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10화 (10/321)

10편

<-- Chapter 1 : ‘에스콰이어’로서의 시작 -->

어둡고 축축한 하수도 안.

“여기라면 괜찮아! 핫.”

나를 데리고 온 남자는 야구 점퍼 같은 스타일의 재킷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중얼거렸다. 뒤에는 용으로 된 자수가 있어, 나는 ‘스카잔’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냈다.

“음, 추격…. 없음.”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사라지며 맨홀 뚜껑을 들고 있던 다른 사내 역시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고개를 돌려 디멘션 커넥터의 희미한 빛을 통해 두 사람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했다.

“….”

“형씨, 왜 쫓기고 있었던 거야? 설마 초보?”

“그런 듯.”

“멘토도 없어? 이거 원 안 되겠군!”

“친절하신 분들 같은데요?”

뒤쪽에서 떠오른 넬이 스스로의 감상을 입에 담았지만 나는 약간 경계하며 두 사람에게서 물러섰다. 그런 모습에 작은 사내가 씨익 웃으며 무언가를 휙 던졌다.

사과만한 크기의 데이터 덩어리, 꾹 쥐어서 그 소유권을 인정하자 눈앞에 남자를 가리키는 마커와 함께 스테이터스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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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C

==============================

Name : 모그

Lv : 42

Knightage : ?

JACKET : ?

Exp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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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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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력 : ?

방어력 : ?

민첩성 : ?

정신력 : ?

연산 속도 : ?

==============================

S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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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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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준다.”

그리고 반대편의 사내 역시 데이터를 집어던졌다. 엉겁결에 받아든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자 다시금 경계를 했지만, 큰 사내의 진중한 시선에 어쩔 수 없이 손에 거두었다. 그리고 스테이터스창이 떠올랐다.

==============================

BASIC

==============================

Name : 고그

Lv : 42

Knightage : ?

JACKET : ?

Exp : ?

==============================

STATUS

==============================

공격력 : ?

방어력 : ?

민첩성 : ?

정신력 : ?

연산 속도 : ?

==============================

SKILL

==============================

알 수 없음

==============================

“….”

확인할 수 있는 건 닉네임과 레벨 정도인가.

“둘이 합쳐서 고그와 모그! 잘 부탁해. 형씨.”

“네, 이름은?”

딱히 대답하고 싶지는 않은 상황이었지만, 나 역시 데이터 덩어리를 두 사람에게 던졌다. 그걸 확인하고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모그였다.

“이, 준? 특이한 닉네임이네? 중국식?”

“본명인데.”

“엑?! 보, 본명을 말하는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그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얼굴에 두건을 쓴 채였다, 그걸 보자 나는 어쩐지 그렇게 얼굴을 감출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자각이 생기는 걸 느꼈다.

에스콰이어는 게이머지만 동시에 범죄자기도 하니까.

“그래도, 멋지다.”

“헤, 뭐 그런 녀석도 있는 법이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그와 모그는 씨익 웃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는 스테이터스창에 표시된 스스로의 이름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게임 상에 표시되는 이름은 변경이 가능하세요! 기사의 명예를 한 개 사용해서!”

“기사의 명예?”

“고난이도 퀘스트의 특수 보상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변경할 이유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 ‘기사의 명예’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자세히 뭘 하는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희소가치가 높은 보상이라면 아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형씨, 어디로 가는 거야?”

“무기상점.”

“그래? 그렇다면 데려다주지.”

“….”

뭔가 다른 의도가 약간 느껴졌지만.

“따라가 보죠!”

옆에서 거드는 넬의 말마따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나는 명백하게 약자고 그들은 강자였다. 행여나 심기를 거슬리게 해 전투 상황에 처하고 싶지는 않았다.

“….”

“이쪽이야! 하수도 루트는 우리가 훤히 꿰뚫고 있지! 정보상 아가씨한테서 샀거든!”

“비쌌다.”

“넬, 정보상이란?”

“에스콰이어 중에서는 지도나 아이템의 데이터를 기록해서 파는 사람이 있어요. 아마 그쪽을 뜻하는 것이 아닐 런지 싶은데요.”

“넬?”

내 목소리에 앞서 나가던 모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뒤이어 고크 역시. 나는 정말로 궁금한 듯 눈을 반짝이는 모습에 꺼림칙한 기분을 느꼈다.

“펫 같은 거야?”

“….”

일단 고개를 끄덕여주기로 했다.

“오! 보여줄래?”

어쩔 수 없나.

“넬.”

“네넬!”

내가 이름을 부르자 넬이 두 사람의 가슴에 분홍색으로 된 화살을 쏘았다. 그로서 날아간 화살(데이터)가 꽂히며 두 사람은 넬을 볼 수 있는 권한을 받아 승인했다.

“안녕하세요☆ 넬입니당☆”

“오, 오오! 귀엽잖아! 비쌌겠는데?!”

“….”

“귀엽, 다.”

“에헤헤, 감사합니당!”

“흐음, 이런 애랑 한다면 역시이….”

“네넬?”

“저기, 형씨. 매일 하는 거지?”

“….”

나는 슬쩍 넬이 뒤로 숨는 기색을 느끼고는 말없이 가려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넬을 유심히 관찰하던 고그와 모그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우리 ‘것’도 보여주지.”

“….”

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지만, 일단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접속 권한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잠시 후, 희미하게 사내의 양 옆으로 무언가 떠올랐다.

“윽…!”

넬은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가볍게 숨을 삼켰고 나는 곧이어 떠오른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고그와 모그의 ‘펫’들이었다.

“웁, 우웁…!”

