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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77화 (77/135)

77화

질투의 군주 루시퍼

잠시 동안 회의장 안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록슬리가 지금 말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임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었으며, 또한 그 상황이 단순한 추측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면해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질문이 있습니다만.”

헤인이 나긋하게 들리면서도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헤인에게로 집중되었고, 로이드가 그의 질문을 허락했다.

“저번에 협회장님의 지시로, 한국에 시범적으로 헌터 교육시설이 가장 먼저 설립됐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맞습니까?”

헤인은 고개를 돌려 유선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렇지. 일단은 내가 관리하고 있는 걸로 되어있다만.”

평소 귀찮음을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불친절함을 옵션으로 택하고 있는 모습과 달리, 조금 날카롭게 눈매를 세운 채 진지한 목소리로 유선이 답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해결책으로 헌터 교육시설이 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잠시 생각을 해봤습니다만… 현재 교육시설을 실제로 운영하고 계신 유선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헤인의 모습이 사뭇 진지했기에, 유선 역시 살짝 고개를 숙이고서 잠시 동안 고민을 한 후에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장기적으로 바라봤을 때 그럴 뿐이야. 아직까지 뚜렷한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 엄청난 실력을 가진 루키 헌터팀이 나타났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것도 포함시킨 결과입니까?”

헤인이 재차 물었다.

유선은 나와 이소연을 잠시 돌아본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다. S급 헌터가 두 놈이나 있는 팀은 정상적인 팀이라고 할 수 없겠지…….”

“호오, 그럼 저 사람이 그 소문의…?”

유선의 말에 몇몇의 시선이 나에게로 몰렸다. 유선의 말을 들으면 내가 그 루키 팀의 일원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괜히 쑥쓰러운 기분이었다.

“결론은, 단기적으로 봤을 때 교육 시설은 해답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건 즉각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단기적 대책이지.”

“흐음, 혹시나 해서 여쭤봤던 것이지만, 역시 그렇군요…….”

교육시설을 세우는 것처럼 기간을 길게 바라보는 장기적 계획은 지금처럼 빠른 대처가 필요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

딱히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간단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헤인 역시 별다른 기대를 가졌던 것은 아니었는지, 유선의 답을 들은 그는 곧바로 납득하고서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여기서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일세.”

다시 회장에 침묵이 찾아왔을 무렵, 한동안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던 로이드가 입을 열었다.

“록슬리. 시애틀에 크림슨 레드급 몬스터가 둘이나 나타났다고 했었지. 그 때 어떻게 해결했나?”

“그야… 워프 마스터님과 블러드 레이스님이 와주신 덕분에 생각보다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만…….”

“만약 크리스와 이태현이 지원을 오지 않았다면? 원래 미국 쪽에서는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었나?”

이어지는 로이드의 질문에, 록슬리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왼손으로 콧수염을 긁듯이 살짝 만지면서 말했다.

“사실은 협회에서 지원부대가 온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토벌은 커녕 대피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주변에서 모을 수 있는 헌터들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렇군. 말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솔직한 대답 고맙네, 록슬리.”

로이드는 그 이후로도 비슷한 질문들을 던졌다.

모두 요 근래에 갑자기 강력한 몬스터들이 대규모로 나타났던 일들에 관한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들에는 모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협회의 도움이 있었고, 대부분은 S급 헌터들이 파견되어 해결된 일들이었다.

질문이 반복될수록, 모두의 시선이 로이드에게 집중되었다. 그가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질 때는 그가 중요한 말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음… 서론이 길었네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걸세. ‘S급 헌터들을 모두 협회에 소속시킨다.’ ”

“…!?”

“뭐라고요??”

“진지한 말씀이십니까.”

로이드는 조용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반응들은 격렬했다.

“협회장,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특히 얀의 반응은 그 중에서도 유별났다. 그는 대놓고 불만이 담긴 목소리를 내뱉으며 공격적인 태도로 말했다.

그런 그에게 언제나처럼 록슬리가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지만, 얀은 그런 것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얀처럼 대놓고 표현하지 않았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로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큼 민감한 문제였다.

