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99화 (99/135)

99화

직시하다

“카를라가, 나를?”

나는 조금 의아해하는 목소리로 케이트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케이트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를라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정말입니까?”

“예.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그래도 내심 그런 기색을 내비치셨습니다.”

내 물음에 케이트는 아랫입술을 더듬으며 신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떤 광경을 떠올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카를라 답지 않은데.’

과거 용사 아크로 지내던 시절에 보아왔었던 카를라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기에, 나는 조금 당혹감을 느꼈다.

그녀는 원래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닌 이상 아랫사람을 시켜 간접적으로 나와 소통을 주고받을 뿐이었고, 그마저도 일방적인 계약관계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케이트를 보낸 것도 아랫사람을 통한 소통과 흡사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가끔 그녀와 만나게 되면 가벼운 농담도 던질 정도였으니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성격일 뿐.

그런 그녀가 ‘단 둘이 의뢰할 건이 있다’라던가, ‘한 시가 급한 의뢰가 있다’같은 이유가 아니라 단지 ‘보고 싶다’라는 이유로 부르는 건 굉장히 낯선 상황이었다.

하긴, 40년의 세월이 지난 상황이었다.

그 정도의 세월이면 하찮던 기억이라도 소중한 추억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것이 비록 철혈의 황녀라는 별명까지 붙어있던 카를라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뭐… 여기까지 왔는데 얼굴도 안비추고 가는 것도 섭섭하겠지.’

나는 안절부절 못하는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케이트를 쳐다봤고,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 * *

“당신. 혹시 돈이 필요하신 건가요.”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었던 건, 내가 모험가 길드에 쌓여있는 의뢰서들과 수배지들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나를 부른 그 목소리는 이런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귀한 것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강한 의지는 노련한 용병들과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것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그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곳에 서있는 것은, 이 어두운 길드 안에서도 은빛을 발하고 있는 은발의 소녀였다. 복장만 봐도 그녀가 꽤 귀한 신분에 속해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나름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수수한 옷으로 챙겨 입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수수함과 평민의 수수함의 기준은 너무 달랐다.

“…그렇다면?”

하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날카롭게 벼려져있었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 경계하는 목소리로 대답해버렸다.

“요 근래, 당신을 지켜봤습니다.”

“흐음…?”

그녀의 말은 예의라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내용이었다. 특히 그 상대가 이런 일에 민감한 모험가들이나 용병들이라면 다짜고짜 칼침을 맞아도 할 말이 없을 내용이었다.

조금 서툰 것일까.

아니면 그냥 멍청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걸지도.’

일반적인 귀족영애였다면 위의 둘 중 하나였겠지.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기에, 나는 그녀가 뭔가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소매 속에 단검이 감춰져있는 것을 은밀하게 확인하면서 대답했다.

“당신에게 의뢰를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내 걱정은 쓸 데 없는 기우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녀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꿍꿍이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는 그런 목소리였다.

“의뢰라… 귀족 영애의 뒷치닥거리 같은 건 별로 취향이 아닌데 말이야. 그런 건 집사님들한테나 맡기시지. 백마 탄 기사님들이나.”

나는 일부러 상대를 얕잡아보는 말을 했다.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철부지 귀족영애라면, 이 정도만으로도 분을 삭히지 못하고 반응을 보일 것이기에.

“아쉽게도, 제게는 집사도 백마 탄 기사님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왔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의외의 반응이 꽤나 마음에 들었기에, 나는 일단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뭐, 좋아. 일단 보수부터 들어보자고.”

원래는 일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게 대부분의 수순이지만, 나는 보수를 먼저 확인해두는 습관이 있었다.

보수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의뢰가 의뢰주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뢰인지, 보수를 떼먹힐 염려는 있는지 없는지를 우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용사 아크. 향후 당신이 마왕을 죽이는 데 필요한 모든 장비와 자금을 일체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보수로써 부족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

그녀의 말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난감한 기분이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보수의 내용 때문에 당황한 건 아니었다. 물론 그 보수의 내용이 파격적이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용사라는 건 어떻게… 아니, 그보다 내 목적은 어떻게.’

내 이름이 아크라는 건 그다지 구하기 힘든 정보는 아니었다. 애초에 모험가 길드에도 아크로 등록되어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용사라는 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가 마왕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다.

혹여 단순히 떠보려는 말은 아닐까.

