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나아가는 사람과, 뒤쫓는 사람
김세율.
헌터하고가 1학년 실습동아리의 일원이자, 최근에 프로 헌터활동을 다시 재개한 헌터로, 최근 함께 행동해온 동료들 중에 한 명이었다.
그리고 지금 마르바스를 단숨에 제압하고, 하늘에서 천천히 땅으로 내려오고 있는 사람 역시 김세율이었다.
하지만 마치 중세 배경 판타지 게임에서 나온 것처럼 화려한 마법사 복장과, 그녀의 주위에 맴돌고 있는,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에테르 기운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세율 언니… 세율 언니, 맞아요?”
때문에 이소연은 조심스레 다시 한 번 그녀의 정체를 물었다.
“흐음, 저쪽과 달리 지구에서는 그다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네만, 내 인상이 그렇게 흐렸었나? 조금 섭섭하군.”
육지에 조심스럽게 착륙하면서 김세율이 말했다. 섭섭하다는 말과 달리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장난이네. 당황스러울 만도 하겠지. 아직 나도 가끔씩 내 힘에 놀랄 때가 있으니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조금 시간을 들여 진득하게 설명을 해주고 싶지만 말이야…….”
“크아아아아아―!!”
그 때, 뇌전의 충격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마르바스가 몸을 일으키면서 거세게 울부짖었다.
그의 등 뒤에는 거대한 날개가 돋아나있었고, 잘려나갔던 오른팔에는 초록빛 비늘로 뒤덮인 새로운 팔이 돋아나있었다. 얼굴 또한 흉측한 파충류의 것으로 뒤틀려있었다.
“감히, 감히 나를 화나게 하다니!! 고개를 숙여라, 땅바닥에 무릎을 꿇어라!! 네년들은 결코 편히 죽는 꼴을 보지 못할지니!!”
마르바스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서, 눈앞의 이소연과 김세율을 죽일 겠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엄청난 규모의 에테르가 폭풍처럼 맴돌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주변을 초토화 시켜버릴 듯한 기세였다.
“우선은, 저 녀석을 처리하는 게 먼저일 것 같네.”
“…언니, 설마 지금,”
저 괴물을,
혼자서 상대하겠다는 건가요?
하지만 이소연의 말이 채끝나기도 전에, 김세율은 오른손을 들어 올려서 에테르를 집중시켰다.
잠시 후, 그녀의 손에는 극한으로 압축된 뇌전의 창이 쥐어져 있었다. 그 창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대기를 찢어, 소름끼치는 파공음을 울리고 있었다.
“흐읍!”
완성된 번개의 창을 두 손으로 내려잡은 김세율은, 원거리에서 투척했던 방금 전과 달리 창을 두 손으로 쥐고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속도는, 터무니없이 빨랐다.
자신이 최정상급의 옵저버가 아니었다면,
아니, 자신의 능력인 천리안을 발동시키지 않았다면 그 움직임조차도 쫓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소연은 생각했다.
김세율은 그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은 상태로, 마르바스의 가슴 한 가운데를 노리고서 깊숙히 파고들었다.
대부분의 마족들의 코어가 위치한 부분.
처음부터 그녀가 끌어낼 수 있는 힘을 다한 최선의 공격으로 부딪혀, 최대한 빠르게 속전속결로 승부를 끝장내겠다는 의지가 비치는 일격이었다.
파차차차차창!!
마르바스는 만약을 대비하여 주위에 방어결계를 펼쳐놨었지만, 그 정도로 그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마르바스와 거리를 좁혀갈 때마다 마르바스의 주위에 펼쳐져 있던 방어결계들이 유리조각처럼 깨져나갔다.
“네 노오오옴!!”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다.
마르바스는 순간적으로 오른팔을 휘둘러, 김세율의 번개의 창을 옆으로 쳐내서 그 궤도를 비틀어냈다.
