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그런데 말이야, 블러드 레이스.”
수련 도중 휴식을 취하고 있던 얀이 특유의 불량한 목소리로 이태현을 불렀다. 하지만 이태현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에테르 호흡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봐, 블러드 레이스.”
“아, 나 부른 거였냐?”
얀이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자, 이태현은 그제야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 블러드 레이스가 너 말고 누가 있어?”
“그놈의 이명은 참 익숙해지지가 않는구만.”
이태현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애초에 아스트레아에서 하도 로크, 로크 불리다 보니 본명도 다시 약간 낯설어진 상태였는데, 블러드 레이스 같은 이명이 낯설지 않으면 이상하리라.
“…사람을 부를 때 그놈의 이명으로 좀 부르지 마라. 너도 바람의 창술사라고 불러 버린다.”
“그게 왜? 나는 괜찮은데? 멋있잖아.”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이태현은 조금 짜증이 섞인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얀은 태연한 모습으로 받아쳤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 같았기에 이태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 왜 불렀는데?”
“그…….”
“남이 집중하고 있는 것까지 방해해놓고서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물어놓고서는 정작 머뭇거리는 얀의 모습에, 이태현이 그를 보챘다. 얀은 부끄럽다는 듯 입맛만 다시다, 고개를 숙이며 겨우 입을 열었다.
“고맙다.”
“뭐?”
“일본을 구해줘서, 정말 고맙다.”
두 번째로 말하는 고맙다는 말은, 처음 것보다 사뭇 진지한 것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진지한 모습에 이태현은 조금 당황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얀이라고 하면 실력은 몰라도 자존심 하나 만큼은 S급 헌터들 사이에서 최고로 꼽히는 녀석이었으니까.
“어, 어… 우리끼리 새삼스럽게?”
이태현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의 손사래는 겸손이 아니라 말 그대로였다.
어차피 이 일을 하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사람을 구하게 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게 된다.
그렇기에 헌터생활을 오래하게 되면,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감사를, 그리고 자신들에 대한 비난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게 된다. 특히 헌터들 사이에서는 더더욱.
그걸 모르는 얀이 아니었지만, 그는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지 않고 그냥 있을 수가 없는 심정이었다.
“네가 와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대로 멸망해 버렸겠지.
그의 나라, 일본은 몬스터에 대한 방위 능력을 이미 상실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아직까지 나름대로의 토벌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은, S급 헌터인 얀이 협회 활동을 소홀히 한 채 조국 수호에만 집중한 덕분일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카오스 게이트가 열린 상황은, 일본에게는 그야말로 종말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카오스 게이트가 열려 몬스터가 쏟아져 내리는 것만으로 부족해 마왕이라는 녀석까지 나타나 행패를 부리고 있는 상황.
마왕이라는 자의 압도적인 힘에는, 그 자존감이 강하던 얀조차도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그를 구해준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이태현이었다.
얀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너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힘이지만, 이 은혜는 꼭 갚도록 하겠다. 기회가 닿는다면, 반드시.”
“…그래, 알았어. 그 땐 부탁하지.”
부담스러운 마음에 계속해서 손사래를 치던 이태현이었지만, 얀의 사뭇 진지한 모습에 결국 그는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얀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건 그렇고, 저 조원호라는 녀석 말이야.”
목적을 이뤄내자, 얀은 곧바로 원래대로의 표정으로 돌아오며 질문을 던졌다. 방금 전의 진지한 모습은 찾기 힘든, 평소대로의 모습이었다.
차라리 이 모습이 편하다고 생각하며, 이태현은 대답했다.
“원호가 왜.”
“대체 뭐하는 녀석이길래 그런 게 가능한 거야?”
“…어느 부분에서?”
얀의 말에 이태현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지만, 짚이는 구석이 너무 많아 되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냥, 이것저것? 루시퍼를 때려잡았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는 마왕 두 놈을 혼자서 간단하게 처리했다면서?”
얀이 애매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처음에 루시퍼라는 녀석과 싸웠을 때만 해도 그냥 막연하게 강한 녀석이라는 생각 정도밖에 없었는데… 그 마왕을 두 놈이나 혼자서 때려잡았다니. 터무니없이 강한 수준이잖아?”
이태현은 그 루시퍼라는 녀석이 그깟 마왕 네다섯 놈을 합친 것보다도 더 강력한 놈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아공간… 아공간 정도는 크리스가 만들어낸 걸로 몇 번인가 들어가 본 적이 몇 번 있으니 익숙하지만,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얀은 말을 하는 도중에, 손을 들어 올려 가볍게 힘을 쥐었다. 그것만으로도 눈에 보일정도로 선명한 에테르의 구체가 형성되었다.
물론 그가 S급 헌터로, 나름 강한 축에 속하는 에스퍼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간단하게 에테르를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여기, 조원호가 만들어낸 아공간이 에테르로 가득 차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호흡만으로도 에테르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고밀도로 에테르가 밀집된 공간이라니… 이게 말이 돼? 가능한 일이야?”
얀은 고개를 들고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에는 에테르 호흡에 집중하고 있는 다른 헌터들이 있었다.