그런 생각에 그녀의 표정을 살짝 살펴봤지만, 그런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표정에 나타나고 있는 건 자신의 말에 대한 확신이었다.

“…확실히, 보수로 부족함은 없군.”

나는 최대한 태연해하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다만, 보수에 대해서는 추가사항이 조금 있습니다.”

“추가사항이라면?”

“제 보수는, 제 의뢰가 달성되었을 때, 혹은 성공이 거의 확정되었을 때나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선금은 없고, 도중에 포기하셨을 경우에도 부분적인 보상을 해드릴 수 없습니다.”

“거, 길드에서 가장 꺼려하는 보상방식이구만.”

당연한 일이다.

선금도 없고, 부분 보상도 없다.

보수는 의뢰가 완료되었을 때나 가능하다.

그리고 이 경우는 보수가 거창할수록 일이 힘들기 마련이다. 왜냐면 이런 의뢰들의 대부분은 의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수가 될 만한 것들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조건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용병들은 의뢰내용조차도 듣지 않고 빠졌을 것이다.

“좋아. 이야기나 한 번 들어보자고.”

하지만 나는 지금 눈앞의 소녀에게 꽤나 흥미가 끌려있는 상태였음으로, 우선 의뢰 내용을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의뢰 내용을 듣기만 하고 거절하는 건 내 자유였으니 말이다.

“저를 황제로 만들어주세요.”

그리고 그녀는 의뢰 내용을 말했다.

그녀의 의뢰 내용은, 전부 말하는 데 몇 초 걸리지도 않을 정도로 짧고 단순했다.

“…뭐라고?”

하지만 거기에 담겨있는 내용은 조금도 단순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혼란스러웠고, 당황스러웠다.

되묻는 내 목소리가 조금 멍청하게 들렸더라도 어쩔 수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저를, 황제로, 만들어주세요.”

소녀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단어 하나씩을 끊어서 강조를 해, 행여 내가 듣지 못할까봐 배려까지 하면서 말이다.

“…허.”

그게 내가 처음으로 카를라와 만났던 날의 일이었다.

* * *

“잠시 이곳에서 쉬고 계시겠습니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직 준비가 끝나지가 않은지라.”

수석 하녀로 보이는 여자는 내가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빼주면서 그렇게 말했다. 테이블에는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케이트의 안내를 받아 카를라가 있다는 방의 외문을 열고 들어온 상태였다.

그리고 내문을 열고 들어서려는 순간, 안쪽에서 나온 수석 하녀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서 우리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잠깐 이야기만 나눌 건데 무슨 준비가 필요하다고.

역시 여자는 복잡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테이블 앞의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다과를 먹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계속 서있기는 조금 불편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고, 주변에 서있는 하녀들도 그렇고.

그렇게 테이블에 앉은 채로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내 앞에 놓여있던 찻잔의 차가 마시기 딱 좋게 식어갈 때쯤에 내문의 문이 서서히 열렸고, 그제야 나는 수석 하녀의 안내를 받으며 내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향초?’

그녀의 방에 가까워졌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온 방안에 진동하고 있는 향초의 향이었다.

향초의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꽤나 상급품의 향초를 피워놓은 것이리라. 그것도 잔뜩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향초는 굉장히 비싸다. 카를라는 사치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검소한 성격이었기에, 그녀가 이런 향초를 피워놨다는 게 조금 의아하게 느껴졌다.

권력을 잡으면서 나름대로 사치를 부리게 된 것일까.

하지만 정작 그녀의 방 안은 지나치게 삭막한 편이었다. 물론 나름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기는 했지만, 나름 꾸며져 있을 뿐 일국의 유력한 황족이 지낼만한 방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기에는 방 안이 지나치게 삭막한 편이었다. 물론 나름 꾸며져 있기는 했지만, 일국의 황족이 지낼만한 방은 아니었다.

“오랜만입니다, 아크.”

내가 방 한 쪽에 놓여있는 침대까지 열 걸음 정도 남겨두고 있을 때,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짓더니 이후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봤을 때, 나는 비로소 이 방에 왜 이리 많은 향초를 피워놓은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왜 그토록 긴 준비시간이 필요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 카를라.”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고, 어딘가 불편해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냉혈한이라고까지 불리던 그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 맴돌고 있는 것은 분명 죽어가는 사람의 기운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