그의 팔에는 우툴두툴하게 삐져나온 파충류 특유의 비늘들이 덮여있었다. 그녀의 공격을 쳐낸 팔에는 조금씩 그을린 흔적들이 남기는 했지만, 비늘이 깨지지는 않았다.
“흐읏!!”
하지만 김세율은 궤도가 비틀어진 일격을 그대로 한바퀴 휘감아, 용의 형상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마르바스의 목을 노리고 곧바로 휘둘렀다.
그녀의 초격을 무효화시키고서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마르바스는, 방금 전과 달리 비교적 무방비한 상태에서 그 일격을 받아내게 되었다.
“샤아아아아앗!!”
그가 그녀의 일격을 피해낸 것은 순간적인 판단력이나 동체 시력 같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고자 하는 본능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목이 날아가는 것을 피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의 목에는 치명상은 아니지만 결코 얕지 않은 상처가 남아 푸른빛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
마르바스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발을 들어 올려 땅바닥을 내리찍었다. 이소연을 견제할 때도 사용했었던 충격파였다.
“크윽…!!”
이소연은 전투의 여파에 휩쓸리지 않도록 충분히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충격파 영향을 받고 있었다.
충격파 때문에 잠시 두 팔로 얼굴을 가렸었던 이소연은 다시 전황을 살피기 위해서 고개를 들어올렸다.
마르바스의 충격파에 의해 주변 일대는 쑥대밭이 되어있었지만, 그곳에 김세율은 없었따.
그녀는 마르바스가 발로 땅바닥을 내리찍기 직전에 공중으로 뛰어오른 상태였고, 아직까지 포물선을 그리며 공중에 떠오르고 있는 상태였다.
“하!! 어리석은 녀석!!”
마르바스는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그녀에 대한 모멸을 내뱉었다.
그리고, 곧 그의 입에는 붉은 화염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입에 머금어진 불꽃은 모든 것을 태워버릴 기세로 타오르고 있었다.
상급 용족의 권위이자 상징, 브레스였다.
공중에서는 행동이 제한되며, 움직임을 읽힐 수밖에 없다. 그대로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할 뿐이기에 움직임마저 손쉽게 읽힌다. 상대방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노출되는 위치인 것이다.
거기에 지금, 마르바스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용족의 브레스였다. 압도적인 범위에 막대한 화력을 퍼붓는 용의 숨결을, 공중에서 피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사지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세율의 얼굴에서는 당황한 기색을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듯한, 자신에 찬 표정이었다.
“전광석화(電光石火).”
그리고 그녀는, 원호에게 배운 기술의 시동어를 조용하게 읊조렸다.
그와 동시에 마르바스의 입에서는 어마어마한 불길이 뿜어져 나와 하늘을 뒤덮었다.
만약 육지에 내뿜었더라면, 숲 하나 정도는 통채로 태우고도 남을 법한 불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김세율은 스스로가 한 줄기의 벼락이 되어 마르바스의 눈앞에 내리꽂혔다. 마르바스의 불길은 고개를 숙인 그녀의 한참 위를 무의미하게 불태우고 있을 뿐이었다.
“…!!!”
그녀의 움직임을 한 발 늦게 포착한 마르바스는 서둘러 그 고개를 밑으로 숙이려고 했지만, 그보다는 김세율의 행동이 더욱 빨랐다.
슈칵―
뭔가가 깔끔하게 잘려나가는 절단음이 들려왔고, 다음 순간 마르바스의 정면에 있었던 그녀는 그를 지나 뒤쪽에 나타나있었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잘려나간 마르바스의 오른팔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크라아아아아악!!”
다시 한 번 오른팔이 베어져나간 고통에, 마르바스는 뿜어내던 브레스를 멈추고서 자신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그러는 동시에, 마르바스는 남아있는 왼손에 마나를 끌어 모아서 거대한 검을 만들어냈다.
완성이 되기 전부터 휘둘러지고 있던 그 검은, 마무리를 짓기 위한 일격을 준비하고 있던 김세율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언니, 고개 숙여요!!]
