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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2화 (2/321)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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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 ‘에스콰이어’로서의 시작.

지겨운 일상의 탈출구로서,

사람들은 게임에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흠뻑 젖은 채 점점 거기에 동화되어간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허상이라는 걸 모르고, 그저 그것이 어머니의 양수라도 되는 것처럼 몸을 맡긴다.

그리고 거기에서 죽던가.

아니면 지겨운 일상으로 돌아오거나.

그로부터 삶은 변화해,

무엇이 진짜인지.

누가 진짜 자신인지.

점점 잃어가는 건 아닐까.

‘헛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

나는 앓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간격에 맞추어 레일 위를 질주했다. 한강 다리를 넘어가는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같아, 나는 무척이나 오랜만에 눈에 담은 풍경을 바라보았다. 늦게 지는 석양이 강물에 빛을 새기는 것이 눈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귓가에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당신의 삶은…. 이노센스하게 바뀝니다.]

“…?”

[우한, 미티어 13. 체인쥐 유얼 롸이프.]

“지리멸렬한 놈들.”

나는 가볍게 혀를 차며 손가락을 튕겨 인터페이스를 소환했다. 그리고는 두들겨 자동으로 접속이 되어있는 지하철 내의 무료 와이파이를 해제했다.

“이놈들은 무료라고 하면서 이런 식으로 꼭 광고를 넣는단 말이지.”

굴지의 대기업 우한 그룹. 지긋지긋한 이름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이내 역에 도착한 지하철에서 내렸다.

- 준, 언제쯤 도착해요?

계단을 내려가던 중, 메시지가 도착했다.

“….”

시선의 오른쪽 위에 떠오른 마커가 예상하는 도착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10분 뒤, 나는 대답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 이내 메시지 창을 꺼버리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짐은 미리 도착해 있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느긋하게 가면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개찰구를 나서 바깥으로 나가려던 나는, 코트 차림의 사내들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늦게 생겼군.

- 검문이 있어.

나는 그렇게 메시지를 적어 전송하고는 이내 줄 뒤쪽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노래라도 들을까 싶어 허공을 휘젓고 있자니, 귓가에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아, 죄송합니다만. 현재 아서리안의 ‘게임 플레이’가 진행된다는 예보가 있으므로, 시민 여러분께서는 검문에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뇌 속에 징징 울리는 듯한 목소리, 보안 설정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말을 거는 불청객에 나는 귀가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이지 인권 의식이라고는 어딘가에 버려둔 듯한 녀석들이었다.

뭐, 나 같은 게 그러거나 말거나,

검문은 구형 기기로 디멘션 커넥터를 스캔해보는 과정으로서 진행되었다. 재킷은 겉으로 보아서는 알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인 거겠지만, 그만큼 시간은 지체되어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그들에게 섣불리 저항했다가는 ‘에스콰이어’로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별 수도 없는 상황.

“후우.”

내가 다시금 길게 한숨을 쉰 다음 순간,

“거기, 한숨.”

사람을 한숨으로 지칭하는 녀석이 누구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청포처럼 푸른색 머리가 물결치며 떨어졌다. 번지점프를 한 사람처럼 허리 끝에 닿아 튕겨져 오른 머리는 하나로 묶은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며 그 아래에 위치한 딱딱한 외모를 약간이지만 부드럽게 만들었다.

화장기라고는 없는 분홍색 입술, 날카로운 눈매.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뭔가 불만이라도 있나?”

검정색에 코트를 입은 여자가 이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굽이 높은 부츠와 속살이 비치는 스타킹, 단련한 듯 군살이라고는 없는 몸매. 주름이 진 치마에 상의는 셔츠와 넥타이를 갖춰 입어 저게 대체 무슨 군복이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능적인 미가 엿보였다.

“대답해라. 불만이 있느냐고 물었다.”

“딱히.”

더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적당히 대답하며 고개를 휙 돌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차가운 손가락이 턱을 휘감는 걸 느꼈다.

“이쪽을 봐라. 시민.”

“….”

차가운 느낌에 나는 슬쩍 짜증을 부리며 여자의 손을 쳐냈다 무뚝뚝하게 서있던 여자는 모욕을 듣자 참지 않고 손을 높이 들었지만 난 그걸 간단하게 잡아냈다.

“가만히 있어!”

“윽!”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다른 요원들에게 제압당해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상태가 되었다. 먼지와 흙 같은 것이 얼굴에 달라붙었지만, 그 불쾌함보다도 나는 좀 참을 걸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걸 느꼈다.

가끔 이렇게 뇌가 말을 안 듣는단 말이지.

“체포할까요?”

“….”

여자는 차가운 눈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체포해.”

오늘 집에 가기는 글렀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남자들에게 붙잡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까이 다가온 여자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천천히 내 얼굴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민. 협조해라.”

“…. 윽!”

다음 순간 역시나 뒤쪽에서 경봉이 날아들어 뒤통수를 내리쳤다. 나는 통증을 느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 꿇어!”

