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그럼, 어떻게 되는 거냐?”
영혼이란 것은 원래 한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영혼이란 건 그 존재 자체를 증명하는 개념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빙의술사나 인형술사들처럼 한 개인이 여러 개의 육체를 사용하는 경우나 한 육체에 복수의 영혼이 깃드는 경우는 있었지만, 동일한 영혼이 두 개 이상 존재하는 경우는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은… 서로 간에 동화현상이 일어날 겁니다.”
“…동화현상?”
“그, 그렇습니다. 일단은 서로 동일한 두 영혼이다 보니 서로 공명을 일으키고 영향을 줄 겁니다. 아마 마력이나 기억 같은 것들이 공유되기 시작할 겁니다.”
“…….”
짚이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미카엘라의 비정상적인 성장속도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전투센스, 그리고 반응속도들을 떠올리면서 생각했다.
그녀의 실력에는 역대급 천재라는 말로도 설명할 수가 없는 괴리감이 존재했다.
‘그게 모두 선생님과의 동화현상이었다면…….’
그랬던 거라면, 전부 설명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이대로 둘을 방치해둔다면, 그 둘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여태 루시퍼를 살려둔 이유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이 해답을 알기 전까지 나는 그 둘에 대한 어떤 행동도 적극적으로 취하지 못할 테니까.
“그, 그건 저도 잘…….”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나는 에테르 검 하나를 더 만들어내 녀석의 눈앞에 내리 찍으며 물었다.
“히이이익!! 정말입니다, 정말이에요!!”
녀석이 나를 곤란케 하려고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지 의심해봤지만, 딱히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지금 녀석이 얌전히 진실을 말하건 거짓말을 지껄이건 그걸 분간해낼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는 이 상황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기 때문에, 녀석이 거짓을 진실처럼 꾸며서 말하더라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기껏 해봤자 이렇게 겁이나 주는 정도다.
“그렇다면, 대충 어떤 결과가 나올지 추측이라도 해봐라. 너도 명색이 불사의 지배자라는 놈이잖아?”
나는 가장 마지막에 꽂아 넣었던, 녀석의 몸뚱이에 박혀있는 검을 지워주면서 선심 쓰듯이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조금이나마 몸이 자유로워지고 고통이 줄어들었기 때문인지, 녀석은 단번에 화색을 지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마치 개새기라도 훈련시키고 있는 기분이었다.
녀석이 열심히 대가리를 굴려 내놓은 생각은 세 개.
두 영혼 간에 동화현상은 계속 되겠지만, 결국 두 개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하므로 언젠가는 동화현상이 멈추고 별도의 존재들로 나뉘게 될 거라는 예측.
그리고 두 영혼의 동조현상이 지속되다가 육신과의 결합이 비교적 약한 쪽이 다른 쪽에 흡수될 것이라는 예측.
이 경우에는, 할로우 나이트가 결국 흑마법으로 강제로 묶여있는 존재에 불과하므로, 할로우 나이트의 영혼을 미카엘라가 흡수하는 형식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동화현상의 끝에 두 영혼이 완전히 동일한 존재가 되어버릴 거라는 예측.
그리고 루시퍼는 마지막의 경우에는 똑같은 영혼이 두 개 존재한다는 말도 안 되는 오류를 처리하기 위해 세계 자체가 수정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과연.’
실제로 내 기억에 분명히 남아있던 친구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진 걸 확인했던 적이 있었기에, 나에게 그 말은 단순한 추측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루시퍼가 말한 예측들은 하나같이 신빙성이 있는 예측들이었고, 그렇기에 나는 오히려 혼란에 빠졌다.
‘어쩌면… 각오를 다져야 할지도.’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첫 번째 예측이었다.
할로우 나이트로써 선생님도 살아남고, 미카엘라 또한 살아나는 형태의 모습.
