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조원호는 방 안의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방 안에 들어온 것은 아직 해가 지기 전의 일이고, 그가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천장만을 바라본 것은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였다.
그러므로 해가 진 저녁인 지금은 꽤 많은 시간이 흘러간 상태였다.
‘안 돼요. 아크는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했을 때 가장 중요한 전력이니까, 힘 낭비하지 말고 지금은 푹 쉬어둬요.’
카오스 게이트가 열렸다는 말을 듣고서 포탈을 열어달라는 요청을 보냈을 때, 그 요청을 거절하면서 리리스가 말했던 내용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애매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뭔가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닌가.
쉬라고 했다고 진짜 이렇게 편히 쉬고 있어도 되는 건가.
비록 침대에 오랜 시간 누워있기는 했지만, 그런 애매한 기분과 복잡한 기분들로 인해 그다지 휴식 같은 휴식은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자신이 불리지 않고 있다는 건, 나름대로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아르트.”
딱히 놀러나갈 기분도 아니고, 그렇다고 잠이 오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이래서는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기는 글렀다.
결국 원호는 이렇게 된 거 이 방에 있는 유일한 대화상대와 대화라도 나누기로 했다.
“아르트. 있는 거 다 아니까 나와. 어차피 할 일도 없는 주제에.”
[…그 말에 대해서는 정정을 부탁하고 싶구나. 이 몸이 아무리 오랜 세월 유적에 처박혀있었다고는 하더라도, 나름대로 바쁜 사람이다만.]
다시 한 번 그를 부르자, 방 한 구석에 아공간이 열리며 조그마한 마나의 구체가 튀어나왔다.
그 작은 구체는 서서히 공기중에 흩어지듯 그 부피가 커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형태가 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즘 들어 너무 내가 편해진 것 아닌가? 본인이 반말을 해도 좋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그 청년의 모습에서는 약간 투덜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르트의 말을 들은 원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입을 열었다.
“바쁘긴 뭘 바빠. 어차피 아공간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나 했을 텐데. 아니야?”
[…그러는 그대야말로 거진 반나절을 침대에 누워서 숨만 쉬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아군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지. 그대에게만은 듣고싶지 않군 그래.]
“저거 봐, 바쁘기는 개뿔. 아까부터 내 방이나 몰래 훔쳐보고 있었구만.”
[모, 몰래 훔쳐보다니!! 계약자의 안전을 수시로 확인하는 것은 본인의 당연한 의무가 아니겠느냐!! 본인의 의무를 그렇게 폄하하지 말거라!]
“계약은 무슨 계약입니까. 그냥 내 검에 따라붙어온 거면서.”
원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책상에 앉아 팔걸이에 팔을 올려 턱을 괴면서 말했다.
[하아… 그 부분은 됐다. 뭐라 말해봤자 들어먹지도 않을 테지. 그래서 뭣 때문이냐?]
아르트는 마나 덩어리를 통해 작은 한숨소리를 내었다.
“?? 뭣 때문이냐니?”
[그대가 본인을 불렀지 않은가. 그렇다는 건 그대가 나에게 용건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 용건이 뭐냔 말이다.]
아르트의 말에, 원호는 허리를 세우면서 머리를 적당히 긁적이며 대답했다.
“딱히? 그냥 심심해서 불러본 건데.”
[…그대는 본인을 뭐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르트.”
[그것 말고.]
“초대 용사. 미스틸테인의 주인. 천마전쟁의 유일한 인간. 아스트레아의 최초의 왕. 내가 빼놓은 것 있나?”
[그래! 그런 본인을 심심해서 부르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애초에 나에 대한 존경심이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아르트는 예전에 쌓였던 감정까지 터트리며 분노를 표출시켰지만, 원호에게는 마치 초등학생이 투덜거리는 모습처럼 보였다.
“아니, 그런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봤자 애초에 나는 지구에서 태어난 사람이고… 세종대왕님이라면 또 모를까 다른 세계 사람에게 존경심을 갖기에는 내가 조금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네.”
그리고 애초에 아스트레아 사람들에게서도 잊혀진, 그야말로 까마득한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영웅 같은 느낌이다.
애초에 그의 지하신전이 ‘고대 황제의 유적’이라는 적당하기 짝이 없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상황부터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원호는 굳이 그걸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래도!! 심심하다고 부를만한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대화를 나누더라도 좀 더 진지한! 그래, 좀 더 진지하게 본인하고만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있지 않겠느냐!!]
