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시작
지구에 마왕들이 나타나고, 원호를 비롯한 용사들이 복귀한 이후로, 카오스 게이트가 열리는 빈도가 잦아지기 시작했고, 몬스터의 숫자는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잔챙이 몬스터들이나 사냥해오던 삼류 헌터들은 물론이고, 에테르는 조금도 다룰 줄 모르는 민간인들까지도 요 근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사실,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요 근래 카오스 게이트는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도심 한복판에서 나타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각국의 정부는 협회 측에 정보의 공개를 요구했고, 이에 협회는 그동안 치안의 안정화를 이유로 공개를 피해왔던 정보들을 공표했다.
기존의 몬스터들을 지휘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마족이라는 존재와, 그 마족들의 본격적임 침공이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을.
사태가 벌어졌을 때, 좋건 싫건 전쟁의 형태는 양측의 모든 것을 건 총력전이 될 것이다. 본디 한 쪽에서 올인을 외치면, 반대 측 역시 올인으로 받아쳐야하는 것이다.
게임에서 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리고 총력전을 펼치기 위해서는, 각국 정부의 도움은 물론이고 일반 민간인들의 도움까지도 절실했다. 그렇기에 협회는 전체적인 사기의 저하를 예상하면서도, 그 사실을 모두에게 알렸다.
그리고,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 * *
전 세계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아직 건재함을 보이고 있는 서울.
세계의 도시들이 버려지고 몬스터들에게 무너져가는 와중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심지어 예전처럼 번잡한 모습까지 되찾아가던 서울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도시 전체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서울의 종로 상공에서는, 여태동안 열렸던 게이트들 중에서는 비교할만한 것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게이트가 열리고 있었다.
“…예. 확인했습니다. 종로 상공입니다. 규모는…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겠군요. 완전히 작정하고 왔다는 말이 그나마 어울릴까요.”
불길한 검은빛으로 물들고, 그 한 가운데에서는 흉측한 차원의 틈이 벌어지고 있는 하늘 밑에서, 류환이 무전기를 들고 말했다.
그런 그의 주변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하게 전투 준비를 끝마친 헌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번에 정찰대인 동시에 기동타격대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선발된 헌터들이었다.
“맞습니다. 파리와 베를린에서 관측된 것과 비슷한 규모인 것 같습니다. …예. 예정대로 되도록 피해를 가한 후,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류환이 무전을 하던 도중, 게이트에 본격적으로 차원에너지가 모이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있는 마족의 모습이 나타났다.
검은 날개와, 이마에 솟아오른 뿔.
그리고 그 마족의 뒤로 수없이 많은 몬스터의 무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레비아탄님의 말씀과는 다른데…….”
무리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그는, 약간의 당황이 엿보이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류환은 결정을 내렸다.
“전 인원, 발사 준비.”
류환이 손으로 수신호를 보내며 중얼거리듯 말하자, 그와 함께 몸을 숨기고 있던 헌터들 중에 절반 이상이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적 몬스터 무리를 궤멸시키는 역할을 맡은, 기동대의 화력을 담당하는 자들이었다.
“여기 숨어있었는가!!”
에테르를 사용하자마자, 곧바로 그 기운을 감지해낸 마족이 코앞에 나타났다. 텔레포트를 이용한 순간적인 이동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곳에 있는 헌터 전원이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푸우우욱.
“크아아아악!!”
헌터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자신의 무기를 치켜세웠고, 기세 좋게 달려든 마족의 복부에 박혀들었다.
기습을 할 예정이었던 그 마족은, 난데없이 들어온 반격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뒤로 물러섰다.
“흡!!”
“어딜!!”
키이이잉!!
그런 그에게, 류환이 달려들면서 두 자루의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뒤로 물러나던 그 와중에도 마족은 두 손을 들어 올려 그 참격을 막아내었다. 맹렬한 금속음이 튀어 오르며 그 주변을 맴돌았다.
“크으윽!!”
그러나 류환은 그 기세를 죽이지 않은 채, 튕겨나간 검을 다시 고쳐쥐고서 그 품 안으로 달려들었다.
결국 위기에 몰린 마족, 백작 듀란트는 또다시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나 듀란트에게 도전하는 것이냐, 인간!!”
거리를 벌리며, 듀란트는 사방으로 충격파를 뿜어냈고, 다시금 파고들려던 류환은 잠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애시당초 류환이 그에게 달려들며 노렸던 것은, 1:1교전에 승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을 뿐이니까.
“메테오 스트라이크(Meteor Strike)!!”
화염계 마법의 최상위에 속하는 마법.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불꽃의 운석은, 그 주변 일대를 짓이겨버릴 뿐만 아니라 흔적도 없이 태워버린다.
십여 명의 마법사가 모여 단기간 내에 시전해낸 재앙의 마법은, 서울시에 나타난 몬스터 무리의 머리 위에 그대로 작렬하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아악!!”
“쿠워어어억!!”
[흐아―!!]
몬스터들의 비명소리가 도시 전역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그 비명소리는 헌터들에게 달콤한 승전보나 마찬가지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리고 백작 듀란트는, 그 충격적인 장면에 당황하여 고개를 돌렸다.
“네놈들은 너희들이 지켜온 백성들까지 저버리는 것이냐!!”