“주인, 님♡ 주인니임♡ 자지이♡”

고그의 것은 금발의 거유로, 구속구에 온몸이 묶여 있는 상태였다. 유두와 다리 사이의 음부에 와이어 같은 것이 이어져 고그가 그것을 튕기자 괴상한 소리가 났다. 고그는 얼굴을 붉히며 자랑스럽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고그 이 녀석, 진짜 변태지?”

그러는 반면 모그의 것은 검정색 트윈테일의…. 미성숙한 소녀였다. 다리 사이에 자위 기구 같은 것을 단 채 모그에게 달라붙어 애걸하고 있는 모습. 눈동자에는 하트 모양이 뿅뿅 떠오른 상태였다.

“….”

“형씨는 좀 점잖은 편이긴 한데! 이히히! 이렇게 노는 것도 재미있다고? 구하는데 꽤나 비쌌지.”

“후우.”

“음, 잠시 하고 오겠다.”

“우웁, 으읍!”

“주, 주인님…!”

겁에 질린 넬의 목소리.

“고그 저 새끼, 진짜 못 말린다니까아.”

스윽 뒤로 움직여 모퉁이 사이로 간 고그를 보고 모그가 가볍게 웃었다. 이윽고 울려 퍼지는 높은 신음, 철썩거리며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와 나는 디멘션 커넥터를 꺼버리고 싶은 감각에 휩싸였다.

“이거 있잖아. 사실 그때 너 붙잡으려고 했던 여자의 어린 시절이 이랬을까 모티브로 만든 거거든.”

“….”

“우아랑 대위라고 꽤 유명하잖아? 나중에 기회 되면 따먹어 보고 싶단 말이지. 가슴도 크고 얼굴도 반반하고. 그런 년들은 꼭 항문이 약점이라. 케헷, 농담이지만.”

“넬.”

“네넬…?”

“가자.”

“어?! 어어, 혀, 형씨! 어디가!”

나는 가볍게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그러는 나를 보고 뒤쪽의 모그가 무언가 소리를 쳤지만 나는 더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쳇, 너는 깨끗하다는 거냐! 빌어먹을!”

그리고 멀어져, 어둠의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적의에 새삼 두 사람의 레벨을 머릿속에 떠올린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린 채 달리기 시작했다.

“넬.”

“으, 으음….”

“….”

이름을 불렀지만 넬은 적잖이 충격에 휩싸인 눈치였다. 무어라 한 마디 해줄까 싶었지만, 나는 평소와는 달리 안타깝게 뒤쪽을 바라보는 녀석을 보고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싫단 말이지.

나는 위로하는 방법 따위 알지 못한다.

더더욱이 내가 모르는 감정에 대해서는.

“….”

“어서오라옹.”

이번에도 고양이로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툼한 볼을 자랑하는 넉살 좋은 고양이 NPC를 바라보았다. 머리 위에는 ‘무기상인’이라는 메시지가 적힌 채여서 나는 주인이 내미는 카탈로그를 가만히 받아들었다. 그리고 카탈로그를 손에 쥐자 데이터 조각으로 바뀌며 눈앞에 팝업창이 떠올랐다.

〈판매 물품〉

쇼트 소드

롱 소드

“?”

이거 두 개다.

“넬.”

“…. 넬.”

두 번째는 아직까지도 기운을 차리지 못한 넬이 대답한 것이었다. 나는 그걸 꺼림칙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입을 열었다.

“왜 아이템이 두 개밖에 없어?”

“주인님 레벨에서는 이 정도 아이템 밖에 보이지 않아요오…. 거기에 특정 구역에서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들도 있기 때문에에에….”

“그런 상점은?”

“그건 비공개라서 직접 찾으셔야아….”

“….”

나는 더 대화하기를 포기한 채 고양이 상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수염을 몽글몽글하게 매만지고 있던 그가 날 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옹.”

“가격 지불은 어떻게 하지?”

“돈이다옹.”

“그러니까 어떤….”

“한화로 부가세 제외 200,000원입니다. 고객님.”

“?”

방금 무척 정상적으로 말한 것 같은데.

“넬?”

“과금이잖아요. 과금….”

“아니, 그.”

“물건을 사는 일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라고요…? 주인님 설마 그냥 가져가실….”

“….”

젠장, 그럴 돈은 수중에 없는데.

“수는 있습니다만 물론. 저희는 자유도가 무척이나 높은 게임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 고양이 상인들을 모조리 도륙해야 된다고요…?”

“히이이옹! 그러지 말라옹!”

“살려주세옹! 저에게는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어옹!”

대체 왜 고양이 자식들이 토끼 같은 건데.

“경찰서에 신고할 거다옹! 할 킬러즈한테옹!”

“형씨이, 그럴 수는 없제이. 우리는 반드시 갤러해드가 되야만 하는 상황이라고오…. 알겠어어…?”

“히이이옹!”

“넬.”

“네넬?”

“….”

내가 노려보자 한껏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던 넬이 뒤로 물러섰다. 나는 진정하라는 뜻에서 손을 펼쳐보였지만 살찐 고양이 상인들은 뒤뚱거리며 혼란스럽게 상점 내부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5초 안에 내놓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거다옹!”

“다섯 조각을 내주겠다는 거다옹!”

“오오오옹! 오오오오오오옹!”

빌어처먹을.

“아, 그딴 엿 같은 짓 안한다고!”

나는 짜증이 나 저도 모르게 훅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누군가를 향한 걸지 모를 분노를 담아 보자 굳어져 있던 고양이 상인들이 이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젠장.

너무 떠들었다.

“…. 안해. 정말이야. 믿어줘.”

“차, 착한 사람이다옹. 입이 험하지만옹.”

“의뢰를 받아주면 칼 공짜로 주겠다옹.”

그리고 눈앞에 팝업창이 떠올랐다.

========== 작품 후기 ==========

오오오오오오오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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