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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112화 (112/135)

112화

‘…루시퍼.’

마왕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의 머릿속에는 가장 먼저 그 이름이 떠올랐다.

독일에서 갑자기 나타나 협회 본부를 기습하고, 단숨에 주변 일대를 초토화시켰었던 마족.

루시퍼에게는 국가 하나 정도는 혼자서 단숨에 초토화 시켜버리고도 남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 있었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막대한, 그런 힘이.

만약 그곳에 조원호가 없었다면, 협회 본부가 초토화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루시퍼에게 S급 헌터 전원이 달려들어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있는 또 다른 마족은 자신을 ‘그 루시퍼와 같은 마왕’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루시퍼보다는 확실히 떨어지는 녀석 같지만…….’

다행히 그 둘은 수준이 달랐다.

잘은 몰라도, 눈앞의 마르바스라는 녀석이 루시퍼보다 몇 단계는 격이 떨어지는 녀석이라는 것을 이소연은 느낄 수 있었다.

아마 마왕들 간에도 격차가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저 마르바스라는 녀석을 처리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찌할 방도가 없는 상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그 마왕이라는 양반이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실까? 마왕성 지을 땅이라도 알아보러 오셨나??”

이소연은 최대한 태연한 척을 하며 이야기를 시도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보기 위해서였다.

‘협회의 지원부대만 도착한다면.’

현재 상황에서는 협회의 지원부대가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패였다. 그게 그녀가 믿고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고, 희망이었다.

입술이 메마르고, 등 뒤로는 식은땀이 사정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소연은 평소처럼 태연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이 주변 동네는 땅값이 조금 비싼 편이라, 다른 곳을 알아보셔야 할 것 같은데?”

“흐음, 이 세계에는 마나 밀도가 형편없을 정도로 떨어져서 말일세. 말하자면 황무지 같은 곳이지. 마왕성은커녕 별장도 짓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구만.”

마르바스가 턱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리고 값이라. 적어도 나에게는 필요가 없는 말이로군.”

그는 미소를 지었다. 마족 특유의 오만함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원하는 건, 빼앗는다. 힘이 충분하다면 내 손에 쥐는 것이고, 부족하다면 놓치는 것이지.”

그리고 마르바스는 오른발을 들어올렸다.

“과연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걸 손에 쥘 수 있을지?”

그 순간, 그 오른발을 중심으로 엄청난 규모의 에테르들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 일대의 에테르 흐름 자체가 뒤바뀔 정도의 규모였다.

“크흡!!”

순간적으로 호흡이 막혀버릴 정도의 위압감과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험에, 이소연은 필사적으로 그와 거리를 벌렸다.

콰아아아앙!!

마르바스가 들어 올렸던 발을 힘있게 밑으로 내리찍자, 거대한 에테르의 폭발이 일어났다. 굉음이 울려 퍼졌고, 주변 일대가 동시에 내려앉았다.

“쿨럭, 쿨럭. 크윽…….”

폭발의 여파가 지나가고 드러난 광경은, 단순한 발구르기의 결과라고 보기에는 지나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소연은 비교적 가장자리 부분에서, 부상을 입은 채로 주저앉아있었다.

급하게 몸을 피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발의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허허, 판단력과 반사신경은 쓸 만했다만, 신체능력이 받쳐주지 못하는군. 뭐, 자네 실력이 거기까지였다는 뜻이겠지.”

마르바스는 다시 뒷짐을 지고서, 바닥에 쓰러진 그녀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그 때, 바닥에 쓰러져있던 이소연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녀의 눈에는 특유의 푸른 안광이 타오르고 있었다.

“호오, 마안인가? 참으로 신기한…?!”

마르바스는 마치 감평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긋하게 그녀의 두 눈을 살펴보고 있었지만, 그 느긋함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분명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퍼걱.

“크으음?!”

누군가가 뒤에서 자신의 다리를 걷어찼다.

마르바스는 무릎 안쪽으로 느껴지는 고통에 저절로 한쪽 무릎을 구부렸다.

“이익…!!”

