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귀환
‘저희는 신탁을 받았습니다. 저희 길드의 선조이자 수호신인, 애던님께서 돌아오셨다는 신탁을 말이죠.’
길드 마스터의 멱살을 쥔 채로 흔들며 ‘이 꼬맹이가 대체 왜 애던이냐.’고 물었을 때, 그 길드 마스터는 그렇게 대답했다.
놀라웠던 점은, 그 꼬맹이가 정말로 애던이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 영감탱이가 가짜 애던을 내세워서 단물이나 빨아먹으려는 수작인 줄 알고 코웃음을 쳤었다. 나를 흉내 내던 짝퉁 아크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오빠는 누구에요? 왜 착한 할아버지를 괴롭혀요?’
소녀는 내 옷깃을 잡아당기면서 순진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그 소녀의 허리춤에는, 아스트레아에 있던 당시에 애던이 자주 사용했었던 단검 두 자루가 교차되어 메어져 있었다.
그녀가 쓰던 그 두 자루의 단검은, 영혼 각인이 되어있는 그녀만의 소유물이었다. 그녀가 아닌 사람은 손을 대기만 해도 거부반응이 나타나는 물건이었다.
만약 강제로 달아놓은 거라면, 검에 새겨져 있는 영혼 각인이 지금도 난리를 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녀의 허리춤에 메어진 단검은 검집에 꽂힌 채로 얌전했다. 소녀를 자신의 주인이라고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진짜 아크님이시라면 아시겠지요. 저 검이 저렇게 가만히 있다는 것이, 켁켁. 이분의 영혼이 애던님의 영혼과 동일하다는 증거라는 것을요.’
처음에는 모양새만 비슷하게 만들어진 모조품이 아닐까 생각해봤었지만, 아무리 봐도 진품이었다.
‘저희 길드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보물이자 성유물입니다. 이젠 믿으시겠습니까? 믿으실 수 있으시다면… 컥, 이 멱살 좀 풀어주십쇼.’
그 과묵하고 살벌했던 애던이, 천진난만한 소녀로 나타났다.
조금 충격적인 사실이었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애던의 이미지와 소녀의 이미지가 완전히 다르다는 게 충격적이었을 뿐, 납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눈앞에서 죽었던 선생님이 멀쩡히 살아서 움직이는 모습도 받아들였던 사람이었다.
아마 애던 역시 미래 쪽에서 왔었을 뿐이겠지. 다만 선생님과 달리 애던은 용사들 중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던 생존자였고, 따라서 그녀의 과거가 사라질 이유도 없었다.
리리스의 차원 이동 대상은 현재 지구에 남아있는 용사들이었고, 그 대상을 찾는 기준은 피소환자의 영혼이었다. 덕분에 ‘용사 애던’ 대신 아스트레아에 다녀온 적도 없는 ‘소녀 애던’이 소환되었던 것이리라.
‘…덕분에 5명으로 생각해두고 있었던 팀이 4명으로 줄어들어버렸지.’
문제는 그 소녀가 애던이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지금의 애던에게는 별다른 전투 능력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애던은 훗날 암흑가에서 공포의 대명사가 될 나무의 떡잎에 어울리는 천재적인 재능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필요했던 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전력이었지, 잠재력이 뛰어난 인재가 아니었다. 그녀를 성장시킬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이런 꼬맹이를 사지에 끌고 들어가는 것은, 인간으로써 할 짓이 아니지 않은가.
결국 그는 기존에 간략하게 짜뒀었던 팀의 전략들을 전부 바꿔야만 했다.
원래는 유적에서 애던에게 사전 탐색과 기습 및 암살을 맡길 생각이었지만, 그 자리가 공석이 되어 팀의 구성 자체가 바뀌어버렸으니까.
아크, 로크, 레온하르트, 김세율.
결국 유적에 진입한 것은 이 4명뿐이었고, 유적을 끝까지 돌파해낸 것도 이 4명이었다.
그동안 애던은 제국의 황실에서 귀빈대접을 받으며, 중세의 귀족 체험을 만끽했다고 한다.
‘덕분에 시간이 좀 더 끌렸지… 미카엘라는 빠트렸으면서, 애던은 왜 그대로 데려온 거야.’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요?”
“…아니야.”
한참 유적에서 헤맬 때 자주 생각했던 불만을 떠올리며 당시의 짜증을 되새기는 아크였지만, 결국 리리스에게 별 말은 하지 못하고 시선을 돌리기만 했다.
“…근데, 이거 나라도 먼저 좀 보내주면 안 돼?”
공중에 떠올라있던 화면을 바라보면서, 아크가 보채듯이 리리스에게 말했다.
그곳에는 지금 리리스가 뿌려뒀던 주시자들을 통해 지구의 모습들이 영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카오스 게이트가 열린 격전 구역들이었다.
현재 지구는 곳곳에 카오스 게이트가 열려, 수많은 몬스터 군단이 밀려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메피스토와 바알, 그리고 벨제부브의 군대들이었다.
“미안하지만 아크,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지금 이 아공간은 지구와 연결 자체가 끊어져있어요. 아마 오로바스의 짓일 겁니다. 그리고…….”
그리고, 아크가 강제로 차원의 틈을 찢어내고서 간섭하는 바람에 이 아공간은 아스트레아와 연결되어버렸다.
하지만 리리스는 굳이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의 선택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메피스토에 의해 이 아공간 자체가 파괴되었을 것이다.
