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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121화 (121/135)

121화

서서히

“게, 게이트다!! 도망쳐!!”

“제길, 이거 진짜냐? 무슨 도시 한복판에 게이트야!!”

인류 문명이 파괴되고, 그 영역이 형편없이 줄어든 상황이었지만, 아직 몇몇 국가의 몇몇 도시들은 별다른 타격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의 뉴욕은 그런 도시들 중의 하나였고, 오히려 미국 전역의 피란민들이 모여든 덕분에 과거보다도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뉴욕의 자랑이자 도심 속의 여유라고도 불리었던 센트럴 파크에 카오스 게이트가 열리고 있었다.

번잡함 속에서 잠시 여유를 즐기는 공간이었던 대공원은, 삽시간에 혼돈의 도가니가 되어 버렸다.

“시민 여러분들은 각자 지정된 대피소로 도망쳐주시기 바랍니다!! 젠장, 꼬맹아!! 거기 있으면 안 돼!! 제이슨, 저기 영감님 데려와!!”

“본부, 본부!! 지원요청 바란다.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카오스 게이트다!! 센트럴 파크 한복판에 카오스 게이트가 열리고 있다고!!”

토벌 체계가 정밀하게 구성되어있고, 헌터들의 배치 또한 실전적이면서도 합리적이라고 소문난 미국이었지만, 그래도 갑작스럽게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카오스 게이트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는 없었다.

물론 카오스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도시에 가까운 주변 지역에서도 게이트가 느닷없이 열리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미친, 도시 한 가운데에서 게이트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도시 한복판에 게이트가 열리는 경우는 들어본 적은 없었다.

치안 담당관으로 센트럴 파크에 배치되어있던 헌터, 제이슨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한 당황스러움과, 하필 자기 순번 때 이런 상황이 벌어지냐는 억울함을 동시에 느끼면서 황급히 본부에 연락을 보내고 있었다.

“규모? 젠장,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본 게이트들 중에서 제일 크다!! A급 헌터들 몽땅!! 아니, 록슬리 님도 불러줘, 그 분이 있어야… 뭐? 지금 안계시다고?!”

미국의 S급 헌터, 록슬리.

도심 한복판이니만큼, 피해 없이 이 상황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단숨에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이 주변에서 끌어 모을 수 있는 헌터들을 총동원하고, 거기에 S급 헌터까지 참여를 해야만 했다.

[록슬리 님은 지금 이곳에 없어. S급 헌터의 지원은 협회 쪽과 연락이 되기 전까지는 바라기 힘들 것 같은데.]

“뭐? 그럼 지금 당장 연락 넣어!! 당장― 크으윽!!”

무전 마이크를 쥔 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던 제이슨은, 귀를 찢는 듯한 갑작스런 노이즈에 귀를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이런 시발, 전파 방해인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마이크를 다시 쥐어보았지만, 이미 통신은 연결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누군가가 통신을 방해하는 에테르막을 펼쳐냈다는 것.

그리고 최근 헌터들에게 배포된 마족들에 대한 주의사항 중에는, ‘통신이 되지 않았을 경우 마족의 등장을 의심하고 주의경계를 철저히 할 것’이라는 사항이 있었다.

그것을 떠올린 제이슨은 두려움 반, 경계심 반이 담긴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어쨌거나 통신이 두절된 지금, 이곳을 지킬 사람은 자신과 몇몇 헌터들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곧 제이슨은 주변을 따로 살필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 마력이라고는 말라비틀어진 조잡한 세계라 들었거늘, 그것도 아니구나. 아니, 그만큼 몬스터를 갈아 넣었음에도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그 자는 게이트가 열리고 있는 한복판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 허공을 날고 있었다. 그는 침략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지극히 여유작작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아, 악마…….”

하늘을 펄럭이는 거대한 박쥐의 날개.