비록 추악한 언데드 몬스터로써 살아남는 것이었지만, 그걸 선생님 본인이 원할 리도 없었지만 나는 그런 모습으로라도 선생님이 살아있기를 바랬으니까.
하지만 막연하게 그런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하고 있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대비해야만 했다. 그건 비관적인 것도 아니었고, 부정적인 것도 아니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정보가 너무 부족해.’
지금 상황에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지극히 협소했다. 선생님의 영혼이 두 개인 상황에 대한 것도, 마족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들과 일곱 군주에 대한 정보들도, 전부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아스트레아에서 20년 동안 생활하면서 얻어낸 것들이 전부였으니까.
내 한 몸 지켜가기에는 충분한 수준이었지만, 마족들의 본격적인 침공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어쩌면 힘까지도 말이지.’
내 능력은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이다. 셀프 기아스는 언제나 나에게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때문에 나는 루시퍼에게 일곱 군주들과 마왕들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각 마왕들의 전투력과 능력들. 특징적인 부분들. 그리고 각 세력의 크기와 서로간의 관계 등.
루시퍼에게서 만족스러운 대답이 나올 때마다 나는 녀석의 사지를 속박하고 있는 에테르의 검을 하나씩 지워줬고, 그 때마다 녀석은 얼굴에 화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이 되겠는데.”
루시퍼의 오른쪽 허벅지에 꽂혀있는 칼 한 자루만을 남겨둔 상태에서 내가 말했다.
“예, 예!! 뭐든 물어 보십쇼!!”
녀석은 이제 완전히 순종적인 모습으로 바뀌어있었다.
날개를 펼치고 이쪽에 궁니르를 쏟아붓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는 모습으로, 내가 ‘손’이라도 말하면 곧바로 손을 내밀 것 같은 비참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눈빛에는 어느새 분노가 떠올라 있었다.
훤히 보이는 녀석의 같잖은 꿍꿍이에 코웃음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아직 확인할 게 한 가지 남아있었음으로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너를 죽이면, 그 할로우 나이트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어찌 보면 살인예고나 마찬가지인 질문.
나는 녀석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일부러 노골적으로 살기를 담아 물었고, 나와 시선을 마주친 녀석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녀석이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 했다.
“그, 그야 당연히 사라집니다. 언데드 몬스터와 그 주인은 마나로 연결되어있으니까요.”
‘…거짓말이군.’
녀석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난감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녀석이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이런 애새끼에게는 아무래도 과도한 걱정이었던 듯 싶었다.
“그래? 원래 데스나이트나 리치처럼 자아가 있는 상위 개체들은 어느 정도 독립된 존재인 걸로 아는데 말이야.”
“그, 그렇기는 한데, 아크님의 선생님은 제가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든 개체라 말이죠. 아까도 말씀드렸지 않습니가? 용사를 언데드로 만드는 것 자체가 유례가 없던 일이라고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침을 떼며 말했고, 루시퍼는 이제 동공까지 흔들리면서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런가…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에테르의 검까지 치워줬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뒤로 돌아 차원석을 꺼냈다.
그 다음 이 아공간이 지구와 완전히 연결이 끊어진 상태인지 확인했다. 다행히 크리스는 내 부탁대로 연결을 끊어둔 상태였다.
“그럼, 이제…….”
그 때 등 뒤에서 루시퍼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 순간, 뒤에서 엄청난 속도로 뭔가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루시퍼의 살기가 느껴졌다.
마치 눈에 보일 것처럼 선명하게 느껴지는 살기.
그것만으로도 이 일격에 얼마만큼의 힘이 실려 있을 지를 알 수 있을 정도엿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녀석의 공격은 형편없었다.
물론 기습은 상대방을 일격에 죽이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상대가 눈치를 채지 못해야 비로소 기습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루시퍼의 기습은 녀석이 지금 어디를 노리고 있는 지까지 훤히 보일 정도였다. 그게 등 뒤의 사각에서부터 들어오는 기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치 가지고 노는 것 같은 기분인걸.’