갑작스러운 고통에 순간적으로 고통이 치밀어 오른 그는 급하게 뒤를 돌아봤지만, 그곳에도 그녀는 없었다.

아니, 사라졌다.

이소연은 다시 그의 등 뒤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에테르를 실어서, 반대쪽 발도 걷어찼다.

결국 마르바스는 두 무릎을 구부린 꼴이 되었다.

“끄흐으음!! 네놈, 이 몸에게 기어오르려는 것이냐!!”

날카롭게 신경이 곤두선 마르바스가 호통을 치며 검을 휘둘렀다. 이소연처럼 가녀린 몸체 정도는 단숨에 두 동강 내버리기에 충분한 기세였다.

하지만 이소연은 다시 마안에 힘을 싣고서, 신중하게 상대의 다음 움직임을 읽어냈다.

‘고개를 좌로 틀면서, 좌하단으로 휘두른다.’

그녀는 신체강화로 신체능력을 좀 더 한계까지 끌어올린 후, 그의 뒤통수를 따라 고개를 돌리는 반대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마르바스의 거대한 에테르의 참격이 그녀를 찢어발기기 위해 휘둘러졌지만, 그 참격은 방금 전ᄁᆞ지 그녀가 있었던 곳을 허무하게 가를 뿐이었다.

턱.

그리고, 마르바스는 자신의 뒤통수에 누군가가 손을 얹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후우, 겨우 잡았다.”

“무슨―”

투콰아아앙!!

마르바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소연은 여태동안 끌어올려 뒀었떤 에테르들을 전부 자신의 오른손에 집중시켰고, 곧바로 폭발시켰다.

푸른빛의 에테르가 터져 나오며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마족의 머리통 하나 정도는 충분히 날려버리고도 남을 화력이었다.

* * *

‘해냈다, 겨우…….’

아직도 폭발의 여파로 먼지가 가득한 가운데, 이소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S급 헌터라고 해도, 그녀는 전투능력이 떨어지는 옵저버에 특화된 헌터였다.

하지만 이처럼 자신의 능력을 한계까지 발동시킨 상태에서는, 그녀 나름대로의 전투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마안, 천리안(千里眼).

시야의 거리와 범위를 극단적으로 확대시켜주고, 심지어 투시까지 가능케 해주는 능력.

이 능력을 한계까지 발동시켰을 때, 그녀의 눈은 사실상 시각으로 얻어낼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을 순간적으로 포착해낼 수 있었고, 찰나의 순간에도 반응할 수 있는 동체시력까지 생긴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주어진 막대한 정보를 활용하여, 그녀는 어느 정도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해낼 수 있었다.

상대방의 미세한 움직임.

상대방의 시선의 방향.

이런 세세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다음 움직임을 예측하고, 그녀는 그걸 상대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움직임을 취한다.

그것이 그녀의 전투방식이었다.

“으으윽…….”

하지만 그 정도까지 힘을 끌어올렸을 때, 그녀의 정신력은 지나치게 혹사당한다.

게다가 지금은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 신체능력도 한계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이소연은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전신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빌어 처먹을.”

“…?”

들려선 안 될 목소리에, 이소연은 힘없이 주저앉은 상태에서도 황급하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빠각!!

그리고 마르바스는, 들어 올려진 그녀의 머리통을 그대로 걷어찼다.

이소연은 급하게 두 팔을 들어올려 갑작스런 공격을 막아냈지만, 그대로 튕겨져 나가 땅바닥을 굴렀다.

“인간 놈들의 허접한 잔머리치고는 쓸 만했다. 인정해주지. 본인의 항마력을 뚫기에는 힘이 조금 모자랐던 것 같지만 말이야.”

다시금 여유를 되찾아 가는지, 마르바스는 다시 그의 턱수염을 만지고 있었다.

“치이잇!!”

이소연은 거의 한계에 다다른 몸을 다시 활성화 시키고, 곧바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방금 전과 달리, 이소연은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녀는 방금 전처럼 그의 사각을 노리고 몸을 날렸지만, 마르바스가 전 방위에 충격파를 뿜어내는 탓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너 같은 녀석을 상대할 때에는, 의외로 무식한 방법이 더 잘 통하는 법이지.”

