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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122화 (122/135)

122화

“그건 그렇고, 생각보다 잘 풀리고 있군. 그렇지 않은가?”

과거를 떠올리며, 한참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원호에게 로이드가 말했다.

“응? 뭐가?”

“전체적으로 말일세.”

아래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던 원호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올리고, 로이드와 눈을 마주치면서 되물었다.

로이드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자네와 나를 비롯한 용사들만으로 어떻게든 해봐야 되는 건가, 생각했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이 가네.”

지구의 헌터들과 마계의 마족들은 비교조차가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차이가 났다.

헌터들 중에서도 격을 달리한다는 S급 헌터들이라고 해도, 유선이나 마슈 같은 헌터들을 제외하면 마왕 급은커녕 귀족급 마족과의 전투에서도 승리를 보장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었다.

원호가 루시퍼를 처리하고 났을 때, 아공간의 용도로 가장 먼저 수련장을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질적으로는 어느 정도 비벼볼만하게 되었다고 해도, 수적으로는 상대조차도 되지 못할 정도로 열세에 놓여있었으니까.

“처음에는 자네와 나를 비롯한 용사들만으로 어떻게든 해봐야 하는 건가, 하고 걱정했었는데 말이야. 자네 덕분에 이렇게 나름대로의 전력들이 갖춰졌지.”

그동안 S급 헌터들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선발된 정예 헌터들이 원호가 만들어낸 아공간에서 수행을 쌓았다.

S급 헌터들은 하나같이 ‘그야말로 천재적인 재능’이라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을,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다.

로이드의 책상에 올려져있는 수많은 자료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그들은 이제 작위가 없는 어지간한 마족들은 물론이고 공작급 이상의 최상위 귀족들과도 전투를 벌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굳이 S급 헌터들이 아니더라도, 아공간을 거쳐 간 헌터들은 대부분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그리고 그들은 각 국가들에 적절하게 배치되어있었다.

어지간한 규모의 침공은 그들만으로도 방어가 가능할 것이고, 적어도 협회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기에는 충분하리라.

“카오스 게이트가 발생하는 빈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진압 속도는 훨씬 더 빨라진 상태지. 체제 정비도 순조롭고 말이야.”

로이드는 아직 손에 쥐고 있던 자료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센트럴 파크에 열린 카오스 게이트에 록슬리가 파견되었고, 별다른 피해 없이 성공적으로 진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뭐, 다 리리스 덕분 아니겠어?”

“그렇군. 사실 처음에는 마족의 도움을 받는다는 게 조금 찝찝하기는 했지만 말일세.”

카오스 게이트는 예전과 달리, 도시의 한복판이나 요충지에서 열리고 있었다. 게이트가 열리기 쉬운 지점에 자리를 잡던 과거와 달리, 누군가가 그 위치를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별 피해 없이 신속한 대처가 가능한 것은, 헌터들의 수준이 상승한 것보다도 누구보다 빠르게 게이트의 기운을 느끼는 리리스 덕택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그녀에 대한 불신들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다들 마족과 접해본 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마족이 그들에게 적이라는 것만은 확실했으니까.

조원호가 직접 그녀의 신용을 보증했었기에 별다른 말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건 그저 불신을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녀를 믿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대전 쪽, 게이트 반응. 30분 내로 오픈돼요. 크리스 님을 파견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뉴욕이에요. 무슨 공원 바로 위인데요? 이미 오픈되고 있어요. 록슬리 님에게 곧바로 포탈을 열게요.]

하지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카오스 게이트가 열리는 빈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때, 그녀는 마족의 침공을 막아내는 것에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했고 언제나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게이트를 예측하고 관측하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교전 지역까지 곧바로 이어지는 포탈을 직접 열어주기도 했다.

덕분에 아공간에 들어가 수행을 하고 있던 인원들은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힘을 기르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고, 또한 필요한 경우에는 빠르게 교전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다른 사람들도 이제는 그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그녀 덕분에 자신의 업무량이 크게 줄어든 크리스는 특히.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리리스는 믿어도 된다고 생각해. 신기한 녀석이야.”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크.’

‘…고마워요.’

‘저도 도울 게요!!’

조원호는 요 근래 보았던 리리스의 행동들과 말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허허.”

“왜?”

그런 조원호를 바라보던 로이드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자네가, 아니 아크가 누군가를 믿어도 된다는 말을 하는 게 꽤나 낯설게 느껴져서 말일세. 그것도 심지어 인간도 아닌 마족을 말이야! 하하.”

