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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97화 (97/135)

97화

‘우스운 꼴에도 정도가 있지.’

나는 대로를 당당하게 걷고 있는 자칭 아크의 꼴을 바라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볼 필요도 없다.

나는 대로에서 등을 돌리고 뒤로 돌아 인파 속으로 들어섰다. 아니, 들어서려 했다.

“아크님, 정말로 아크님이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크님.”

누군가는 경건한 마음으로, 마치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크님!! 여기 좀 봐주세요, 아크님!!”

누군가는 큰 목소리로 환호를 하고 있었다. 조금 경박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존경이었다.

뒤로 돌아 바라본 인파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후줄근한 차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인 노인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누군가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조금 심란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들의 환호는 눈앞의 사칭범, 가짜 아크에게 보내는 것들이었다. 나를 향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내가 아크인지도 모르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비록 그 환호들이 엉뚱한 사람을 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보내는 환호는 ‘용사 아크’에 대한 그들의 감정들의 표현이었다.

그것은 아크에 대한 감사였고, 존경이었고, 그와 동시에 사죄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모두 본인에게 제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설령 옆에서 주워듣고 있는 우스운 모양새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멍하니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가, 나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조금… 기쁘기는 하지만.’

기쁘기는 하지만, 조금 심란한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부담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들이 저토록 열띤 환영을 보내는 ‘영웅 아크’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단순한 허울에 불과했으니까.

용사 아크가 아스트레아를 구해낸 것은 숭고한 영웅의 희생이 아니라 단순히 죄책감에서 비롯된 행동에 불과했다.

용사 아크가 검을 휘둘러온 것은 자신의 죄책감을 외면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자기합리화의 수단이자 회피수단일 뿐이었다.

저들이 저토록 열띤 환영을 보이는 아크는 어디에도 없다. 영웅 아크는 허울에 불과하다. 그걸 알고 있는 나로서는,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텁.

그 때, 누군가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불쾌감이 약간 느껴질 정도로 예의 없는 손길이었기에 나는 거칠게 그 손을 뿌리치려했다.

“…?”

하지만 나는 그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내 손목을 붙잡은 건 다 늙어가는 노파의 앙상한 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뿌리치면 그대로 부러질까 걱정이 될 정도로, 오히려 내 손목을 붙잡고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앙상한 손이었다.

“아크님… 정말 아크님이시군요.”

그 목소리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메마른 목소리였지만, 물기에 젖어있는 애달픈 목소리이기도 했다.

노파는 나의 손을 만지며 그렇게 말했다.

“아이, 할머니. 여기서 뭐하세요. 또 이러시네.”

곧바로 누군가가 노파를 데리러 바쁘게 뛰어왔다. 20세 정도 되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할머니라고 부르는 걸로 봐서는 아마 손자일 것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할머니, 돌아가요. 아버지한테 혼나는 건 저라구요.”

하지만 노파는 손자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노파는 계속해서 나의 손목과 손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그 눈가에서는 한 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크님. 그 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늦게나마 뵐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다행이에요…….”

결국 청년은 노파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붙잡고서 어딘가로 끌고 갔고, 마지막까지 노파는 나를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

그리고 나는, 멍하니 선 채로 노모에게 붙들렸던 손목을 바라봤다.

* * *

용사 아크는 대로를 가로질러, 마침내 황성의 입구에 도착했다. 주변에 모여 있던 관중들은 그가 대로를 벗어나 황성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숨을 죽인 채 지켜봤다.

이미 서넛은 되는 아크 사칭범들이 걸어왔었던 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황성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이곳에 모인 관중들은 모두 그가 진짜 아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왜냐하면, 전설로 내려오던 아크의 모습과 완전히 똑같았으니까. 그는 자신들이 상상 속에서 막연하게 떠올렸던 그 모습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 앞으로는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그가 황성의 성문 앞에 섰을 때, 성문을 지키고 있던 두 기사가 창대를 교차시켜 아크의 길을 막았다.

하지만 창대를 쥐고 있는 그들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을 정도로 미약한 떨림이었지만 말이다. 아마 그들도 근무 시간만 아니었다면 저 관중들 사이에 끼어있었을 것이다.

“카를라님과의 약속을 지키러 왔습니다.”

“…….”

아크가 그 말을 입에 담자, 마치 그것이 룬어라도 되는 것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던 창대가 스르르 들어 올려졌다.

우르릉, 끼이이이익.

그와 동시에 성문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아크는 보초를 서고 있는 기사들에게 가볍게 목례를 보내고서 안으로 들어서려했다.

