지.
“가족!”
“으음, 잘 부탁해요. 넬 양.”
“넬이라고 불러주세요!”
“아, 그럴까요? 넬.”
또 금새 사이가 좋아져서.
역시 유하도 그런 것에 거리낌이 없는 듯, 화기애애하게 넬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인간 형태의 펫을 가지고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고그와 모그 같은 무리의 발상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거겠지.
나를 믿는 걸 수도 있겠지만.
아니 그렇게 생각하자 왠지 더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나는 반쯤 의식을 날려버리며 고기를 익히는 일에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로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앙~ 고기 드세요! 제가 싸드리진 못하지만!”
“우후후, 준은 귀여운 분을 펫으로 두었네요.”
“펫이라니.”
무의식중에 대답을.
“그, 그렇죠? 뭔가 이상하죠?”
“…?”
우리의 그런 대화를 넬이 쫓아오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뜬금없이 생각하던 걸 내뱉자 당황한 뒤,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으음, 그러면 넬은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네비게이터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주, 주인니이이임! 감동이에요오오!”
“…. 시, 시끄러워.”
역시 말하는 게 아니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이펙트) 과장된 몸짓과 행동을 보이는 넬. 그리고 옆에서는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은 유하가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는 동작을 취했다.
“유하니임~.”
“우후후, 준이 그래도 착한 아이에요.”
“처음에는 나쁜 사람인지 아랐쪄여! 훌쩌억!”
“….”
무시하자.
고기나 굽자.
“그런데 넬은, 네비게이터를 한다면 주로 무슨…?”
“외국에서 통역을 도와줬어.”
“아! 그렇군요.”
“거짓말이 능숙하시네요….”
“응?”
“….”
내가 힐난하듯이 바라보자 넬은 휘파람을 불면서 딴청을 피웠다. 입에서 음표 같은 게 나오는 이펙트에 나는 말을 해봤자 통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 구운 고기를 접시에 담아 자리로 가져갔다.
“주인님도 앉으세요!”
“…. 됐어. 고기나 구울래.”
“아이 참! 그러지 마시고!”
“?!”
나는 재킷의 한쪽 팔이 휙 당겨져 평상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허공에 몸을 누인 채 내 팔을 잡은 넬, 그 행동이 주는 이질감에 유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나는 재킷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에….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아서리안은 종료된 상태였기에.
“넬?”
“네네엘…?”
“너 설마 아서리안을 멋대로?”
“자, 잠깐만 껐다 켜는 건 괜찮다고요?”
“….”
“주, 주인님과의 인간적인 정신 교류를 위해서!”
“하아.”
나는 약간 정신적으로 지치는 걸 느껴, 입을 꾹 다물고는 평상 위로 완전히 올라가 앉았다. 어쨌든 이로서, 잠깐 고개를 갸우뚱하던 유하도 웃으며 내 앞에 젓가락을 놓아주었으니.
“….”
“많이 먹어요. 준.”
“유하도.”
“아참, 밥을 줘야죠.”
내 앞을 본 유하가 이내 옆에 있는 증기 밥솥을 열고 주걱으로 밥을 퍼주기 시작했다. 평범한 밥그릇에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여덟 번.
“….”
아홉 번, 열….
“그, 그만.”
“네? 많이 먹어요.”
그게 많은 게 아니라면 바다도 적은 거야.
“괘, 괜찮아. 먹고 더 먹을 테니까.”
“그럴, 래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유하는 어쩐지 아쉬운 표정으로 산처럼 쌓인 밥의 더미를 내밀었다. 행여나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그것을 받아든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내려놓았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맥주도 드실래요?”
“….”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어 한 잔 받고,
“유하도.”
“아, 아아! 됐어요. 이따가 일이 남아서.”
“….”
“으음, 그럼 딱 한잔만.”
내가 꿋꿋이 병을 내밀자, 유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잔을 받았다.
하고 따르던 중,
나는 유하가 주사가 없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쳤으나….
뭐 괜찮겠지. 하고 넘겼다.
◇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헤헤에에엥♡ 주우우우운♡”
“….”
밤 10시, 고기와 술 냄새로 엉망인 유하를 업은 채 나는 천천히 걸어 2층으로 내려왔다.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복도, 아까 전에 물청소까지 해둔 바닥은 이미 마른지 오래여서 나는 안심하고 지나쳤다.
“주운, 누나라고 한 번만 더 불러줄래요오…?”
“…. 누, 누나.”
“꺄앙♡”
등에 타고 있던 유하가 내 얼굴에 볼을 비비니 고기 냄새가 나는 것이 더 심해졌다.
나는 묵묵히 유하의 방으로 가 문을 열었다. 권한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잠금 장치가 해제되어, 나는 깔끔하게 정리된 방안의 침대에 유하를 눕혔다.
“우음…. 무울….”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온 달빛이 방안에 맴돌았다. 나는 약간 괴로운 듯 중얼거리는 유하를 두고 1층으로 내려갔다. 조용한 밤이라 그런지 낡은 계단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주인니임~ 어두운 데서 걸으시면 위험해요.”
“….”
나 역시 취기가 오른 걸까.
살짝 비틀거리며 걷던 중, 디멘션 커넥터에서 희미하게 빛이 일어났다. 그리고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넬과 함께 부엌 쪽으로 간 나는, 적당히 냉장고에서 조그마한 페트병에 담긴 물을 찾아 2층으로 돌아갔다.
“마셔.”
“고마워요오오….”
반쯤 눈을 감은 채 있던 유하에게 병을 따서 내밀자 허우적거리며 받아서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커튼이라도 쳐둘까 싶어서 창문 쪽으로 몸을 움직였지만,
“히끅?!”
바로 다음 순간 사고가 발생했다.
“….”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물을 마시던 중 엎질러버린 듯 바닥이 흥건한 채 페트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당황한 듯 가슴께를 내려다보고 있던 유하는 이내 멍한 눈으로 내 쪽을 돌아보았다.
“히히♡ 엎질러 보료땅♡”
“….”
뭐라 할 말을 못 찾겠군.
“유하님 술을 드시면 개가 되시네요오오….”
“그렇게 말하지 마.”
“멍멍♡”
“유하도 흉내 내지 마.”
“끼잉끼잉~.”
“….”
“쿠우우울….”
이제는 자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