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71화 (71/135)

71화

“그래서 말이야.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지…….”

집게로 한참 고기를 뒤집고 있던 전민호가 진지한 목소리로 지긋하게 말했다.

“그럼 다같이 건배나 할까?”

“좋아요, 건배해요 건배. 건배~”

하지만 전민호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녀석은 진지하게 말을 시작할수록 헛소리를 지껄이 확률이 높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 지금이 바로 우리 팀 이름을 정해야하는 순간이지 않을까 싶네.”

그럼에도 전민호는 꿋꿋이 말했다.

그 와중에도 조용히 잔을 들어 올리고 건배까지 하면서 말이다.

‘역시나 또 헛소리였군.’

아니나 다를까 또 헛소리였다.

나는 건배 후 깔끔히 비워낸 잔을 상에 내려놓으면서 생각했다.

아마 팀원들 모두가 이 순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아니, 생각해볼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오빠 가만히 좀 있어줘요.”

“제발 쓸데없는 짓 좀 멈춰줘…….”

어느새 품 안에 넣어뒀던 수첩까지 꺼내고 있는 전민호를 바라보며, 나와 소연이가 손사래를 쳤고 박서준은 아예 기겁까지 하고 있었다.

“왜 그래. 프로팀은 다 멋진 이름 달고 다니잖아. 팔란의 감시자라던가, 두란 공격대라던가, 흑풍회라던가. 우리도 그런 거 달자는 거지.”

전민호는 진지하게 고찰하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듣는 이로 하여금 어이가 없어지게 만드는 진지함이었다.

‘멋진 이름…?’

당연하게도 전민호의 말은 우리에게 공감을 주지 못했다.

그 사실은 그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에 명백히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시선을 읽어낼 정도의 눈치가 있었다면, 녀석이 이런 취급을 받을 일도 없었으리라. 역시나 전민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팀도 이제 엄연히 프로팀이니까, 우리도 팀 이름을 지어야지. 안 그래?”

“안 그래.”

조용히 전민호의 말을 듣고 있던 이세형이 대답했다.

“뭐, 팀명이 있으면 좋기는 하죠…….”

보다 못한 소연이가 대답했다.

“대외적으로 자기들 홍보할 때도 편리하고, 공적이랑 정산금 계산할 때면 계산하는 쪽도 편하고요. 나름 팀원들 간에 유대감도 쌓이고… 근데 그거 알아요?”

“뭘?”

“오빠가 말한, 팀 이름이 따로 붙어있는 팀들도 자기들이 직접 붙인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거요. 그냥 주변이나 언론에서 그 팀의 특징에 따라 부르다가 그 호칭이 자연스럽게 붙은 게 대부분이에요.”

“그, 그래?”

“그리고 자기들이 직접 붙인 팀들도 그냥 팀 규모가 커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붙인 것 뿐이구요. 알았어요? 애초에 그런 양반들도 그런 쪽팔린 이름은 안 짓는다구요.”

“그래, 팀 이름은 무슨 놈의 팀 이름이야.”

“무슨 애들 보는 파워레인저도 아니고 말이지.”

팀 이름 같은 거 지어봤자 쓸 데도 없다.

물론 팀 규모가 엄청 커진다면, 관리를 위해서라도 지어야겠지만, 우리 팀은 기껏해야 7명밖에 안 되는 소규모 팀이었다. 팀 이름 같은 건 없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 저기… 있잖아.”

그 때, 누군가 수줍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미카엘라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얼굴에 선명한 홍조를 띄운 채, 두 손을 얼굴 앞에서 꼼지락 거리면서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팀 이름을 짓는다면… 나는 로열 나이츠가 좋아…….”

그리고,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 고기 탄다.”

오직 전민호만이 태연한 모습으로 방금 전처럼 고기를 뒤집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니가 있었죠.”

“미카엘라답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아무리 미카엘라에 대해서만큼은 색안경을 뒤집어쓰고서 무한한 포용력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양보할 수가 없었다.

‘로열 나이츠는 작명 센스가 너무 구리잖아…!!’

마치 초등학생이 게임 길드명을 지은 것 같은 구린 명칭!!

나이츠까지는 그나마 이해해줄 수 있었지만, 로열은 도저히 봐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작명센스란 말인가.

“원호!!”

그 때, 가게 문을 열고서 크리스가 들어왔다.

조금 격하게 문을 열면서 소리를 치는 바람에 가게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그녀에게 집중되었지만, 곧 우리들을 발견한 크리스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곧장 이곳으로 걸어왔다.

“너… 진짜 술 냄새 하나는 오지게 잘 맡는구나. 또 왔니?”

나는 요즘 들어 내가 술을 마시는 순간마다 크리스가 찾아왔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크리스는 심지어 프로 헌터 등록 기념으로 팀원들끼리 회식을 했을 때도 나타났었고, 남자 팀원들끼리 간단하게 한 잔 하자며 포장마차에 들렀을 때도 나타났었다.

며칠 전에는 내가 방에서 혼자 맥주를 따고 있을 때도 나타났었다.

“어, 크리스 누나 왔어요?”

“오랜만… 이라고 하기엔 자주 보는 것 같네. 여기 앉으시죠.”