“알았어, 알았어. 그럼―”
아르트의 말이 거의 초등학생이 칭얼거리는 수준까지 내려가기 시작하자, 원호는 팔짱을 끼고서 그가 만족할 만한 대화주제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럼.”
그러다 문득,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던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원호는 잠시 망설였지만, 아르트에게 그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매우 유치하기도하고, 딱히 답변을 구할 곳도 없었기에 담아두고만 있었던 질문을.
“아르트.”
[이제 좀 진지한 목소리가 됐군. 뭔가.]
“너는, 영웅이라는 게 대체 어떤 거라고 생각해?”
조원호의 말이 끝나자, 방 안에는 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마치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을 기점으로 시간이라도 멈춰버린 듯한, 그런 침묵이었다.
[…킥.]
그리고 그 침묵을 깨트린 것은, 가장 짜증나는 반응이자 조원호가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반응이었다.
“…그래도 웃는 건 조금 그렇지 않아?”
이런 어색한 질문을 던졌을 때, 가장 일반적으로 나올법한 반응이었기에 조원호가 어느 정도 예상했었던 반응이었다.
하지만 예상했었다고 해서 빈정이 상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원호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킥킥. 미안하군. 본인답지 않게 예의 없는 반응을 해버렸군.]
아르트는 자신의 반응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는 원호와 눈을 마주쳤고,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말을 정정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어디보자. 영웅이 어떤 것이냐고?]
“쯧… 그래.”
원호는 머쓱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의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자신이 생각해봐도 웃기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말을 철회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지만, 엎은 물과 내뱉은 말은 다시 담을 수가 없는 법. 원호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대화를 끝까지 이어나가보기로 했다.
[영웅이라…]
아르트는 길게 말을 늘어트렸다.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흔히 나타나곤 하는 모습이었다. 원호는 그런 아르트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르트는, 인간으로서 전설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업적을 남긴, 그야말로 영웅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아르트라면 이 술자리 주정에나 어울릴 법한 질문에도 그럴 듯한 답을 해줄 수 있으리라. 원호는 그런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아르트를 바라봤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는 사람. 이라고나 할까.]
“…뭐?”
이번에도 자신이 기대했던 대답과는 거리가 멀었다. 원호는 조금 당황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봤다.
[영웅의 모습은 각양각색이겠지. 누군가가 영웅이라 부르는 사람을, 누군가는 학살자라 칭할 수도, 위선자라 칭할 수도 있을 테고 말이야.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도록 하지.]
의문이 가득 담긴 원호의 표정을 바라보며, 아르트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말하고 있는 건, 일반적으로 영웅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고, 필요한 자질이다.]
“그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그게 영웅에게 필요한 자질이라고?”
아르트의 말은 자신이 생각하던 영웅의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였기에, 원호는 그에게 반박하듯이 되물었다.
그리고 원호의 말에 아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옳은 표현이겠군.]
“하지만, 그러면―”
그러나 아르트는 원호의 말을 가로막고,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신의 조국을 지키고 싶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다.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싶다. 모두가 가지고 있을 욕망이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이 욕망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지.]
“…….”
[목숨이 아깝다. 몸이 힘들다. 적과 맞서는 것이 두렵다. 지친다. 아프다. 다른 사람이 해줄 것이다. 그 욕망들을 외면하고, 합리화시킬 이유는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너무나도 쉽지. 그렇기에 그런 사람은 의외로 찾기가 드물어.]
아르트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미소에는 방금 전과 같은 장난스러운 분위기는 조금도 섞여있지 않았다.
[물론 그런 자들이 모두 영웅은 아니지. 개중에는 끔찍한 악당도 있을 것이고, 학살자도 있을 거다. 하지만 적어도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지.]
아르트는 자신의 추억을 더듬듯, 시선을 위쪽으로 올렸다.
[본인은, 나는… 나를 따르는 백성들이 소중했다. 믿고 따르는 동료들이 소중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연인이 소중했다. 소중하기에 지키고 싶고, 지키려면 공포에 굴할 수 없어. 그렇기에 공포에 맞선다.]
“…….”
원호는 어느새 시선을 밑으로 내리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동시에 맴돌고 있었다.
[단순하지? 지극히 단순하고, 지극히 평범한 일이야. 하지만… 알고 보면, 영웅이란 건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다.]
그리고 아르트는, 원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