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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70화 (70/135)

70화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전장에서 시시각각으로 아군의 영역이 좁아지고 진형이 붕괴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케이트는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몇 십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황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을 터였다.

S급 헌터, 라이트 애로우(Light Arrow) 케이트.

그녀는 14명의 S급 헌터들 중에서 8위를 차지하고 있는 헌터로, 최상급의 능력들을 가진 S급 헌터들 사이에서도 원거리 저격전과 지원사격에 있어서만큼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헌터였다.

본래 케이트는 협회에 소속되어있는 헌터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고국인 노르웨이에 카오스 게이트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자진해서 노르웨이에 파견을 나와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카오스 게이트가 열린 후, 전투는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진행됬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르웨이는 선진적인 헌터 복지 정책들로 자국의 헌터들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각국의 수준 높은 헌터들까지도 끌어 모으는데 성공하여, 안정적인 토벌능력을 가진 국가들을 꼽을 때 항상 들어가는 국가 중 하나였다.

이미 자체적으로 준수한 토벌능력을 가진 국가에, 협회의 지원부대까지 사전에 도착해있었던 상황이었다. 방어선도 이미 구축되어있었고, 인원도 부족하지 않았다.

아무리 카오스 게이트가 재앙에 가깝게 여겨질 정도로 위험한 사태라고 할지라도, 이처럼 충분한 대비와 전력들을 갖춘 상태로 맞이하게 된다면, 전투에서 크게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케이트가 헌터 생활을 막 시작했던 루키시절부터 누비고 다녔던 전장 중 하나로, 그녀가 S급 헌터가 되어 협회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현역으로 활동하던 곳이었다.

말하자면, 이곳은 그녀의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그리고 저격수의 포지션을 갖는 케이트가 익숙한 전장에 선다는 것은 그녀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된다는 뜻이었고, 그것은 곧 그녀가 전장을 압도적으로 지배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의 능력은 에테르로 빛의 화살을 만들고 그것을 쏘아내는 것이었다.

에테르를 무기로 형상화시켜서 다뤄내는 능력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그녀의 능력은 S급이라는 등급에 어울리는 것이었으며, 라이트 애로우, 즉 빛의 화살이라는 담백한 이명에 딱 어울리는 능력이었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화살은 그야말로 빛 그 자체였으니까.

그 거리가 얼마나 됐든, 그녀의 화살은 시위를 놓는 순간 과녁에 꽂혔으며, 그녀의 화살은 조금의 휘어짐도 없이 직선으로 죽 뻗어나가는 궤적을 그렸다.

말하자면 자신의 시야가 닿는 한 그녀의 사정거리는 무한대에 가까웠으며,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에 도달하는 시간은 그 거리가 얼마나 됐건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이 주변은 과거 도시였던 흔적이 남은 곳이라고는 하지만 시야를 가로막는 건물들이 대부분 무너져있었고, 기본적으로 평원에 가까운 지형이었기에 시야가 탁 트여있었다.

적당히 높은 건물을 아무거나 잡고서 올라서도 훌륭한 저격 포인트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케이트는 그 중에서도 전장의 거의 모든 영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주요 저격 포인트들을 이미 전부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고, 시야에서 사라진 적이 어디쯤에서 나타날 지도 미리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케이트에게 있어서 이 전장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은 단순한 과녁에 불과했고, 몬스터들에게 그녀의 화살은 반항할 수 없는 일방적인 학살을 의미했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전투는 헌터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진행되었다.

자칫하여 수적 열세에 몰리더라도,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기존에 배치 받았던 위치를 이탈하지 않고 사수만 하고 있으면 케이트의 지원사격이 몬스터 무리에 내리 꽂혔고, 애초에 대부분의 몬스터 무리는 가까이 오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너무나도 쉽게 풀리는 상황에, 심지어 몇몇 헌터들은 우스갯소리로 ‘케이트님이 우리들 몫까지 싹 다 벌어간다’라고 떠들어댈 정도였다.

이번 전투는 일방적인 승리로, 자신들의 돈벌이나 다름없는 전투였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불과 몇 십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군의 승기가 굳어져가던 전장은, 어느새 일방적인 유린의 현장으로 바뀌어있었다. 물론, 그 유린의 대상은 헌터들이었다.

케이트는 전장의 거의 모든 곳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저격 포인트에서, 그 광경을 실시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G-03 붕괴!! 즉각 후퇴하겠습니… 크아아악!!]

[F-08 무너집니다!! 사, 살려줘… 데스 나이트가…!!]

‘이거, 저희들 돈벌이까지 싹 다 긁어가시는 거 아닙니까?’

방금 전까지는 그런 장난기어린 무전까지 오고갔었지만, 지금 오고가는 무전들은 모조리 다급한 목소리와 절망만으로 채워져있을 뿐이었다.

‘데스 나이트… 아냐, 저건 데스 나이트와 달라.’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몬스터 무리의 수준이 차원이 달라졌다.

자신의 지원사격이 없더라도 비등한 상황을 이끌어나가던 방어선은, 마치 해일에라도 맞서는 것처럼 허무하게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케이트님, H-08로 지원 사격 좀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송신합니다. H-08로 지원 사격 좀 부탁드립니다!!]

[G-04!! 이런 시발, 무너진 G3번에서 몬스터 부대가 그대로 밀고 들어오는 중!! 지원사격 부탁드립니다!! 한 시가 급합니다!! 제발!!]

[케이트님!! 지원 사격 부탁드립니다!!]

‘쏘고 있단 말이에요!!!’

케이트는 당장이라도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의 손은 아까부터 쉴 새 없이 화살을 쏘아내고 있었다.

케이트는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손을 놀리며, 손가락에 피가 맺힐 정도로 속사를 퍼부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화살은 목표에 닿지 않았다.

