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콰악!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바알은 두 조각으로 쪼개지던 자신의 코어를 오른손으로 꽉 쥐어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는 듯한, 초라하기까지 한 불안한 모습으로.
“아직… 아직이다.”
마력으로 살아가는 악마에게 코어는 생명 그 자체다.
인간으로 치면 터져나간 심장을 손으로 쥐어 버티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
그 광경에 흠칫 놀라는 조원호.
바알은 그런 그에게 딱딱하게 굳은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크, 너는.”
바알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조원호와 눈을 마주했다.
여태동안 보여 왔던, 하등한 벌레를 바라보는 듯한 경멸의 눈빛이 아니라 자신과 대등한 입장에 선 어떤 이를 바라보는 그런 눈빛이었다.
“너는 보아왔을 것이다.”
“비록 그리 긴 세월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 못지않게 겪어왔고 느껴왔을 것이다.”
“그 수많은 전장들을, 알고 지냈던 이들이 허망하게 죽어가는 것을 무력하게 바라보는, 그 처참한 심정을.”
오랫동안 감춰두고 있던 그의 진심.
마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잔혹하기로 알려진 이가 내뱉은 목소리에는 놀랍게도 동정과 연민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이 지긋지긋한 짓거리를 언젠가는 멈추고 싶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수단을 모두에게서 빼앗기로 했다.”
그렇기에 그는 마계의 마력을 모조리 훔쳤다.
천계의 마력까지도 훔쳐 봉인시켰다.
그 강대한 두 힘을 합쳐내어 통제하려 했다.
갈등은 서로에게 힘이 있기에 빚어지는 것.
그 힘을 모두 빼앗고,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모든 갈등들을 억눌러내는 억제력이 되고자 했다.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 수많은 고난들을 꺾어내면서, 마침내 네가 내놓은 결론이 무엇이란 말이냐.”
바알의 목소리에선 간곡함마저 느껴졌다.
잠시 생각에 잠기는 조원호.
그는 곧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몰라.”
“…모른다고?”
“네 말마따나 내가 살아온 날은 그리 길지 않고… 그 중에 몇 년은 내 목숨 건지기도 힘들었던 날들이었으니까,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해본 적은 별로 없다고.”
조원호는 조금 진지해진 목소리로 덧붙이듯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한 번 들어볼까.”
“세상은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정들로 얽혀있다는 것. 그걸 단 한 사람이 헤아리려는 건 오만한 생각이지.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너는 재앙에 불과하다.”
“하하… 틀린 말은 아니구나.”
바알은 입가에 실소를 띄우며 말했다.
지극히 단순한 대답이었지만.
그렇기에 타당한 말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진리가 담겨 있었다. 그 또한 알고 있었으나,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애써 무시하고 있던 진리다.
그 말에 안심을 했다는 듯.
바알은 손으로 움켜쥐고 있던 가슴의 코어를 스스로 뜯어냈다. 그리고 조심스레 조원호의 손 위에 건넸다.
“네 놈도 알고 있겠지만… 여기에 담긴 힘은 세계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힘이다.”
“…알고 있어.”
“그러니 이대로 세상에 풀리게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겠지. 그러니까…….”
‘네가 책임지고 지켜내거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바알의 몸은 빛의 알갱이로 흩어져 허공으로 사라졌다. 억지로 버텨왔던 만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확실히… 이건 그 자체만으로도 폭탄이네.”
그와 동시에 그의 코어는 붕괴되어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형태는 유지하고 있었지만, 줄줄이 그어져가는 금 사이로 새어나오는 마나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순식간에 과포화상태로 메워지는 결계 내 공간.
이미 일반인들은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다.
다소 부족하긴 해도 서로 엇비슷한 양의 마력을 지니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조원호는 그게 착각이었음을 금방 깨달았다.
비교하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강대한 마력이었다.
지니고 있는 것이 오히려 페널티가 되었을 정도로, 신체에 품고 안정시키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되었을 정도로.
조원호가 지니고 있는 마력 또한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여기에 담긴 마력과는 터무니없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이게 이대로 한꺼번에 풀려나가게 된다면.
그 자체로도 어마어마한 혼란이 일어나겠지.
