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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84화 (84/135)

84화

아스트레아에서 죽은 용사는, 지구에서 그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그것은 단순히 목숨을 잃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그 존재 자체의 소멸을 의미했다.

그 과거도, 그 사람들과 얽혀있던 기억들도, 앞으로 이어졌을 미래들도, 전부.

세계는 ‘죽은 용사들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세계’로 수정되었다.

조원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다.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절망을, 그 공허함을.

그렇기에 미카엘라가 선생님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선생님의 존재가 아직 이 세계에 남아있다는 걸 깨닫게 됐을 때.

조원호는 그 기적에 기뻐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대체 어떻게?’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아스트레아에서 죽었던 그녀가 아직 이 세계에 남아있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혼자서는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스트레아에서 죽었던 용사가 살아있는 걸 본 적이 있냐고?”

테이블에 놓여있던 소주잔을 들어 올리면서 이태현이 되물었다.

“그래, 살아있는 걸 봤다거나, 하다못해 죽었던 사람의 기록이 남아있는 걸 봤다든가…….”

아스트레아에서 아크는 로크보다 훨씬 뛰어난 용사였고, 마법에 관한 지식 역시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구로 돌아오고 나서 지낸 시간은 자신보다 이태현이 더 길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모르는 정보를 그가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미카엘라가 아직 이 세계에 남아있는 이유를 찾기 위해, 조원호는 이태현을 불러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흐으으으음…….”

이태현은 한숨에 가까운 콧소리를 길게 내다가, 들고 있던 소주잔을 쭉 들이키고서 입을 열었다.

“…없어.”

“없어?”

“그래, 없다고. 너도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지만, 죽은 용사들은 그냥 그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려. 그야말로 깔끔하게.”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조금 씁쓸하게 들렸다.

그에게도 나름대로의 뒷사정이 있던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목소리였다.

“그건 다른 세계에서 죽어버린 사람들 때문에 발생할 모순들을 방지하기 위한, 세계 자체에 가해지는 수정이야. 절대적인 거라고. 뭐, 이런 이야기는 나보단 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만.”

“…그래, 알고 있어.”

아스트레아에서 죽은 자들은 육신과 영혼이 파괴되어 사라져버린다.

문제는 그동안 지구의 시간이 멈춰있다는 점이다.

그대로 방치하게 되면, 멀쩡히 살아있던 사람들이 그 어떤 인과관계도 없이 느닷없이 사라져버리는 꼴이 된다.

거기서 발생하게 될 모순들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 세계에는 수정이 가해져 애초부터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로 고쳐지게 된다.

그게 지금의 세계다.

하지만, 그렇다면 멀쩡히 살아있는 미카엘라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조원호는 비어있는 이태현의 잔을 다시 채워주며 말을 꺼냈다.

“죽었던 용사가 지구에서 멀쩡히 살아있는 모습을 본다면, 대체 어떻게 그 존재가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해?”

“…쌍둥이?”

“진지하게.”

“일란성 쌍둥이?”

“…죽는다.”

“아니, 네 표정이 너무 굳어져있어서 장난 좀 친 거야. 그러니까 에테르 좀 다시 가라앉히지…?”

조원호가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 에테르를 끌어올리자, 손사래를 치면서 이태현이 말했다.

“그럼 좀 진지하게 대답해봐.”

“알았으니까 거 보채지 좀 마라.”

이태현은 간단한 일이라는 듯 그 자리에서 곧바로 대답했다.

“…그러면 사실은 죽은 게 아니라 살아있던 거겠지. 저번에 봤던 김세율도 그런 경우 아니냐?”

조원호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만약 살아있는 그 사람이, 네가 직접 죽는 걸 지켜본 사람이라면? 입자로 나뉘어서 사라져가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면??”

조원호는 자신이 따르던 선생님이 입자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지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었다. 그에게는 그녀를 묻어주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었다.

조금 아픈 기억을 떠올린 탓인지, 말하는 중간부터 조원호의 목소리에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단은 좀 진정해라.”

이태현은 슬쩍 손을 내밀며 조원호를 진정시켰고, 이후 테이블에 놓인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장난 칠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았다.

“네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내 대답은 ‘그럴 일은 없다’다.”

“…그래.”

이태현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조원호는 그의 말에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역시 이 녀석도 모르는군.’

조원호의 감상은 그 정도였다.

그럴 일이 없다는 건 자신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반례로 떡하니 미카엘라가 있으니까 지금 이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결국 이태현과의 대화에서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그저 미카엘라의 존재가 이질적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도 한참 고민해봤지만 해답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조원호는 해답을 찾는 걸 그만뒀다.

어쨌거나 선생님이 살아있는 지금 상황은 그가 꿈에서나 그리던, 그야말로 기적 같은 상황이었으니까.

굳이 진실을 들춰내려고 발버둥 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감춰져있는 그 진실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있었기에, 조원호는 조금씩 그와 관련된 생각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 * *

“하하.”

그리고 내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웃음이었다.

“큭큭큭.”

감정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웃음이 터져 나온다던가.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 대로였다.

“그런가. 이제 알겠네.”

어렴풋이 갖고는 있었던 일말의 가능성.

