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헉, 흑, 하악…….”
구석에 처박힌 리리스는 복부를 쥔 채로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정통으로 걷어차인 복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소리도 제대로 못 낼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가, 내가 아크를.’
이제 아크는 돌아올 수 없다.
자신이 아크를 사지에 몰아넣었다.
비록 육체의 고통으로 인해 꼴사납게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기는 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아크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아니, 아크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었지만, 자기 손으로 아크를 끝장내버린 거나 마찬가지라는 죄책감이 훨씬 더 컸다.
그 죄책감이 그녀를 너무나 힘들게 만들었다.
“아아, 아아아아…….”
이윽고 정신의 고통은 육체의 고통을 뛰어넘어버렸고, 이 변화는 고뇌로 가득 찬 비명소리로 이어졌다.
“하하, 하하하하하!!”
그 광경을 바라보며, 메피스토는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며 허리까지 뒤로 젖히는 광소적인 웃음이었다.
옆에서 저런 식으로 웃고 있는다면 희대의 비극조차도 순식간에 싸구려 촌극으로 바뀌어버릴, 그런 광기어린 웃음이었다.
“마음에 들어, 그 표정이 마음에 든다고!! 그 도도한 척 굴어왔던 리리스가 저런 식으로 망가지다니!! 하아…….”
광기 들린 웃음을 터트리던 메피스토는 곧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한숨을 내뱉더니, 황홀하다는 듯이 얼굴을 감싸 쥐며 미소를 지었다.
“그 자체로 흥분 돼, 아주 마음에 들어… 저대로 박제해서 마왕성에 장식이라도 해두고 싶은 심정이야. 이거, 아크한테 감사편지라도 써야 하는 건가?”
메피스토는 얼굴을 가득히 덮는 미소를 지은 채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그리고 리리스는 그의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메피스토를 바라봤다.
처음에 그녀의 시선은 초점이 맞지 않는 공허한 시선이었지만, 이내 초점이 돌아오며 평소의 맑은 눈빛으로 돌아왔다.
“하윽, 윽…….”
직후 리리스는 지팡이를 바닥에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으면서도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만… 죽인, 다면…….”
몸을 일으킨 그녀는 비틀거리면서도 뭐라 중얼거렸다. 방금 전의 신음소리와 별 다를 바 없는, 힘없고 미세한 음성이었다.
“킥킥, 뭐라고요? 그렇게 작게 말해서는 들릴 것도 안 들린다고?”
그녀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메피스토가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녀를 도발하기 위해 일부러 의도한 말투였다.
까드드드득…
몸을 완전히 일으킨 그녀는 이를 갈았다.
분노로 인한 행동이라기보다는, 흐트러져있는 자신을 다잡아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너만, 죽인다면.”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시 힘이 실려 있었다. 고통에 찬 신음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서 너를 죽이고 아크를 부르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어.”
그리고 그녀의 주변으로는 푸른빛의 마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좁은 아공간이 곧 푸른빛으로 메워졌다.
형형하게 빛을 뿜어내는 그녀의 푸른빛은,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불꽃처럼 화려하면서도 비장한 분위기를 품어내고 있었다.
“크큭, 맞네. 틀린 말은 아니야.”
메피스토는 그녀가 뿜어내는 마나를 바라보면서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마나를 뿜어냈다.
메피스토가 뿜어내는 검은빛은 순식간에 리리스가 뿜어내던 푸른빛을 잠식하고 들어갔다.
“간단한 이야기지. 죽이면 살고, 그러지 못하면 죽는 거야. 싫어하는 상황은 아니야.”
리리스의 푸른빛은 메피스토의 검은빛에 빠른 속도로 밀려나고 있었다.
“킥킥킥, 정말 약해졌구나, 리리스. 그 약해빠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정말…….”
메피스토는 다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혀를 내밀어 윗입술을 한차례 핥았다.
“정말, 좋다.”
“…….”
