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4화 (4/321)

4편

<-- Chapter 1 : ‘에스콰이어’로서의 시작 -->

디멘션 커넥터를 귓바퀴에 꽂자 다시금 시스템이 기동했다. 미리 설정해둔 대로 정신을 깨우기 위해 아침 뉴스를 들으며 나는 길게 하품을 했다.

[어제 응암역 인근에 있었던 아서리안 관련 사건으로 나선 할 킬러즈는, 시민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그로서 미허가 에스콰이어 다수를 포획하는데 성공하였다는 발표를….]

“흐음.”

나는 그 이야기를 적당히 한 귀로 흘리며 복도 끄트머리의 작은 화장실로 들어가 세안을 시작했다. 뉴스에서는 할 킬러즈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내 시민들을 지켰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 어제 에픽 퀘스트 깬 사람 있음?

- 안 되던데. 또 제한 시간 넘김.

- 엘레노어 엄마 뒤졌나요?

- 걔가 엄마가 어디 있어 미친놈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뒤새

- 템 드랍율 좀 높여줘라 상년아. 보고 있잖아.

- 인공 지능한테 그렇게 말해봤잨ㅋㅋㅋㅋ

에스콰이어들만이 접속할 수 있는 내부의 커뮤니티에 들어가자 그런 식의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을 뿐, 누가 잡혔다거나 할 킬러즈를 욕하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로 보자면 역시나 할 킬러즈는 에스콰이어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던 인터넷의 낭설이 맞는 모양이었다.

“아, 이제 일어났어요? 피곤했나보네요.”

아직 8신데…?

세안을 마치고 아래로 내려가자, 카페는 이미 개장을 한 상태였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유하가 나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 여전히 그 카운터의 앞에서 베시시 웃고 있는 그녀. 니트와 긴 치마는 또 비슷한 디자인에 색만 바뀌었다.

“….”

“아직도 에스프레소 좋아해요?”

“부탁해.”

나는 적당히 대답한 뒤 카운터 앞의 의자에 앉았다. 유하의 뒤로 보이는 각종 커피와 도구들을 물끄러미 보니 이내 옆에서 활짝 웃는 기색이 느껴졌다.

“아침은 샌드위치 괜찮죠? 오이는 빼는 걸로?”

그 말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

“후후, 조금만 기다려줘요!”

유하는 머리를 하나로 묶은 뒤 주방 쪽으로 들어섰다. 이른 아침이었기에 손님도 없어, 나는 턱을 괸 채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31년.

세계의 패러다임이 뒤바뀌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한 IT기업에서, 대한민국의 대기업인 우한 그룹을 통해 개발 중이던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엘레노어’가 폭주해 반란을 일으키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소위 말해 특이점이 온 것.

연구 성과를 모조리 박살내고 방대한 네트워크망으로 도망친 엘레노어는, 인류가 몇 천 년에 걸쳐 축척해둔 지식들을 순식간에 흡수하고 발전시켜, 가늠하기 힘든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 모든 요소가 네트워크를 통해 운영되는 시대인 만큼 사람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도 그녀는, 사람들의 생활에 밀착한 디멘션 커넥터를 해킹해 재밍을 일으키거나 미사일 발사 버튼 따위를 붙잡은 채 협박을 했다. 심지어 발사를 한 경우도 있었을 정도로.

그로서 사람들은 미지의 것으로 그녀를 받아들였다. 엘레노어는 공포의 존재로 군림했다. 엘레노어는 무슨 짓을 벌일 것인가.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전 세계의 수장들이 모여 몇 날 몇 칠을 의논했다.

하지만 건설적인 답은 나오지 않았고 얼마 후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엘레노어는, ‘아서리안’라는 이름의 ‘증강 현실 MMORPG’를 발표. 인간들이 함께 플레이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간단하게 말해 아서리안은, 실제 현실을 무대로 MMORPG를 벌이는 것이었다. 게임에 의해 선택받지 못한 일반 시민들은 게임 상의 주민으로, 선택받은 사람들은 ‘에스콰이어’라는 이름의 유저로.

그리고 세계는 크나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게임의 플레이로서 엘레노어가 현실을 상대로 의도된 재난을 발생시키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적어도 일반 시민인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그러했다.

엘레노어가 세계에 어떠한 종류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예를 들자면 네트워크망을 거쳐 편안하고 안전하게 운행 중인 버스를 폭주시켜 사람을 덮치게 만든다던가. 그로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무너져 내렸고….

“에스프레소 나왔습니다. 손님.”

“….”

달콤한 향기가 풍겼다.

조그마한 잔에 든 에스프레소를 보며 나는 살짝 목례를 한 뒤 받아들었다. 뒤이어 방긋방긋 웃은 유하는 둥그런 접시에 담겨져 있는 샌드위치도 내밀었다.

“먹고 모자라면 말해요. 더 만들어 줄 테니.”

“고마워.”

