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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73화 (73/135)

73화

헌터협회는 어비스 게이트가 오픈된 이후, 마치 이를 예견했다는 듯 느닷없이 생겨난 헌터 기관으로 세계 최초의 헌터 기관이자 현재 사실상 세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기관이었다.

초기에는 협회를 설립한 로이드 협회장을 비롯해 소수의 헌터들만 활동하는 작은 조직에 불과했으며, 그 활동 범위도 자국을 수호하는 정도에 그쳤었다.

하지만 점차 그 규모는 계속해서 성장했고, 지금에 와서는 협회에 속해 있는 헌터들의 숫자만 해도 어지간한 국가의 헌터 보유 숫자와 버금갈 정도가 되었다.

또한 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인간을 초월했다는 평가를 받는 S급 헌터들을 비롯해, 한 명 한 명이 정예라고 불리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전 세계 곳곳에 지원부대를 보내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지구 방위대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을 정도!!

“아니, 이 양반들은 대체 언제쯤 오시는 거래?”

그리고 그 인간을 초월했다는 S급 헌터들 중에 한 명, 얀은 테이블 위에 발을 얹어놓은 채로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의자에 누워있듯 앉아있으면서도 자신의 창에 팔을 휘감은 채로 완전히 몸을 기대고 있는 상태로, 그야말로 불량하기 짝이 없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얀, 우선은 그 발부터 좀 내려놓으면 안 되겠나?”

테이블의 맞은편에 조용히 앉아있던 록슬리가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 어때. 아직 협회장이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래?”

“기본적인 예의라는 게 있지 않겠나. 그리고… 협회장님을 친구 부르듯 막 부르는 건 자제해 달라 했을 텐데.”

“나도 저번에 말했을 텐데. 아저씨가 수염 밀고 오면 아저씨가 하는 말 다 듣겠다고. 매번 말하지만 아저씨 수염은 보고만 있어도 지저분하다고.”

“…뭐라고?”

얀의 말에 록슬리가 발끈하며 몸을 살짝 일으켰다. 그의 목소리에는 잔잔하면서도 선명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아니, 아니. 장난이잖습니까, 아저씨. 우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맙시다. 조크, 조크. 좋은 게 좋은 거지, 싸우지 맙시다. 하하, 언더스탠?”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얀의 표정은 그다지 사과하는 듯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싸움은 싫지만 걸어오는 시비는 기꺼이 받아주겠다―’라고 말하는 듯한, 건들거리는 양아치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하아… 둘이 계속 그럴 거면 번역 마법 꺼버릴 거에요.”

그리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헤인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가 이 회의실 안에 번역 마법을 걸어둔 상태였고, 덕분에 일본 출신의 얀과 미국 출신의 록슬리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너무 자유로운 대화여서 문제가 발생했지만.

“일본어든 영어든 번역 마법 없이 둘이 알아서 잘 싸워보던가요. 뭐, 록슬리는 일본어 할 줄 모를 테고, 얀은… 하하. 얀이 영어를 할 줄 알 리가 없죠.”

헤인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 아니거든? 나 영어 할 줄 알거든? 완전 ‘아이 캔 스피크 잉글리쉬’거든?”

“이제야 발을 내려놨군.”

헤인의 말에 얀이 발끈하면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덕분에 책상에 올려뒀던 발이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며 록슬리가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이익…….”

그런 록슬리의 표정을 바라보면서 얀은 잠시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보다는 헤인 쪽이 우선순위가 높다고 판단했는지 다시 헤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 너 왜 나 무시해?!”

“공부에 관련된 일에서는 무시할 만하잖아요. 솔직히 얀이 공부랑은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이… 이… 아, 그래, 이 14위 주제에!! 어?”

자기가 헤인보다 잘난 점을 한참동안 찾아 헤매던 얀은, 결국 헌터 순위까지 들먹이면서 말했다.

“아니 여기서 순위가 대체 왜 나옵니까? 초등학생이에요?”

사실 S급 헌터들 중에서는 몇몇을 제외하면 다 고만고만했고, 순위와 전투력이 반대인 경우도 있어서 정말 의미 없는 짓이었지만, 얀은 이렇게라도 헤인한테서 우위를 점하고 싶었다.