그런 백성들을 고기방패 겸 인질로 삼을 생각이 가득했던 자가 외칠 말은 아닌 듯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분노한 상태였다.
하지만 분노에 가득 차 고개를 돌린 그가 본 것은, 자신을 노리고 있는 수십 개의 칼날들이었다.
마법사들을 호위하고 있던 살수들은 그에게 무기를 내뻗고 틈을 노리고 있었고, 대마법을 시전 했던 마법사들은 어느새 그를 향해 새로운 마법들을 시전했다.
“이―”
그 광경을 보고, 듀란트는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그 말은 끝까지 맺지 못했다.
총공격을 의미하는 류환의 손짓 한 번에, 듀란트는 온몸이 넝마조각이 된 채 바닥에 쓰러졌다.
* * *
[파리, A-02부대. 목표 섬멸 완료.]
[서울, S-04부대. 목표를 섬멸했습니다.]
“후우…….”
계속해서 이어지는 바람직한 무전 내용에, 로이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의 작전이 보기 좋게 들어맞은 모양이군.”
“일단은 말이지.”
로이드는 고개를 돌려 조원호를 바라보자, 조원호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들은 현재, 협회가 있는 베를린의 요새도시에 세워둔 총지휘 본부에 앉아 세계 곳곳의 보고들을 받고 있었다.
“사실 작전이라고 할 것도 없는데 말이지.”
그들은 현재, 도시에 있던 모든 민간인들을 요새도시로 대피시켜둔 상태였고, 때문에 서울을 비롯한 기존의 도시들은 모두 텅 비어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그곳에 있는 것은 모두가 협회에서 구성하고 파견한 전투원들 뿐이었다.
마족들이 직접 게이트를 열기 시작하면서, 요새도시는 그 의미를 잃고 텅 빈 폐허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방어시설이 갖춰진 요새도시에 게이트를 열 일은 없는 것이다.
게이트는 점차 도시 인근에 가깝게 열리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대놓고 도심 한 가운데에서 열리는 일까지 생겼다.
그대로 전투를 치룬다면, 전투는 당연히 도시 내부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되면 당연히 도시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 뿐 아니라 그것을 염려한 헌터들의 움직임 또한 둔해지고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승리를 보장할 수 없는 전쟁에서, 그런 방해요소를 그대로 방치해둘 수는 없었다.
따라서, 협회는 원호의 제안에 따라 전투 요원을 배제한 모든 민간인들을 요새도시로 대피시켰다.
요새도시의 목적은 몬스터들을 가둬두기 위한 것.
하지만 그렇기에, 그곳은 몬스터들을 막기에 가장 최적화되어있는 곳이기도 했다.
‘도시 전체에 게이트가 열리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규모가 작다면, 해볼 만하죠.’
시가전이 벌어질 것을 막기 위해, 게이트가 열리는 것 자체를 막을 수 있겠느냐는 원호의 질문에, 리리스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 후, 그녀는 반대로 요새도시 안에서 수비진형을 짜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었다.
로이드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각국 정부는 헌터 협회의 권고에 따라 전투 및 전투보조 인원들을 제외한 민간인들을 모두 요새도시로 대피시켰다.
그리고 현재, 요새도시의 내부에서는 차원 에너지의 미동조차 느껴지지 않는 상태였다. 단지 전쟁에 대비한 미세한 긴장감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그런 것들을 감안하더라도 생각보다 전황이 괜찮은 것 같군요.”
로이드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록슬리가 말했다.
“뭐, 민간 피해를 염두에 뒀을 때가 문제지, 시가전 자체는 우리 쪽이 경험이 더 많으니까.”
록슬리의 말에, 레이크가 대답했다.
레이크의 말대로, 거의 대부분의 헌터들은 요 근래 카오스 게이트의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요새도시 안에서 전투를 치뤄왔다.
비록 전투를 위해 조성된 도시 환경이라고는 하지만, 시가전에 익숙해져있고 또한 단련되어있는 헌터들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지금 전투를 치르고 있는 전장은, 그야말로 자신들이 살아온 곳이었다. 주변 일대의 지리는 물론이고, 어느 골목으로 진입하면 어디로 나오게 되는 지까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평소라면,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고 피해를 방지해야했기에 이쪽이 가진 이점을 제대로 살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지금, 말할 필요도 없이 전장의 주도권은 헌터들에게 있었다.
“근데, 우리는 언제까지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그 와중에, 의자에 앉아 휘적휘적 발을 흔들고 있던 마슈가 말했다. 그녀는 방금 전부터 몸이 근질거리는 듯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저희 S급 헌터들은, 강한 녀석이 나올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는 거에요. 조금 더 기다려요, 마슈.”
“힝… 알았어.”
그런 마슈를 달래는 것은, 평소처럼 펠트의 역할이었다. 펠트의 말에 마슈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기다렸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여러분. 군주급이에요.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서, 벨제부브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리리스의 전음은 그 자리에 앉아있는 모든 S급 헌터에게 울렸다. 다만, 그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있었다.
벨제부브라는 말에, 그 곳에 앉아있는 모든 헌터들은 리리스가 각 군주들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해줬던 내용을 돌이켜 보았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전투를 피하라는 말도 기억해냈다. 잘은 몰라도, 리리스의 목소리가 가라앉은 것도 그 때문이리라.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