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후우…….”
방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겉옷을 옷걸이에 대충 벗어 던지고서 침대 위에 누웠다. 눕는 순간 올라오는 술기운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천장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형광등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방 안의 풍경이 익숙한듯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하긴, 그럴 만도 한가.’
이곳, 지구에서는 그다지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아 먼지도 별로 쌓여있지 않았지만, 나는 약 150일에 달하는 시간을 아스트레아에서 보내고 온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중에서도 대부분의 시간은 칙칙한 유적 속을 헤매며 보냈고, 오랜만에 야숙 하나는 질리게 한 참이었다.
이런 푹신한 침대나 편리한 현대 문명의 혜택이 충분히 낯설게 느껴질 만한 시간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이태현의 지휘 아래 밤새도록 마실 기세였지만, 나는 볼 일이 있었기에 따로 나와 방으로 들어왔다.
문득 쳐다본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처음 술자리를 시작했을 때의 시간이 대략 9시 언저리였으니, 적어도 2시간 이상은 술을 마셨다는 계산이 나왔다.
‘…술이나 퍼마실 상황은 아니긴 하지만 말이야.’
딱히 마실 기분도, 상황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가진 술자리는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나는 유적 탐사 후 제대로 된 뒤풀이도 가지지 못했던 이후라, 더더욱 감회가 새로웠고, 즐거웠다. 이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카엘라의 행방이 묘연한 지금 상황에서 마냥 기분 좋게 술자리에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에 대한 생각을 떠올린 순간, 흥겹게 올라와있던 술기운은 단박에 사라져버렸고, 결국 2차는 가지 않고 빠지는 것으로 됐다.
“나는, 선생님을… 믿지 못하는 건가.”
아무것도 없는, 그저 형광등이 빛을 발하고 있을 뿐인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중얼거리듯이 허공에 혼잣말을 내뱉었다.
* * *
“아뇨, 미카엘라 언니는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아요. 이번 전투에도 참가하지 않았고… 저도 잠시 찾아봤었지만,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적어도 서울 주변에는 없다는 것뿐이네요.”
질문을 던지는 내 모습이 조금 조급해 보였는지, 전투 후 바쁘게 뒷정리를 지휘하고 있던 와중에도 소연이는 나에게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뭐라고…?”
그러나 그녀의 친절한 대답과 달리, 나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와 자책감으로 등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리리스를 통해 볼 수 있었던 전장의 모습에서는 미카엘라의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고, 조금 의아하기는 했지만 그 사실에 내심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소연이는 미카엘라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행방 자체가 불명확한 상태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확인해봐. 확실해? 감지망은 제대로 펼쳐본 거야? 디텍팅은?”
다급한 심정에 나는 조금 몰아붙이듯 소연이에게 다시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급한 상황이라 그런 자세한 공정까지는 거치지 못했어요. 애초에 제가 탐색해본 영역은 서울시 인근밖에 되지 않고요.”
그녀는 그것이 마치 자신의 실수라는 것처럼 말했다.
“…알았어.”
하지만 그 말은 오히려 내게 희망이 되는 말이었다.
탐색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순히 소연이가 찾아내지 못했을 뿐일 수도 있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나는 잠시 미카엘라를 찾아볼게. 만약 약속시간까지 내가 오지 않는다면, 로이드한테 그냥 나 없이 회의를 진행해달라고 말해줘. 알아서 해줄 거야.”
헌터 협회의 소집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언급을 남겨두었다.
“…알았어요. 오빠한테는 미안하지만, 지금 정황 상 탐색에 도움을 드릴 여력은 없을 것 같아요. 원래는 제가 해야 할 일인데…….”
풀이 죽은 채로 이야기를 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상황임에도 싱긋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인 소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텔레포트로 서울 외각부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미카엘라의 안전을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한 발 늦는 바람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오는 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었다.
* * *
‘너 좀 오랜만에 보는 거 같다? 팀은 어쩌고… 뭐? 미카엘라? 너랑 같이 갔던 거 아니었냐?’
‘난 지금 학과장이 아니라 지금 이 빌어먹을 협.회.장이라 잘 모르겠는데. 미카엘라 찾는 김에 로이드도 보이면 좀 잡아와주라…….’
‘어, 미카엘라 언니요? 오빠도 미카엘라 언니를 알아요? …근데 한국으로 떠난 이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마슈도 언니 보고 싶은데…….’