“14위밖에 안 되면서 말이야. 어? 그러면 안 되지!! 윗사람 말 알 들을 거야?”

“…유치하게 그러게 나올 겁니까? 그리고 뭔 놈의 윗사람입니까? 그럼 태현이 형이 협회장 맡게요?”

“하아… 시끄러워…….”

그 때 안쪽으로 조금 떨어져서 앉아있던 여자가 조용히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더니, 두 남자를 향해 손을 내밀고서 손바닥을 밑으로 가라앉히는 동작을 취했다.

“…!!” “…!?”

그러자, 그 둘은 누군가에게 강제로 눌린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자리에 앉게 되었다.

“펠트… 너…!!”

“그 쪽 말 대로면, 전 5위니까 11위인 그 쪽 에게 앉으라고 하는 것 정도는 강제로 시킬 수 있겠죠? 아무래도 윗사람이니까.”

“이익… 비겁하게 갑자기…!!”

“아니 저는 대체 왜…….”

얀은 어떻게든 펠트의 염동력에서 벗어나겠다는 듯이 발버둥을 쳤고, 헤인은 얌전히 있었지만 억울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근데 있잖아, 그럼 마슈는 4위니까 펠트 언니한테 막 부탁해도 되는 거야?”

펠트의 옆에 앉아있던 소녀가 순진한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으음… 그런 식으로 못난 생각을 하게 되면 저기 있는 멍청이랑 똑같은 못난 인간으로 자라게 되니까 안 돼요, 마슈.”

그러자 펠트는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소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하지만, 어차피 마슈의 부탁이라면 이 펠트 언니는 뭐든지 들어줄 거랍니다?”

“와!! 그럼, 마슈는 한국에 가보고 싶어!”

“한국이요…?”

펠트는 미소를 지으면서 마슈에게 말했다가, 곧바로 부탁이 튀어나와버리자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나중에 크리스한테 부탁해볼까요?”

“크리스 언니?”

“네, 오늘은 크리스도 여기로 올 테니까요. 게다가 유선 언니나 이태현 오빠도 올 테니, 이따가 물어보면 되겠죠??”

“응!!”

펠트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자, 마찬가지로 마슈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야, 누가 보면 엄마라도 되는 줄 알겠다.”

“…다시 의자에 붙어있고 싶어요?”

펠트와 마슈를 지켜보고 있었던 얀이 껄렁거리는 목소리로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 펠트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면서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그, 그, 그보다 이 양반들은 진짜 언제 오려고 이렇게 늦게 오는 건가~?”

그 시선을 받아낼 자신도, 실력도 없었기에 얀은 딴청을 피우면서 말을 돌렸다.

“아직 약속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뭘 그리 보채는 건가.”

“아니, 이제 한국 팀만 오면 되는 상황이잖아. 협회장은 어차피 협회 건물 안에 있을 테고.”

“…뭐, 한국 팀만 오면 된다고는 해도 그 한국 팀이 인원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요.”

휑하니 비어있는 테이블을 둘러보면서 헤인이 농담조로 말했다.

“한국에 속해있는 S급 헌터만 해도…….”

S - 01 블러드 레이스, 이태현.

S - 02 스노우 화이트, 유선.

S - 07 마탄의 사수, 고은소.

S - 09 이블아이, 이소연.

S - 10 폭탄마, 레이크.

헤인은 한국의 S급 헌터들을 한 명씩 떠올리면서 오른손의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이내 다섯 손가락이 모두 접혔다.

14명의 S급 헌터들 중에서 무려 5명이나 한국에 속해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이제는 13명이지.’

얼마 전에 새로운 S급 헌터가 들어왔고, 며칠 전에는 케이트와 토드가 죽었다.

14+1-2.

동료가 죽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리면서, 헤인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는 S급 헌터에 대해서 알고 있거나 들은 게 있는 사람 있나?”

조용히 앉아있던 록슬리가 턱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글쎄?? 그 녀석에 대해서는 협회장 말고는 아무도 모르고 있지 않나?”