그리고 내가 외면하고 있었던 불길한 예감의 정체.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존재가, 지금 눈앞에 서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나는 꿈속에서나 불러보던 그 호칭을 조심스럽게 말해봤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발음이었지만 의외로 어색한 느낌만이 가득했다.

할로우 나이트에게 말을 건네는 내 모습은, 아무래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겠지.

언데드 몬스터에게 말을 건네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설령 그게 자신의 부모로 만들어진 언데드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들에게는 이성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술사의 명령과 증오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의 할로우 나이트에게는 아직 이성이 남아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마슈를 상대할 때 그녀는 전력을 다하지 않고 적당히 힘을 조절하고 있었으니까.

이성을 잃은 채 명령에만 따르는 언데드가 그런 요령 좋은 행동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

역시나 눈앞의 할로우 나이트에게는 머뭇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 모습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아스트레아에서 죽은 용사들은 이 세계에서 그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느닷없이 육신과 영혼이 사라져버린 존재들을 아예 감춰버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선생님은, 미카엘라는 살아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아직 그녀의 영혼이 아스트레아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언데드 몬스터라는 형태로.

그 사실을,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와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순간, 할로우 나이트는 온몸에서 마나를 방출 시켰다.

“꺄아아악!!”

갑작스럽게 뿜어져 나온 마나는 그 자체로 충격파가 되었고, 내 뒤쪽에 서있던 마슈와 펠트는 방어 자세를 취해 충격에 대비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그녀가 뿜어내는 검은 마나의 폭풍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검은 마나.’

칠흑처럼 검은빛을 뿜어내는 마족들의 마나와 달리, 그 마나는 썩어 들어가는 것처럼 탁한 분위기를 담은 검은빛이었다.

그녀의 찬란하던 황금빛 마나가 언데드 특유의 검은빛으로 물든 것을 바라보며, 나는 착잡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폭풍의 중심에서 마나를 한껏 폭주시키고 있는 칠흑빛의 갑옷을 바라봤다.

역시, 그녀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닫혀있던 헬름의 안쪽은 텅 비어있을 뿐이지만, 나는 그녀의 시선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 맞죠?”

나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른 채, 나지막이 말했다.

하지만 그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 들리지 않은 걸까. 전음을 보내는 게 더 나을까.

그러나 전음을 보내기 전에 그녀는 말없이 어딘가로 사라졌고, 검은 마나의 폭풍 역시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곳에는 폭풍의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 * *

그곳에는 고요한 침묵만이 흘렀다.

그 혼란스럽던 전장에 이런 고요함이 흐른다는 건 꽤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오빠? 괜찮아요?]

이소연은 그 침묵을 만들어내고 있는 장본인이자, 침묵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에게 전음을 보냈다.

모두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모든 행동을 멈춘 상황에서 이소연이 전음을 보낼 수 있는 건, 그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리가 없다는 믿음을 굳게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 괜찮, 괜찮…….”

평소처럼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하려던 조원호는, 말을 끝까지 마치지 못한 채 주먹을 쥐었다.

억누르지 못할 정도로 날뛰는 감정에 주먹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그 주먹에서는 잠시 후 피가 흘러 내렸다.

“하, 하하. 하하하하…….”

조원호에게서는 그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침묵을 지키고 있는 주변의 사람들과 몬스터들에게는 오히려 그 모습이 더욱 이질적이고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그 때, 하늘에서 거대한 빛의 창이 멍하니 서있던 조원호를 향해 내리꽂혔다.

[피해요!!!]

그 상황에서도 주위 경계를 풀지 않았던 이소연만이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녀는 다급하게 주위 인원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 빛의 창은 방금 전 빗발처럼 쏟아 붓던 것들과 같은 마법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했으며, 그 안에 압축되어있는 위력 또한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었다.

그 마법에는 이 주변 일대를 뒤집어엎고도 남을만한 위력이 담겨있었다. 피아식별에 신경 쓰지 않은 채 전부 날려버릴 속셈이었다.

“…….”

하지만 그 순간, 주변의 시간이 멈췄다.

그리고 움직이는 것은 하늘에서 서서히 내려오는 저 거대한 빛의 창과, 천천히 뒤로 돌아 빛의 창을 마주 바라보는 조원호 뿐이었다.

아니, 시간이 멈춘 게 아니다.

그저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계속해서 감지망을 펼쳐내고 있던 이소연은 깨달았다.

“파죽지세(破竹之勢).”

이소연은 얼핏 조원호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지만, 환청일 것이라 생각했다. 찰나의 순간이 한없이 늘어나있는 지금, 사람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조원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의 창을 향해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검을 단숨에 휘둘렀다.

그 검격은 크게 호를 그리는 참격이 아니라, 마치 찌르듯이 날카롭게 파고들어가는 검격이었다.

‘!!!’

그리고 그 검격을 따라 극도로 압축된 고밀도의 에테르가 방출되기 시작했다.

빛의 창을 향해 일직선으로 검이 내뻗어진 순간, 그는 날카로운 예각을 그리며 검을 거두었고, 방출된 에테르는 앞을 향해 쇄도하는 예리한 쐐기꼴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다음 순간, 시간은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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