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조원호가 쏘아낸 에테르의 검격은 날카롭게 파고드는 쐐기가 되어 거대한 빛의 창과 맞부딪혔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가 붙인 기술명 그대로 파죽지세였다.
빛의 창의 중심을 노리고 들어간 에테르의 검격은 순식간에 빛의 창을 꿰뚫어 반대편으로 튀어나왔고, 마법의 중심인 핵이 붕괴된 빛의 창은 단숨에 파훼되어, 주변으로 폭발하듯 마나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으윽…!!”
밑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펠트는 그 충격의 여파에 팔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가렸다.
빛의 창이 파훼된 것은 지상과 한참은 떨어져있는 상공이었지만, 그 여파는 지상에까지 닿아 주위를 휩쓸었다.
지상을 휩쓴 그 여파만으로도 몇몇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것만으로도 그 마법의 규모가 과연 어느 정도였을 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하, 하하… 하하하하!!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이냐.”
나름 심혈을 기울여 쏘아냈던 일격이 허무하게 파훼되어버린 것을 지켜본 루시퍼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조원호가 에테르를 끌어올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미리 몸을 피했었기에, 루시퍼는 파죽지세에 휩쓸리지 않았다.
만약 몸을 피하지 않았었다면, 저것에 직격 당했을 때 자신은 버틸 수 있었을까?
방금 전 단 한 번의 참격에 날개를 잃었을 때와 지금의 자신은 가지고 있는 힘의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저 어마어마한 기세로 쇄도해오는 에테르의 쐐기를 정면에서 받아낼 자신이 루시퍼에게는 없었다.
“아크, 네놈… 정말로 인간이 맞느냐?”
루시퍼가 그 광경을 지켜보며 느낀 감정은 분노나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감탄과 경악이었다.
저 말도 안 되는 힘을 발휘하는 생물이, 정녕 자신이 알고 있는 인간들과 같은 종족이 맞단 말인가?
아무리 강한 개체라 하더라도 자신의 손짓 한 번이면 그 순간 생사여탈이 결정되어버리는, 그 약해빠진 존재가 맞단 말인가?
자신을 부르는 루시퍼의 말에 조원호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
그 시선과 눈을 마주친 루시퍼는 자기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서늘해진 등줄기를 따라 땀 한 방울이 흘러 내렸다.
그 눈빛은 포식자에게 저항하는 사냥감의 눈빛이 결코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사냥감을 바라보는 포식자의 눈빛도 아니었다.
저건, 모든 것을 자기 발밑에 내려다둘 수 있는 절대자의 눈빛이다.
‘…바알의 눈빛과 닮았다.’
그와 눈을 마주친 루시퍼는 그런 인상을 받았다.
물론 바알에 비교하자면 그가 가진 힘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마나로만 따지자면 당장 자신과도 압도적인 차이가 벌어져있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도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바알의 눈빛을 떠오르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하나만 묻자.”
루시퍼를 바라보고 있던 아크는, 천천히 입을 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히 작은 목소리에 불과했지만, 그 목소리는 마치 전음이라도 보낸 것처럼 하늘 높이 솟아올라있는 루시퍼에게까지 똑똑히 들려왔다.
“선생님을 되살린 게 너냐?”
…꿀꺽.
문득 누군가가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루시퍼에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는 곧 그 소리가 자신의 목에서 난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루시퍼는 자신이 지금 저 인간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또한 그 사실에 경악했다.
‘두려워하고 있다…??’
누가.
지금, 내가?
신께서 만들어낸 마지막 작품이자, 마신의 축복까지 받아낸 완벽한 존재인 내가?
“…그렇다만?”
광오한 오만 때문일까,
아니면 어줍잖은 자존심 때문일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루시퍼는 조원호의 질문에 순순히 답했다.
“저 년은 용사들 중에서도 내가 처음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년이었다. 내가 직접 군대를 보냈고, 직접 영혼을 빼돌렸지. 나름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역작이라고.”