리리스는 그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대답을 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죽이면 살고,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아크까지도.
그렇기에 그녀는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그럼, 뿔 하나짜리 군주님의 실력 좀 감상해보자고.”
메피스토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검을 뽑아들었다. 아공간을 덮은 검은 기운이 한층 더 강력해졌다.
“…크윽.”
그 기세에 압도되면서도 리리스는 지팡이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방금 전처럼 거대한 마나의 대검이 형성되었지만 푸른빛은 그 때보다도 훨씬 더 선명해져있었다.
“하하하하하하!! 또 워프 블레이드야? 그런 건 애새끼들 상대할 때나 꺼내라고!!”
메피스토는 다시 한 번 광소를 터트리더니, 다짜고짜 달려들면서 검을 휘둘렀다.
쐐애애애액!!
검을 휘두르는 소리라기에는 지나치게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메피스토의 검이 리리스를 향해 쇄도했다.
“!!!!”
하지만 메피스토의 참격이 리리스를 가르는 일은 없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그는 급하게 몸을 비틀었고, 덕분에 등 뒤에서 자신을 노리고 내리 찍히는 마나의 칼날을 가까스로 피해낼 수 있었다.
메피스토의 참격이 리리스에게 닿기 직전에 그녀는 텔레포트로 그의 등 뒤를 잡아냈던 것이다.
“크하하하하!! 반쪽짜리가 되어버려도 실력은 여전하다는 건가?!”
목숨을 잃을 위기였지만, 메피스토는 오히려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상황 자체가 그에게는 단순한 여흥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메피스토는 회피를 위해 비틀었던 몸을 그대로 회전시키면서 다시 한 번 참격을 날렸고, 리리스는 다시 한 번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
리리스는 텔레포트로 메피스토의 사각지대를 다시 한 번 잡았지만, 그녀의 시야에 메피스토는 들어오지 않았다.
“킥킥, 다 보인다고?”
“…!!”
바로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리리스는 기겁하며 대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메피스토는 그녀의 공격을 가볍게 튕겨냈다.
결국 리리스는 수비를 위해 그와 거리를 벌리며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모를까, 두 번은 통하기 힘들지. 어라라? 우리 리리스님께서 많이 놀라셨나봐?”
“…시끄러워.”
거리를 벌린 리리스는 조심스럽게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고, 메피스토는 그런 그녀를 도발했다.
‘…승산은, 얼마 남지 않았겠지.’
사실 첫 반격이 무위로 돌아갔을 때, 이미 승패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리리스 스스로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녀가 마왕들 중에서 제 2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세력이 강대하고 차원마법이라는 강력한 패를 쥐고 있기 때문일 뿐이었다.
순수한 전투력은 제 3석인 메피스토에게 뒤떨어진다. 게다가 메피스토는 레비아탄만큼은 아니어도 직접 침략에 나섰던 적도 많았기에 전투 경험 역시 그녀보다도 많았다.
전투가 단순한 힘겨루기로 진행될 경우, 리리스는 메피스토를 이길 수 없었다. 이건 뿔 한 쪽이 없어진 지금 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힘이 온전하던 시절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자신은 이겨야만 했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위기에 처해있는 아크를 위해서라도.
리리스는 다시 한 번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 * *
“하아, 하아…….”
메피스토는 허리를 살짝 숙인 채로 격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끄읍…….”
그리고 그 앞에는 리리스가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주위에는 흘러내린 피로 가득했으며, 그 피의 웅덩이는 지금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재생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는 건지, 상처의 출혈은 멎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통스럽게 신음을 내뱉으며 상처를 감싸쥐고 있었다.
“아직, 아직…….”
그럼에도 리리스는 다시 일어서려하고 있었다. 땅을 짚고 일어서는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큭, 크큭. 좋아, 좋다고.”
그 끈질긴 광경을 지켜보며, 메피스토는 가쁘게 숨을 내쉬던 와중에도 웃음을 내뱉었다.
