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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118화 (118/135)

118화

막간의 틈에서

그렇게 선생님을 보내고 난 후에는, 미카엘라와 선생님에 대한 걱정이 당연하다는 듯이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을 전부 강제로 억눌렀다. 선생님을 믿겠다고,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다시 소연이에게로 돌아왔고, 예정대로 헌터 협회의 회의에 참여했다. 그 후에는 뒷풀이 술자리까지 참가했다.

그러나 이런 불안한 심정으로 뭔가를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평소처럼 떠들고 웃고 있더라도, 틈만 나면 머리를 내밀어대는 불길한 생각과 걱정들 때문에 편안히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내가 거기서 뭘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말이야.’

선생님 때문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나는 선생님의 의지를 꺾을 수 있겠는가?

아니, 그건 무리였다.

그러고 싶지 않다는 심적 반발심을 떠나서, 나는 그녀를 막을 수 없다. 지금 나는 기아스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기아스에 거스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내가 선생님의 앞을 가로막고, 최악의 경우 선생님과 적대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면…

아마도, 기껏 회복된 나의 코어와 회로는 다시 엉망진창으로 구겨져버리고 엉켜버릴 것이다.

‘…애초에, 내가 선생님에게 검을 겨눌 수 있을 리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며, 나는 그 때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간단하게나마 시뮬레이팅 해보았지만, 내가 선생님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상황 자체가 상상이 되지 않았다.

* * *

‘그건 그렇고… 선생님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녀를 만나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들려주고 싶은 것도 많았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해왔다.

악몽을 꾸고 일어날 때면, 코어의 고통에 몸이 뒤틀리는 와중에도 꿈속의 대화 하나하나를 되뇌이고는 했었다.

하지만, 정작 오래간만의 재회가 이루어졌을 때, 나는 그녀와 이야기를 길게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할로우 나이트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최대한 인간다운 모습으로 있으려 했다.

전음만 보내도 충분할 상황에 일부러 직접 나타나 대화를 행했고,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제대로 된 이성을 찾기 힘들며, 있다고 하더라도 철저하게 감정을 배제하는 언데드 몬스터에게는 있을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그녀가 나와 거리를 두려 하는 것이 느껴졌고, 그렇기에 나는 그녀에게 섣불리 말을 걸기가 두려웠다.

짐작이 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언데드로 부활하게 된다면, 그러고도 이성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라면, 대체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되겠는가.

인간으로서의 섭리를 강제로 거부당하고 육지 위에 비참하게 남겨진 그 모습을, 추악하고 형편없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람이라면, 혹은 지나치게 속물스러운 사람이라면 조금 더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혹은 영생을 얻게 되었다고 즐거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설령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모습으로 옛 지인들 앞에 나서고 싶어 할 사람은 그다지 없을 것이다.

특히 선생님처럼 자신에 대한 자긍심과 자존감이 뚜렷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하지만, 선생님의 그런 모습이 조금은 섭섭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선생님은 오랜만에 나를 만났으면서,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한 것인가?

별다른 느낌조차 받지 못한 것인가?

나는 그런 것 따위보다, 선생님이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웃을 수 있었는데.

선생님과 다시 한 번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뻤는데.

…비록, 그것이 언젠가 파멸에 치달을 것이 분명한 운명이라고 할지라도.

“…후우.”

나는 침대 위에 누운 채로 천장의 형광등을 바라보다, 무력하게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그렇게 우울한 것이냐, 용사여.]

그 때, 어떤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직접적으로 전달되어오는 전음이었다.

“…하. 남이사, 우울해하든 말든.”

나는 침대에 누워있던 상체를 일으키고, 마나가 느껴지는 방 한 쪽 구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곳에는 아공간에 있어야할 미스틸테인이 벽에 기대어 세워져있었다.

“그 쪽이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르트.”

나는 벽에 세워져있는 미스틸테인을 바라보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검을 향해 말을 걸고 있는 지금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정신병원에 방문하기를 권장하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흠, 이쪽은 그쪽이 걱정되어 나름대로 배려해준 것인데… 혹여 짐의 과분한 영광에 부담을 느끼다 못해 수줍어하는 것인가?]

하지만 검에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이 돌아왔다. 그 목소리는 조금 오만함이 느껴지면서도 근본적인 선량함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자꾸 그러면 아공간에 처넣고서 봉인해버립니다. 제가 이상한 소리 할 거면 잠이나 자라고 했죠?”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이 몸을 지극하게 대접해도 모자랄 마당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한참 헛소리를 지껄여대고 있는 나의 애검을 손에 쥐었다.

미스틸테인은 마치 의지가 있는 것처럼 손잡이를 통해 나의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고, 그 마나는 공기 중으로 흩어져 이윽고 흐릿한 사람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곳에 나타난 건 당황스러워하고 있는 젊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다만, 앳되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그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결코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검에 먼지 닦아주고 기름 발라줬으면 그게 지극한 대접이지, 뭘 더 바랍니까?”

나는 그, 아르트를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공간에 처박아두는 것이 어딜 봐서 지극히 대접하고 있는 것이냐!!]

“…오히려 아공간에 있으면 먼지도 안 쌓이고, 뭐 묻을 일도 없고 최적의 조건 아닙니까?”

[그, 그래도, 그래도…]

아르트는 뭐라 반박할 말을 찾고 있는 듯 했지만, 결국 어영부영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듣고 보니 그도 그렇구나.]