“유선 언니는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어!!”

록슬리의 말에 얀과 마슈가 대답했다.

“흐음… 역시, 정보가 아예 퍼지지 않은 상태였군…그건 그렇고, 협회장님을 맘대로 낮춰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협회장님이 네놈 친구는 아니잖은가.”

록슬리는 언짢아하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얀을 빤히 쳐다봤다.

“뭐 어때. 매번 말하는 것 같지만 정작 협회장 본인은 이렇게 불러도 된다고 허락했다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은가.”

“그럼 뭐가 중요한 데? 그 쪽이 나한테 지금 시비를 걸고 있다는 거?”

이번에는 얀이 먼저 일어섰고, 록슬리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싸우겠다면 의자에서 다시는 못 일어나게 아예 붙여드리도록 하죠. 내참, 마슈 앞에서 그런 못난 꼴들을 굳이 보이고 싶나요?”

매번 그렇듯 얀과 록슬리가 다시 태격태격하기 시작하자, 펠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위협용인지 그녀의 앞에 있는 찻잔이 초록빛 기운에 휩싸이며 둥실 떠올랐다.

“마슈는 싸움 구경 좋아해.”

그리고 그녀의 옆에 앉아있는 마슈는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얀과 록슬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

“…….”

그 해맑은 표정과 순수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둘 다 뭔가를 깨달았는지 말을 잊었다.

“일단… 앉도록 하지, 얀.”

“그, 그래. 아저씨.”

조용히 자리에 앉은 둘은, 약간 자괴감에 찬 표정을 지으며 잠시 이마를 짚고서 고개를 숙였다.

“둘이 안 싸우는 거야? 왜?”

“그만… 잘못했어…….”

마슈는 그 표정 그래도 질문을 던졌고, 이는 그 둘의 자괴감을 더욱 자극시키는 꼴이 되었다.

끼이이익.

“흠. 한국 팀은 아직 인가?”

그 때 회의장 안쪽 문이 열리면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장이 회의장에 들어섰다.

다만, 그의 모습은 노인장(老人丈)이라기보다는 노장(老將)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비록 백발은 성성했지만 그 몸집과 체격은 듬직함 그 자체였고, 그 눈빛 또한 여전히 날카로웠다.

그가 벌써 환갑을 넘긴지 1년이 지나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할 것이다.

“협회장님 나오셨습니까.”

“아니, 뭘 일어나고 그러나. 같이 전장에 서는 헌터일 뿐인데.”

록슬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하자 협회장, 로이드는 손을 내뻗으면서 부담스러움을 표했다.

하지만 결국 록슬리는 로이드가 자리에 앉은 후에야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협회장. 이번에는 무슨 일로 모인 겁니까?”

얀은 반말과 존댓말이 섞인 애매한 말투로 말했다.

역시나 록슬리의 표정이 구겨졌지만, 로이드의 앞에서 소란을 피울 정도로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시급한 안건이긴 하네만… 그보다 우선은 인사부터 하기로 하지. 다들 잘 지냈나?”

“아니, 뭐. 그야… 평소처럼?”

“응! 마슈는 잘 지냈어!”

“그런 셈이죠?”

“그것 참 다행이로군. 그리고…….”

모두가 로이드의 말에 대답을 마쳤을 때, 로이드는 문득 기척을 느끼고서 정면으로 보이는 바깥쪽의 문을 쳐다봤다.

끼이이익…

로이드의 시선을 따라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있던 그 때, 천천히 회의장의 문이 열렸고, 그 정면에는 최근에 새로 뽑힌 S급 헌터, 조원호가 서있었다.

“…엥?”

그는 가장 먼저 정면에 있는 로이드와 눈을 마주쳤고, 곧 그 얼굴은 놀라움, 아니 당황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뭐하냐. 좁으니까 멍하니 서있지 말고 비켜라.”

그의 뒤에 있던 유선이 지나가면서 말했지만, 조원호는 계속 그 자리에서 로이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레온하르트?]

[그 쪽도 잘 지냈나? 아크.]

그리고 로이드, 아니 레온하르트는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아크와 전음을 나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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