지금은 결계 내에 가둬두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대로 결계를 걷어낸다면 이 강대한 마력이 한꺼번에 풀려나간다는 결과는 동일했다.
“이걸 진정시킬 만한 방법은…….”
자신이 갖고 있는 마력과 부딪혀, 서로 상쇄시킨다.
마력 자체를 자신의 신체 내에서 상쇄시키고, 나머지를 차근차근 흡수한다.
물론 거기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 걸린다.
여태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만큼을 다시 한 번 헤아릴 정도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 걸릴지도.
그동안 마나회로는 전부 타들어갈 것이고, 기아스가 뒤엉키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고통이 전신을 휘감을 것이다.
“원호.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아차린 걸까.
그를 지켜보던 미카엘라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너 혼자서 모두 짊어질 필요는 없다고.”
물론 저 강대한 마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하다.
그건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고작 한 사람이 짊어지기엔 지나치게 커다란 짐이었다. 설령 그 대가가 어마어마한 혼돈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너도 알겠지만… 난 선생님과 약속을 했었어.”
조원호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가겠다는 것.
하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에겐 후회가 남아있었으니까.
일상을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후회가.
그는 언제까지나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후회와 회한은 그가 일상 속에 안주하는 것을 방해했다. 설령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더라도, 그건 단지 그 시늉을 할 뿐이었다.
허나 그의 과거는 고쳐졌다.
기적과도 같은 그녀의 존재로.
그는 어설픈 모양새로나마 다시금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더 이상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
그렇기에 다시 얽매일 과거를 만들어내는 건.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조원호는 말없이 바알의 코어를 자신의 가슴 위에, 자신의 코어 위에 얹어냈다.
코어는 얼음 조각이 녹아들듯 자연스레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고, 조원호의 몸은 이내 파르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흔들리고 있는 그의 몸을.
미카엘라가 뒤에서부터 끌어안았다.
그리고 방금 바알의 코어가 스며들었던 가슴 위에 자신의 손을 얹어냈다.
“잠깐, 그렇게 하면…!”
“알아. 회로가 서로 연결되겠지.”
조원호도 견디기 버거울 정도로 방대한 마력.
심지어 그녀가 견뎌야하는 건 바알의 마력뿐만이 아니다. 조원호가 갖고 있던 아르트의 마력까지도 함께 흘러들어가고 있을 터였다.
그녀가 견디기 버거워하는 것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표면에 드러난 초록빛의 회로와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도드라진 핏줄이 그녀의 얼굴에 얼기설기 얽혀있었으니까.
그 위태로워보이는 얼굴로.
그녀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나도 더 이상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을 뿐이야.”
그녀는 다른 이를 지키겠다고 맹세하였으나, 자신을 지켜주는 이의 등을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어야했다.
또 다른 그녀는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야했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뒤에 남겨둔 채로 눈을 감아야했다.
그 무력감.
그 서글픈 후회.
두 기억은 모두 그녀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 또한 이대로 조원호를 내버려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녀 또한 더 이상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좀 오래 걸릴 텐데.”
“둘이라 잘됐네. 혼자 있는 것보단 덜 심심할 테니.”
그녀의 말에 조원호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 위에 올라와있는 그녀의 손에, 조심스레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 * *
전 세계에 게이트가 열렸던 엔드 데이.
뿐만 아니라 마계의 대마왕들이 모두 한 세계에 집결하는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났고.
그 날은 마지막 날이라는 별칭이 과장이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날이자 또한 동시에 가장 위대한 기적과 희생이 있었던 날이었다.
허나 세월이란 먼지는 모든 걸 흐릿하게 덮어내는 법.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이후.
대한민국의 서울은, 그 때의 상처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예전과 같은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다만 변치 않는 곳이 하나 있었으니.
서울의 한복판에 펼쳐져 있는, 한 밤중에도 찬란한 황금빛을 뿜어내는 금빛의 결계였다.
“협회장님! 또 여기 계십니까?”
그 옆에 높이 솟아올라와 있는 언덕.
엔드 데이 때 있었던 전투의 여파로 솟아올랐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주변 일대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심판의 결계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
이곳엔 자그마한 공원이 만들어져 있었고, 언덕 정면에 세워진 벤치 위에는 잿빛 머리의 여성 한 명이 다리를 꼰 채로 앉아있었다.
