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어… 실례 하겠습니다?”
“왔냐.”
조은대학교 헌터학과의 학과장실 문을 열고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자, 평소처럼 유선의 목소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돌아왔다.
유선은 당연하다는 듯이 학과장 자리에 앉아있었고, 또한 그 모습이 자연스럽기도 했다. 한동안 류환이 대리로 앉아있던 자리였다.
그녀는 한동안 헌터 협회장의 업무를 수행해왔지만, 그녀의 협회장 직책은 어디까지나 임시였다. 로이드가 돌아온 지금, 그녀가 업무를 수행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한 후,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이제는 그 감촉까지도 익숙해진 의자였다.
“거, 명함 때고 나니까 조금은 허전하네요?”
“됐고, 무슨 일로 온 거냐?”
그녀가 협회장을 맡고 있던 시절, 명함이 달려있던 곳을 가리키면서 말하자, 유선은 퉁명스럽게 대답을 내뱉으며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했다.
“하하, 예민하시네. 뭐, 갑자기 이렇게 찾아와서 죄송하기는 합니다만.”
“…죄송할 필요는 없는 일이지. 다른 녀석은 몰라도 말이야.”
그녀는 잠시 뜰을 들이며 가볍게 턱을 괸 후,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뭔데?”
“별 거는 아니고… 제대로 기아스를 해지하고 싶어서요.”
이곳, 헌터학과에서의 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에 유선과 맺었던 기아스.
이 기아스는 데모닉 게이트 사건 때 유선 쪽의 계약 위반으로 깨지기는 했었다. 계약으로써의 효력은 조금도 없는, 이미 끝난 기아스였다.
하지만 거의 임시나 다름없는 형태로 급하게 해지되었던 것이었기에, 그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수십 개의 기아스가 얼기설기 얽혀있는 내 상태에서는 그 잔재만으로도 어떤 작용이 일어날지 몰랐다.
물론 그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한 것이었지만, 마지막 전투를 앞에 두고서 나는 그 희박한 가능성도 배제해두고 싶었다.
미처 준비를 못했다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는 변명만큼 비참한 것도 없는 것이니까.
“이미 해지된 기아스를 다시 해지하는 방법은 없을 텐데?”
“뭐, 원래는 그런데, 조금 상위 마법을 사용하면 그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거든요.”
아공간에서 시간이 남아돌았을 때, 리리스는 나의 꼬여있는 기아스들을 체크해주었고, 그 결과 아직 제거할 수 있는 기아스들이 몇 가지 있다는 것을 말해줬다.
그 조건과 기능이 애매한 기아스.
당사자가 이미 사라진 기아스.
그리고 타인과 계약을 한 기아스.
리리스는 이런 처리 가능한 기아스들을 해지해줬지만, 타인과 계약을 한 것은 당사자와 직접 만나 절차를 거쳐야한다며, 기아스 해지 스크롤을 만들어 건네줬었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니지.”
나는 그 때 리리스에게 받았던 해지 스크롤을 꺼내들었고, 유선은 곧바로 계약해지에 응했다. 계약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해지 역시 시간은 그다지 걸리지 않았다.
‘…과연, 마나를 운용하는 게 조금은 편해졌어.’
군주급의 마족이 특수 제작해낸 스크로링라 그런지, 단순히 계약을 해지해낸 것 이상으로 몸이 편안해진 기분이었다.
나는 뭉쳐있던 근육이 풀린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해보았다.
“후, 여태 찝찝했던 기분이 뭣 때문인가 했더니, 이것 떄문이었구만.”
그녀의 말에 정면을 바라보자, 그녀 역시 나와 비슷하게 몸 이곳저곳을 움직여보고 있었다. 마치 짊어지고 있던 짐이라도 벗어던진 듯한 모습이었다.
“…하긴, 그렇게 급하게 해지됐던 거니까요. 여파가 없을 리가 없겠죠.”
게다가 그녀는 내가 해지하기 전까지 계약을 위반하던 상태였다. 코어가 뒤틀리기 일보직전까지 갔을 것이고, 그 여파가 그대로 남아 고정되어 있던 거겠지.
고통스럽지는 않더라도,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찝찝한 느낌은 남아있었으리라.
“그럼, 용건은 끝난 거냐?”
“예. 그냥 마지막 전투가… 아니, 마지막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걸 처리하고 싶어서 왔을 뿐이에요.”
“그럼,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예? …언제는 허락 받고 물어봤나? 맘대로 하시죠.”
“…네가 방금 말했던 그 마지막 전쟁 말인데.”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며 가볍게 턱을 괸 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회의에서 말했던 대로라면, 다음번에는 마족들이 총공격을 해온다. 말 그대로 끝장을 보기 위한 마지막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 말이야. 맞아?”
“…예, 그렇죠.”
사뭇 진지해진 그녀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살짝 긴장을 하면서 대답했다.
물론 그녀는 언제나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건 진지하다기 보다는 그녀 특유의 무관심과 초연함에서 비롯된, 말 그대로 냉정한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비장함마저도 느껴지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 마지막 전쟁이 벌어진다면… 우리 쪽의 승기는 얼마나 되는 거지? 아니, 애초에 이길 수는 있는 건가?”
“…….”
그녀의 질문에 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 질문의 내용이 평소 내가 보아왔던 모습과 너무 달랐고, 때문에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뭐, 약한 소리나 하자고 부른 건 아니고 말이야.”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유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저 가능성의 여부를 알고 싶을 뿐이야. 나도 나름대로 이 바닥에서 굴러온 사람이니 평소라면 내 스스로 저울질을 해보겠지만…….”