루시퍼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네놈은 저 년이랑 각별한 사이였었지. 큭큭, 뭐냐. 그리운 추억이라도 떠올린 모양이지?”
“…….”
조원호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의 고개는 조금씩 밑으로 내려갔으며, 깨문 입술에서 흘러나온 핏줄기가 입가를 타고 턱으로 흘러내렸다.
“나, 조원호는 이 자리에서 선언하겠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올린 그는, 조용하지만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루시퍼를 죽이겠다.”
선언을 끝마친 그의 몸은 터져나갈 것처럼 눈부신 하얀빛에 휩싸였고, 그 빛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때까지도 고요하게 맴돌고있던 침묵은 그 순간 완전히 깨져버렸다.
* * *
기아스는 마법적인 구속이자 반드시 지켜야하는 맹약이며, 만약 이를 어길 경우에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 대가는 때로 단순한 처벌 수준에서 끝나기도 했지만, 때로는 계약자의 몰락이나 완전한 파멸로 이어지기도 했다.
기아스의 구속력과 영향력은 당연히 그 대가의 크기와 정도에 따라 커질 수밖에 없다. 그 대가가 클 수록 기아스는 절대적인 맹약으로써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능력, 셀프 기아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네놈을 죽이겠다.”
그리고 지금 선언하는 기아스에 내가 담은 대가는, 나의 에테르 코어 그 자체였다.
“꺄아아악!! 뭐야, 이거…!!”
“펠트 언니, 소연 언니, 제 뒤에 서요!!”
내 존재의 파멸을 대가로 하는, 그야말로 필사의 각오를 다지는 맹약.
그 맹약에 반응하여 코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격하게 에테르를 뿜어내기 시작했고, 회로들이 감당하지 못해 넘쳐흐른 에테르들은 그대로 충격파가 되어 주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전원, 광장 중앙으로 집결!! 최우선 사항으로 수행할 것!!]
다급하게 외치는 이소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마슈의 엄호를 받으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주변 인원에게 집결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다만 평소와 달리 개개인에게 보내지는 전음이 아니라 그저 목소리를 크게 확대시킬 뿐인 확성 마법이었다.
그토록 급하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써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신경 써줄 생각도 없었다.
“우선.”
나는 여전히 루시퍼를 노려보고 있는 상태로 입을 열었다.
“내려와라.”
“…!!”
나는 내가 최대한 담아낼 수 있을 만큼 에테르를 담아 언령을 외쳤다.
“크윽, 이런 얄팍한 수작에…!!”
잠시 날개를 접은 채 휘청거리던 그는, 강제로 부여된 기아스를 깨트리고 다시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역시 일곱 군주나 되는 상대로 언령은 별다른 효과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효과는 나타나고 있었다. 루시퍼가 자신의 언령에 완전히 저항하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왜냐하면, 기아스의 진정한 효과는 중첩되었을 때 나타나는 것이니까.
“떨어져라.”
“크으으으윽!!”
떨어져라.
떨어져라.
그 오만한 날개를 접고서, 땅 위에 두 발로 서도록 해라.
언령이 반복되고 겹쳐질 때마다 루시퍼를 짓누르는 중압감은 계속해서 더해졌고, 그의 비행 높이 또한 계속해서 낮아졌다.
“네 놈!!”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해보고자 루시퍼는 한 손을 내뻗었고, 이윽고 수많은 궁니르들이 완성되어 그 주위를 맴돌았다.
“죽어라!!!”
절박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루시퍼가 외치자, 궁니르들은 지상에 있는 조원호를 향해 일제히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조원호는 수많은 빛의 창들이 내리꽂히는 그 한가운데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루시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쉬이이이익!!
그 빈틈을 노리고, 궁니르 하나가 정면으로 내리꽂혔다.