지금 S급 헌터들은 모두 이곳, 조원호가 만들어낸 아공간에 모여 있었고, 다들 이 말도 안 되는 에테르의 밀도에 감탄하며 힘을 키우고 있었다.
“…뭐,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
“그래!! 그거야. 이게 가능한 일이야? 우리도 나름 헌터랍시고 특별취급 받지만, 이건―”
“몇 번이고 말해줬고, 저번 회의에서도 말해줬잖냐. 조원호가 용사출신이라 그렇다고.”
이태현의 말에, 얀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 거짓말이지? 용사라니, 무슨… 우리나라 라이트노벨에서나 유행할법한 이야기인데?”
“믿건 말건 상관은 없는데, 어쨌거나 원호 녀석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힘들을 가지고 있는 건 용사이기 때문이야.”
“근데 너도 같은 용사라면서? 그 말대로라면 너도 원호 정도는 되야 되는 것 아니야?”
“…….”
“아.”
노골적으로 구겨지는 이태현의 표정에, 얀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달래기 위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아니아니, 그렇다고 네가 용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아니고, 너도 멋있지! 강하고!! 어쨌거나 우리 일본을 구해준 영웅나리 아니겠냐, 이거야!!”
“…됐고, 갈 테니까 훈련이나 열심히 하고 있어라.”
그럼에도 이태현은 표정을 구긴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얀은 평소의 그와 어울리지 않게 그를 풀어주기 위해 한동안 졸졸 뒤를 따라다녔다.
* * *
“후욱, 후우…….”
미카엘라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잔뜩 지쳐있는 상태였지만 그 고개는 빳빳이 들어 올려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검은 안개로 둘러싸인 검은 갑옷, 할로우 나이트가 서있었다.
― 그렇게 경계할 필요는 없을 텐데.
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는 미카엘라를 내려다보며 할로우 나이트가 말했다.
― 그 경계선의 너머는 성역으로 지정되어있는 곳. 나 같은 언데드는 넘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곳에 있을 때라도 휴식을 취해야하지 않겠나?
할로우 나이트의 말대로 할로우 나이트와 그녀의 사이에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었고, 그 경계선을 따라 반투명한 하얀빛의 안개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정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까지 무리하게 코어를 활성화시킨 상태였다.
“시, 끄러워. 내가 대체 뭘 믿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한계에 들이닥쳐, 결국 기절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힘을 잃은 그녀의 얼굴이 땅바닥에 처박히는 일은 없었다.
― …하여간, 멍청한 녀석이다.
미카엘라가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기 일보직전, 단숨에 다가온 할로우 나이트의 오른손이 그녀를 지탱했다.
언데드 몬스터가 성역을 넘어온 상황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했고, 사실은 단순한 환술 마법에 불과했다. 다름 아닌 본인이 쳐놓은 마법이었기에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할로우 나이트는 미카엘라를 제대로 바닥에 눕히고서, 그 주변에 힐링 필드(Healing Field)를 펼쳐두었다.
본래 그녀는 보다 상급 치유마법들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언데드가 된 지금 상황에서는 힐링 필드 정도가 고작이었다.
― …쯧.
그 옆에 잠시 앉아서 미카엘라를 바라보던 할로우 나이트는, 있을 리도 없는 혀를 차는 시늉을 했다. 그녀의 모습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단순하고, 고지식하고, 멍청하다.
정의라고 믿는 것을 쫓지만, 막연한 것을 추구하는 허황된 믿음에 불과하다.
그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과거였기에 더더욱 깊이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씁쓸했다.
과거의 자신이 쫓던 정의는, 자신의 신념은 결국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분신을 죽일 각오조차도 없는, 나약한 정의에 불과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게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그의 마지막 모습.
그리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광경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이곳까지 찾아왔고, 이렇게 미카엘라가 자신을 죽이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살고 싶었다.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그녀는 자신 속에 담겨있는 그 마음을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미카엘라를 죽인다면.
자신은 되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그녀와 자신은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서로 연결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그 영혼만을 빼낸다면 자신이 새롭게 그 몸을 차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소중한 사람과 다시 한 번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가능성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너무나도 달콤해보였다.
달콤한 유혹과 욕심.
거기에 언데드의 본능과도 같은 살육 충동.
아직까지는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정신은 점차 피폐해져가고 있다. 언젠가는 전부 마모가 되어버릴 것이고, 언젠가는 폭주하여 자신이 봤었던 그 괴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할로우 나이트는, 한 때 미카엘라였던 그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그녀의 마음도, 이제는 이해가 된다고나 할까…
그녀는 한 때 폭주하여 날뛰었던, 결국 조원호의 손에 목숨을 잃고, 그를 무너트렸던 또 다른 자신을 떠올렸다. 지금의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놓였던 사람이다.
처음에는 그녀를 원망했었지만, 그녀도 이 피폐해져가는 정신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 몸을 숨겼을 뿐이겠지.
― 큭. 큭큭…
자기가 자신을 이해하려고 드는 그 모습이 조금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며, 할로우 나이트는 씁쓸한 웃음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이라도 자고 일어난다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겠지만, 그녀는 잠도 잘 수 없는 신세였기에 하늘을 쳐다보는 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떠오르는 옛 추억들을, 달콤한 기억들을 애써 외면하면서, 그녀는 해가 지는 저녁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