유선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지금 쳐들어오는 마족이라는 것들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게 너무 부족해. 저울질을 해보기에는 제대로 된 무게추조차도 하나 없는 상황이라고.”
“…그건 알겠어요. 모르는 건 알 법한 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맞는 거죠.”
나는 조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건 왜 궁금한 겁니까?”
“큭큭, 왜. 내가 도망이라도 칠 것 같아서 그러냐??”
내가 미간을 좁히며 노골적인 목소리로 되묻자, 유선은 얕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당황.
실망.
의심.
나는 그녀의 말에 굳이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지만, 나의 감정들은 이미 얼굴에 대놓고 떠올라있는 상태였다. 거기에 잠시 침묵을 지킨 것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유선은 여전히 나와 눈을 마주친 채로 입을 열었다.
“…누군가를 죽이는 싸움과, 누군가를 지키는 싸움은 다른 법이지. 전략은 물론이고, 그 준비까지도 말이야.”
“…예?”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리액션이 튀어나왔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길 수 있는 싸움과, 패색이 짙은 싸움. 전자라면 평소처럼 날뛰면 그만이겠지. 하지만 후자라면… 준비가 필요하다. 피해를 최소화시키고, 조금이나마 사람들을 살릴 준비가.”
“…….”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방금 전에 미간을 찌푸리던 침묵과 달리,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하기 위한 침묵이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면 최소한의 생존자라도 남길 수 있도록 움직여야겠지. 전략도 최대한 시간을 끄는 방향으로 짜야겠고 말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충분히 들었다. 잠시 동안 싹 텄던 내 의심이 쓸 데 없는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남은 건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것 뿐.
“쓸 데 없이 희망을 불어주기 위한 말이라면 필요 없다. 마족 하나도 제대로 처리 못하는 헌터들의 숫자가 9할을 넘겨.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패색이 짙은 전투라고 밖에 볼 수가 없는데?”
“확신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길 수 있습니다. 충분히.”
진지한 모습으로 말하는 그녀를 마주보며, 나 역시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았다.”
“…예?”
“알았다고.”
“뭐 더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닙니까? 말하는 근거라던가, 대략적인 전력비교라던가―”
“아, 몰라. 그런 복잡한 것들은 환이 같은 녀석들한테나 중요한 거지.”
방금 전까지 비장했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어진 모습으로, 그녀는 평소처럼 담배를 입에 물었다.
“네가 이길 수 있다고 말했고, 그거면 믿기 충분해. 나는 방금 전의 네 대답으로 이 전쟁이, 이 싸움이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 뿐이야.”
말을 마치고서 유선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방 안에는 담배가 불에 타는 미약한 소리만 들려왔고, 이윽고 그녀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뭐, 이 사람답기는 하네.’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의외로 신중하다.
하지만 결국에는 감각적인 판단과 직감을 더 중시한다.
여태동안 내가 보아온 유선이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안심되는 느낌이었다.
“그럼 저 이제 그냥 가봅니다?”
“볼 일 없으면 가라. 아니면, 맥주라도 한 캔 마시고 갈래?”
느긋하게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그녀에게 묻자, 그녀는 냉장고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아직 대낮입니다만.”
“뭐 어떠냐.”
“사양하겠습니다. 그럴 시간에 아공간에서 힘이나 쌓으시죠.”
“안 그래도 이거 피우고 가려고 했다. 여기 온 것도 네가 연락해서 겸사겸사 나온 것뿐이야.”
말을 마치고 유선은 나를 향해 적당히 손을 흔들었다. 그녀 나름대로의 배웅인사였다.
“그럼 이제 나가봐라. 요새 바쁘잖아?”
“안 그래도 이제 일어나려 했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서, 나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그 순간 내 바로 옆에 포탈이 열렸다. 나를 지켜보고 있던 리리스가 열어준 것이리라.
“…그럼, 살아계십쇼.”
그 말을 남기고서, 포탈 안으로 발을 옮겼다.
* * *
“살아계십쇼… 인가.”
유선은 조원호가 남기고 간 말을 곰씹으며,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빨아들였다.
푸후―
빨아들인 연기는 이윽고 하얀 한숨이 되어 뿜어져 나왔고, 하얀 한숨은 그녀의 시선에 머무르다 공기 중으로 서서히 흩어졌다.
“큭큭.”
무슨 쪽팔린 말을 지껄인 것인지.
사실은 두려웠다.
이길 수 없는 싸움에 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신이 여태동안 지켜왔던 것들이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다는 것이.
그녀는 마왕이라는 것들의 터무니없는 힘을 겪어버렸다.
어떻게 막을 방법조차도 보이지 않는, 말 그대로 터무니없는 힘.
여태동안 힘을 길러왔었고, 나름대로 수라장을 거쳐 가며 살아왔다고 장담해온 자신이었지만, 그 힘은 그녀를, 그녀의 인생을 간단하게 부정해버릴 수 있는 힘이었다.
최소한의 생존자라도 남기기 위해.
전략을 세우기 위해.
물론 유선이 원호에게 말한 것들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그 질문을 꺼내게 된 가장 큰 요소는 결국 두려움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유선은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신기하단 말이야.”
유선은 방금 전에 조원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이길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왠지 모르게 정말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하게 희미해져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그 녀석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건가. 재떨이를 구석으로 밀어 넣은 유선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짐짝이 되는 건… 사용하고 싶구만.”
유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학과장 실을 나섰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유선은 아공간으로 이어진 포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