하지만 빛의 창은 갑작스레 나타난 불투명한 막에 가로막혀 허무하게 허공으로 흩어졌다. 미스틸테인의 수호의 축복이었다.
그 광경에도 조원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떨어져라.”
“이 끈질긴 녀석!!”
결국 하늘에 떠있기를 포기한 루시퍼는, 힘을 개방한 이후 줄곧 한 손으로만 잡고 있던 낫을 두 손으로 쥔 채 지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연히 그 정면에는 조원호가 있었다.
물론 자신은 근접전에서 조원호에게 불리하다. 전투경험도 부족했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신체능력도 뒤떨어졌다. 루시퍼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넘쳐나는 마나로 극도로 강화되어있는 상태였다.
신체강화는 물론이고, 수많은 보조마법에 최고 수준의 가속마법까지 걸려있는 상태였다.
그 증거로 바로 코앞까지 다가갈 때까지 조원호는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멈춘 세상에서 자신만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루시퍼는 뒤로 한껏 재끼고 있던 낫을 횡으로 휘둘렀다.
“뭣?!”
하지만 다음 순간 조원호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루시퍼는 그의 움직임을 쫓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눈앞에서 사라졌다.
“학습이라는 게 없는 놈이군.”
그의 목소리는 바로 밑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뭔가가 뱃속을 헤집는 낯선 감각에 루시퍼는 어린애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끄윽, 윽, 흐아아아악!!”
조원호의 검, 미스틸테인은 루시퍼의 복부에 가드 부분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반대편으로 튀어나와있었다.
수많은 마족들의 위에 군림해왔으며, 일방적인 유린에 가까운 전투만 해왔던 루시퍼에게 고통이란 개념은 무척이나 생소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루시퍼는 머릿속이 새하얘진 채 고통으로 가득 찬 비명을 내지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재정비를 취해야 한다는 이성적인 생각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검을 살짝 비틀며 에테르를 터트리기만 해도 루시퍼는 죽는다.
그 순간 조원호는 일곱 대죄의 군주 중 한명인 루시퍼의 생사여탈권을 온전히 쥐고 있었다.
뻐어억.
“끄흐아아악!!.”
하지만 조원호는 미스틸테인을 역수로 쥔 상태에서 루시퍼를 발로 걷어찼다. 조금 거칠게 상처를 찢는 감각이 느껴지면서 검은 곧바로 뽑혀 나왔다.
조원호에게 걷어차인 루시퍼는 꼴사납게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날개에는 이미 흙먼지가 잔뜩 묻어 탁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끄으윽, 으윽…….”
하지만 루시퍼는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날개에 쏟을 정신이 없었다. 그는 다급하게 신성력을 끌어내어 피를 줄줄이 쏟아내고 있는 복부에 치료마법을 걸었다.
조원호는 한참 신음소리를 내며 빌빌거리는 루시퍼에게 큰 걸음으로 다가갔다. 막힘없이 성큼성큼 내딛는 그의 발걸음에는 그의 분노가 담겨있었다.
빠아악!
그리고 루시퍼의 앞에 선 그는, 구둣발로 거리낌 없이 루시퍼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컥.”
여태동안 이어지던 비명소리와 달리 이번에는 짧은 단말마만이 튀어나왔다. 직격으로 걷어차인 부분에서는 흥건하게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앳된 미소년과도 같았던 루시퍼의 얼굴은 흙먼지에 뒤덮이고 온통 피범벅이 되어 흉측한 꼴이 되어있었다.
“크아아아앗!!”
오히려 그 충격에 정신을 차렸는지, 루시퍼는 두 눈에 핏줄을 세운 채 몸을 반쯤 일으키고서 마나를 끌어 모아 방출시켰다.
마치 암흑과도 같은 검은 마나들이 안개가 되어 주위를 덮쳤다.
서걱.
“…하?”
뭔가가 자신의 왼쪽에서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 물체가 무엇인지, 루시퍼는 한동안 알아채지 못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