“왜, 여기 있으면 안 되냐?”
꽤나 지긋한 나이로 보이는 노년의 여성.
살아남은 몇 안 되는 S급 헌터, 유선.
세월의 인자함보단 섣불리 다가가기 힘든 냉기를 뿜어내고 있는 그녀는 입에 필터 담배 한 개피를 문 채로 까칠한 목소리로 답했다.
“할 일은 다 끝낸 걸로 알고 있는데.”
“30분 뒤에 회의가 있지 않습니까?”
“30분이면 북경오리 먹으러 베이징도 다녀올 수 있겠구만 유난 떨고 있네. 걱정하지마라.”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손바닥에 비벼 끈 다음, 다시 한 개피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적어도 몇 분 동안 자리를 떠날 생각은 없어보였다.
“…내 참, 봐도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뭐가요?”
“너는 그런 생각 들지 않냐? 완전히 초토화됐던 일대에, 다시 저렇게 건물들이 세워진 걸 보면 말이다.”
한 때 전투의 여파로 산산이 부서졌던 곳.
하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전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건 중심에 덩그러니 놓인 저 황금빛 결계뿐. 그마저도 최근에 들어선 인기 관광지로 취급받는 상황이었다.
“뭐… 상황은 안 좋았지만, 반대로 마석은 그만큼 많았으니까요.”
조원호와 바알의 전장이 저 황금빛 결계로 옮겨갔을 때. 사방에 널려있던 마족들의 시체는 마석만 남겨놓은 채 빛의 알갱이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덕분에 갑작스레 넘쳐나게 된 마석들.
마석은 그 하나하나가 강대한 에너지원이다.
서울이 통째로 폐허가 되었지만 시외로 대피시켰던 일반인들은 다행히 무사했고, 도시를 복구할 에너지는 사방에 널려있었다.
물론 그 때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는 정도지만.
그래도 서울은 다시 과거의 활력을 되찾았다.
“어쨌거나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가끔은 너무 속편하게 사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
유선은 씁쓸한 표정으로 황금빛 결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조원호와 바알, 그리고 미카엘라가 저 안으로 사라진지도 벌써 20년이 흘렀다.
그 때의 일은 벌써 과거가 되었지만.
어쩌면 저기에선 아직까지도 그 날의 전투가 이어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 편히 지내고 있는 것에서 간혹 괴리감이 느껴질 뿐더러, 간혹 미안한 마음에 얼굴을 감싸곤 한다.
‘조원호…….’
조용히 살고 싶다고 했던 녀석.
그럼에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던 녀석. 그를 끌어들인 것은 자신이었기에, 유선은 가슴 한 켠의 짐을 여태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 때.
에에에에에엥—
도시 전체에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긴급 상황을 알리는 대피 경보.
훈련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 일정은 없었으니까.
“…갑작스럽구만.”
그 경보의 원인을 알아차리는 건 쉬운 일이었다.
눈앞에 있던 금빛의 돔이 흐릿해져가고 있었으니까.
주변에 배치되어 있던 경계 초소에 비상령이 떨어지고, 곳곳에 흩어져있던 헌터들 또한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조원호와 미카엘라의 귀환일 수도 있었으나.
어쩌면 그곳에서 바알이 다시 나올 지도 모르니까.
그녀는 이미 은퇴를 한 상황이었지만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간만에 긴장어린 얼굴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윽?”
그리고 금빛의 결계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꽤나 강력한 바람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순간 눈이 감기고 몸이 밀려날 정도의 바람.
거기엔 상당한 양의 마력이 담겨 있었다.
허나 거기에 담긴 기운은 따뜻했다.
긴장으로 굳어있던 몸을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마치 봄바람처럼 따스하게 감싸 안는 바람.
“…흠.”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앞을 바라보던 유선은 품속에 손을 넣고 담배갑을 꺼내들어 끝을 두드렸다.
“뭐야, 돗대였구만.”
탁, 탁.
끝을 두드리지만 담배는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아쉬운 기색을 내비치며 다시 벤치에 앉았다.
황금빛의 결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언덕.
허나 시야의 중심에 들어와 있던 황금빛의 원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있었고.
원이 자리 잡고 있던 공간의 중심엔 예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두 남녀가 서로를 마주 안은 채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