그들이 끝까지 협회에 소속되는 걸 거부하고 자국에 남은 것은, 분명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테니까.

오직 유선과 이태현, 그리고 이소연과 크리스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말 그대로일세. S급 헌터들을 모두 협회에 소속시키는 것이지. 그 목적은 협회에 요청이 들어온 곳으로 S급 헌터들을 파견하기 위해서일세.”

그럼에도 로이드는 여전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최근 일들로 자네들도 느꼈을 걸세. 더 이상은 각자의 힘만으로는 살아남기가 힘들다는 것을 말이지. 알겠나? 서로 힘을 합쳐야할 때란 말일세.”

“…그래도.”

“지금 세계에는 S급 헌터들은커녕 제대로 된 헌터들도 없어 레드급 몬스터 하나를 토벌할 때도 쩔쩔매는 국가들이 많네. 그런 국가들을 못 본 척 저버릴 수는 없지 않겠나?”

“그래도!!”

얀은 소리를 높여서 발언권을 강제로 가져왔다. 이야기를 하고 있던 로이드의 말을 자르면서까지 말이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일본은 내가 없으면 안 된단 말이야…….”

얀의 목소리에는 절박한 무언가가 담겨있었다.

그의 긍지와, 무거운 책임감이 엿보이는 모습이었다.

방금 전까지 보였던 건방진 태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일본은 헌터들의 숫자가 터무니없이 부족했었지.’

한 때는 일본도 적지 않은 정예헌터들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였었고, 특히 자국에 대한 헌터들의 충성도는 세계에서도 이례적으로 뽑힐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 때’ 그랬을 뿐이다.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의 일본은 자국에 나타난 몬스터의 토벌도 간당간당한 국가일 뿐이었다.

“내가 빠지게 되면 일본은 지금 가지고 있는 힘의 4할은 잃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협회에 소속되면, 우리나라가 위험한 상황이라고 해서 내 멋대로 움직일 수가 없게 되잖아?”

‘4할은 좀 오바다, 야.’

끽해봤자 2할 정도 되겠지. 물론 이 생각을 굳이 입에 담지는 않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쪽에서 어느 정도 배려를 할 생각이네만.”

로이드가 대답했다.

케이트의 경우도 그런 예시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지.

당시의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그녀의 고국인 노르웨이에 카오스 게이트가 열리자 케이트는 직접 부대를 이끌고서 파견을 나갔다. 아마 로이드가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국의 안전도 지키지 못하는 마당에 다른 국가를 지키라고 파견을 보내봤자 의욕이 날 리가 없다. 한 떄 기사단장을 담당하기까지 했던 로이드가 그런 기본적인 걸 모를 리가 없었다.

물론 그녀는, 케이트는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반대야. 인정할 수 없어.”

로이드의 말에도 얀은 꿋꿋이 의견을 고집했다.

“임무는 자네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할 것이고, 부득이한 경우에도 최대한 우선적으로 파견할 것테지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굳이 강제할 생각은 없네.”

그 꿋꿋한 모습에 로이드는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상황이 점점 악화되어 간다면, 자네 혼자 힘만으로 한 개 국가를 계속 지켜나가는 건 힘들 것이라고 본다만.”

“…큭. 협회장, 협박입니까?”

“협박이라니, 당치도 않은 소리를. 다만, 어차피 자네의 그런 집착은 결국 헛된 집착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을 하려는 걸세.”

그 말까지는 부정할 수 없었던 듯, 얀은 주춤했다.

계속해서 이어진 로이드의 말에, 펠트나 헤인과 같이 처음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었던 사람들도 조금씩 수긍해가는 기색이었다.

짝짝짝.

그 때, 누군가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앉아있지 않던, 회의장의 구석자리였다.

“히야~ 멋있어!! 그럼 다 같이 지구… 잠깐, 지구 맞나? 어쨌든 지구 방위대가 되는 거네?”

그리고 발성기도 채 오지 않은 맑은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

하지만 그 목소리가 아름다운 것과 별개로 회의장 안의 모든 사람들은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검은 날개로 몸을 가볍게 덮은 소년이 다리를 꼰 채로 의자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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