그는 별다른 반박을 찾지 못한 채 시무룩하게 고개를 밑으로 숙였다.

[그, 그래도 쿠션 정도는,]

“예장용도 아니고 세상 어떤 미친놈이 자기가 쓰는 검을 쿠션 위에 올려놓습니까. 오히려 검에 대한 모욕 아닙니까, 그거?”

[…그도 그렇구나.]

이번에도 본전도 찾지 못한 아르트는 밑으로 고개를 숙였다. 마치 풀이 죽은 강아지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쪽 세계에 대한 감상은 어떻습니까?”

풀이 죽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괜히 죄책감 같은 것도 들고 해서 나는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감상이라… 뭐, 여태동안 몇 번이나 보아왔던 세계이지만.]

“허? 이전에 지구에 왔던 적이 있었나요?”

[이번에는 처음이지만… 아니,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그런 셈으로 치겠다.]

조금 의외의 발언에 내가 되묻자, 그는 조금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감상을 말하자면, 그래. 전체적으로 굉장히 평화로운 세계다. 나쁘지 않아… 지키고 싶은, 그런 세계다.]

아르트의 환영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역시 간접적으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차이가 있는 법이다. 그대와 함께 오기를 잘했군. 용기를 내 그대에게 제안해서 다행이었다.]

“…뭘 새삼스럽게.”

아르트는 낯간지러운 소리를 자연스럽게 내뱉고 있었다. 그 모습에 뭔가 부담감을 느껴, 나는 사선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하지만, 이 세계가 가진 힘은 너무나도 미약하다. 바빠지겠구나, 아크.]

“…그렇죠, 뭐.”

아르트는 조금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확실히, 그 말대로 이 세계는 가지고 있는 것들과 그것들의 가치에 비해서 가지고 있는 힘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말이다.

애초에 이렇게까지 마나가 고갈되어 있는 세계가 여태동안 마족들의 침공을 버텨낸 것이 기적 같은 일이었다.

‘…오히려 우리들이 용사로 아스트레아에 다녀왔던 것이 다행이었을 수도.’

당장에 나를 제외하더라도, 헌터 협회를 설립하고 토벌 활동을 전문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로이드도 용사 출신이었으며, 토벌 전선의 선두에 서서 불가능에 가까운 토벌들을 해냈던 이태현 역시 용사 출신이다.

우리들이 없을 때 생길 일은, 이번 침공에서 절실히 드러났다. 마왕 하나가 나타났을 뿐인데 전쟁의 승패자체가 뒤집혀버린다.

[뭐, 힘이 부족한 것은 그대까지 포함되는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그는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대가 인간을 초월한,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 있을 역경들에 맞서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

“…그 역경이라는 게, 대군주 바알을 말하는 겁니까?”

아르트가 역경이라는 말을 입에 담은 순간, 나는 곧바로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말했다.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르트는 영문 모를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얼버무릴 뿐이었다.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힘이 부족하다… 인가.’

나는 유적의 끝에 있는 용사의 제단에 도착했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곳에 모여 있는 힘은, 과연 진정한 용사의 힘이라는 것에 어울릴 정도로 강대한 것이었다. 절대적이라는 표현을 붙여도 결코 부족함이 없는, 그런 막대한 힘.

우리들은 그 막대한 힘을 해방시켰고, 그 힘은 우리 다섯 명에게 고스란히 깃들었다.

덕분에 로이드와 이태현은 용사로 활동하던 시절의 나 정도는 가뿐하게 뛰어넘을 정도의 힘을 갖게 되었고, 전력으로서는 조금 떨어지던 김세율도 혼자 마왕과 전투를 치룰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 어린아이에 단순했던 애던도 급격한 성장을 이뤄내 어지간한 S급 헌터들보다 강력해진 상황이었으니, 말 다했다.

‘나도 가끔씩 깜짝 놀랄 정도인데 말이야.’

잠시 시험 삼아 코어를 활성화 시킨 것만으로 넘쳐날 것 같은 마나를 느끼며, 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그럼에도, 힘이 모자라다는 것인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부족하게나마 시간은 남아있으니.]

하얗게 마나가 일렁거리고 있는 내 손을 바라보면서 아르트가 말했다.

“그런데 아르트.”

그리고 나는,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왜 그러나.]

“언제까지 밖에 나와 있을 거에요? 검으로 들어가요.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

[…지금이 그런 말을 할 타이밍은 아닌 것 같다만.]

그는 조금 당황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 게 뭡니까. 지금은 제 휴식시간이라고요. 뭐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해주는 것도 아니고, 까놓고 말해서 솔직히 방해야.”

[…자네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심한 말을 하는 군. 그 성격은 언제쯤에나 고쳐질런지.]

아르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누가 들으면 옛날부터 지내온 사이인 줄 알겠네. 됐고, 빨리 들어가기나 해요. 애초에 어지간하면 이쪽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게 약속이었잖아요.”

[하. 알겠다. 좋은 밤 되라. 빌어먹을 용사 녀석 같으니라고.]

어울리지도 않는 악담을 마지막으로, 아르트의 모습은 점차 흐려지더니 공기 중으로 완전히 흩어졌다.

그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는 아공간에 미스틸테인을 집어넣은 후 다시 침대로 몸을 던졌다.

“…아직도 갈 길이 멀어.”

어디다 대고 신세한탄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을 애써 참으며, 나는 침대 위에서 눈을 감았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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