전민호와 이세형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켜주며 말했다.

오죽하면 이 녀석들이 자연스럽게 크리스에게 말을 건네는 지경이 되었을까.

“그래도 마침 잘 왔다, 야. 안 그래도 전민호 저 자식이 갑자기 무슨 팀명을 짜가고 또―”

[미안하지만 앉아서 술 한 잔할 시간은 없을 것 같네.]

“이야, 미안하지만, 오늘은 그냥 지나가던 김에 얼굴만 보려고 들른 거야.”

크리스는 전음을 보내는 동시에 육성으로 말했다.

그렇다는 것은 그녀가 직접 비밀스럽게 전달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고, 그 말이 얼굴이나 보려고 들렸다는 가벼운 말 일리는 없었다.

[…무슨 일인데?]

[뭔 일인데요, 언니?]

나는 갑자기 들려온 소연이의 전음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고, 소연이 역시 깜짝 놀란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다지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음… 아예 전음망을 열어둔 상태였었군.’

소연이와 나에게 같은 전음을 보내야하는 상황에서, 일일이 2번씩 설명하기는 귀찮으니까 크리스가 전음망을 열어둔 것이리라. 혹은 그만큼 급한 상황이거나.

[본론부터 말할게. 내일 협회에서 S급 헌터들끼리 회의가 있어.]

[뭐?]

앞 뒤 다 자르고서 튀어나온 갑작스런 본론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전음을 보냈다.

하지만, 소연이는 그녀의 말에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고민하고서 조심스레 전음을 시작했다.

[…갑자기 S급 헌터 소집이라니. 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케이트랑 토드가 당했어.]

“뭐라고요?”

꽤 많이 놀란 것인지, 소연이는 전음을 보내다 말고 육성으로 소리 지르다시피 말했다.

당연히 주변에 앉아서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다른 팀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소연이를 바라봤다. 하지만 소연이는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다는 듯 다시 전음을 보냈다.

[케이트랑 토드가 당하다니요? 대체 언제요? 어제까지만 해도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는 않았을 뿐이야. 노르웨이랑 스페인의 카오스 게이트 방어선이 그대로 싹 밀렸어. 완전 초토화야.]

크리스는 잠시 말에 뜸을 들였다. 조금 괴로워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방어선에 투입됐던 헌터들은 모두 전멸이야.]

그녀의 말에 소연이는 충격을 받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래도 방어선이 밀렸다고 해서 전멸은… 그래, 그냥 연락이 닿지 않는 걸 수도 있잖아요?]

[…이블아이.]

하지만 크리스는 소연이를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직접 현장에 다녀왔어. 직접 보고 왔다고. 둘의 생존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거야.]

[그럴 수가…]

‘음…….’

그리고, 그 전음을 듣고 있는 나는 애매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왠지 지금 상황이 굉장히 심각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구체적인 상황은 적당히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케이트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토드가 누구인지도 몰랐으니까.

‘일단은… 분위기상으로 봐서는 아마 S급 헌터들이겠군. 노르웨이와 스페인에 열린 카오스 게이트를 막기 위해 투입 됐었던 모양이지?’

그리고, 크리스의 말대로라면 그 둘은 죽었다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식으로 어렴풋이 지레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저 둘이 대체 뭐하는 사람이었고, 뭐하다가 죽었냐고 물어보는 건 굉장히 눈치 없는 짓이 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 질문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협회라고 하면 헌터 협회를 말하는 거지?]

[…그렇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든 나를 바라보면서 크리스가 답했다.

[그리고, 헌터 협회는 내가 알기로 독일에 있고.]

[그렇죠.]

이번에는 소연이가 답했다.

[근데, 갑자기 내일 독일까지 오라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돼?]

나는 크리스가 전음으로 다짜고짜 S급 헌터들끼리 회의가 있다는 말을 꺼냈을 때부터 갖고 있던 질문을 내뱉었다.

[뭐, 그건 당연히…]

크리스는 말을 얼버무리더니, 다짜고짜 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처음 보는 광장에 서있었다.

“…낮이잖아?”

분명 밤이었을 텐데?

하지만 눈앞에 건물을 바라본 순간 그 의문은 풀렸다.

‘헌터 협회… 중앙부로군.’

지금의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 중에 저 건물을 못 알아볼 사람은 없었다.

“믿음직한 택시기사가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겠죠?”

“…그래, 그러네.”

이 녀석이 일반적인 상식을 초월하는 공간마법 능력자라는 것을 잊고 있던 나는, 조금 허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다시 술집에 와있었다.

[뭐, 그렇다고 지금 협회에 데려다놓을 생각은 없어요. 내일 한국 시간으로 저녁 8시에 찾아올 테니, 그렇게 알아요. 전 다른 곳도 가야하니 이만.]

그 말을 남기고 크리스는 곧바로 눈앞에서 사라졌다.

언제나 그렇듯 그녀의 텔레포트를 본 사람들이 웅성거렸지만, 다행히 단순한 헤프닝으로 끝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일이야?”

미카엘라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이소연과 크리스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명백히 달랐기에, 어느 순간부터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상태였었다.

“뭐…….”

나는 소연이의 눈치를 보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2차는 못 간다는 거지.”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