리리스만큼은 아니었지만 그의 모습 역시 만신창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물론 그의 재생력은 여전했기에 상처를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가 입고 있는 의복의 곳곳이 베이고 찢겨져있었다.
“좋지만… 사실 이젠 좀 질렸어.”
퍼걱.
말을 마친 직후, 메피스토는 있는 힘껏 리리스의 머리를 걷어찼다.
인간이었다면 목이 날아갔을 충격이었지만, 리리스는 비명도 지르지 않은 채 나뒹굴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다시 일어서려하고 있었다.
‘…좋아,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온몸이 부들거리는 상황에서, 리리스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정말로 자신을 죽이려는 거라면 이렇게 귀찮은 상황까지 질질 끌지 않았을 것이다.
메피스토는 변태적인 놈이기는 했지만 그만큼 싫증을 빨리 느끼는 녀석이기도 했으니까. 실제로 지금 그의 표정에는 흥미가 사라지고 짜증만이 남아있었다.
그렇다는 건, 자신을 살려둘 이유가 있다는 것.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이든, 포로로 만들려는 것이든 어쨌거나 그것은 그녀에게 좋은 소식이었다.
조금씩이나마 시간을 벌 수 있었으니까.
아크를 위해서 발버둥이라도 칠 수 있었으니까.
“…하, 참. 거 오래도 버티네.”
결국 메피스토의 목소리에서는 웃음기가 전부 사라져버렸다. 그는 허탈한 목소리로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자존심도 없어? 나 같으면 진작에 내 손으로 목이라도 그었겠다, 야. 루시퍼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왜 이렇게 구차해?”
글쎄, 왜 그럴까.
리리스도 자신의 마음을, 감정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 때문에 아크가 끝장이 나버린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지금 느끼고 있는 육체의 고통이 더 낫다고 여길 정도로 말이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커다란 감정이다.
그러나 그렇게 나쁜 기분도 아니라고, 리리스는 생각했다.
“됐다. 바알이 살려오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귀찮은 건 질색이야.”
그는 결심을 마친 듯, 손을 들어올렸다.
이윽고 수십 개의 검은 벼락들이 그녀의 주위에 형성되었다.
“아…….”
검은 벼락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올려다보며, 그녀는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었다. 한숨에 가까운 힘없는 탄성이었다.
저 중에 하나만 내리꽂히더라도 지금의 자신을 끝장내기에는 충분하겠지. 리리스는 위를 올려다본 순간 직감적으로 그 사실을 인지했다.
하지만 그건 곤란했다.
아직 아크가 나오지 못했으니까.
그를 구해내지 못했으니까.
“으윽…….”
그렇기에, 그녀는 다시 한 번 손을 뻗어냈고,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
“…구차하다. 이래서야 감흥도 없구만.”
메피스토는 완전히 질렸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들어 올렸던 손을 움직였다. 그녀에 대한 사형선고를 내리기 위해서였다.
불빛이 번쩍였던 것은 그 때였다.
메피스토가 손을 완전히 내려 마법을 시동하기 직전의 찰나의 순간이었다.
‘…아아.’
필시 자신의 죽음의 순간일 것이라고, 리리스는 생각했다.
온몸이 넝마조각이 된 탓일까.
온몸이 찢겨나가고 있을 터였는데 의외로 고통은 없었다. 오히려 포근한 느낌이었다.
‘미안해요, 아크.’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에게 사죄를 보내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뭐야? 왜 이래, 여기.”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아공간에는 자신과 메피스토만 있었을 터였지만, 메피스토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
그토록 듣고 싶어 했었던 목소리.
하지만 지금 들릴 리가 없을 목소리.
설마 싶은 마음에도 리리스는 온힘을 다해 몸을 뒤집었다.
“여긴 또 왜 개판이 되어있어.”
그리고, 그녀의 시야에는 누군가가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사람.
아크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