그 피부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머리에는 거대한 뿔이 하늘을 향해 뚜렷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마치 싸구려 B급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너무나도 노골적인 악마의 형상에, 제이슨의 동료 헌터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만약 여기가 할로윈 파티장이었다면 한바탕 웃고 나서 코스튬을 칭찬하기에 바빴겠지. 하지만 이곳에서 웃음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뿜어내는 존재감에, 제대로 입을 여는 것조차도 힘든 상황이었으니까. 몇몇은 바닥에 주저앉아 힘없이 무릎까지 꿇고 있었으며, 저항력 없는 민간인들은 하나 둘씩 기절하고 있었다.

‘에테르 양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제이슨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입을 여는 것이 고작이었다.

“모두, 민간인들을 데리고 도망쳐!!”

체계도, 내용도 없는 막연한 명령.

하지만 저런 압도적인 힘 앞에서 어떤 대처를 해야 할 지, 제이슨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본래는 자신들의 몸을 던져,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저 악마에게 맞서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개죽음일 뿐이라고, 제이슨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것은, 그의 동료들뿐만이 아니었다.

“흐음, 그건 곤란하지.”

나긋나긋한 그 목소리와 함께, 하늘에 떠있는 악마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냈다.

푸와아아악!!

화륵, 화르르륵!!

단순하게 손가락을 튕겨냈을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주변 일대에 동그랗게 화염의 벽이 솟아올라 퇴로를 완전히 차단해버렸다.

불길의 안쪽은 그 열기만으로 온통 불바다가 되어버려 불지옥의 한복판을 연출해내고 있었고, 불길에 직접적으로 삼켜진 몇몇은 비명조차도 내지 못한 채로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이런 시발, 시발!!’

높게 솟아오른 불길의 건너편은 보이지도 않았지만, 결코 이곳의 광경보다 더 좋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제이슨은 속으로 욕설을 되뇌었다.

그는 에테르로 급하게나마 방화마법을 급조해내 주변에 펼쳐놓았고, 그 주변에는 운 좋게 남아있던 민간인들과 기절하다시피 바닥에 쓰러져있는 동료들이 있었다.

“호오, 인간치고는 괜찮은 반응속도로구나. 꽤나 놀랍군. 칭찬하도록 하지.”

이런 지옥의 한 가운데에서도 악마 녀석의 말은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또렷하게 들려왔다.

제이슨은 그런 악마에게 욕이라도 한 바가지 시원하게 쏟아 내주고 싶었지만, 집중을 흐트릴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러지는 못하고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 뿐이었다.

다행인지 아쉬운 일인지 악마는 가운데 손가락의 의미를 모르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운명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도 막아 보거라.”

다음 순간, 그의 손에는 거대한 화염의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 화염의 불길은 곧 굵은 막대의 형상으로 압축되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에테르의 응축량.

제이슨은 B급 헌터에 불과했기에, 그것이 어떤 마법인지, 얼마만큼의 위력을 가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는 거대한 불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제이슨은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마법에는 자신은 물론이고, 이 주변 일대를 통째로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힘이 담겨있다고.

지난번에 나타났다던 마왕이라는 녀석 중 한 명인 것인가. 그 압도적인 힘 앞에, 제이슨은 아찔함을 느꼈다.

“크윽!!”

그는 각오를 다지며, 남은 에테르까지도 쥐어짜내 방화마법에 힘을 실었다. 쓸모없는 짓이라는 건 알았지만, 지금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발버둥이라도 쳐봐야할 순간이었다.

“하하하하하!!”

서걱―

그 깔끔한 절단음이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그는 가차없이 그 검을 휘둘렀고, 방금 전까지 천박하게 웃음소리를 내뱉고 있던 마족의 머리통은 깔끔한 절단면만을 남긴 채 날아가 버렸다.

방금 전까지 모든 것을 태울 듯한 기세로 타오르던 화염의 덩어리는, 마치 연기처럼 공기중으로 흩어져버렸고,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공중에서 땅바닥으로 힘없이 추락했다.

철푸덕.

“…하?”