정말 내가 의도한 대로 움직여주는 녀석이다.
“죽어라, 아크!!”
“얼씨구.”
녀석은 기습할 생각자체가 없는 것마냥 친절히 소리까지 지르고 있었다.
그런 멍청한 기습을 가만히 맞아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가볍게 옆으로 한 발자국 내디뎌 공격을 피해냈다.
녀석은 에테르로 급하게 만들어낸 대낫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래도 횡베기는 아니네.’
자기 딴에는 나름 고민을 해본 것인지, 여태동안 반격의 시작을 제공했던 횡베기가 아니라 종베기였다.
공격을 피해낸 나는 공중에 헛손질을 현재진행형으로 하고 있는 루시퍼를 빠르게 훑어봤다.
녀석은 벌써 사지를 완전히 재생시킨 상태였고, 날개까지도 재생을 시작한 상태였다. 정말 말도 안 돼는 재생력이었다.
역시나 마나를 아껴두고 있었군.
어느 순간부터 녀석의 재생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졌었다.
마나가 고갈되었을 때 나타나는 가장 전형적인 현상이었지만, 그렇게 압도적인 마나량을 보였던 녀석이 그리 쉽게 마나가 고갈 났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녀석이 혹시 모를 기회를 위해 에테르를 억제시켜 아껴두고 있는 것이라 판단했고, 역시나 녀석은 기회가 주어지자마자 본성을 드러냈다.
하긴, 어찌 보면 그게 현명한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타인에게 목숨을 맡길 바에야 마지막 기회에 발악이라도 해보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래주지 않으면 곤란하지.’
녀석을 곱게 죽여줄 생각은 없었다.
<고문을 당하다가 불쌍하게 죽어갔다>.
그런 상황조차도 녀석에게는 아까웠다.
마지막까지 비열하게 뒤를 노리다 삼류 양아치처럼 죽어가는 게 녀석에게 어울리는 죽음이었다.
나는 훤히 드러난 루시퍼의 등짝에 그대로 검을 내리꽂았다.
여태동안은 급소들을 피해왔지만, 지금의 일격은 코어를 노리고 들어가는 명백한 살수(殺手)였다.
“크어…억.”
이미 약해져있던 것인지, 아니면 급속도의 재생을 위해 남아있던 마나를 억지로 끌어냈던 탓인지 루시퍼의 코어는 너무나도 쉽게 깨져나갔다.
바닥에 힘없이 쓰러진 루시퍼는 이제 막 재생하기 시작했던 날개부분부터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흐윽, 끅… 흐끄으윽…….”
루시퍼는 쓰러진 채로 미약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자신이 희생양이라는 듯, 자비를 애원하는 것처럼 들렸다. 몹시 거슬리는 소리였다.
쿠지직.
나는 발에 에테르를 가볍게 둘러 루시퍼의 얼굴을 밟았다.
코어가 박살난 탓인지 루시퍼에게는 그 어떤 저항력도 느껴지지 않았고, 루시퍼의 머리통은 가볍게 박살이 났다.
“…이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쉽게 박살이 날 줄은 몰랐기에, 나는 난감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피범벅이 됐잖아.”
그냥 지그시 밟아줄 생각뿐이었는데, 한쪽 신발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버렸다.
* * *
“이걸로 대충 완성된 건가.”
크리스가 펼쳐준 아공간을 적당한 크기로 압축시킨 나는 만족스럽게 주위를 둘러봤다.
이 아공간은 독립된 세계였고, 루시퍼가 분해된 마나를 온전히 담아낸 세계였다.
그리고 지금은 한 개 체육관 정도의 크기로 압축되어, 그야말로 한계치에 달한 고밀도의 마나가 주위에 맴돌고 있었다.
‘…? 차원 에너지?’
불청객이 찾아온 것은 그 때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