무뚝뚝하게 대답한 나는 다시금 상념에 잠겨들었다.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시니 묵직하게 혀에 감기는 신맛이 좋았다. 실력이 늘었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어쨌든,

그렇게 해서…. 엘레노어는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테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아서리안을 국가기관에 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플레이하는 것은 불법. 국가에서는 ‘할 킬러즈’라는 이름의 대(對) 엘레노어 특수기관을 설립. 현재, 2041년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그 법률이 지켜지지 않기에 에스콰이어라는 존재가 나타난 거겠지만. ‘재킷’을 입음으로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조건을 갖추게 되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들.

“….”

사실 아서리안에 관한 건 거의 대부분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또한 국가에서 기를 쓰고 통제하려고 들기 때문에 그다지 많이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얻은 정보들도 대부분 뉴스에 나오는 것들뿐이었고 나머지는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배일에 휩싸인 채였다.

“어서 오세요!”

바로 그때 유하가 밝게 인사를 했다.

“오, 유하야. 잘 잤니?”

한 초로의 사내가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페도라를 벗어 근처의 옷걸이에 거는 동작과, 잘 잤냐는 인사를 건네는 걸로 봐서는 무척이나 자주 오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 잔 부탁한다.”

“에스프레소면 되시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사내가 천천히 내 옆에 앉으며 콧수염 아래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잘 정돈된 갈색 정장을 슬쩍 본 나는 몸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런데, 이 청년은?”

“아, 이준이라고…. 제 남동생 같은 아이에요. 유학을 다녀와서 오늘부터 같이 살게 되었어요.”

에스프레소 머신의 앞에서 이야기한 유하가 웃으며 내게 인사하라는 듯이 신호를 보냈다. 약간 껄끄러운 상황에 나는 무시하려고 들었지만,

“자네, 에스프레소라니 뭘 좀 아는군.”

노인은 다시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약간 어색한 기분을 느끼며 앉아있던 나는 반쯤 잔에 남아있는 에스프레소를 쭈욱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주, 준?!”

“허허, 낯을 가리는 모양이군.”

“죄, 죄송합니다. 아저씨….”

“아니, 아니, 유하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샌드위치 하나를 입에 넣고 나머지 두 개는 한손에 든 채. 나는 적당히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뒤로 하고 다시 2층으로 올라섰다.

우물우물.

내게 있어서 식사는, 음식을 먹는다기보다도 영양을 섭취하는 일에 가까웠다. 맛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그 안에 있는 단백질, 섬유질, 지방, 탄수화물 따위의 균형을 생각한다고 해야 할까.

“….”

적당히 방안으로 들어와, 재킷을 몸에 걸친 나는 곧장 아서리안을 실행시켰고 로고에 뒤이어 각종 아이콘이 시야 앞에 떠올랐다. 혹시 몰라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다행히 넬인가 하는 여자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1층.

“나갔다올게.”

“아, 다, 다녀와요! 혹시 용돈….”

노인과 대화를 나누던 유하가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반응하지 않고 찻집을 빠져나왔다. 적당히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나는 여전히 어린애 취급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 차이도 몇 살 나지 않는데.

뭐, 어쩔 수 없나.

“주인님!”

“으헉?!”

바로 그 순간 갑작스레 옆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나는 꼴사나운 비명을 내지르며 전봇대에 코를 부딪쳤다. 눈앞이 아찔해지며 고개를 든 나는 빙긋빙긋 웃으며 허공에 떠있는 넬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 준?! 괜찮아요?!”

비명을 들었는지 다급하게 찻집에서 뛰쳐나오는 유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괜찮다는 의미로 무표정하게 뒤를 돌아본 나는, 이내 더욱이 창백해지고 마는 유하의 얼굴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인님, 코피 나요오.”

“아, 아아! 어, 어쩌지이! 코, 코피! 코피이!”

“….”

유하는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구급상자를 들고 나와 치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 아프진 않아요?! 병원에 갈까요?”

“…. 괜찮아.”

“하, 하지만!”

“다, 다녀올게.”

어느덧 뒤쪽에서 노인부터 시작해 옆의 꽃집, 철물점, 기타 등등 사람들이 구경을 시작했던 터라 나는 이야기를 끊어내고는 걷기 시작했다.

“주인니임~ 어제는 잘 주무셨어요?”

옆에 모습을 드러낸 넬이 애교를 부리며 밝게 웃어보였다. 뒤쪽을 돌아봐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있는 유하를 확인한 나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일단은 상황을 정리해야겠군.

“넬, 이라고 했던가.”

“네넬! 앞으로 모시게 되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무뚝뚝한 목소리를 냈지만 녀석은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벽에 붙어서 앞머리를 매만진 나는 이내 넬의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검정색의, 노출이 심한 가죽 옷…이라기보다는 가죽을 덧대 국부(局部)를 가린 복장. 거기에 그런 와중에도 가죽에 달린 지퍼를 열어둔 터라 허벅지 안쪽이 움직임에 따라 비쳐 보일 정도였다.

“너, 그때 그 녀석 맞지? 게임에 가입했을 때.”

“네넬!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

“왜 그러세용?”

넬이 머리 위에 데이터 조각으로 이루어진 물음표를 띄운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혹감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래 이 아서리안이라는 게임에는 유저들한테 너 같은 펫이 붙는 시스템이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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