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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78화 (78/135)

78화

오늘 협회에서 S급 헌터들의 소집과 회의가 있다는 사실은, 지금 여기에 모여 있는 S급 헌터들과 협회 내부의 소수 인원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참가자들의 이동 역시 크리스를 통해 중간 이동과정을 생략한 채로 이뤄졌기에, 이 장소가 노출되었을 리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저 소년은 지금 회의장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여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애초에 저 소년이 회의장 안에 대체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 또한 대체 언제부터 저 자리에 태평스럽게 앉아있기 시작했는지를 아무도 알 지 못했다.

그가 직접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조원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러 이미지(Mirror Image)로군… 게다가 조금의 살기도, 악의도 없어. 잠입만을 위해 만들어진 분신이다.’

원호는 기본적인 수준으로만 펼치고 있었던 감지망을 뒤늦게 강화시켰고, 집중해서 상대를 분석하고 나서야 어째서 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러 이미지.

마나를 통해 자신과 중복되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내 위험을 분산시키거나 직접적으로 전투에 활용하고, 때로는 정보를 수집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마법.

쉽게 말하자면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내는 마법이다.

당연히 분신의 존재감은 본체보다 압도적으로 떨어지며, 그것이 지금처럼 비전투용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즉,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소년은 그의 본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마나로 이루어진 단순한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과 별개로, 저 소년에 대한 경계를 풀어서는 안 된다고 원호는 생각했다.

비록 잠입만을 위해 만들어진 분신에 불과했더라도.

자신이 기본적인 감지망만 펼치고 있던 상황이라 했더라도.

자신이 두 눈뜨고 있는 상황에서 바로 앞까지 접근한 상대라는 것은 바뀌지 않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뭐하는 놈이냐!!”

하지만 이 안에 있던 사람들 역시 눈 뜨고 코 베이는 호구들은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모여 있는 사람들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S급 헌터인 것이다.

펠트의 바로 앞에 놓여있던 펜이 초록빛에 휩싸이더니 쏜살처럼 소년에게 달려들었고, 헤인의 손에서는 매직 미사일(Magic Missile)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소년의 가장 가까이에 앉아있던 얀은 회의장 안에서까지 자신의 옆에 두고 있었떤 애창을 바로잡아, 그 즉시 소년의 안면을 향해 창을 뻗어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게 뻗은 일격이었다.

세 명의 S급 헌터들의 일격들은 마치 사전에 호흡이라도 맞춰봤다는 듯이 거의 동시에 작렬했다.

“하하, 반응들이 아주 잽싼데?”

“…!!”

“뭐, 뭣?!”

“하지만, 조금 실망스러운 수준이네.”

소년은 여유롭고 느긋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소년은 밀착시키듯이 몸에 감고 있었던 날개를 들어 올려 펠트와 헤인의 공격을 쳐냈고, 반대 쪽 날개로 얀의 창을 막아냈다.

그들의 일격은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그래도 이 세계에서는 나름 강력한 녀석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아서 기대했는데 말이지… 너무 약하잖아?”

소년은 팔짱을 끼고서는, 아랫사람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으로 눈앞의 얀을 바라보며 말했다.

“크윽…!! 이 때 묻은 닭털 내 앞에서 치워!!”

“…뭐라고?”

생각지 못했던 상황에 당황한 얀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내뱉자, 소년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마치 주변의 공기들까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때까지 소년은 그야말로 순수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해맑은 미소를 입가에 띠우고 있었지만, 얀의 말에 그의 표정이 단숨에 바뀌었다.

그 극단적인 변화는, ‘일그러들었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소년의 분신에서 느껴지는 마나가 급증했다.

방금 전까지 느껴지던 마나의 양은 어디까지나 비전투용 분신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지금은 방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마력을 갖고 있었다.

“때 묻은 닭털… 이라고? 어디다 그런 천박한, 하, 아무래도 죽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갑작스럽게 마나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소년을 중심으로 중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로 다음 순간, 소년은 그떄까지도 날개에 가로막혀 제자리에 멈춰있던 얀의 창을 거칠게 뿌리쳐냈다.

“으윽?”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얀은 자세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로 튕겨져 나가 빈틈투성이가 되었다.

“네놈은 언데드로 만들어서 특별히 따로 감옥에 넣어주도록 하마. 무례에 대한 반성은 언데드가 되어서 느긋하게 하도록.”

그리고 소년은 얀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내뻗어진 소년의 손을 중심으로, 격렬한 에테르의 기운이 맴돌았다.

저건 위험하다.

오랫동안 전장에 머무르며 수없이 많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왔던 S급 헌터들은, 본능적으로 목숨의 위험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인원들은 지금 상황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유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에테르를 활성화시켰으며, 마슈가 에메랄드 빛의 방어막을 펼쳐냈다.

하지만 그 직후, 앞을 향해 뻗어져 나와 있던 소년의 손은 벽에 처박혔다.

그 손에는 짧은 단검 모양으로 하얀빛을 뿜어내는 에테르의 조각이 박혀있었고, 에테르의 조각은 그 손을 꿰뚫고서 벽에 꽂혀있었다.