하지만, 아크는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누군가가 밖으로 나오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십여 명에 해당되는 수행원을 이끌고서 나타난 소녀는, 황실 전통의 정복을 입고서 밖으로 나왔다. 언뜻 화려한 듯하면서도 절제된 세련함이 돋보이는 복장이었다.

“왕실 기사 보리튼,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방금 전까지 은근슬쩍 아크를 바라보고 있던 기사가 안쪽에서 나오는 사람을 보더니 갑자기 온몸이 경직되며 깍듯한 경례를 보냈다. 그것만 보더라도 그 소녀가 꽤나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소녀는 보리튼이라는 기사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에 답례한 후, 길 한복판에 서있는 아크를 향해 걸어갔다.

“오오, 케이트님께서…….”

“케이트님께서 직접 밖으로 나오시다니.”

여제의 손녀, 케이트.

혼란의 시대를 잠재우고 아스틴 제국의 새로운 번영기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카를라 여제의 손녀이자 그녀의 피를 가장 진하게 이어받았다고 여겨지는 공주의 이름이었다.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소문난 그녀가 여기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한가지 밖에 없다고, 주변에 모여 있던 관중들은 생각했다.

“역시, 저분이 바로 진짜 아크였던 거야.”

케이트가 아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내딜 때마다 관중들의 기대를 점차 높아졌다.

누군가는 감탄을 내뱉었고, 누군가는 자그마한 환호성을 질렀다. 누군가는 터져 나오는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케이트가 아크의 눈앞까지 도착했을 때, 아크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췄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아크―”

그러나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케이트의 호위로 함께 나왔던 새벽의 기사단원들이 남자의 목에 칼을 겨눈 것이다.

“…??”

그 갑작스런 모습에, 좌중에는 단숨에 침묵이 가라앉았다. 기대감에 가득 찬 침묵이 아니라 당혹감에 의한 차가운 침묵이었다.

“케, 케이트님. 이게 대체 무슨… 헉.”

“시끄럽다. 지금 당장 너의 목이 달아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기도록.”

가짜 아크는 케이트에게 뭔가 말을 꺼내려 했지만, 새벽의 기사단장 로튼의 검이 움직이자 그는 단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가짜 아크의 목을 노리고 뻗어져 나와 있던 그의 검은 지금 더 앞으로 바짝 튀어나와, 그의 목에 완전히 붙어있는 상태였다.

실제로 잠시 말을 내뱉어 미세하게 목울대가 움직인 것만으로도 그 목에서는 핏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윽.

하지만 케이트는 손을 들어 올려 중지를 표했고, 그와 동시에 로튼을 비롯한 기사단원들의 검들은 밑으로 내려왔다. 가짜 아크는 그제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귀인의 앞입니다. 피를 보고 싶지는 않군요. 나중에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검을 들고 있던 모든 검사들이 착검하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위협하던 무기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아크는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그를 둘러싸고 있는 기사들이 살벌하게 살기를 내뿜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흘깃 쳐다본 케이트는 가짜 아크에게서 곧바로 흥미를 지운 후,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마치 타국의 왕을 알현하기 위해 홀을 걷는 것처럼 경건하고 다소곳한 발걸음이었다.

어느 정도 앞으로 나왔을 때 그녀의 뒤를 따르는 수행원의 숫자는 최소한으로 줄어들었고, 인파의 앞에 들어섰을 때는 그 수행원마저 뒤로 둔 채 그녀 홀로 걷고 있었다.

수행원도, 호위도 없는 홀홀단신의 걸음.

상대에게 완전한 신뢰와 예를 표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뿜어내는 기품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위압감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홀홀단신으로 다가오는 소녀의 위압감에 인파는 조금씩 그 발걸음을 뒤로 물렸다. 갑작스런 인파의 움직임에 혼란이 빚어질 만도 했지만 대로는 놀라울 만큼 고요했다.

그리고 인파가 뒷걸음질을 쳐 드러난 그 빈 공간에 한 남자가 홀로 서있었다.

남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케이트를 본 적이 있었다.

케이트 역시 남자를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케이트는 이 순간, 자신이 느꼈던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당신을 환영합니다, 아크님. 제국은 언제나 당신의 귀환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홀로 서있는 남자, 조원호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숙이며 최상의 예를 취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그녀를 여기까지 수행해 온 수행원들과 기사들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늦어서 미안하군.”

그 말은 누구를 향한 말이었을까.

그건 말을 한 조원호 본인조차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인파들까지 모두 고개를 숙이고 그에게 예를 갖췄을 때,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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