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이건, 대체 무슨…….”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황금빛의 결계.
갑작스럽게 결계 안에 갇히게 된 바알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드러났다.
일단 그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손을 뻗어 마력을 펼쳐내어 외부와의 연결을 시도했다. 허나 그 시도는 여지조차 없이 깔끔하게 실패로 돌아갔다.
공간을 넘는 것은 물론이고 차원을 넘어서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외부와의 연결은 완벽하게 단절되어 있었다.
이 공간 자체가 다른 평행세계로 분리되어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현재 이 공간은 외부와 완벽하게 격리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그렇기에 바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그가 지니고 있는 마력은 그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마력의 절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에 버금가는 수준의 마력이 맞은편의 조원호에게 깃들어 있다.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마력이 이곳에 모여있는 셈이다. 그리고 저 결계는 그 마력을 모두 가둬내고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보기 좋게 말이다.
“…미카엘라?”
“원호.”
그 맞은편에 선 조원호 또한 당황하긴 마찬가지다.
그는 이 결계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미카엘라의 심판의 결계.
그녀의 가문에 대대로 계승되어 오는, 외부와 내부를 차단시키는 공간침식형 결계.
결계라는 것은 세계를 비틀어 자신의 공간을 구축하는 술식이다.
상대를 구속시키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을 구축하기 위한 술식. 그 근간에 있는 것은 상대방을 제압하고 승산을 높이기 위함에 있다.
허나 이 결계는 다르다.
그저 외부와 내부를 철저하게, 그리고 절대적으로 분리시킬 뿐이다. 자신의 승리를 목적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전장을 제한하는 것에, 다른 이들을 지키는 것에 목적을 둘 뿐이다.
술식이란 것은 점차 고도화될수록 구조가 복잡해지고 다양한 기능을 내포하게 되기 마련이다.
허나 이 결계는 다르다. 그저 무식할 정도로 단순하게 한 가지 만을, 그저 상대방과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에만 집중한다. 다른 이들을 지키는 것에만 집중한다.
심지어 시전자의 신체를 술식의 중심으로 삼는, 결계를 깨트리는 조건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건다.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위험한 방식.
그렇기에 이 결계는 어마어마한 억제력을 지닌다.
공간을 격리시킨다는 효력에 있어서만큼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것이 설령, 모든 차원을 아우를 정도로 거대한 마력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 안에서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외부에 효력을 미칠 염려가 없다.
설령 한 세계가 터져나갈 정도의 힘이 방출되더라도 외부에는 티끌만큼의 영향조차 없으리라.
허나 그렇다는 건.
이곳에 미카엘라가 있다는 것이다.
조원호는 자신의 뒤쪽에 나타난 금발의 기사를 당혹감이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여길 대체 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그녀는 조원호의 말을 잘라냈다.
그리고 앞에 서있는 적을 가리켰다.
“지금 네가 해야 할 건 따로 있잖아.”
“하지만…….”
이곳은 외부와 분리되어 있는 공간.
덕분에 바깥은 전투로부터 안전하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 내부는 세상 어느 곳보다도 위험한 곳이다. 그런 곳에 그녀가 있다.
“하여간, 너는 가끔 쓸 데 없는 걱정이 발목을 잡아서 탈이라니까.”
그런 그를 꾸짖듯 미카엘라가 말했다.
그에겐 익숙한 말이었다. 한 때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말. 미카엘라에게, 정확히는 더 긴 시간이 지난 후의 그녀에게, 그의 선생님에게 들었었던 말.
그리고 미카엘라는 마력을 펼쳐 방벽을 만들어냈다.
기껏해야 A급 헌터에 불과했던 그녀가 펼쳐낸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두텁고 단단한 방벽. 그리고 그곳에서도 그리운 잔상이 느껴졌다.
“…그렇군요, 선생님.”
선생님이 간직하고 있던 힘은.
모두 미카엘라에게 전해졌다.
기나긴 세월 동안 추악한 모습으로나마 살아남아있던 그녀는, 자신이 못 다한 의무를 자기 자신에게 전달하고서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이 전장이다.
외부와 완벽하게 격리되어있는, 황금빛으로 둘러싸여있는 이 전장.
그렇다면.
“그렇다면… 제가 할 일은 하나뿐이겠지요.”
그녀의 의지를 헛되이 하지 않는 것.
조원호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바알은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큭큭, 좋아. 내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허나, 그렇다고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는 마력을 끌어올려 손 안에 형상화시켰다.
눈꺼풀도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찰나의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그의 손에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강대한 마력이 모여 형상화되었다.
내부와 외부를 완벽히 차단한다고 하지만.
결계라는 것은 모두 파훼법이 있다.
이 결계의 경우엔 갑자기 훼방을 놓고 방벽을 펼치고 있는 저 계집의 숨통을 끊어놓는 것. 그리고 그건 지금의 바알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내버려두겠어?”
“…크윽!!”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조원호가 아니다.
조원호의 몸은 화살처럼 허공으로 튀어 올랐고, 그의 검은 마력을 끌어 모으던 바알의 손을 가차 없이 떨구어냈다.
“이… 빌어먹을 녀석!”
순식간에 재생되는 바알의 손목.
그는 분노가 담긴 손짓으로 양팔을 양쪽으로 뻗어냈고, 그를 중심으로 수백 개의 마탄들이 사방으로 쏘아져나갔다.
“큿!”