“헤에― 역시 아크네. 남다른 걸? 눈여겨본 보람이 있어.”

소년은 에테르의 단검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 목소리와 표정에는 일말의 고통의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저건 어디까지나 분신에 불과했으니까.

“쯧, 나는 그 쪽이랑 초면인데?”

소년의 손에 에테르의 단검을 쏘아내어 움직임을 막았던 원호가 말했다.

* * *

‘왜 남의 이름은 까고 지랄이야, 지랄은.’

약간의 불쾌감을 느끼면서, 원호는 눈앞의 재수 없는 마족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크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는 건… 역시 마족이라는 거겠지.’

녀석이 마족이라는 건 이미 눈치 채고 있던 사실이다.

자신의 감지망을 피해서 이 주변까지 분신을 보낼 정도의 실력에, 해봤자 고작 분신이었음에도 S급 헌터드르이 공격을 태연히 막아낼 정도라면 당연히 마족일 것이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짐작이 가지 않는 건 아닌데…….’

가지 않기는커녕 너무 딱 떠올라서 문제였다.

소년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검게 물든 회색빛 날개.

어떤 마왕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상징 중의 하나였다.

회색빛 날개를 몸에 두르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그 정체에 대해서는 짐작을 하고 있었다.

다만, 원호는 짐작이 가는 그 마왕이 지금 이 세계에 나타났다고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추락한 신의 날개.

불사의 지배자.

제 6석 질투의 군주, 루시퍼.

요 근래 나타났던 바리트 같은 잔챙이나 엘라보르처럼 어중간한 녀석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왕이다.

게다가 루시퍼는 다른 마왕들과는 격을 달리한다는 마족의 일곱 군주들 중에 한 명이었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상대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일곱 군주라는 존재들과 싸워본 적이 없었고,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도 알지 못했으니까.

그가 죽인 마왕들은 모두 일곱 군주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하위 마왕들 뿐이었으니까.

물론 그는 기아스가 회복된 이후, 예전보다 월등히 뛰어난 전투력을 갖게 되기는 했었다.

그야말로 과거와는 비교하기가 힘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싸워본 적도, 정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대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확신할 정도로 원호는 멍청하지 않았다.

지금 가장 좋은 상황은, ‘사실 저 녀석은 그냥 루시퍼랑 비슷한 날개가 돋아나있는 잡다한 마족 A였습니다!!’였다.

“크아아아아아앗!!”

그 때, 뒤늦게 재정비를 마친 얀이 창에 에테르를 휘감은 채로 벽에 손이 묶여있던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에테르는 날카롭게 맴도는 바람의 형태가 되었고, 그의 창은 휘몰아치는 바람의 중심이 되었다.

바람의 창은 방금 전과 달리 소년의 몸통을 그대로 꿰뚫는 데 성공했고, 곧 소년은 안쪽부터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허공에 흩뿌려졌다.

물론 분신이었기에 피 한 방울도 튀지 않았지만, 그다지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후욱, 후… 별 것도 아닌 게 까불고 말이야.”

아직까지 창을 내뻗은 상태로 한참동안 몸이 굳어있던 얀은, 한 박자 늦게 허리를 펴면서 말했다.

여유롭게 내뱉은 말과 달리 그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가득 맺혀있었으며, 가슴 쪽에는 땀에 젖은 흔적이 선명했다.

“바, 방금 녀석은 뭐였죠…?”

“저게 마족이라는 녀석입니까?”

방금 전의 상황에 두려움을 느낀 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얀의 돌격의 여파로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서류들이 사방팔방으로 정신 사납게 흩날리는 상황이었음에도, 그것에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너무하네. 흠… 오늘은 적당히 인사만하고 가려고 했으니까 여기까지만 하고 참도록 하겠지만.”

“!!!”

얀이 호흡을 가다듬고 제자리로 돌아가던 중, 다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은 방금 전과 같은 자리에 그대로 나타났다.

“다음번에 만나게 되면… 너는 내가 꼭 죽여서 발 걸레로 삼아주마. 같잖기 그지없는 너한테는 딱 어울리는 역할이지. 응.”

지금은 감지망을 최대한 펼쳐둔 상태였기에, 원호는 상대방의 분신이 생성되고 있음을 처음부터 생생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방금 전의 말대로 그의 목적은 전투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저 정도나 되는 마족이 정말로 전투를 위해 나타났다면, 이런 설렁설렁하고 비효율적인 자잘한 수작을 부리지는 않았으리라.

지금은 우선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원호는 판단했다.

저쪽에서 직접 정보를 내준다고하는데,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이 자식…!!”

하지만 얀은 질색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시 창대를 꼬나 쥐었고, 그 뒤를 따라 펠트와 마슈, 록슬리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만.”

그 때, 중압적인 목소리로 로이드가 말했다.

“협회장님…….”

그의 말에 모두가 행동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로이드는 손으로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쪽에서 대화를 하자고 하는데, 굳이 그걸 거부할 필요는 없겠지. 그 정도의 도량도 없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만.”

로이드의 말에 록슬리가 불편한 기색으로 답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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