“후… 대체 어디 있는 거지.”
한참동안 사방팔방을 뛰어다니고, 그 때마다 최대한 정교하게 감지망을 펼쳐봤지만 미카엘라는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리리스에게 도움을 요청해 미카엘라의 위치를 알법한 사람들을 찾아다녔지만, 그들 역시 알지 못했다.
시간도 많이 들고 효율도 떨어지지만,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 미카엘라를 찾고 있는 것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목소리는 사람의 말을 하고 있었지만, 도저히 사람의 목소리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음산하고, 어두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들려온 그 순간, 잔뜩 긴장해 조바심을 내고 있던 가슴이 단숨에 풀어졌다.
그 목소리는 기억에 없는, 처음 듣는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선생님이십니까.”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허공을 바라보며 혹시나 하는 목소리로, 하지만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 …선생님은 무슨 얼어 죽을. 죽은 자에게, 그리고 이런 차가운 갑옷 덩어리에게 그런 호칭은 어울리지 않아.
그곳은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불과했지만, 분명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그곳에 검은 안개가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 안개는 성인 남성 정도 크기의 검은 갑옷의 형상이 되었다.
“…선생님 말고는 딱히 부를 말이 생각나지를 않는데요.”
나는 잔잔한 미소를 띄운 채, 눈앞에 나타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있었다.
― 너 원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거 별로 안 좋아했잖냐.
“하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물어봤는데 이름도 안 알려줬었고, 선생님 말고 다른 말로 불리는 것도 싫어했었죠.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한 건 본인이셨는데요?”
나는 과거의 추억 하나를 떠올리면서 말했다. 그녀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 …하. 좋을 대로 불러라.
그녀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실웃음을 터트렸다.
“선생님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군요.”
― …뭐, 사람이라는 게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었나? 그러는 너는 좀 많이 바뀐 것 같지만 말이야.
흉흉하게 검은 에테르를 뿜어내고 있던 갑옷은, 멋쩍다는 듯이 목 언저리를 긁적였다.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와의 대화는 나의 옛 기억을, 추억을 생생하게 상기시키고 있었다. 악몽에서조차도 그리워했었던 그 광경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부정할 수가 없었다.
어떤 형태로 이루어졌건 간에, 나는 선생님이 아직 이 세계에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선생님을 되살려낸 루시퍼에게 약간의 감사를 표할 정도로.
비록 언데드로 되살아나 텅 빈 갑옷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반쪽짜리 싸구려 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 잡담이 길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선생님의 주변을 맴돌던 검은 안개 중 일부가 바닥에 모여 형태를 갖추었고, 선생님은 그 위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맞아, 미카엘라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무슨 뜻이죠?”
― 말 그대로야. 그녀는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다. 나와 함께 지내고 있는 중이지.
“…그거 굉장히 위험한 상황 아닌가요.”
선생님의 목소리는 어딘가 장난 끼가 서려있었지만, 나는 그 말을 웃으면서 넘길 수가 없었다.
‘일단은… 서로 간에 동화현상이 일어날 겁니다.’
나는 문득 루시퍼가 했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완전히 동일한 두 영혼이 공존을 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예측. 그리고 그 녀석이 내놓았던 예측들 중에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 믿든 말든 상관없다.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평소대로라면 이렇게 말했을 테지만.
선생님은 말을 흐리다,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 헬름의 안은 텅 비어있을 테지만, 나는 그녀의 눈동자와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지금은, 믿어달라는 말밖에 할 수 없겠구나.
선생님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
그리고 잠시동안 침묵이 내려앉았다.
선생님은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나는 과연, 선생님을 믿을 수 있는가.
…언데드가 되버린 선생님에게, 미카엘라를 맡길 수 있겠는가.
내가 찾아낸 해답을,
내가 찾아낸 구원을.
“…알았어요.”
나는 선생님의 시선을 외면하며 대답했다.
“선생님을 믿을게요. …일단, 지금은.”
― …아아, 고맙다.
그 말을 남기고, 검은 갑옷의 형태는 순식간에 흐릿해지더니 사라져버렸다. 그곳에 남아있던 검은 안개도 공중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믿든 말든 상관없어, 인가.”
이젠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것은 아스트레아에서 함께 여행을 하던 시절, 내가 그녀의 행동에 의심을 품을 때면 그녀가 말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내가 그녀를 믿기로 한 결정적인 근거는, 그런 추억의 흔적에 불과한 것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