마르바스의 말은 어느새 존대가 아니라 반말이 되어 있었다.

“나쁘기만한 시간은 아니었다. 조금은 즐겁기도 했군. 하지만 여기까지다.”

말을 마친 후, 마르바스는 최대한으로 에테르를 끌어올려 허공에 형체화 시켰다. 형체화 된 에테르들은 점차 한 곳에 집중되어, 오오라가 일렁거리는 구체의 모습이 되었다.

‘…말도 안 돼.’

거기에 모이고 있는 에테르는 터무니없다고 느껴질 정도의 양이었다. 자신의 마안으로 그 사실을 읽어낸 이소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것을 폭발시키는 것만으로도, 이 일대는 담숨에 초토화 되어버린다. 그것은 작전 본부의 괴멸을 뜻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긴박한 상황에서 작전 본부의 괴멸은 방어선의 붕괴를 의미했다.

저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들을 끌어 모아 봐도, 지금 상황에서 꺼내들 수 있는 모든 패들을 검토해봐도 저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본부의 인원들이라도 대피시킬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또한 없다.

이제 와서 경보를 울려봤자 죽음을 통보하는 소리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절망에 ᄈᆞ진 채로 죽어가도록 하게. 뭐, 자네 혼자라도 살아남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네만. 하하하하!!”

마르바스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리며, 끌어 모았던 에테르를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엄청난 에너지를 끌어안고 있는 구체는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하아아아!!”

이소연은 마지막으로 힘을 쥐어 짜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몸으로라도 막아보려는 심산이었다.

“크헉.”

하지만 마법을 준비하는 마르바스가 한 차례 발을 구른 것만으로 그녀는 튕겨져 나왔다. 방금 전처럼 전방위에 충격파를 뿜어낸 것이다.

“아, 아아…!!”

구석에 몸이 처박힌 이소연은 그 구체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녀는 저걸 막을 수 없었다.

‘원호 오빠…!!’

순간적으로 떠오른 이름을 머릿속으로 외치며,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그 때였다.

파차아아앙―

그 때, 무언가가 쏜살처럼 그 구체를 관통해 반대편의 바닥에 내리 꽂혔다.

“뭐…라고?”

그것은 정확하게 구체의 핵을 관통했고, 폭발하기 위해 그 구조가 허술하게 풀어지고 있었던 핵은 단숨에 깨져나갔다.

핵이 깨져나간 에테르 덩어리는 순식간에 와해되어, 마치 공기속에 스며드는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으이익!!”

자신의 비장의 수단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 마르바스의 눈썹이 부르르 떨렸다.

“대체 어떤―”

“뇌신의 창(Jupiter's Spear)!!”

그는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지만, 그 고함은 대기를 찢는 뇌전의 파공음에 가려버렸다.

날카롭게 벼려진 뇌전의 창이 마르바스의 코어를 노리고 달려들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악!!”

마르바스는 늦지 않게 몸을 피했지만, 즉사를 피했을 뿐이었고 오른팔이 어깻죽지 채로 날아가는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흐음… 조금 걱정은 했었네만, 다행히 지구에서 사용해도 별 차이는 없는 모양이군.”

뇌전의 창이 날아왔던 방향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르바스가 질러대는 고통에 찬 비명과 대조되는 잔잔한 목소리였다.

“김세율… 언니?”

그리고 그 목소리는 이소연의 귀에 익숙한 것이었다.

단숨에 마족을 찢어낸 뇌전의 창.

거기에 담겨있던 힘은, 방금 전 마르바스가 띄워냈던 에테르 구체와 비견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 정도로 강력한 마법을 시전한 것이 그녀일리는 없었다. 김세율이 실력자이기는 해도, 냉정하게 평가해서 S급 헌터에는 못 미치는 실력에 불과했으니까.

“오랜만이…라고 하기에는 그대에겐 짧은 시간이었겠구나.”

하지만 그곳에 나타난 것은 김세율이었다.

공중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이소연의 앞으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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