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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106화 (106/135)

106화

에에엥― 에에엥―

“쯧… 갑자기 대체 무슨 일이야.”

동네 패스트푸드점에서 큰맥 세트를 주문한 채 자리에 앉아있었던 얀은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으면서 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의 목에 매달려있는 네트워크 단말기에서 긴급 경보음이 울려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쁜 그였지만, 적어도 식사시간에 밥을 먹을 때 만큼은 편한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는 게 그의 신조였기에, 그는 식사시간에는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경보가 울리지 않도록 설정을 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의 네트워크 단말기는 격렬하게 긴급 경보음을 울려대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민폐를 끼치기 충분할 정도로 큰 음성이었다.

“하, 하하하… 별 일 아닙니다. 식사들 하시죠.”

그 와중에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조금 진정시킨 후, 얀은 가게 밖으로 뛰어나가 네트워크 단말기를 가동시켰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호출한 통신망으로 네트워크를 연결시켰다. 이블아이가 최근에 직접 구축하고 직접 관리하고 있는 S급 헌터들 간의 통신망이었다.

[아, 연결 됐군요. 얀, 들립니까?]

네트워크에 연결이 완료되자마자, 자신이 네트워크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블아이가 무전을 보냈다.

[잘 들려. 또 어디에 카오스 게이트라도 열렸어? 이번에는 또 어디야?]

아마도 어디에 또 카오스 게이트가 열렸으니, 지원을 요청한다는 내용일 것이다. 다만 긴급 경보를 보낸 것으로 보아 조금 급한 상황일 것이다.

‘후… 이틀 내내 구르고서 처음으로 가지는 휴식시간이었는데 말이야.’

직접 주문해놓고서 아직 맛도 보지 못한 큰맥 세트를 떠올리며 얀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찌푸둥하게 굳어있던 몸을 가볍게 풀었다.

원래 얀은 일본 외 다른 국가로의 지원은 삼가는 편이었다. 일본에는 자신을 제외하면 마땅한 헌터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이 자리를 비웠을 때 레드급 이상이 나타나거나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시퍼라는 녀석이 나타난 이후, 얀은 예전과 달리 협회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주고 있었다. 그런 고집을 피워도 상관없을 정도로 상황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에도 카오스 게이트 관련 지원요청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얀은 주머니에 넣어뒀었던 멀미약 중 하나를 꺼내 삼켰다. 크리스의 공간이동으로 인한 어지럼증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기는 한 데… 우선 질문부터 하나 먼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지금 일본에도 카오스 게이트가 열리고 있는 상황입니까?]

[…일본에‘도’?]

마치 카오스 게이트가 사방팔방에서 열리고 있다는 듯한 이블아이의 말에, 얀은 의아함을 느끼며 그녀에게 되물엇다.

[현재 독일과 한국, 프랑스를 비롯한 총 8개 국가에서 카오스 게이트가 열리고 있는 것이 감지되었습니다. 일본음 지금 멀쩡한 상태인가요?]

[멀쩡하고 자시고, 애초에 내가―]

내가 게이트가 열리고 있는 걸 감지해낼 수 있을 리가 없잖냐.

다른 부분은 몰라도 탐지 능력에 있어서만큼은 영 소질이 없던 얀은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려고 했었다.

“크읍?!?”

하지만 가게 밖으로 나가는 순간 느껴진 강력한 에테르의 흐름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할 말을 잊고 말았다. 호흡조차 잠시 잊어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양의 에테르였다.

등골이 싸늘해지고,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그 오싹한 기운에 얀은 황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시선 끝에서, 여태동안 보아왔었던 게이트들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게이트가 열리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갑작스럽게 그 규모가 팽창되어가는 것으로 보아 카오스 게이트인 게 틀림이 없었다.

카오스 게이트가 열리고 있는 위치는 우에노 공원 언저리라고 여겨졌고, 지금 얀은 그곳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카오스 게이트는 거대하고 뚜렷하게 보였다. 원근감의 개념이 희미해지는 수준이었다.

[…응, 열리고 있네. 응. 열리고 있어 이블아이.]

얀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블아이의 질문에 대답했다. 조금 멍청하게 보이는 목소리였다.

[후, 역시나. 지금 몇 개나 열리고 있는 상황이죠?]

[몇 개…라니? 카오스 게이트야. 당연히 하나지.]

카오스 게이트가 여러 개 열리기도 하나?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도, 읽은 적도 없었다.

얀은 지금 이블아이가 대체 왜 당연한 것을 질문하고 있는지, 약간의 의문을 품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요. 미안하지만 얀, 그 쪽으로 지원 팀을 보낼 여유는 없을 것 같아요. 지금 이쪽 상황도― @#[email protected]#$!^… 힘들― !~!#[email protected]#…]

“뭐라고? 잘 안 들려!! 이블아이!!”

얀은 마이크를 붙잡은 채 소리를 질렀다. 마치 그러면 무전이 좀 더 큰 소리로 전달되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이다.

[이런 네트워크에 방해― @$%@#$!%&]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블아이의 무전은 이어지지 않았다. 단말기를 살펴보니 통신망 자체가 망가져있는 상태였다.

불안한 예감이 든 얀은 급하게 다른 통신망들로라도 연결해보려 했지만, 그 어떤 통신망도 찾을 수가 없었고 그 어떤 통신망에도 연결되지 못했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한가지밖에 없었따.

“…네트워크 시스템 연결 자체가 방해받고 있는 상황인건가.”