당신이 강제로 차원의 틈을 찢고 간섭하는 바람에, 아스트레아와 연결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어요… 일단은 제가 힘을 회복하고, 아스트레아의 분들을 먼저 데려온 후 같이 지구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리리스는 조심스럽게 말을 마치고서, 아크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말에는 충분히 오해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녀가 자신을 속이고, 마족들을 도우려 한다고 오해할만한 여지가 말이다. 마족에 대한 아크의 불신은 생각 이상으로 깊은 것이었고, 리리스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쯧, 그래. 그냥 보채본거야. 그냥 이렇게 저것만 쳐다보고 있자니… 조금 답답하잖아.”
하지만 아크는 한 번 혀를 차고 나서, 의자에 걸터앉아 등을 기댔다. 그녀의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는 기색이었다.
“…고마워요, 원호.”
“응? 뭐라고?”
리리스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아크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가 마치 중얼거리는 것처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아뇨?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하지만 리리스는 손을 내저으며 시치미를 땠다.
그녀의 얼굴에는 자연스럽고 환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 * *
“크아아아악!!”
갑자기 누군가의 단말마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헌터들이 그 단말마에 움직임이 흐트러트리거나 쓸 데없이 시선을 보내는 일은 없었다.
방금 쓰러진 헌터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사전에 이야기 됐던 대로 묵묵히 움직일 뿐이었다.
대한민국의 7구역.
역대 급의 게이트인 데모닉 게이트가 열렸던 것으로 유명해진 곳이었지만, 지금 그곳에는 데모닉 게이트보다도 훨씬 더 커다란 규모로 카오스 게이트들이 열려있었다.
“젠장, 민혁이가 당해버렸네. 이젠 누가 리더를 해야하나?”
“네가 해. 축하한다. 돈 많이 벌겠네.”
“…축하는 개뿔. 민혁이가 하던 일까지 떠맡게 된 꼴인데.”
한참 전투가 이어지는 와중이었지만, 주위의 몬스터들을 잠시 몰아낸 헌터 둘이 농담을 주고받았다. 방금 쓰러진 헌터의 동료들이었다.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동료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감정에 휩쓸리면 허무하게 죽어나갈 뿐이었다. 그들은 경험으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동료의 시체를 느긋하게 수습하고 있기에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긴박했다. 눈물을 흘리는 건 살아남은 후에도 충분하다.
[여기는 팀 A2, 저지선이 곧 붕괴됩니다. 버티기 힘들 것 같습니다.]
방금 전의 농담으로 지휘권을 넘겨받은 남자는 조용히 무전을 켜고, 지휘관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팀 A2는 지금 라인을 유지한 채로 천천히 후방으로 후퇴. 여차하면 8구역까지 들어서도 좋다. 팀 A3는 6구역으로 우회. 독자적인 판단으로 적의 후방을 교란하라.]
[확인.]
[확인.]
‘…거 참 신기한 일이란 말이지.’
마치 이곳의 상황을 전부 알고 있는 것처럼, 적절한 지휘를 내린다. 신기한 기분을 느끼면서 남자는 무전의 마이크를 껐다.
현장에 있는 자신이 확인한 내용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자세한 내용까지 감안하고서 명령을 내리는 게 틀림없었다.
그녀의 지시를 받을 때마다, 그 지시가 지금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최선책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껴버린다.
‘과연 S급 헌터인건가.’
이번에 신입을 받는다면, 옵저버를 한 명 받도록 해야겠다.
지휘관의 지시대로 팀을 물러나게 하면서, 남자는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물론 그러려면 일단 이 전투를 끝내야했지만 말이다.
* * *
“…후우.”
쉴 새 없이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와중에, 이소연은 잠깐 틈을 내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그녀는 옵저버들이 보내온 데이터를 분석하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적절한 지시를 내리고 있었으며, 독자적인 탐색 및 감지까지도 해내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래도 데모닉 게이트 때보다는 낫나…….’
시스템이 방해를 받고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이 주변 일대 안에서 사용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덕분에 데모닉 게이트 때와 달리 일일이 전음을 보낼 필요 없이, 속 편하게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게 그나마 그녀에게 위로가 되는 부분이었다.
“이소연님, 저도 전장으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 그녀에게 류환이 다가오며 말했다.
“환… 당신이 나간다면 지휘관이 자리를 비우는 셈 일텐데요.”
현재 유선의 대리인 그는 헌터의 총지휘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후 처리라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 제가 지휘관으로써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네요. 실제로 여태동안 앉아있는 게 전부였지 않습니까.”
“하지만, 당신이 저기에 뛰어든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습니다만.”
이소연은 조금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딱히 무슨 목적이 있는 말은 아니었다. 단지 현실을 말해줬을 뿐이었다.
“적어도 제 마음은 편하겠죠. 사실 허락을 구하는 건 아닙니다. 말하셨듯이 총지휘를 맡고 있는 것은 저니까요.”
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유선님의 대리입니다. 유선님이었다면 진즉에 전장으로 뛰어드셨겠지요.”
“…마음대로 하시죠.”
“그럼, 이만.”
그 말을 남기고, 류환은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상관을 닮아가는 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이소연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전장으로 감지망을 펼쳐냈다.
[크, 크림슨 레드?! 크림슨 레드입니다!! 퇴, 퇴각하겠습니다!!]
그 때, 통신망을 통해서 비명이나 다름없는 무전이 들려왔다. 소속도 위치도 말하지 않는 엉망진창인 무전이었다.
‘…크림슨 레드라고?’
하지만, 이소연은 그 엉망진창인 무전에 짜증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 무전이 전하는 내용이 너무 심각했던 것이다.
현재 한국에 있는 S급 헌터는 자신 뿐.
크림슨 레드급을 상대할 수 있을만한 헌터는 없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