“크읏!!”
순간적으로 들려온 이소연의 전음에, 김세율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검은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뒤통수를 스치고서 지나갔다.
[다음, 옆으로 피해요!!]
이소연의 전음은 막연하기 그지업는 내용이었지만, 김세율은 한동안 그녀와 함께 호흡을 맞춰온 경험으로 그 내용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그녀는 옆으로 스탭을 밟아 비켜나는 동시에, 허리를 비틀어 마르바스와 수직으로 섰다.
직후, 마르바스의 대검이 그녀가 방금 전까지 서있었던 자리에 내리 찍혔다.
‘…꿀꺽.’
부상을 당한 상황이었음에도 상상 이상의 전투력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김세율이 마른침을 삼켰다.
일단은, 재정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대로 반격을 시도할 수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대로 난전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마르바스는 그녀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강력했다. 이대로 난전으로 간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었다.
결국 김세율은 상대를 얕보고 있었음을 인정하며,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로 뒤로 물러섰다.
서너 개의 라이트닝 볼트가 견제용으로 쏘아졌지만,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그 사이에 마르바스의 오른팔은 다시 재생되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언니, 괜찮아요?]
[아아, 괜찮다. 언제나 도움을 받는 군. 고맙다.]
아직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김세율은 전음에 대답했다.
[제가 지금 녀석의 데이터를 보낼게요.]
[…아니, 그보다 너는 작전 지휘에 다시 복귀하도록 해. 방금 도움을 받고 살아남은 입장에서 말하기는 조금 뻔뻔하지만, 여긴 알아서 버텨보도록 하지.]
지금은 마르바스도 문제였지만, 점차 무너져 내리고 있는 방어선 역시 큰 문제였다. 실제로 이소연의 지휘가 끊긴 지금, 여태 무난하게 버텨오던 방어선에는 혼란이 찾아온 상태였다.
[하지만…]
이소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그녀만 남겨두고 가기에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괜찮다. 정 힘들면 도움을 요청할 테니, 걱정하지 말게.]
이소연의 전음에, 김세율은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미안해요, 언니.
그 전음을 마지막으로, 이소연은 레이더망을 펼쳐내며 어딘가로 달려 나갔다.
“…하아, 아크가 하던 것처럼은 쉽게 되지 않는구나.”
이소연이 물러난 것을 확인한 후, 김세율은 여태동안 참아왔던 호흡을 몰아쉬듯 내쉬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순간적으로 가속하는 전광석화와, 거기에서 연속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격. 그녀가 아크에게 직접 배운 기술이었다.
하지만 배웠던 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본래는 마르바스의 목을 날려버릴 셈이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자신의 실력이 한참 모자랐다.
그리고 마르바스의 힘이 그녀가 상상했던 것 이상인 것도 큰 요인 중 하나였다. 아르트의 유적을 돌파하며 어느 정도 자신감이 쌓인 그녀였지만, 마왕이라는 것들은 역시 하나같이 괴물 같은 녀석들이었다.
‘…아크는 저런 괴물들을 혼자서 상대해왔다는 것인가.’
그것도, 자신이 제국 수도에서 한가로이 서점 직원 일이나 하고 있었던 시절에.
“크큭.”
부끄러움일까, 동경일까.
혹은 죄책감일까
자신도 뭐라 단정 짓기 힘든 감정에, 김세율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다시금 자세를 고쳐 잡았다.
“…따라잡기에는 조금 늦었지만.”
그녀는 중얼거리듯이 말하며 눈앞의 상대를 바라봤다.
“쿠으… 쿠으…….”
눈앞의 마르바스는 이미 재생을 마친 상태였지만, 방금 전과 달리 조금 지쳐보였다. 마나의 기운도 한풀 껶여있는 상태였으며, 호흡도 조금 가빠져 있었다.
“뒤를 쫓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녀는 손에 쥔 뇌창을 다시 들어 올리고서, 마르바스를 향해 다시 한 번 달려들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