그리고 로이드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변했구나. 아크. 물론 좋은 쪽으로 말이야.”

“…쯧, 별 시덥잖기는.”

조원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쓱치 않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면서 일부러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 * *

“그건 그렇고, 요즘 게이트가 열리는 상황이 수상해. 그렇지 않아?”

원호는 말을 하는 동시에, 자신이 확인했었던 자료를 에테르로 구현화시켜 일종의 홀로그램으로 허공에 띄워놓았다.

그곳에는 최근 카오스 게이트가 열렸던 날짜와 시간, 그리고 위치가 나타나 있었다.

“아저씨도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카오스 게이트가 열리는 빈도도 빨라졌고, 위치도 예전과 달리 너무 노골적인 위치야.”

시간이 지날수록 카오스 게이트가 열리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었고, 그 위치는 도시 쪽으로 가까워지다 못해 이제는 이번 뉴욕 때처럼 아예 도심 한복판에 열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도… 녀석들이 슬슬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로 봐야겠지.”

로이드는 방금 전의 장난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진지한 모습으로 원호에게 말했고, 원호는 대답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빈도가 잦아진 것도 그렇지만, 게이트가 열리기도 힘든 도시 쪽에 계속해서 게이트가 열린다는 건 결정적이지.”

“군주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마왕급은 이제 슬슬 움직이기 시작할 거라는 이야기로군.”

원호의 말에 로이드가 말했다.

“그래. 하지만 그 때는 지금처럼 자잘하게 곳곳에서 나타나는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군단을 이끌고 나타나겠지.”

지금 카오스 게이트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병력은 본대는커녕 선봉대조차도 되지 못할 것이다. 기껏 해봤자 정찰대 정도로 버리는 녀석들에 불과하겠지.

마족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조원호가 리리스와 이야기를 했을 때, 리리스 역시 동의했었던 내용이다.

“그 때가 되면, 군주급들까지 함께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나?”

“…그렇겠지. 아마도.”

로이드의 질문에, 원호는 조금 말을 흐리며 대답했다.

루시퍼가 왔었을 때는, 지구에 아직 차원 에너지가 부족했고 차원 에너지로 전환시킬 마나도 부족한 때였기에 루시퍼 혼자 단독으로 왔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군주 한 명은 물론이거니와, 남아있는 다섯 군주가 모두 차원이동을 해도 상관이 없을 정도로 충분한 마나가 지구에 확보되어있는 상태였다.

저번 회의에서 리리스가 말했던 내용에 따르면, 이번 전투는 마족들에게도 사활을 건 총력전의 형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남아있는 군주들이 모두 지구에 나타나겠지.

‘과연,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아무리 조원호가 바쁘게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그의 몸은 하나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모든 군주들을 동시에 상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되면 분명 그의 발걸음이 늦는 곳도 발생할 것이고, 시간을 끄는 것에 실패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피해를 입는 곳도 생길 것이다.

이기든 지든, 어느 쪽이건 간에 지구는 엄청난 피해를 입으리라.

어쩌면 겨우 승리를 거둔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처참한 승리가 될 수도 있었다.

조금 씁쓸한 생각에 로이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이마에 선명한 주름이 새겨졌다.

“그래서 말인데, 리리스가 괜찮은 계획을 하나 짜뒀거든.”

그런 로이드에게, 원호가 말을 걸었다. 마치 물건을 권하는 판매원 같은 목소리였다.

* * *

“아아, 이제 슬슬인가.”

빛이라고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는 공간.

천장과 바닥은 물론이고, 자신의 팔다리조차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애초에 자신이 지금 서있는 것이라고 확신을 갖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아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둠과 공포 뿐.

“나온 시기가 생각보다 빠르기는 하지만… 그만큼 계획이 잘 풀리고 있다는 거겠지. 그렇지?”

그곳에서 일곱 군주 중의 한 명이자, 제 7석의 자리에 앉아있는 오로바스가 중얼거리듯이 내뱉었다.

“이쪽은 별 문제 없어. 여전히 멍청한 놈들이고, 여전히 추잡한 녀석들이지. 그래. 이번에도 바뀐 건 없어. 여전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본질적인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한 공간이었지만, 오로바스는 그곳에서 허공에 몸을 맡긴 채로 편안하게 몸을 눕히고 있었다.

“그래. 이제 곧이야. 곧 모든 게 끝나.”

그리고 그 상태에서 지극히 평온한 말투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그렇지? 아르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오로바스는 미소를 지은 채로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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