마탄 하나하나에 실린 터무니없는 위력.
확실히, 마력 자체는 바알 쪽이 월등히 강력하다. 결국 스펙의 싸움에선 밀리고 있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지켜야할 대상까지 있다.
이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카엘라.
지금의 그녀는 예전보다도 훨씬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바알과 조원호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그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방벽을 펼쳐내고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 위력의 마탄이라도 몇 발을 버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지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핸디캡이 되는 건 또 아니지.”
미카엘라와 바알 사이에 끼어드는 한 줄기 섬광.
순식간에 그녀의 앞에 나타난 조원호는 그녀에게 쏟아지는 수십 발의 마탄을 모두 가볍게 튕겨냈다.
그녀를 지킨다는 기아스.
한 때 그의 발목을 잡았던 가장 큰 족쇄.
허나 지금은 달랐다.
미카엘라가 선생님의 영혼과도 하나가 된 지금, 뒤틀렸던 기아스는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힘의 증폭을 선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쓸 데 없는 발버둥이다!”
반면, 조원호와의 거리를 벌리고 뒤로 물러난 바알.
그런 그 또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멍청이가 아니다. 마치 방금 전의 수백 발 마탄들의 마력을 전부 끌어 모은 듯한, 아니 그 이상의 마력을 한 데 모아, 그대로 앞으로 뿜어냈다.
지극히 단순하지만, 그렇기에 파괴적이다.
대기를 관통하며 앞으로 쇄도하는 검은 빛의 줄기.
속도는 생각보다 느렸다.
하지만 굳이 속도마저 빠를 필요는 없었다.
“끝이다, 아크!”
줄기는 곧이어 솟구치는 파도가 되고, 마침내 거대한 해일이 되어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으니까.
마력의 해일은 앞에 닿는 모든 것을 흔적도 없이 파괴했으며, 공간을 격리시킨 결계는 오히려 퇴로를 차단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흐읍.”
그 거대한 마력이 가져오는 압박감.
그 때문일까, 믿음으로 차있었던 미카엘라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입에선 짧은 탄식이 터져 나온다.
일순간 새어나온 절망.
“괜찮아.”
그런 그녀에게, 조원호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두 손을 왼쪽 허리춤에 올리고 자세를 낮췄다. 마치 검을 뽑을 준비를 하는 듯한 자세. 그리고 그는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나의 검은───”
그와 동시에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휘광.
순간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던 휘광은 점차 한 점으로 집중되더니, 이윽고 그의 손에서 한 자루의 검으로 다듬어졌다.
강대한 마력이 한 곳에 압축되며 완성된 빛의 검.
앞에서 쇄도해오는 것이 거대한 해일이라면.
그 손에 쥐어진 것은 모든 걸 꿰뚫는 섬광이었다.
“──너를 베어낸다, 바알.”
그리고 여기에 더해지는 기아스.
스스로에게 제약을 더함으로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언령의 계약.
자칫하면 스스로를 얽매는 족쇄가 되는 제약이지만.
그로서 빛의 검에 한층 더 날카로운 기운이 더해지고.
휘둘러진 빛의 검은 쏟아져 내리는 검은 해일을 갈라.
“크허어억!!”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던 바알의 몸을 거침없이 반으로 갈라냈다.
“이…이런, 이런 말도 안 되는!”
보유하고 있는 마력은 이쪽이 한 수 위였다.
기술에 담긴 위력도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비록 저렇게 압축시켜 휘둘러낸다 하더라도 저 압도적인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된단 말인가.
바알의 몸은 어깻죽지에서부터 허리까지 깔끔하게 양단되어 있었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그 결과에 바알의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졌다.
“아직이다, 아직이야!”
바라의 신체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잘려나갔던 하반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되돌아왔다. 회복이 아니라 재창조란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하지만.
“누가 내버려둔데?”
붙잡은 승기를 쉽게 내줄 조원호가 아니다.
해일을 허물어낸 조원호는, 그대로 앞으로 달려들어 이제 막 다시 몸을 추슬러가던 바알에게 그 검을 휘둘렀다.
“크윽!”
가까스로 몸을 피해낸 바알.
허나 몸이 성할 때도 피하지 못한 공격을 지금 상황에서 제대로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시 몸이 두 동강 나는 건 피해냈으나, 오른쪽 어깻죽지가 그대로 잘려나가는 치명상을 허용했다.
물론 하반식도 순식간에 재생시킬 정도의 회복력이 있기에 그 정도는 별다른 문제도 되지 않았다.
허나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는 것.
어깻죽지를 베어낸 검은 다시 횡으로, 다음에는 수직으로. 난도질에 가까울 정도로 쉴 새 없이 휘둘러지며 수십 개의 참격을 쏟아냈다.
“큭, 크아아아!”
잘려나가고, 재생되고, 다시 잘려나가고.
수도 없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바알의 재생 속도 또한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서서히 깎여나가기 시작하는 바알의 몸.
몸이 반쯤 허물어져가는 모양새가 되었을 때.
조금씩 도드라지기 시작하는 부위가 있었다.
가슴 중앙에 해당되는 부분에서 동그랗게 남아있는 부분.
단단한 갑각으로 둘러싸여있는 그 부분이 어떤 것인지, 마왕 살해자였던 조원호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슈칵!
깔끔하게 가르는 양단의 일격.
그 일격은 바알의 코어를 깨끗하게 베어냈고.
곧 바알의 코어는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