그 악마의 시체는 제이슨의 눈앞으로 떨어졌고, 제이슨은 그 광경을 믿지 못했다. 그토록 강력했던 자가, 이렇게 허무하게 당해버리다니.

하지만 정작 그 장본인, 록슬리는 별 내색도 없는 모습으로 가볍게 땅바닥으로 착지한 후, 무전 마이크를 입가 쪽으로 구부렸다.

“록슬리다. 센트럴 파크 쪽에 도착했고, 일단은 상황 정리를 마쳤다. …아니, 공작급은 아니었고, 백작급 정도는 되는 것 같더군. 그래. 알았다.”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무전을 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제이슨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록슬리 씨다!! 그것도 실물!! 엄청 가까이!!’

S급 헌터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영웅과도 같은 존재!! 제이슨은 이 영광스러운 장면에 대한 기쁨에,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이봐, 움직일 수 있겠냐고.”

“예? 아, 예. 물론입니다.”

“자네가 이곳 치안 담당관인 것 같으니, 지원 요청과 지휘를 부탁하도록 하지.”

“예, 예? 적은 방금 록슬리 씨가―”

“녀석 하나 죽인다고 해서 게이트가 닫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빨리 움직이게.”

마족을 처리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이트가 닫히는 것은 아니었다. 록슬리는 게이트가 완전히 닫힐 때까지 이곳을 담당하게 되었다.

“아, 알겠습니다!!”

자신의 우상과도 같은 영웅의 말에, 제이슨은 허겁지겁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민간인들의 대피가 완전하게 이루어졌고, 센트럴 파크를 중심으로 수비진형이 세워졌다.

그리고 게이트가 완전히 닫힐 때까지, 경미한 부상자 세 명을 제외한 추가적인 피해는 조금도 발생하지 않았다.

* * *

“확실하게 효과가 있는 듯하군.”

센트럴 파크에서의 전투가 끝나고, 미국 측에서 보내온 자료를 읽고 있던 로이드가 말했다.

그의 테이블 위에는 해당 자료를 비롯해 비슷한 자료들이 잔뜩 흩어져 있었다.

S급 헌터들이 귀족급 마족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무난히 카오스 게이트를 막아낸 것에 대한 자료들이었다.

“나름 고생해서 만든 거니까, 효과가 없으면 억울하지.”

로이드의 말에, 맞은편에 앉아있던 조원호가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단기적으로 힘이 성장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 정도라면, 막 용사로 소환됐을 때의 성장속도를 능가하겠군.”

로이드는 용사로 소환되었을 무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 때는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질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뤄냈었다.

“생각해봐, 로이드. 저 녀석들이 누구야? 여기 지구에서 S급 헌터들 수준까지 힘을 끌어올린 녀석들이야.”

“…그게 어쨌다는 건가?”

원호의 말에, 로이드는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마나가 고갈되어있는, 황무지 같은 곳에서도 그만큼의 힘을 쌓은 녀석들이라고. 마나적성은 물론이고, 재능이 흘러넘치는 천재들이야.”

“…과연, 그도 그렇군.”

“그런 녀석들에게, 마나 밀도가 아스트레아 정도는 가뿐하게 뛰어넘는 공간이 주어진다면, 당연히 실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겠지.”

원호의 설명에 로이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대가 하는 일에 빈틈은 없군.”

“…아냐. 사실 나도 그냥 막연하게 기대했을 뿐이지, 확신은 없었어.”

로이드가 그를 치켜세우자, 원호는 곧바로 꼬리를 내리며 시선을 회피했다. 사실 이 계획에 대한 그의 생각은, ‘되면 좋고 잘 안 되면 안타깝고.’ 정도였을 뿐이니까.

사실 그에게도 이 결과는 생각했던 것 이상의 결과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작급 하나에 쓸려나가는 상황이었는데 말이지.’

백작급 하나에도 후열이 전멸하는 위기에 처했던 데모닉 게이트 사건을 떠올리며, 원호는 감개무량한 기분을 느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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