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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1화 (1/321)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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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

Prologue : 이것은 순전히 게임일 뿐입니다.

낡고 좁아터진 방안에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 나는, 순식간에 가상의 공간 안으로 정신이 들어서는 걸 느꼈다. 검은 장막이 걷히듯 멀리서부터 밝은 빛이 나타나 주변이 흰색으로 물들었지만, 나는 그 과정이 게임에 ‘가입’하는 과정치고는 무척이나 소박하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게임’치고는, 무척이나.

“어서 오세요! 신규 ‘에스콰이어’님이신가요?”

그 순간, 눈앞에 밝은 여자아이의 모습이 훌쩍 나타났다. ‘재킷’의 생성을 돕는 인공 지능인 듯했다.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소리가 들려온 방면을 돌아보았다. 어딘가 먼 곳으로부터 재킷이 잔뜩 걸린 행거가 날아와 주변을 에워쌌다.

귓바퀴에 부착된 VR‧AR 겸용 머신인 ‘디멘션 커넥터’가 뇌를 가상현실의 세계로 진입시킨 것이었다. 걸음을 옮겨 행거를 둘러보자니 근처를 부유하고 다니던 여자애가 이내 웃으며 내 앞에 발을 디디고 섰다.

“일단 디자인을 골라주셔야 해요!”

흰색의 머리칼을 하나로 땋아 묶은 여자애는 밝게 웃으며 다양한 디자인의 재킷이 걸린 옷걸이를 하나하나 꺼내 호객 행위가 심한 옷가게 직원처럼 나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자애의 복장은 옷이라기보다도 검정색의 가죽을 은밀한 부위에 덧댄 모습으로, 새하얀 피부와 대비되었다. 거기에 완벽에 가까운 몸매로 인해 나는 시선을 둘 곳을 찾기 힘들어지는 걸 느꼈다.

마지막으로 커다랗고 순수한, 그러면서 동시에 붙임성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아름다운 노란색 눈동자까지.

“에스콰이어님은 키도 크고 핏도 좋으셔서 무슨 옷을 입더라도 다 잘 어울리시겠다! 머머. 이 코트도 멋있고!”

“재킷이잖냐….”

“네?”

신경을 박박 긁어내는 듯한 여자애의 목소리에 나는 약간 어이가 없어져 대꾸하며 목에 닿아 있는 코트를 밀어냈다. 잠시 멍하니 입술을 오므리고 있던 여자애가 다른 옷을 골라주기 시작했다.

“그러면 조끼? 조끼는 어떠세요!”

“…. 남의 몸을 멋대로 스캔하지 말아줄래.”

무슨 인형놀이마냥 몸에 옷이 걸쳐지기 시작하는 광경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끼에서 코트로, 그리고 가벼운 아우터로. 심지어는 30년 전에도 입지 않았을 촌스러운 남방까지. 여자애는 흥분해서 마구잡이로 옷을 갈아입혔고 나는 벌써부터 지치는 걸 느끼며 눈앞에 떠오른 거울에 비치는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적당히 한쪽으로 기른 검정색 앞머리에 무뚝뚝한 인상. 녹색으로 된 팝업창이 떠올라 186이라는 키와 80kg이라는 몸무게, 근지방량이 정밀하게 표시되었다.

몸무게는 조금 줄었군.

“음~ 아무래도 첫 인상은 중요하잖아요? 이후 추가 과금에 따라 다른 옷으로 변환하실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다른 분들에게 보여드릴 옷이니 만큼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고 넬은 생각해요!”

“넬?”

“네넬!”

‘네, 넬’이라고 하고 싶었던 건가.

어쨌든 이름이 넬인 모양이었다.

“넬.”

“네넬!”

“진행이나 해.”

“으엥.”

넬이 우는 소리를 냈다.

나는 한숨을 내쉰 뒤 눈앞의 팝업창을 밀어내 저 구석으로 치우며 옷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니 살핀다는 표현은 조금 이상할 정도로, 나는 스스로의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손을 뻗어 아무 옷이나 집어 들었다.

“어머.”

넬이 약간 놀란 듯 목소리를 냈다.

“이걸로 하겠어.”

“정말로요…?”

“그래.”

하지만 내 말에도 넬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빙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 오류라도 발생한 걸까 싶어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에 든 재킷을 입어보기 시작했다. 물론 실제로 입는 것은 아니고, 홀로그램의 좌표 이동에 불과해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재킷이었다.

가죽으로 된.

색깔은 검정색.

평범한 라이더 재킷 같은 느낌으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옷처럼 느껴졌다. 곳곳에 달린 차가운 은색 지퍼가 디자인의 개성으로서 작용하는 재킷.