몇 번이고 행해지는 정당화된 폭력.

“그만…. 됐다.”

“대, 대위님.”

“내가 심문하도록 하지. 구루마로 끌고 가.”

…? 구루마?

“네, 네! 알겠습니다!”

방금 뭔가 이상한 용어가 나온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남자의 손에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갔다. 아까 전에 맞을 때 디멘션 커넥터가 고장이 난 걸까. 눈앞이 아찔해지며 팝업창들이 지지직 울려댔다. 뇌가 고장 난 기분이었다.

멀어져 가는 대기선, 차갑게 나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인도하기 시작하는 여자.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무력하게 끌려갔다,

고 생각한 순간.

“큭?!” “꺄악?!” “뭐, 뭐야?!”

폭음과 함께 역사가 뒤흔들렸다. 사람들이 자리에 주저앉았고 할 킬러즈들이 놀라 주변을 살펴보았다. 천장으로부터 부르르 떨어지는 먼지.

잠깐의 정적.

이후, 검은 궤적이 머리 위를 스치고 날아갔다.

“젠장!”

먼저 반응한 것은 여자였다. 코트가 펄럭거리며 전자 회로 같은 붉은색 라인이 그 위를 수놓으며 사라져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발에 힘을 준 여자가 허공으로 높이 뛰어올라가 방금 전의 검은 궤적, 다시 말해 ‘에스콰이어’들을 쫓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이쪽으로!”

“대피소로 안내하겠습니다!”

역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일까. 요원들은 에스콰이어들을 쫓는 쪽과 시민을 대피시키는 쪽으로 나뉘어 능숙하게 상황을 통제했다. 나를 붙잡고 있던 요원들은 추격을 맡았는지 코트를 기동시키며 뛰쳐나갔다.

재미있는 상황인데.

나는 몸이 자유로워지자 가볍게 어깨를 툭툭 털어냈다. 주변을 둘러보니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할 킬러즈의 말을 듣는 시민들이 보였다.

“거기 당신! 빨리 이쪽으로!”

방금 전까지 경봉으로 날 때리던 녀석이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의 충격으로 깨진 걸까. 유리창 바깥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잘 됐군.

‘재킷’은 없는 상태였지만, 검문이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나 역시 걸렸을지도 모르니까.

“….”

“?! 너!”

나는 무뚝뚝하게 남자를 힐끔 본 뒤 그대로 뛰쳐나갔다. 남자는 한순간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향해 달려들려고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뒤로 돌아섰다.

“디멘션 커넥터. 오류 확인 후 재부팅.”

- 오류 확인 후, 재부팅을 진행합니다.

지직거리던 차라 꺼둘까 싶기는 했지만, 어쨌든 나는 반쯤 걸쳐져 있던 가상공간으로부터 완전히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왔다. 지도는 기억해 두었으니 괜찮겠다고 생각한 나는 이내 텅 빈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죽은 도시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차량들도 그 자리에 멈춰진 상태로, 아무도 나에게 신경을 쓰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도로를 질주해 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녀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맨눈으로 세계를 보는 건 또 참으로 오랜만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허공에서 궤적을 그리며 몇 번이고 충돌하는 에스콰이어들과 할 킬러즈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적당히 먼 거리였고 또한 싸움이 격렬했기 때문에 이쪽을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 오류 발견 없음. 작업을 끝마쳤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팝업창이 떠오르며 디멘션 커넥터가 활성화되었다.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해 웃은 나는 곧장 팝업창을 터치해 프로그램의 설치를 진행했다.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증강된 현실의 게임.’

아서리안을.

- 프로그램 ‘아서리안’을 설치합니다.

이게 있어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거겠지.

- 기기 내부 용량이 부족합니다.

“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중얼거리자 디멘션 커넥터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 프로그램 용량, 약 3000테라바이트입니다. 현재 남은 기기 용량, 5000테라바이트 중 약 1700기가바이트.

“뭐 그렇게 용량을 많이 잡아먹어…?”

나는 놀라 중얼거리며 팝업창을 띄우고 지울만한 파일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대충 불법으로 저장해둔 수많은 노래들, 각종 프로그램과 찍은 사진. 마지막으로 남자들을 위한 그렇고 그런 걸 모조리 지워 용량을 확보했다.

얼마 후, 설치가 완료되자 게임은 실행되었다.

화려한 UI는 떠오르지 않았다. 검정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Arthurian’이라고만.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세계가 뒤바뀌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했다.

아스팔트 바닥에 풀숲이 생기거나 용암으로 지상이 뒤덮였다. 내가 서있는 곳의 바닥 역시 쩌적 갈라지며 전투의 격렬한 흔적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살짝 발을 디디자 옆에 조그마한 상태이상창이 생겨났다.

- 상태 이상 : 발빠짐. 5초 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발을 떼자 그대로 상태 이상은 사라졌다. 내 경우에는 재킷을 입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게임 내부의 물리적 영향을 받지는 않는 걸까. 나는 대충 상황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위쪽으로부터 양피지가 휙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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