단말기는 잘 작동하고 있었다. 망가진 건 아니다.

다만 연결의 매개체가 되는 에테르가 일정 범위를 기준으로 완전히 차단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서, 얀은 들고 있던 창대를 좀 더 강하게 꼬나쥐었다.

지원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원은커녕 정보전달조차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저 최악의 사태를 막아내야만 했다.

눈앞의 게이트를 향해 달려 나가면서 얀은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지구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 * *

“이,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죠.”

아공간에 남아있던 리리스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지금 차원의 틈을 열어서 그 너머로 지구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지구에서 엄청난 양의 차원 에너지가 한 번에,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사태를 파악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게이트는 대충 어림잡아도 대략 십여 군데는 되는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그 규모들은 하나같이 한 개 군단이 통과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군주급의 마왕이 직접 움직이고 있군요.’

갑작스럽게 이뤄지는 급격한 변화를 바라보며, 리리스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너무 빠르다.

메피스토펠레스인가?

아니면 레비아탄? 오로바스?

혹은 바알이 직접 움직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침공을 진행시키는 것이 군주들 중에 누구건 간에, 이 침공이 꽤나 본격적이라는 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이정도 규모면 군주 한 명이 거의 모든 군단들을 투입시키는 수준의 물량이었다.

이런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다.

몇 십 억의 영혼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기적 같은 세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마족에게 가치가 충분했고, 실제로 게이트를 통한 몬스터들의 공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격렬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크와 다른 용사들을 아스트레아로 보냈던 것이었다.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막아낼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침공이 이렇게 빨리 시작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리리스는 적어도 3주일 정도는 시간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럴게 아니라, 우선은 아크에게 연락을…….’

리리스는 조금 다급한 심정으로 메아리의 반지에 손을 얹고서 마나를 흘려보냈다. 곧 메아리의 반지는 희미한 빛을 발하며 작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 메아리의 반지잖아. 그 아크인가 뭔가하는 놈이랑 연락하려는 건가?”

“…!!”

그 때 갑자기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와 급격히 움직이는 마나의 기운에 리리스는 기겁하며 앞으로 두 발자국 달려나가면서 뒤로 돌았다.

직후, 리리스가 방금 전까지 서있떤 곳에는 거대한 어둠의 벼락이 단숨에 내리 꽂혔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그대로 직격 당했을 찰나의 순간이었다.

“메피스토… 당신이 여기는 어떻게.”

리리스는 자신을 습격한 자의 정체를 확인하고, 애써 당황한 기색을 감추면서 말했다.

지금 그녀가 궁지에 몰려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녀의 등 뒤로 식은 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별 일은 아니고… 잘난 배신자 얼굴이나 한 번 쳐다보러 왔다고나 할까.”

메피스토는 특유의 비열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속이 컴컴하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그건 그렇고, 참 고맙게 됐어. 덕분에 바알도 아주 싱글벙글이라고.”

메피스토는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말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크윽!!”

그와 동시에 그녀의 손가락에서 빛을 발하고 있던 메아리의 반지의 보석이 깨져나갔다.

“저 지구라는 세계는 거의 무방비상태라고 해도 좋은 곳이었지만, 꺼림칙한 게 몇 개 있었지.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게 아크였고.”

메피스토는 말을 이어나가며 리리스에게 다가갔다.

“…거기서 더 이상은 가까이 오지 마시죠.”

리리스는 아공간에서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들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메피스토를 향해 겨누었다. 그녀의 지팡이에는 마치 대검처럼 거대한 푸른빛의 칼날이 형성되어 있었다.

“크큭. 크크크크큭.”

하지만 메피스토는 태연하게 웃으면서 계속해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흡!!”

메피스토가 리리스의 사정권 안에 들어섰을 때, 리리스는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대검을 휘둘렀다.

콰차창!!

하지만 메피스토가 뒤늦게 뽑아낸 검과 부딪혔을 때, 마나의 대검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다.

“크헉!!”

메피스토는 마나의 대검이 부서지고 너무나도 무방비하게 노출된 그녀의 복부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리리스는 힘없이 날아가 구석에 나뒹굴고 있었다.

“푸하하하하!! 여기에 죽치고 앉아 며칠 내내 마나만 정화시키고 있던 주제에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뿔도 한 쪽밖에 없는 주제에!!”

마나를 정화시킬 때는 정화시키는 마나에 해당되는 만큼의 마나가 거의 비슷하게 소모된다. 현재 리리스는 뿔의 손실까지 겹쳐져 터무니없이 약해진 상태였다.

“쿨럭, 쿨럭… 크윽.”

“아까 전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세계에서 가장 꺼림칙했던 건 바로 그 아크라는 놈이었지. 별명부터가 마왕 살해자라니. 불길하기 짝이 없는 놈이잖아?”

메피스토는 어깨를 한차례 으쓱이고는, 구석에 처박힌 리리스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근데 갑자기 아스트레아로 보내버렸네? 차원 마법을 쓰지 못하면 다시 돌아오지도 못하는 아스트레아로? 그리고 그 정도 차원마법을 쓸 수 있는 건, 리리스 너와 오로바스 뿐이지.”

메피스토는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인 즉슨, 여기서 너를 죽여 버리면 아크는 여기서 무슨 일이 생긴 지도 모른 채 아스트레아에 갇힌 채로 살아갈 거란 말씀.”

메피스토의 말은, 리리스를 절망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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