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 Chapter 1 : ‘에스콰이어’로서의 시작 -->
“오랜만이에요. 마스터.”
“아…. 넬. 오랜만이다옹.”
방금 ‘아’와 ‘넬’의 사이에서 급격한 데이터의 로딩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설정이 편하거든요. 사실.”
“….”
자꾸만 대꾸를 해버릴 것 같아 나는 아예 시선을 돌린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넬은 그 풍부한 표정을 활용해 오랫동안 떠돈 모험가와도 같은 노련미가 넘치는 얼굴을 해보였다.
“뭔가 일거리가 없나 싶어서요.”
“있다옹.”
“다옹.”
“알겠다옹.”
….
뇌가 반쯤 맛이 갈 것 같은 내 눈앞에 팝업창이 떠올랐다.
==============================
일반 퀘스트
==============================
제목 : 노인 공경
난이도 : ★★☆☆☆☆☆☆☆☆
내용 : 건널목을 건너지 못하는 노인을 도와주세요!
제한 시간 : 03:00:00
보상 : 노인 한 사람당 경험치 1,000
==============================
뭔데.
“???”
“아, 괜찮은 초보자 퀘스트네요.”
“….”
“수락하시겠어요?”
“아니.”
“어, 음. 주인님!”
내가 몸을 돌려 가게를 빠져나가려 하자 넬이 재킷 끝자락을 붙잡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 돌아본 나는 이내 누군가 만졌다는 사실보다도 ‘넬이 나를 만졌다.’라는 사실에 대한 당혹감이 앞서는 걸 느꼈다.
하지만,
“재킷이 통제하는 것이로군.”
팔을 잡은 쪽은 넬이 아니라 재킷이었던 거다.
“헤, 헤헤…. 혀, 현실감을 위해서 라고요?”
복잡한 기분이었다.
“에헤헤, 주인님. 해요오.”
“….”
“지금 당장 뭐랑 싸우러 갈 수도 없잖아요?”
“….”
“아 혹시 그런 건가요? 주인님은 혹시 요즘 어린 친구들처럼 몬스터를 퍽퍽 때려죽이지 않으면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그런?”
그런 건 아니지만….
“최대한 빠른 레벨업 루트를 알고 싶어.”
“…. 그 목적을 위해서요?”
“그래. 갤러해드.”
나는 무뚝뚝하게 중얼거리며 오랜 기억과 그 끝에 있는 갤러해드라는 목적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혹시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거기까지는 굳이 묻지 말아줘.”
넬의 말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뒤통수를 긁었다. 굳이 남에게 밝힐 만한 일도 아니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내 말에 약간 굳어져 있던 넬은,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묻지 말아 달라’고요…?”
“그게 뭐 어때서?”
“아, 아뇨! 그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어서.”
그녀는 어쩐지 살짝 감동하는 눈치여서, 나는 약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내 나는 넬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래도 일단,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어쩔 수 없나….”
내가 한숨을 내쉬며 팝업창의 수락 버튼을 누르자 넬의 입가에 다시금 미소가 번졌다. 한 갈래로 땋아 내린 새하얀 머리가 좌우로 흔들리며 신나했다.
“가볼까요♡”
부담스러운 하트 뿅뿅 이펙트에 나는 시선을 피했다.
◇
그리고 약 30분 뒤,
“주, 주인니임?”
빠앙. 하는 소리와 함께 수도 없이 차량이 오가는 커다란 대로변. 내 행동을 본 넬이 약간 당황해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일을 계속했다.
==============================
일반 퀘스트
==============================
제목 : 노인 공경
난이도 : ★★☆☆☆☆☆☆☆☆
내용 : 건널목을 건너지 못하는 노인을 도와주세요!
제한 시간 : 00:05:06
보상 : 노인 한 사람당 경험치 100
==============================
그 밑에 조그맣게 도와준 노인의 숫자가.
87명.
“하, 학상…. 도와달라니까 왔는디.”
“네, 할머니.”
“이거시, 뭐 하는 건감?”
“….”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나는 잠깐 생각을 하며 등에 업힌 할머니를 든 채 가만히 대로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슬쩍 딱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옆을 돌아보니 넬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왜?
노인을 도우라고 했지.
그 노인이 중복이면 안 된다는 소리는 안했잖아.
“어, 으으으음….”
“뭔가 문제라도?”
나는 약간 당황하고 있는 넬을 향해 중얼거리며 녹색불로 바뀐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가볍게 달려 반대편에 도착한 뒤, 나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카운트가 2 올라갔다.
“아, 아뇨. 엘레노어는 확실히 단어 선택에 신중하지 못했던 자신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오.”
“그럼 됐군.”
“으으으으, 그래도 주인님이 이런 편법을 사용하시는 분이셨다니! 실망이에요! 실망!”
“….”
무시하자.
“할머니,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도와주세요.”
“어허이…. 괜찮어. 늙으면 남는 게 시간잉게.”
감사한 분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나는 지금, 적당히 근처의 가게 앞에서 햇볕을 쐬던 할머니를 모시고 와 횡단보도를 건너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뭐 넬의 말대로 편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학상, 키도 큰디 몸이 빼빼 말랗구머. 이라서 우따 쓰남? 여자친구는 있어야?”
“아뇨.”
“있으시잖아요! 집에!”