시위를 놓는 순간 목표를 꿰뚫는 것이 그녀의 화살이었지만, 시위를 놓기 바로직전의 순간마다 계속해서 중간에 나타나는 배리어가 화살을 가로막았다.

“대체 누굽니까!! 앞으로 나오세요!!”

분노에 가득 찬 크리스가 고함을 내질렀다.

물론, 그런다고 적이 나타날 리는 없었으니 단순한 분풀이에 불과했다.

― 그러도록 하지.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의 눈앞에 칠흑빛의 갑옷의 기사가 나타났다.

아니, 저건 기사가 아니다.

텅 비어있는 갑옷일 뿐이다.

정면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로우 나이트의 투구 틈새를 바라본 케이트는, 그 순간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턱.

― …예의가 없는 사람이군.

케이트는 자신이 화살을 쏘아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속사를 쏴냈지만, 그녀의 빛의 화살은 코앞에서 다시 한 번 어이없게 배리어에 막힐 뿐이었다.

검은 갑옷은 별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 대화라도 좀 해보려고 했는데 말이지.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는 갑옷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갑옷에 어울리게 짙고 낮게 깔리며 메아리처럼 울리는 저음이었지만, 분명히 여성의 목소리였다.

할로우 나이트는 케이트에게 손까지 내밀면서 대화를 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충격을 받은 케이트는 그런 대화를 받아줄 여유도 없었다.

‘말도 안 되는 반응속도…….’

자신의 화살은, 말 그대로 놓는 순간 적을 꿰뚫는 빛 그 자체였다.

그 거리가 얼마나 됐건 간에 말이다.

그 속도는 생물체가 인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아까 전부터 자신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잡아당긴 시위를 놓기 바로 직전에 궤적을 읽어내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녀는 녀석이 어떻게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인지 확신은 가질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자신의 앞에 있는 저 검은 쇳덩어리가 말도 안 되는 괴물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 여기는 S-08. 현재 적과 교전―]

“크윽!!”

케이트는 현재 자신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무전을 시도하려했지만, 그 순간 귀에 차고 있떤 무전기가 검은 불꽃에 휩싸이더니 그대로 터져나갔다.

무전을 해보려던 그녀의 시도는 왼손에 화상을 남긴 채 실패로 돌아갔으며, 도중에 끊긴 그녀의 무전은 아군들에게 더욱 큰 혼란을 안겨준 채로 끝났을 뿐이었다.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아직도 한 쪽 손에서 검은 불꽃이 일렁거리고 있는 검은 갑옷이 말했다.

― 조용히 도망쳐라. 쫓지 않겠다.

“…….”

놀랍게도, 눈앞의 고물은 그녀에게 도망치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이성이 있는 몬스터라는 말인가?

최근 협회를 통해 마족이란 존재가 밝혀지기는 했다. 마족들은 몬스터들과 달리 뛰어난 이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화까지 가능했고, 몬스터들을 지휘하는 역할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눈앞의 갑옷이 마족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 늦지는 않았다만… 서둘러라. 시간이 없다.

눈앞의 검은 갑옷은 잠시 뒤쪽을 바라보더니, 다시 한 번 재촉하듯 말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비록 텅 비어있는 갑옷의 말에 불과할 지라도, 케이트는 그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케이트는 다시 시위를 잡아당겼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남아있는 에테르를 전부 쥐어짜내서.

이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노르웨이의 땅이었으며, 노르웨이는 자신의 고국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강력한 헌터는 자신이었고, 이곳에 이런 괴물이 와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도 자신뿐이었다.

자신이 아니면 이 괴물을 대체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케이트는 시위를 당겼다.

상대방과 자신의 압도적인 힘의 차이는 알고 있다.

알고 싶지 않아도 깨달아버릴 정도의 차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눈앞의 갑옷에게 시위를 겨눴다.

자존심, 혹은 책임감, 아니면 긍지.

어떤 것이 그녀를 움직이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 활시위에 걸려있는 빛의 화살은 여태동안 그녀가 쏘아낸 모든 빛의 화살을 통틀어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강력하다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위력보다는 기습을 위한 속사였기에, 그 빛이 시위에 걸려있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빛의 화살이 뿜어내는 빛은 주변이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한층 더 환하게 비춰질 정도로 선명하고 강렬한 것이었다.

이거라면, 저 녀석의 배리어를 꿰뚫을 수 있다.

코어를 쥐어짜낸 탓에 탈진감을 느끼면서도 케이트는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잡고 있던 활의 시위를 놓은 순간,

눈앞의 갑옷은 사라졌다.

정확히는, 바로 시위를 놓는 바로 그 직전에 사라졌다.

상대를 놓치고 허공으로 쏘아져나간 빛의 화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만, 화살의 궤적에 놓여있던 구름들이 흩어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역시, 시위를 놓기 바로 직전에 움직이는 거였나…….’

검은 갑옷의 움직임을 보고, 케이트는 자신의 가설에 확신을 가졌고, 그건 그녀의 마지막 생각이 되었다.

직후, 그녀의 목은 단 한 번의 일격에 깔끔하게 떨어져나갔다.

* * *

― …

그녀의 등 뒤에서 목을 베어낸 할로우 나이트는, 목을 잃고서 허무하게 쓰러지는 케이트의 몸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할로우 나이트는 푸른 불꽃을 일으켜 케이트의 시신을 불태웠다.

강철까지도 녹여버리는 푸른 불꽃은 재도 남기지 않고 그녀의 시신을 깔끔하게 태웠다.

루시퍼에게 되살려져 언데드의 꼴이 되는 것보다는, 이것이 나을 것이다.

이곳으로 다가오는 루시퍼의 기척을 느끼며 할로우 나이트는 자리를 피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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