- 정말로, 그걸로 결정하셨나요?

“…. 왜 그래?”

- 아뇨, 아무것도.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눈앞에 팝업창을 띄워 데이터를 조정하는 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씩 넬의 가죽…. 옷인지 그 질감 자체인지 모를 물건의 모습이 변화하며 내 가죽 재킷과 마찬가지로 지퍼가 달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대체 무슨 연출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임의 일부라는 걸까.

- 수속 완료 되셨습니다. 에스콰이어님.

얼마 후 넬이 빙긋 웃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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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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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이준

Lv : 1

Knightage : -

JACKET : Novice

Exp : 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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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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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력 : 10

방어력 : 10

민첩성 : 10

정신력 : 10

연산 속도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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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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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창에 떠오른 스테이터스를 한 번 쭉 훑어본 뒤, 나는 그대로 창을 꺼버렸다. 그리고 잠깐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넬과 눈을 마주쳤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되지?”

“축하드립니다! 에스콰이어님은 이제 ‘아서리안’을 플레이할 자격이 생기신 거예요. 실제로 입으실 재킷은 조만간 안전한 경로를 통해 배송될 거예요!”

“어느 정도 걸리는데.”

“한, 한 달쯤?”

“퍽이나 조만간이네….”

내가 볼멘소리를 중얼거리자 넬이 까르르 웃었다. 어쩐지 즐거운 듯한 태도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재킷이란, 그 사람의 심리가 표상된 거예요. 고르는 과정은 그저 게임의 일부. 처음부터 선택이 되어있었다는 거죠. 운명처럼.

“…?”

넬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힐을 신은 터라 또각, 또각. 하며 발소리가 났다. 순수해 보였던 입술 사이로 살짝 송곳니가 보였다.

“무슨 소리야.”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아까 전의 스테이터스창에는 Novice라고 적혀진 채였는데, 그거랑 그 재킷이 표방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 ‘세계’는 유저님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거죠. 사람들의 모든 행동은 기록이 되는 시대니까.

- 그 기록에 의해 ‘세계’ 다시 말해, ‘엘레노어’가 판단하여 만들어낸, 유저님만을 위한 재킷.

뇌가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넬은 무뚝뚝하게 자리에 서있는 내 목덜미를 감싸며 그대로 얼굴을 가까이 해왔다. 노란색의 눈동자는 고양이처럼 뾰족한 상이 드러난 채였다. 나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 어째서 아서리안을 플레이하시려는 거죠? 그 재킷은 처음 만들었을 때 무척이나 신기했거든요. 이런 의식 세계를 지닌 사람은 지금 뭘하고 있을까. 하면서.

“딱히 말해야할 이유라도…. 있나?”

-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 일단 좀 떨어져.”

나는 슬쩍 기분 나쁜 기억이 떠오르는 걸 느끼며 넬을 밀었다. 아앙, 하는 소리를 내며 밀려난 그녀는 입술 위에 손을 얹으며 흥미로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갤러해드.”

그리고 나는 천천히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난 이 게임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기사’가 되어야만 하거든.”

- 후후, 재미있는 이유네요. 저도 그 갤러해드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죠. 지금은 없지만.

“그렇게 재밌어 보이면 TV 중계로라도 지켜보시던가.”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뇌 속에 게임을 종료하는 이미지를 그려내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다.

“…?”

뭔가 오류가 생긴 걸까. 증강 현실의 공간이 사라지지 않아 나는 약간 당황해 몇 번이고 게임을 종료하는…. 그런 이미지를 그려내며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하지만 그대로였다. 흰색의 공간은.

- 아직 제 말이 끝나지 않았어요. 에스콰이어님.

그리고 그 뒤,

차갑게 식은 에스프레소처럼 말을 중얼거린 넬이 다시금 내 앞에 섰다. 흰색의 땋은 머리가 가볍게 살랑거리며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아니, 넬에게는 주인님이 되겠네요.

“…? 저기, 난 그런 취미 없거든.”

- 한 가지만 여쭐게요. 정말로 이 게임을 플레이할 각오가 되어 있으신가요?

“그냥 게임이잖냐. 너희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런 내 말에 넬은 킥킥 웃으며 뒷짐을 진 상태에서 다가와 귓가에 입을 가져다댔다. 나는 싸늘하게 얼어붙은 감촉을 느꼈다.

- 아니요. 이 ‘아서리안’이 그냥 게임은 아니죠. 이것은 세계의 존망을 걸고 벌어지는 성배의 탐색.

즉,

-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게임은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신작, 네크로맨서 재킷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호호.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기다려 주셔서 읽어 주셔서.

정산금을 보태주셔서.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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