“여자친구 아니거든.”
“응? 뭐라 했는감?”
“…. 아, 아뇨. 없습니다. 여자친구.”
“홀홀, 할매가 20년만 젊었어도….”
“할머니…?”
나는 약간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남은 시간동안 가볍게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횡단보도를 계속 오가 100명의 숫자를 채웠다. 그리고 원래 계시던 자리로 할머니를 모셔왔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옹옹, 사탕 까주랴?”
….
“아, 웃으셨다. 주인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 자식.
넬을 한 번 찌릿 노려본 나는, 할머니와 인사를 마친 뒤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금 거리로 나왔다. 할머니가 까준 눈깔사탕을 입에 문 채 나는 퀘스트를 완료했다.
-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 경험치가 10,000 상승하였습니다.
-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
BASIC
==============================
Name : 이준
Lv : 7
Knightage : -
JACKET : Novice
Exp : 800/2,400
==============================
STATUS
==============================
분배 가능 스탯 60
공격력 : 10
방어력 : 10
민첩성 : 10
정신력 : 10
연산 속도 : 10
==============================
SKILL
==============================
==============================
꽤 올랐군.
“와아, 대단해요.”
“많이 빠른 거냐?”
“네, 다른 분들은 퀘스트 30개쯤 하셔야 찍는 레벨이에요. 주인님은 잔머리…. 아, 아니 머리가 좋으시군요!”
“….”
넬의 지적을 가볍게 받아넘긴 나는 슬슬 점심을 먹을 만한 시간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가볍게 기지개를 폈다. 조금 더 바깥으로 나가볼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
==============================
특별 퀘스트
==============================
제목 : 노인 공격
난이도 : ★★★☆☆☆☆☆☆☆
내용 : 도와준 노인을 공격해보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노인 한 사람당 경험치 1,000
==============================
“…?”
이건 또 뭔데.
“엘레노어가 많이 화났어요오오.”
“….”
“어, 음. 설마? 주인님 수락하실 건 아니죠?”
“….”
“주인님?”
“효율이 나오질 않으니 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퀘스트를 거절했다. 잠깐 그런 내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넬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그런 이유로 안하시는 건가요.”
“그래.”
나는 눈깔사탕을 굴리며 적당히 입술을 이죽거렸다.
◇
“넬.”
“네넬♡”
“이 JACKET이라는 수치는 직업 같은 건가?”
지하철, 나는 스테이터스창을 보며 물었다. 그 뒤로 별다른 퀘스트를 찾지 못한 채 허탕만 쳐, 유리창 너머로 노을이 지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너 그때…. 뭐라고 하지 않았던가?”
재킷이란 심리의 표상이니 뭐니, 재킷을 만들었던 당시에 들은 말이 떠올라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넬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글, 쎄요?”
“…. 그럼 혹시 전직 퀘스트 같은 것도 있나?”
일단 넘어가자.
“어, 으음…. 저도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어서. 자, 잠깐만요! 찾아볼게요!”
당황해 머뭇거리던 넬이 이것저것, 허공으로부터 양피지들을 끌어 모아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스킬은 어떤 식으로 배우는데? 그리고 지난번에 봤을 때는 다들 무기를 들고 싸우던데 그건….”
“주, 주인님! 너무 많아요! 하나씩! 차근차근!”
“….”
“으음, 그렇다 치더라도 설명할 게 너무 많은데…. 그래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오늘은 쉬시고 내일부터 직접 보여드리면서 설명 드릴게요! 한 번에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면 뇌도 컴퓨터도 마찬가지로 불탄다고요?”
한 번에 여러 가지 질문을 하자, 넬은 나를 설득하듯이 진정시켰다. 그 손에서 떨어진 양피지가 바닥을 나뒹굴다 부스러지며 데이터 조각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말로 해봤자 대부분 이론 설명이 될 뿐이겠지. 차라리 그런 방식이 낫겠다고 판단한 나는 앞머리를 만지며 거기에 수긍했다.
“어차피 저는 밤에도 깨있을 수 있으니까! 주인님을 위해서 밤에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 부탁할게.”
“아 방금 전에도 좀 야한 의미로 말씀을….”
“다 알아들었거든.”
굳이 반응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시무룩, 어깨를 축 늘어뜨린 넬을 뒤에 매단 채 나는 멈춰선 지하철에서 내렸다. 개찰구를 향해 걸어가며 나는 천천히 아서리안이라는 게임에 대해 생각했다.
기본적인 인터페이스는, 양피지가 돌돌 말린 채 내 주변에 부유하고 있었다. 나는 그 위에 떠오른 글씨를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 Status
- Equip
- Item
- Quest
- Friend
- Knightage
- Community
이 중에 조금이라도 게임의 정보를 알아볼 수 있는 건 역시, 커뮤니티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커뮤니티의 양피지를 건드린 나는, 걷는 도중이라 살짝 불투명해져 펼쳐지는 그것을 보았다. 내부에도 다양한 메뉴가 존재했지만 역시 가장 흥미가 가는 건….
‘Ranking’인가.
========== 작품 후기 ==========
기본적으로 '증강 현실'을 이용한 게임판타지기 때문에 모든 일은 현실에서 벌어집니다. 호호..
하지만 가상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도 있으니...
그건... 나중의 기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